다시 소중한 것들이 말을 건다 - 연필이 사각거리는 순간
정희재 지음 / 예담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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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션이 돌고 도는 것처럼 연필, 샤프, 볼펜 역시 순환의 과정을 거친다. 일정시점이 되면 볼펜 혹은 키보드를 이용한 글쓰기에 더 익숙한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는 사회적으로 중요한 자료는 '볼펜(혹은 문서)으로 쓴 글이 오래도록 남는다'라는 생각 때문이 아닐까 한다. 저자는 연필 자국 역시 시간이 흘러도 그 자리에 있다고 보는데, 나의 생각은 다르다. 얼마나 묵직하게 써내려갔느냐에 따라 보존도 달라지지 않을까하고-.

 

  저자 정희재, 연필 애호가인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아날로그 멋을 떠올리게 합니다. 디지털에 익숙해져버린 시대, 옛 것보다 혁신적인 것에 관심을 갖는 세대에게 오래된 것이 낡은 것은 아니오, 불편하다 하여 가치도 떨어진다 할 수 없음을 말해줍니다. 필름 카메라, 아날로그 라디오, 무선 호출기 삐삐 등을 거쳐 지금의 편리함에 이르렀지만 누군가는 지난날을 더 소중히 여기기도 합니다. 손 때 묻은 물건들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오감을 일깨울수도 있다고 말이지요.

 

  저마다 애착을 갖는 물건으로 하여금 세상과 소통하고 있지 않나 합니다. 저자의 경우는 연필을 애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봅니다. 철학적인 생애를 통해 겸손함을 배움은 물론이거니와 연필을 구입하는 순간부터 깎고, 다듬고, 종이에 쓰는 일련의 과정들이 성취감과 평화로움을 준다고 말이지요. 혹자는 대수롭지 않다 여기겠지만 애호가들의 입장에서는 그만큼 근사한 일도 없다고 말입니다.

  자신이 애착하는 물건을 볼 때의 안도감과 희열감을 경험해봤더라면 저자가 그토록 사랑해마지 않는 연필의 이야기에도 귀를 쫑긋하게 될 거 같습니다. 관심사가 같더라면 더 많은 화제로 나아갈 수 있듯, 슥삭슥삭 쓰여지는 연필소리를 공유하고 싶게 만드는 그의 책, <다시 소중한 것들이 말을 건다​>

  연필과 우리네 삶은 닮았다. 연필은 글자를 쓸 수 있는 자산과 기회가 유한하다는 것을 바로 확인하게 하는 필기구이다. 한 번 깎을 때마다 조금씩 키가 작아진다. 가장 손에 잘 맞는 길이가 되어 짧은 황금기를 누리다 몽당연필이 되고, 끝내는 연필로서의 생을 끝낸다. 마치 사람의 긴 인생을 축약해서 보는 것 같다.-p36

 

  다른이의 필통 속에는 어떤 것들이 자리잡았을까, 한 줄 그어내려가는 것에서 어떤 바람을 담고 있을까를 함께 나누고 싶게 만드는 그의 글에는 연필로 한 글자 한 글자 조심히 써내려간 흔적들이 느껴집니다. 그 날의 기분에 따라 알맞은 연필을 골라 신중하게 혹은 낙서하듯 쓰면서 즐거움을 느끼는 모습이 행복은 참 별 거 아니구나 싶어집니다.

  인상깊었던 이야기 하나를 소개로 끝냅니다. 일본의 미쯔비시 연필깎이 제조회사는 신입사원을 대상으로 연필깎이 입사식을 치른다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선배로부터 연필에 대한 지도와 올바른 자세를 교육받고, 입사 마음과 5년 후의 나에게 보내는 글을 써보게 한다고 합니다. 이러한 행동에는 "연필은 스스로 깎지 않으면 사용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입사후에도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고 자신을 닦아 나가길 바란다" 는 회사의 소신이 담겨져 있다고 해요. 정형화된 입사식보다는 더 뜻깊었던 거 같습니다.

 

  이미 지니고 있는데도 아직 발견하지 못한 보물이 얼마나 많을까. 둔했기에, 무심히 보아 넘겼기에 알아차리지 못한 내 안의 보석을 생각한다. 쉽게 힘들다고, 권태롭다고, 불운하다고 말하기 전에 우선 내가 무엇을 지녔는지부터 돌아볼 일이다. 마음의 눈과 귀를 열면 손때 묻은 연필 한 자루 속에도 경전이 들어앉아 있다.-p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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