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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상처가 나에게 말한다 - 나하고 얘기 좀 할래?
울리케 담 지음, 문은숙 옮김 / 펼침 / 2009년 12월
평점 :
품절
십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어린 시절의 상처는 사라지지 않은채, 그림자처럼 나를 졸졸 따라 다닌다. 있는 듯 없는 듯 느껴지는 이 그림자는 가끔씩 ‘나 여기 있잖아 기억해!’ 라고 알려주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불쑥 내 기억으로까지 침범해오곤 한다. 그와 동시에 나를 통째로 흔들어놓는 재미라도 느끼고 싶은건지 그 날의 기억을 상세하게 보여주곤 하는데, 그럴때면 어떻게 대처해야하는지 잘 모르겠다.
아직도 깊은 상처로 남아있으며, 잊기 위해 애를 쓰는 내게 너무한 거 아니냐는 말만 되새길 뿐,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돌이킬 수 없는 악몽으로 자리잡아 버린 기억 앞에서 무너져내릴 뿐이다. 끝을 알 수 없는 어린 시절의 상처로 인해 자꾸만 움츠려들던 찰나 따스한 느낌의 책을 한 권 보게 되었다. 잔디밭에 발을 딛고 그네에 앉아있는 소녀의 모습이 담긴 책은 어딘지 모르게 포근함을 선사해주었다.
<나하고 얘기 좀 할래? - 어린시절 상처가 나에게 말한다> 라는 제목을 읽으면서 십 년 전의 내 상처가 번뜩였다. 요즘 들어 더욱 더 생각나는 그 일이 내게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궁금하기도 하고, 이번 기회에 스스로와도 진지한 대화를 해보고 싶은 마음에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인문서와 심리학이 적당히 조화를 이루어 쓰여진 글은 쉽게 읽히지 않았지만, 포인트를 준 글씨 덕분에 대강의 그림은 그릴 수 있었다.
* 내면의 아이는 소위 우리 속에서 나오는 본능적인 측면 즉, 감정을 뜻한다. *
큰 틀의 내용인 즉, 내면 대화 요법을 통하여 숨겨진 내면의 아이를 만난다는 것이다. 그 아이의 말에 귀 기울이면서도, 너무 끌려가지는 말고 자신이 주도적으로 상황을 변화하도록 노력하게 하도록 해야 한다는 말인데, 이를 몇가지 사례와 함께 예로 들어 쉽게 설명하고 있다. 아래는 책에서 인상 깊었던 몇가지를 좀 더 구체화 해보았다.
우리는 끊임없이 과거를 새롭게 만들어낸다.
우리가 현실로 경험하는 것은 우리의 관심을 어디에 두었는가에 따른 결과이다. 즉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어떤 상황에 대한 진실이 아니라, 우리가 어디에 관심을 두느냐에 따라 그것이 우리의 현실이 된다는 말이다. 사람들이 동일한 상황을 각기 다르게 경험할 수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반만 채워진(혹은 반이 빈)잔에 대한 유명한 예화를 보면 알 수 있다. - p24
이 책에서 첫번째로 인상 깊었던 것은 ‘과거치장 프로그램’ 이다. 말이 제법 그럴싸하지만 알고보면 쉽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기억력 작용이 변하여 과거의 일들을 그립고 아름다운 시절로 바꾸어보게 해준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이는 노인들의 경우 감정적 평온함을 위해 좋은 일들만 훨씬 더 많이 기억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고 한다.
책을 읽으면서 이 부분이 기억에 많이 남았던 것은 나 역시도 슬프고 절망적이었던 상황에서 조금씩 벗어나 그 때 그런 일이 있었다! 라고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 상처는 다 회복되지 못했지만, 어느정도 안정되고 평온함을 느끼기에 많이 공감할 수 있었던 글이었다. 더불어 과거의 기억이란 끊임없이 변화하고, 바라보기에 따라 행복해질 수도 있기에 아직도 불안함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읽어보면 좋겠다.
좋든 싫든 아이의 인생은 어른들의 관심이나 애정에 의존한다. 게다가 부모 혹은 역할 모델을 맡은 어른 자신이 상처받은 내면의 아이를 지니고 있는 경우에는 그들의 심리적 빈곤함 때문에 자녀들의 욕구를 채워주는 일이 더 어려워진다. - p79
두번째는 나를 위해서도, 훗날의 자식을 위해서도 마음속에 상처를 담아놓고 꽁해있기보다는 풀어야 한다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 영향이 자식에게도 해를 가할 수 있는 일이기에 가슴속의 상처를 지니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통해 내면의 아이와 대화하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