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아도 존재하고 있습니다 - 물리학자 김범준이 바라본 나와 세계의 연결고리
김범준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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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곳곳을 돌아다니다 태양의 중력에 어쩌다 묶여서 함께 뭉친 원자들이 지구가 되고, 지구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원자가 어쩌다 모여 내가 되었다. 내가 죽고 나면 이들 원자는 또 곳곳으로 흩어진다. 지금 내 몸을 이루는 원자들의 모임에서 시작해 시선을 과거로 돌려도 미래로 돌려도, 원자들은 공간에 널리 흩어진다. 나는 우연으로 모인 많은 것이 다시 흩어지기 전 잠시 머무르는 시공간의 한 점이다. -p113


최근 가까웠던 분이 배우자상을 당해 장례식장을 다녀왔다. 떠나보낸 마음이 오죽하겠냐만서도 묵묵히 살아가야하는 삶에 대해 생각하며 이 책을 읽다보니 마음 한 켠이 차분해졌다. 세상 모든 것은 원자와 분자로 이뤄지며 보이지 않아도 존재하고 있다는 그 무언의 말에서 힘을 얻었다. 언젠가 나 역시 누군가를 떠나보내야 할 때, 비록 육신은 사라져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님을 알기에 견딜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다.


"우리 모두는 티끌처럼 사소하지만 태산 같은 무거움을 지닌 특별한 존재들"


각설하고, 과학이란 이름으로 까맣게 잊고 지내던 것들을 꺼내보게 되었다. 우주, 중력, 상대성이론, 양자역학에 이르기까지 정신없이 휘몰아친다면 아마 중도포기하고 읽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일상 속에 존재하고 있는 것들과 그에 대한 순간을 잘 포착해 담아낸 이 책에서 무심코 간과하면서 지나간 것들이 이렇게 살아 숨쉬고 있음에 감사한 마음을 갖게 했다. 


우주에서 바라본 인간이란 존재의 의미, 이 곳에서 지나가는 모든 것들에 대한 포착을 섬세하게 그려냈다고 하기엔 물리학자스러운 표현들이 곳곳에 묻어난다. 때때로 잘 읽히지 않는 문장들이 있었지만 (앞으로 다가올 겪음의 두름이 우리의 먼 미래를 만든다-같은) 과학적 지식을 넘어 세상을 대하는 태도를 엿봄으로서 보이지 않아도 존재하는 것들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를 상기시키게 만들었다.


자신의 전문분야에 있어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들은 저마다 독특하지만 또한 일관성을 드러낸다. 존재의 이유와 가치를 말하고 삶의 원동력이 되어주는 그 무언가를 찾았으며 그에 대한 관점을 이야기한다. 이 책은 물리학 이론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 광활한 우주 속 이토록 작은 지구와 그 안에 희미한 점으로서의 존재에 대해 생각하기에 이른다. 작고 보잘 것 없는 내 월급이 소중하듯, 수많은 원자가 모여 만들어진 이 지구상에서의 나란 사람에 대해서도 애틋해질 수 있기를... 


모든 물질을 이루는 원자의 존재감처럼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들에 감사함을 느낀다. 내게는 벅찬 물리학을 사랑하기에 이 책이 수월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과학이 티비 속으로, 일상 속으로 가깝게 스며들어 모두가 쉽게 그려나갈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도 가지게 된다. 몰라도 살아가는데 지장이 없어서 외면했던 물리학에 조금이나마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면 그것으로 되었다.


포스트잇을 붙여둔 문장 두개를 소개하며 책의 소개를 끝낸다.


어쩌면 당신과 나 사이의 상호작용에도 작용-반작용의 법칙이 적용되는 것은 아닐까. (...) 당신이 나에게 스치듯이 말한 한마디는 짜릿한 기쁨이 될 수도, 가슴에 꽂히는 비수가 될 수도, 혹은 쇠귀에 들리는 경이 될 수도 있다. 같은 말이라도 내 마음을 움직이는 정도가 다른 이유는, 결국 당신의 말의 경중이 아니라 내 마음의 질량에 달린 것이 아닐까. -p124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한 세상의 깊은 속내를 송곳처럼 찔러 드러내는 분들이 있다. 통렬한 아픔 뒤에는 깊은 성찰이 이어진다. 나는 이런 분들의 뾰족한 말을 들으면 감탄과 함께 존경의 마음이 생긴다. 하지만 아픔과 불쾌감만을 주는 말도 있다. 우리를 성찰로 이끌지 않는 '뾰족'은 '삐죽'이다. 세상을 보는 시선은 깊고 뾰족하지만, 다른 이의 마음에 닿는 나의 말은 뾰족하지 않기를 바란다. 다른 이의 '삐죽'에 닿는 내 마음은 부드러운 '뭉툭'이기를. 삐딱한 세상을 보는 내 시선은 '뾰족'이어도 '삐죽'은 아니기를. -p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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