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의 시나리오 1 - 의문의 피살자
김진명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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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벌이에 매여 하루 하루 살아가는 나는 복잡한 일에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단순하게 살아가는 것을 목표로 하지만 세상살이는 오해와 편견이 꼬일대로 꼬여 불편한 말을 만들어내고, 사건을 확대시켜 나가게 하는 고달픔의 연속이다. 내 편과 네 편을 가르는 것에 지친 나는 세간을 떠들석 하게 하는 사건에 무관심하다. 대개 실체가 오리무중이며,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여 깨닫고 뉘우치는 일이 없는 사건들에 넌더리가 난다.

 

"검찰이 아무리 수사해도 헛일이야. 진실은 제삼자로부터 나오는데 그자가 무슨 일이 있어도 수사에 등장하지 않는다면 검찰의 수사란 게 오히려 진실을 왜곡할 수밖에 없지 않겠어?" -1권 p67

 

최근 버닝썬 사태와 더불어 숨어있는 '그림자'에 대해 책 속 인물이 겹친다. 드러나지 않지만 막강한 힘을 갖고 있는 검은 그림자. 칼을 휘두르는 그들에 의해 단편적인 면을 보는 물고 뜯는 참혹한 현실이 개탄스럽다. 그 어떤 거짓말과 속임수를 뒤로하고 진실 앞에 다가가기 위해 주저함이 없어야 한다는 다소 진부한 글을 매번 남기게만 하는 현 상황을 무엇으로 대신할 수 있을까.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있지만 변하지 않는 것도 때론 존재한다.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국의 역학관계는 복잡하게 얽혀있고, 수십년 째 줄다리기를 이어오고 있는 실정이다. 각설하고 15년 만에 재출간된 김진명 작가의 한반도 위기를 소재로 하는 <제3의 시나리오>는 사실과 픽션의 경계를 오가며 현실세계에 투영된다.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지나온 세월과 더불어 '소설은 사실보다 더 진실이라야 한다'는 그의 글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뉴욕으로 떠났던 평범한 소설가가 베이징에서 살해된 것을 시작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한국의 검사 장민하가 그의 얽힌 배후를 찾고자 동분서주 하는 가운데 엄청난 정치적 음모와 맞닥뜨리게 되는 상황을 그려낸 이 작품은 켜켜이 쌓인 세월만큼이나 여러 정치 상황과 복잡한 국제외교 문제에 있어 얽힌 실타래를 보여주는 듯 하다. 남북관계의 진전과 비핵화, 북미관계의 변수 등 국제정세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나 역시도 소재의 흥미로움과 배후세력, 각 인물들이 처한 상황에 감정이입되어 울컥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무엇보다 이 책을 통해 국가 간 힘의 관계 못지 않게 눈여겨볼 수밖에 없던 탈북 이야기는 오래도록 마음이 아려온다


이제 기술은 비약적으로 발전했어. 누구든 도청을 당하면 약점이 잡히는 거야. 우리나라의 중요한 인물이 모두 도청의 노예가 되어 중요한 순간에는 그 보이지 않는 자를 위해 봉사해야 한다고. 이 사회 각 분야의 중요한 인사들은 이미 도청에 걸려 치명적 약점이 다 노출돼 있다고 보면 돼. 사소한 일에는 제 목소리를 내는 것 같지만 정작 중대한 문제에서는 상대의 의도에 따라 춤을 추는 꼭두각시밖에 못 되는 거야. -1권 p72​


마지막 책장을 넘기고 상념에 사로잡힌다. 만일의 상황을 대비해 다양한 시나리오를 만들어놓고 협상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의 눈에 긴장된 모습이 역력하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 조심스러운 그들이 체스 게임 속 말처럼 느껴지는 것은 보이지 않는 실체가 실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 여러 사건을 통해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음모론이 난무함과 동시에 찌라시가 사실이기도 한 세상에서 단순 흥미 위주의 소설로 치부할 수 없는 이야기는 깊은 울림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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