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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추정 시각
사쿠 다쓰키 지음, 이수미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0년 9월
평점 :
절판
“인생은 화와 복, 즉 재앙도 행복도 서로 뒤섞여 꼬인 새끼줄 같다는 의미인데, 내가 원죄사건을 만날 때마다 이 말을 떠올리는 이유는 원죄라는 건 결코 한두 사람의 악인이 품은 악의나 누군가 한 사람의 실수만으로 일어나는 게 아니기 때문이지. 수십 가닥의 짚이 꼬여서 굵은 밧줄이 되는 것처럼, 수십 명의 인간이 한 일, 즉 악의뿐만 아니라 일종의 선의, 배신이나 과실에다 일종의 의무에 충실한 행동이나 모범적인 행위도 모두 함께 꼬이고, 다양한 인간 활동이 얽히고 설켜, 그것이 어떨 땐 원죄가 되기도 한다는 말일세. 그걸 항상 통감해.” -p523
유괴된 소녀의 사망 추정시각을 둘러싼 미스터리
야마나시현에서 지역 유력인사인 와타나베 쓰네조의 외동딸이 유괴된다. 범인은 몸값 1억엔을 요구하지만, 경찰의 지시에 의해 그 돈은 전달되지 못한다. 그로부터 외동딸 미카가 시체로 발견되어지고, 쓰네조는 아끼는 딸 미카가 언제 죽었는지 사망 시각을 알고자 하며, 이를 둘러싼 경찰의 움직임이 재빠르게 그려진다. 경찰조직의 비밀스러운 움직임, 그 속에는 무고한 청년으로 하여금 자백을 받고 사건 종결하기까지의 이야기가 빠르게 진행된다.
“한 번 완성된 것은 되돌리기 힘든 법이지.”
“예?”
“그리고 피해자 가족이 안정을 되찾을 수 있도록 돕는 것도 경찰의 중요한 임무야.” -p67
무고한 청년이 유죄를 받게 되기까지의 과정이 숨돌릴틈없이 전개된다. 이 과정속에 자신들의 잘못을 숨기기위해, 거짓을 만들어내는 고위관리직들과, 검사관, 형사, 법조계 사람들의 모습이 씁쓸하다. 정직한 사건 해결이 아닌, 한 청년을 심판대위에 올려놓고 알맞게 요리해나가는 게 과연 소설책 속에서만 있는 일인지 되묻게된다.
몇 십년동안 범죄자로 살았지만, 알고보니 진범은 따로 있었다는 기사가 생각난다. 그런 상황이 있었더라면 이 책 속 상황처럼 무자비하게 몰고갔을 그 모습들이 비로소 생생하게 그려진다. ‘자백하면 형량이 줄어든다, 여기서 일단 인정하고, 재판소에 가서 부인할 수도 있고, 재판관도 정상 참작이 가능하다, 조서를 유리하게 써주겠다, 너도 이제 그만하고 편히 쉬고싶지 않느냐?’ 와 같이 어둡고 낯선 곳에서, 취조 경험이 많은 무서운 형사들 앞에 오랜 시간 놓여있다면 그 상황을 회피하고 싶어서라도 시간이 지나면 죄를 인정하게 되지 않을까? 말이다. 책 속 등장인물 쇼지의 심경이 한편으론 이해가 된다.
전체적인 스토리는 간단해보일지언정, 숨어있는 부분들을 뒤집어보면 그 진실에 놀라움, 배신감 등을 느낀다. 그 중에서도 진실을 이야기해야하는 경찰임에도, 조직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지고 마는 것, 무시할 수 없는 조직의 힘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진실을 외면한채 본 것, 들은 것도 모르는 척 해야하는 조직에 속해있다면 당당하게 나서서 진실을 말할 수 있을지 나는 자신할 수가 없다. 때론 개인보다 조직에 의해 좌지우지 될 수 밖에 없는 현실이 마음을 아프게 한다.
무죄를 입증하지 못하면 유죄일 수 밖에 없는가?
외진곳에서 열려진 가방을 보게 된다. 가까이가서 보니 돈이다. 주위를 둘러보니 아무도 없다면? 돈만 꺼내서 달아났을지도 모르고, 신고했을지도 모르겠다. 돈만 꺼내서 훔쳐갔다고 가정하고, 좀 더 외진길을 가고 있는데 누워있는 사람이 보인다. 혹시 몰라 살짝 건들어보니 몸이 너무도 차갑다. 온 몸에 소름이 돋을만큼 이상한 기분, 혹시 죽었나? 겁이 나서 경찰에 신고하지도 못하고 그대로 집으로 들어온다. 며칠이 지나 경찰이 다가와 최초발견자이며, 네 지문이 나왔다, 바른대로 말하라며 혹독한 취조를 시작한다면 어떨까? 두렵고 힘든 시간이겠지만 범인이 아니기에 아니라고 대답한다. 그러나 이를 입증할 증거는 없고,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다. 압박과 함께 범인으로 몰아온다면?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지 까마득하다.
이는 책 속 쇼지의 상황을 줄인것으로 그의 상황으로 하여금 느끼는 것을 몇 가지 줄여본다. 첫번째로 느낀것은 무엇이든 함부로 건들이면 안된다는 것이다. 투박한 나무 상자가 떠내려오길래 건들였더니 폭탄이었다는 뉴스가 있었다. 요즘 너무 흉흉한 탓인지 남의 것, 모르는 것을 건들여 큰 화를 당하는 일이 너무도 빈번한 거 같아 책을 읽고나니 더 조심해야할 거 같은 생각이 든다. 두번째는 보이는 것만으로 너무 빠르게 속단하고 있지는 않은지 자문해보았다.
<전과3범인 쇼지, 자백하다, 증거자료-지문> 까지 나왔다는 기사를 본 후, 자백을 강요받았다는 기사를 보게 된다면? 나는 어디로 마음이 향할지 모르겠다. 진실은 알지 못한채, 사형받고 싶지 않아서 발버둥치는걸로 느껴질지도 모를 일. 어쩐지 좀 더 조심스러워지는 부분이다. 과연 무엇이 진실이고, 어째서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는지 좀 더 많은 생각을 해보게 하는 책이다.
“인간에겐 저마다 사정이라는 게 있는 법이야. 타인의 일에 더는 간섭하지 말게.” -p4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