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의 피난소
가키야 미우 지음, 김난주 옮김 / 왼쪽주머니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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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의 일이다. '재난 대응 훈련에 직원분들의 적극 협조를 바랍니다' 라는 방송과 메일에도 불구하고 책상에 앉아 자리를 지켰다. 극소수만이 훈련에 참여하였고 대부분이 복지부동의 태도를 보였다. 저마다 이유가 있었지만 어렵다, 힘들다, 안된다는 식의 변명으로 늘 핑계가 합리화되었다. 당연하지 않은 일이 당연하다고 여겨질 정도로 무사안일주의에 빠진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겠는가.

"해일 경보가 발령되었습니다. 높은 곳으로 대피하십시오."

2011년 3월 11일 일본에서 네 번째로 규모가 큰 지진이 후쿠시마를 휩쓸었다. 자연재해 앞에 속수무책이란 말처럼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이 컸는데 집과 일터, 사랑하는 사람 외에도 많은 것을 앗아갔다. 언론을 통해 보고 들었던 것 이상으로 현실과의 괴리감이 컸던 것은 불과 십 년도 안되는 시간이라는 점, 여전히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을 지닌 이들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책을 덮고 한참이 지났건만 극한의 상황에 내몰린 수많은 사람들의 추악한 민낯에 경악을 금할 수 없다.

해일의 가운데에서 살아남기 위한 세 여자의 이야기다. 도박과 구박을 일삼는 남편을 둔 50대 여성 후쿠코, 이혼 후 홀로 아들을 키우는 40대 여성 나기사, 해일로 남편을 잃고 6개월 된 갓난 아들을 키운 20대의 예쁜 여성 도오노의 피난소 생활은 참담했다. 특히나 홀시아버지와 시아주머니를 모시는 어여쁜 도오노를 향한 음흉한 시선과 생각, 행동을 드러냄에 분개와 혐오를 느낀다. (남편을 잃었으니 시아주머니와 결혼하라는 홀시아버지라니)

먹거리, 환경, 안전 문제에 있어 구제받지 못하는 피난소 생활이 이어진다. 공동체를 손상시킬 수 있다는 이름 하에 칸막이 없는 생활을 해야 했고, 남녀차별을 겪는 등 말할 수 없는 일의 연속이었다. 가설주택에 입주하기까지 그녀들이 겪어야했던 고충을 책 한 권에 담기란 힘들었을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의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며 육체적, 정신적 고통의 크기는 가늠할 수 없다.

여자가 설 곳 없는 사회

여성스러운 틀 안에 가두려고 하면 그 틀은 폭발하고 만다. 아내, 엄마, 며느리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 때때로 도를 지나치지 않는가 한다. '여자는 이래야 해' 라는 고지식함에 할 말을 잃는다. 피난소에조차 사람들은 강자와 약자를 나누고, 여성의 가치를 하락시키려 함에 치가 떨린다. 세상은 변했다 말하지만 가면을 쓰고 있는 것에 불과한지도 모르겠다.

이 책이 재난으로 드러난 인간의 이기적인 모습만 읽혀지길 바라지 않는다. 사회적 제도와 강경한 대응책 마련은 필수이며, 비상시 약자(아이, 어른, 여성)를 보호해야한다는 말이 입 바른 소리에 그치지 않고 실천 되기를 바래본다. 여성을 존중함과 더불어 서로가 연대하고 돕는 사회 구성원으로서 커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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