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의 유럽
노현지 지음 / 있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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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의 칠순 기념을 위해 여행을 떠나다 !

눈깜작할 사이에 환갑이 지나고 어느덧 칠순을 목전에 둔 엄마를 보고 있자니 마음 한 켠이 아린다. 언제 그렇게 늙어버리셨을까 싶은 것이 체력도 기억력도 예전만하지 못하다는 것을 실감한다. 그럼에도 일을 그만두지 못하고 하루하루 고군분투하는 것이 여간 마음 아프다. 고된 삶을 살아내느라 해외 여행 다녀본 일조차 손에 꼽을 정도니 돌이켜보면 딸로서 그 역할을 잘 하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지금의 우리처럼 엄마와 아빠역시 한창 놀기 좋은 젊은 시절에는 눈앞에 몰아치는 하루하루를 살아내느라 어디로도 떠나지 못했을 터였다. 이제야 언제든 떠날 시간이 넘쳐나고, 떠나고 싶은 마음도 가득한데, 그와 반대로 자꾸 가라앉는 체력과 세상의 변화에 뒤처지는 감각의 노화 탓에 여행을 데려가주는 자식의 억지 일정에 맞춰야 하는 부모님의 처지가 안쓰러웠다. 어떠한 이유로든 놀기 좋은 때는 못 노는 것이 인간의 굴레인 것일까. -p29

여기 칠순을 기념하여 유럽 여행을 떠나게 된 삼대가 있다. 딸은 부모님 패키지 여행을 보내드리자 했으나, 장인어른을 위해 자발적 가이드를 자청한 사위 덕분에 여섯살 난 어린 손주와 함께 3개국 도시를 투어하게 된다. 프랑스 파리, 영국 런던, 스위스 루체른과 알프스를 돌아보는 긴 일정동안 서로를 향한 시선이 보다 따뜻하게 다가온다. 지나고나서야 더 애틋해지고 그리워지는 그 날의 이야기에는 서로를 향한 애정을 엿볼 수 있다. 소중하지만 잊고 살았고, 몰랐거나 외면했던 것들을 들여다보자.

내 몸 하나 건사하느라 기를 쓰며 살아온 나는, 점차 나이가 들어 세상에서 조금씩 뒤처져 가는 부모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그들의 '괜찮다'는 말을 철석같이 믿으며 자식의 역할을 간과하고 있는지 몰랐다. -p95

장인,장모님을 모시고 해외여행을 떠나는 사위라니 멋있다. 그러나 내게도 이런 사람이 있지 않은가. 맛있는 거 먹을 때면 '어머님 식사 포장해가자' 하고, '어머님 벚꽃 구경 하러 가요' 라고 말하는 그는 예비 남편이다. 말이라도 고마운데 여기에 더해 '어머님과 해외 여행 가자. 내가 가이드 할게' 라며 우스갯소리로 던졌던 그가 이 책 속의 사위를 보는 듯 했다. 처가와 여행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음을, 안테나를 세우고 모두의 컨디션 관리를 위해 진땀 빼야 한다는 것을 얼마나 체감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하여 이 책을 읽어보라고 해야지) 사위가 흘린 '피, 땀, 눈물' 에서 고마움과 안쓰러움을 느끼면서도 황혼 유럽 여행에 심취한 부모님을 보는 딸의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바삐 살아온 부모님에게서 보이는 행복한 미소 속에서 미안함과 고마움, 사랑과 존경을 조금이나마 느낀다.

함께 여행하며 같은 것을 보고 체험해도 각자가 가진 경험에 따라 저마다 다르게 느끼기 마련이었다. -p92

시간, 돈, 체력 이 모든 것들이 받쳐줘서 여행하기란 쉽지 않다. 여건이 되면 떠나자라는 말로 차일피일 미루다 보면 어디 하나 고장나서 떠나기 어려워지는 순간이 다가온다.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끼고 경험하기에 더 좋은 순간은 바로 지금이 아닐까 라는 뻔한 말을 할 수 밖에 없지만 그 당연함을 내일로 미루다보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은 많지 않을 것이다. 에펠탑의 야경을 보지 못한 부모님이 속상하면서도 영원히 내 곁에서 든든하게 서있을 것 같던 두 분이이 약해져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던 저자의 글에 눈시울이 붉혀졌다. 어제 오늘 몸이 다르다고 말하는 엄마 곁에서 칠순 기념 여행이 아닌 지금 이 순간을 함께 해야하는 이유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든든했던 부모님의 보호자가 되어야 하는 현실 앞에서 여행을 하며 겪게 되는 에피소드는 때론 눈물을 글썽이게 했다. 돌이켜보면 어린 시절의 나에게 추억을 만들어주기 위해 노력했던 부모님의 마음을 그 때는 몰랐다. 아쉽고 부족한 것들로만 기억되던 것들 너머에 애정어린 진심을 이제서야 돌아보게 한다. 흔한 여행 이야기지만 자식의 시선에서 본 그 마음이 특별히도 더 와닿았기에 함께하는 여행을 미루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필히 읽어볼 만하다. 지금 떠나야만 하는 이유, 맛있는 것을 함께 먹고 유난스럽더라도 사진을 많이 남겨둬야 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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