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희>는 영상 분석을 전문으로 하는 대야의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시력을 잃어가는지도 모를만큼 분주한 삶을 살아왔던 그에게 어느날 선영이 찾아온다. 제주 한달살이를 하러 간 선희의 실족사로 가족들은 힘들어했고, 동생 선영은 우울증이었던 언니를 너무 모른 채 살아왔노라 고백한다. 흩어져있던 여러 퍼즐 조각들을 맞춰 하나의 그림을 완성하길 바랐고, 그 끝에는 선희의 절박함에 가슴이 매어졌다. 삶의 의지가 있던, 누구보다 잘 살고 싶었던 선희의 흔적들이 곳곳에 남게 된다.
기억은 이따금 시간이 지날수록 진실과 점점 멀어져 왜곡되고 비틀어진다. 그렇게 변형된 기억은 점점 강해져 몸집을 불리고 그 사람의 신념으로 자리 잡는다. 객관적 증거도, 진실도 소용없어진다. 하지만 영상이나 사진은 다르다. 왜곡되지 않으며 자체 편집되지 않는다. 해석하는 사람이 악의적으로 편집할 수는 있어도, 영상 증거는 그저 사실만을 기록할 뿐이다. -p133
우리는 사진/영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천개의 눈 CCTV가 어디서든 나를 찍고 있고, 손 안의 휴대폰 속 카메라를 통해 나 역시 무언가를 남긴다. 기쁘고 속상한 일은 물론이거니와 감정상태에 따른 날씨사진을 남기기도 하고, 입은 옷, 먹은 것 등 무수히 많은 것을 기록하고 살아간다. 특별히 의미부여를 하지 않기도 하지만, 죽은 이가 남긴 것이라면 별 것 아닌 사진조차 흘려보내진 못한다. '왜? 무엇을' 남기려고 한 것인지 알고 싶은 마음이 앞선다. 선희가 찍은 사진들을 통해 퍼즐을 맞춰가는 대야를 보며, 나는 누군가의 사진을 그렇게 세심하게 들여다 본 적이 있는가 생각했다. 사진 그 자체로만 봤을 뿐, 숨겨진 트릭을 고민하지 않았다. 최근에는 딥페이크 등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한 합성 사진이 많아 무엇이 진실인지 알기란 더욱 어렵기에 제대로 된 영상 전문 분석가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힘없는 정의는 무력하고, 정의 없는 힘은 폭력*(프랑스의 철학자, 블레즈 파스칼)이라는 말처럼, 힘없는 정의의 무용함에 모두들 허탈함을 느끼고 있지는 않을까. 우리는 너무 쉽게 누군가를 의심하고 단정한다. 그 사람을 알려 하지 않고 보이는 것만 믿으려 한다. 때론 보이지 않는 것에 진실이 숨어 있는 줄은 모르고 말이다. -p221
법 영상 분석가의 눈으로 담은 정의의 풍경 속 한 모습에서, 다양한 영상 분석 기법을 돌아보게 되었다. 전문 지식이 없는 분야이기에 '이럴수도 있겠구나' 에 그치지만, 과학기술은 날로 발전하고 있으니 다양한 분석법으로 억울한 일을 겪는 사람들이 없길 바랄 뿐이다. 보고 싶은 것만 보는 편협한 인간에서 나아가 내가 보는 것이 진실인지, 사진/영상 속에 등장한 인물이 전하고자 했던 마지막 말은 무엇이었을지를 고민하기에 이른다. 선희가 제주의 아름다운 풍경을 카메라에 담았듯, 모든 이들이 아름다운 것들로만 두 눈에 담고 갈 수 있기를 -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