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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일은 없고요?
이주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4월
평점 :
_그에게 연락이 오면 헤어져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며칠 동안 연락이 오지 않았다. 내가 하지 않았더니 그렇게 되었다. 얼마 후에, ‘왜 연락이 없냐’라는 문자가 왔고, 나는 답장하지 않았다. 그에게 중요한 게 뭔지 알았기 때문이다.
아랫집 아저씨의 방화가 있고부터 집에선 한숨도 자지 못했다._p10
_그해 여름, 몇 년 연락이 끊겼던 은영 씨가 나를 찾아왔다. 작은 트렁크를 하나 들고 있었고 온몸은 비에 흠뻑 젖은 채였다. ..
... 다른 사람들은 다 따뜻해 보이는데 은영 씨가 서 있는 하늘 위에만 비구름이 뜬 듯, 비가 온다는 말에 속아 미리 온 몸을 적시기라도 한 듯 보였다._p127
이주란 소설집, <별일은 없고요?> ... 이 안에는 여러 명의 ‘내’가 나온다.
여러 상황 속의 내가 섬세한 감정으로 일상을 살아내고 있다. ‘별일은 없고요?’의 나는 아랫집에 방화가 나고 집을 나와 동료의 집에 갔다가, 어느날 사직서를 낸 후에 엄마의 5평짜리 원룸에 가서 머물게 된다. 그곳에서 엄마가 밥해 주는 공장의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며 그렇게 엄마와 마음을 나누며 지내게 된다. 그러다 만나게 된 재섭씨.. 우연히 같이 서울을 다녀오면서, “별일은 없고요?” 라는 안부 문자를 받게 된다. ‘불현 듯 눈물이 날 것 같은 마음’에 당황스러워하며 걸어가며 끝난다.
어느 끝에 치달아서 터질 것 같은 상태일 때, 누군가가 물어봐준 안부 한 마디가 때론 모든 것을 해결해준다. 그 감정선이 가장 선명하게 느껴졌던 소설이 바로 이 편이였다.
이어지는 다른 소설들도 비슷한 결의 내용이였다. 가정폭력에서 벗어나지 못한 내가 나오는 ‘이 세상 사람’, 죽음에 대한 동질감이 나오는 ‘사람들은’ 과 ‘서울의 저녁’...등, 그리고 마지막 ‘파주에 있는’ 까지, 마치 단막극을 하나씩 본 기분이였다.
어떤 상황에서도 희망이 놓여있음을, 그래서 포기하지 말기를, 그리고 서로 따뜻함을 나누기를 말해주고 있는 듯하다. 이런 내용을 참 세밀하게 담아놓았다. 가을처럼 빠져서 읽었다.
_이 세상엔 셀 수 없이 많은 시작과 순간들과 마지막이 있고 결국 이렇게. 살면서 겪은 대부분의 고난을 지나왔고 살면서 만난 대부분의 상처를 견뎌왔고 자주 웃었다고 생각합니다만 그 사람만은 끝내 이해가 되질 않았습니다. 제가 직접 겪어서 아는 저의 기분은 이것뿐입니다._p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