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즈의 닥터 - 제1회 자음과모음 문학상 수상작
안보윤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 기억은 진짜 기억일까?> 라는 책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서 없던 일을 만들어내기도 하며, 사건과는 다르게 재구성 시킨다.’ 는 것. 그 말인즉, 사람의 기억이란 백이면 백 믿을 수 없다는 것을 뜻하기도 하는데 <오즈의 닥터> 는 김종수, 닥터 팽, 수연이라는 등장인물로 하여금 기억에 대하여 다시 묻도록 한다. “당신이 기억하는 것이 진실인가, 허구인가?”

 환각의 힘으로 진실 무너뜨리기.

 더 이상 최악일 수는 없다. 절망 앞, 벼랑 끝에 서 있을 때 잠시 눈을 감고 생각한다. ‘이건 현실이 아니야! 악몽이야.’ 눈 앞에 벌어진 일을 믿을 수 없어서, 믿기 싫어서 허상에 사로잡히곤 한다. 허상 속 세계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있기에 기분이 좋아진다는 장점이 있지만, 눈을 뜨면 현실 앞에서 곧장 무너져내리는 경우가 있다. 안타깝지만 이럴때는 달리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다시 환상 속으로 들어가거나, 현실과 맞서 싸우거나! 둘 중 하나다. <오즈의 닥터> 속 김종수는 전자에 해당되는데, 그를 보면 나 역시도 환상 속으로 들어가는 사람에 불과하다는게 느껴져서 씁쓸하기도 했다

 도망칠 겁니까? 그래요 닥터. 나는 도망칠 거예요. 현실을 정면으로 바라보면서 살아가야 한다니 그건 너무 끔찍한 형벌이잖아요. 나한테는 이 정도가 어울려요. 죄책감도 책임감도 자부심도 없는 이 정도가. - p249

  간단한 줄거리 = 주인공 ‘나(김종수)’는 가상의 정신과 의사인 ‘닥터 팽’을 만나 상담과 진술을 한다. 그러나 갈수록 ‘닥터 팽’의 외모뿐만 아니라 주인공의 진술은 변형되고 번복되는데, 그는 가상과 현실을 제대로 보고 있는걸까? ‘닥터 팽’에게 상담을 하면서 내뱉는 ‘나’의 진술은 진짜 같은 허구이며, 그는 진실을 회피한채 환상 속에서 살아가는 김종수의 이야기…

 정신없이 쏟아지는 닥터팽과 김종수의 대화, 수연의 이야기로 가득한 책은 흥미로운 동시에 흡인력있게 읽힌다. 그 중에서도 단연 김종수의 시각이 책을 읽는 내내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데, 실존하는듯한 팽의 모습을 그리다가도 어느순간 사라져버린 팽은 과연 상상 속에서 만들어낸 인물에 불과한 것인지 따져 묻는 장면에서는 살짝 소름이 돋기도 했다. 가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그에게 닥터 팽은 어떤 느낌이었을지 도무지 상상이 되지 않지만, 나름 즐겁고 유쾌한 시간이었음에는 분명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위조된 기억, 날조된 기억을 안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묻다.

 이 책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위조되고 날조된 기억’ 이다. 이는 주인공 김종수 뿐만이 아닌, 모두가 그런 기억 하나씩은 있지 않느냐는 것과,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의문을 품어야 하는지에 대해 조심스럽게 이야기하고 있는데, 주제는 새롭지 않았지만, 독특한 캐릭터와, 시간과 공간을 왔다 갔다하는 조금의 어지러운 듯한 분위기가 인상깊게 남는 책이다. 현대인들에게 기억에 대해서 확답을 내리는 것이 아닌, 물음을 던져놓음으로써 더 의미있는 책 읽기였다.

-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을 전부 볼 수 있는 사람은 없지.
- 난 내가 본 것만 믿어요.
- 자기가 본 건 어떻게 믿어? 자기가 보았던 게 전부 현실일까? 게다가 자기, 환각 증세 있잖아. 환각이랑 현실을 명확히 구분해낼 수 있다고 확신해?
- 항상 환각만 보는 건 아니에요.
- 그 반대일지도 모르지. 환각이라고 해도 창문 밖에 판다가 매달려 있다거나 공룡이 나타난다거나 하는 귀여운 종류만은 아닐 거 아냐? 자기가 보고 있는, 자기가 현실이라고 믿고 있는 그 화면에 감쪽같이 숨겨져 있는 거라고. 숨은그림찾기나 매직아이보다 훨씬 더 교묘하게. 아니, 아니, 화면 그 자체가 환각일지도 모르지. - p33

 <오즈의 닥터> 실제인지, 꿈을 꾸는 것인지 혼란스러운 가운데 알게 모르게 탑을 쌓아올렸다가 허물어뜨리는 작가 안보윤의 글솜씨가 놀랍다. 그녀의 글은 겉이 번지르르해서 먹기 좋은 사과를 눈앞에 두고 한참을 이야기하다가, 이건 모형이에요! 라고 장난스럽게 말하는 거 같달까?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마지막 페이지에 이르러서 보기좋게 한 방 먹이는 재치있는 글은 「제1회 자음과 모음 수상작」 에 걸맞는 작품이 아니었나 생각해본다.

- 도대체 진실이라는 게 뭐죠? 뭐가 현실인가요? 내가 지금 보고 있는 당신은 현실인가요? 여기 있는 내가 현실이에요? 대체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망상인 거죠?
- 자네가 믿고 싶어하는 부분까지가 망상이고 나머지는 전부 현실이지. 자네가 버리고 싶어하는 부분, 그게 바로 진실일세. - p17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