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드러지는 봉황의 색채
이윤하 지음, 조호근 옮김 / 허블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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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자동인형의 모습을 보자 제비는 심장박동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

자동인형은 여기에 추가로얼굴에 가면을 쓰고 있다눈구멍만 뚫려 있을 뿐 코도 입도 없는기묘한 문양이 그려져 있는 목제 가면이다._p11

 

_보통 부역자는 그렇게까지 대놓고 활동하지 않지만학은 변신술을 쓰는 여우 요괴인 구미호 일족이었다화국인들은 구미호의 심기를 거스르려 하지 않았다구미호는 여행자를 유혹하여 간을 빼 먹는 것으로 유명하니까._p24

 

 

<흐드러지는 봉황의 색채>, 이 소설의 세계관은 언뜻 봐도 우리네 일제강점기와 무척 닮아있었다.

 

‘6년 전화국은 라잔 제국에 점령당해 14행정령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화국인인 주인공 제비는 화가로 예술성에 들어가기 위해 이름까지 라잔식으로 바꾸고 시험을 보게 된다강직한 성격의 언니의 반대가 심해서 결국 화구를 챙겨서 친구 학의 집에서 잠깐 머물게 된다.

 

합격이 되기를 기다렸으나떨어지고그림일을 구하기 위해 여기저기 알아보다가제비를 유심히 관찰하고 있었던 방위성 고위관료에 의해 일자리를 제안받게 된다하판덴은 적국의 무기개발 등을 하고 있는 방위성일이라서 망설이던 그녀에게 언니의 수상한 활동을 볼모로 거절할 수 없게 만든다.

 

이렇게 꼼짝없이 지하 작업장에서 방위성일을 하게 된 주인공은 자동인형기계그것도 용아라지의 숙제를 푸는데 전념하게 된다죽은 전임자가 남긴 용의 가면 마법 문양수수께끼를 알아가던 제비는 마침내 비밀에 접근하게 되는데......

 

 

이윤하 작가의 소설 나인폭스 갬빗을 처음 읽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생생하다물론 기분 좋은 놀람이였다무엇보다도 놀라운 세계관과 주인공들의 성별그들의 문화끊임없는 상상력그리고 몰입감 때문이였다.

 

그럼에도개인적으로읽는 즐거움은 이 <흐드러지는 봉황의 색채>가 더 있었다매우 잘 짜여진 구성으로 읽는 이를 한번도 방심하게 만들지 않았기 때문이다특히 골동품혹은 기운이 담긴 어떤 것도 안료-흐드러지는 봉황 같은-가 되어 마법진(문양)을 가면에 만들어서 적용하면 독특한 생명력을 가지게 된다는 설정은일본애니를 떠올리게도 하면서도 훨씬 오리엔탈 적인 신비스러움과 호기심을 더해주고 있었다.

 

일제강점기를 빌어온듯한 시대상독립운동과 연관되는 듯한 설정들은 나도 모르게 하나하나 역사를 대입시켜보게 하고인물들에게 당시 사람들을 투영시키게 한다나라면하고..... 그러면서도 고루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기계용과 같은 존재다른 문화의 세계관 때문일 것이다대화를 할수록 매력적인 기계용은 소설이 끝나도 계속 떠오르는 캐릭터다.

 

너무 재미있어서 눈을 뗄 수가 없었고가볍지 않은 비유들에 여운이 길었으며,

 

다시한번, ‘이 작가 뭐지?’ 하는 감탄에 마침내 영어원서를 찾아서 장바구니에 넣었다.

 

 

_눈앞에 기계 용이 있었다.

.... 쐐기꼴의 머리에는 색칠한 나무 가면을 쓰고둘둘 말린 전선이며 비쭉 튀어나온 가시 따위가 그 주변을 장식하고 있었다가면의 눈구멍 뒤편에서는 봉황을 닮은 붉은빛이마치 불꽃처럼그 불길을 향한 갈망처럼 번득였다._p69

 

 

_하긴 베이가 항상 정중하게 그를 대하니 그럴 만도 했다정말로 솔직하게 말하자면제비는 그녀가 아침마다 공용 공간에서 수련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즐거웠다붓놀림처럼 유연한 움직임완벽하게 균형 잡힌 늘씬한 몸매까지그 모습을 그려도 되겠냐고 물을 엄두는 나지 않았다._p97

 

_".... 전쟁 병기니까파괴력을 부여하려고 흐드러지는 봉황을 사용했죠제국에 대한 충성심을 주려고 피의 원을 사용했고요.“_p100

 

 

_그러나 이번에는 사소한 작업 하나하나에 스며든 의식의 성격이 그에게 각인되는 느낌이었다문양이나 물감의 기묘한 마법을 발견한 사람이 신관이라는 사실도 이제 당연하게 느껴졌다화국인 기준으로 볼 때제비는 적당히 종교에 의지하는 편이었다._p137

 

_그러나 어쩌면독립운동가에 어울리는 부류가 따로 존재하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하나씩 떼어놓고 살펴보면 제각기 나름의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_p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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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비행 - 2022 볼로냐국제아동도서전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 선정
박현민 지음 / 창비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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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마다 그림이 가득 차 있는 박현민 작가 그림책을 만났습니다.

 

제목이 <도시비행인데요표지에 커다란 민들레가 그려져 있습니다왜냐하면 바로 이 민들레가 도시비행을 다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페이지 마다 그림의 관점이 독특했습니다때로는 공중에서 때로는 아래에서어쩔 때는 사물이나 생명체를 통해서 바라보고 있고 과감한 색과 형태들로 페이지를 가득 채웠습니다.

 

박현민 작가는 작년에 빛을 찾아서를 통해 처음 알게 되었는데요. ‘빛을 찾아서는 이 책과는 많이 다른 정돈된 선들이 많았던 그림책이였습니다개인적으로는 <도시비행>이 더 개성있어 보입니다저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답니다.

 

 

도시비행’, 누구나 보며 같이 여행을 떠날 수 있을 것 같은 상상력 풍부한 그림책입니다.

 

기분 좋아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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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잃은 자들이 떠도는 곳
에이미 하먼 지음, 김진희 옮김 / 미래지향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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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개척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이 소설, ‘길 잃은 자들이 떠도는 곳’ 은 2천 마일에 달하는 서부로의 대이동인 오리건 트레일을 바탕으로 실존했던 인물들의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아서 쓰여진 책이라고 한다.

 

커다란 일확천금의 꿈을 품고 이 이동에 합류한 이들도 있겠지만 대부분 딱히 정착하지 못했거나종교적인 어려움을 견디지 못해 선택의 여지없이 이루어진 행렬이였을 것이다이 속에는 스무 살에 과부가 된 나오미가 있었고그녀를 눈여겨보게 된 존이 있었는데주인공 존은 백인과 인디언 사이에 태어난 혼혈이였다.

 

존은 어느 날 백인 아버지의 가족과 함께하게 되어 이 여정을 같이 떠나게 되었다그가 느끼는 정체성의 혼돈을 외적인내적인 부분으로 많이 묘사해 놓았는데특히 언어에서 느끼는 그의 내재된 갈등은 당시의 상황혹은 지금도 있을 수 있는 애매한 위치의 사람들을 대변해주는 듯하였다.

 

_나는 영어로 꿈을 꾸지 않았고포니 족 언어로 꿈을 꾸지도 않았다내 꿈은 나의 양쪽 세계의 소리와 몸짓으로 뒤범벅되어 있었던 나의 어린 시절 같았다._p246

 

 

 

결론적으로이 거대한 행렬이 이동하면서 많은 어려움들이 있었는데 이것을 이겨내는 하나의 서사시라고 할 수 있는 소설이였다하지만 사실 개척이라 부르고 침략이라고 부제를 달 수 있는 현지 원주민들에 대한 태도나 당시의 상황들은 여전히 불편한 심기가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이런 부분을 접어두고 본다면 역경을 헤쳐가는 인간의 모습이 주제가 되는 소설이라 할 수 있겠다


존의 입으로 말하는 원주민들의 언어도 주의 깊게 읽었으면 하는 점이 큰 추천 포인트이며 지루함 없이 넘어가는 작가의 필력이 대단한 책이다.

 

 

_“뎀프시 대위가 포니 족 주민분들이 플랫 강 북쪽으로 이주해 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됐다그렇게 나의 임무는 끝났다.

 

.... “이주하기까지 또 얼마나 시간을 준다고 하나뎀프시는 백인을 대변하나수 족이나 샤이엔 족을 대변하는 것인가?” 노인 한 명이 물었다포니 족 노인의 떨리는 목소리가 내 양심을 찔러댔다.

 

카키.” 내가 대답했다아니요.

자네는 우리가 이주해야 한다고 생각하나자네 부족민들도 이주를 했나?” 같은 형제가 물었다._p130

 

 

_대니얼의 죽음으로 나는 죽음이란 변덕스러우면서도 한번 내린 결정은 절대 되돌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배웠다그리고 그 누구도 죽음을 피하지 못한다는 것도죽음에도 예외가 없었다._p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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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확인 홀
김유원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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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어때요혹시 이상한 싱크홀도 보셨어요싱크홀처럼 생겼는데 싱크홀이 아닌 구멍이요.”

.....

 

얼마 전에 경기도에서 블랙홀 같은 미확인 홀이 발견됐다고 해서요혹시 직접 보셨나 해서 물어봤어요.”_p171

 

_화나거나 실망스러운 게 아니라 허탈하다 못해 서럽기까지 한 기분중요한 뭔가를 완전히 잃어버린 듯한 기분이 칼바람처럼 매섭게 순옥의 가슴에 몰아쳤다._p95

 

 

친구 필희와 계곡에 갔다가 이상한 현상을 발견한 희영은 친구의 실종이 그 홀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 구멍을 찾아낸 자신을 원망하며 어른이 되었다그래서 당시 친구의 멍한 표정을 발견한 타인미정을 구하게 되지만 스스로는 아끼는 이가 사라져 버릴 것이라는 불안에 싸여 산다.

 

그리고 이어지는 에피소드들도 필희가 사라진 후 남겨진 이들의 사연들이였다필희를 계속 기다리는 순옥희영이 언니의 실종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필성암으로 시한부선고를 받고 삶을 더 밝게 살다간 정식아내의 변화에서 어머니를 발견하고 절망과 불안에 싸인 희영의 남편 찬영그리고 갑작스런 해고통보에 진정이 안되는 혜윤그리고 필희의 또다른 친구 은정까지....

 

 

가만히 보면 모두 구멍을 하나씩 혹은 여러 개 가지고 있다그 구멍들은 지난한 삶의 흔적일 수도날 때부터 필연적으로 몸에 밴 절망일지도 모른다하지만 서로는 서로를 구하고죽음을 생각했다가 버린 하나밖에 없었던 손톱깎이를 다시 찾아오고타인과 대화를 나눈다그 구멍들을 메워주기 위해서 애쓰는 이들도 있었다.

 

어쩌면저자는 이 책을 통해서 각자가 품고 사는 블랙홀에 대한 진리를 알아달라고 말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가볍지 않은 적당한 무게감이라 좋은 소설, <미확인 홀이였다.

 

 

_“제 친구가 미정 씨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었거든요그런 얼굴 있잖아요이야기가 쏟아져나와야 하는데 꽉 막혀 있는그래서 우글우글한.”_p75

 

_.....액자와 수첩 같은 것이 뒤섞여 있는 봉투 안에서 금빛 손톱깎이를 건져 올렸다집에 하나밖에 없는 손톱깍이였다._p78

 

 

_필성이 자기가 입은 옷에 불이 붙은 걸 구경하다가 털이 타는 냄새를 맡고서야 뜨거움을 느끼고 소리 지르며 깨는 꿈을 3일 연속으로 꿨다는 사실은 아무도 몰랐다._p119

 

 

_필성이 너무 서럽게 울자 윤 씨의 눈에도 눈물이 맺혔다.

... 그리고 울면서도 또렷하게 말했다. “매미가 울면 매미를 봐야죠매미가 정신을 못 차리고 있잖아요저러다가 미쳐서 죽는 거라고요.”

 

필성이 가까이 오자 윤 씨가 팔로 필성의 등을 감쌌다. “그러네불쌍하네우리는 그런 생각은 못 했어우리딸이 말 안 해줬으면 나는 평생 몰랐을 거야.” 딸이란 말에 필성이 걸음을 멈추고 윤 씨의 눈을 물끄러미 봤다._p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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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리만자로의 눈 원전으로 읽는 움라우트 세계문학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이정서 옮김 / 새움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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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때 읽고다시 읽은 헤밍웨이 단편들.. 특히 좋아했었던 킬리만자로의 눈인데이번에 만난 이 소설은 너무 낯설게 느껴졌다그때의 내가 지금의 나와 다르기 때문인 것은 당연하고너무 오래전이라서 였을 수도 있고그때의 번역과 이 책의 번역에 차이가 있어서 일수도 있을 것이다이것이 또 고전의 매력거장의 힘이구나 싶어지는 것이... 오랜만에 포근한 독서를 할 수 있었다.

 

 

<킬리만자로의 눈에는킬리만자로 자락에서 다리가 괴저되어 가는 남자와 그의 아내.... 그리고 그의 죽음을 기다리는 야생 동물들과 완성하지 못한 소설그리고 아내와의 기억이 있다.

 

킬리만자로 정상 부근에서 발견된 표범 사체 한 구그 표범이 그 높은 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로 시작하는 소설은 한 남자를 통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투영하고 있었다죽음을 예감하며 느끼는 공포와 회한이 헤밍웨이 특유의 단백함 속에 녹아있었다지금 읽은 킬리만자로의 눈은 무엇보다도 삶그 자체였다.

 

_그래이제 그는 죽음에 관해 관심을 두지 않기로 했다한 가지 그가 항상 두려워했던 것은 고통이었다그것이 너무 오랫동안 자신을 기진맥진하게 만들기 전까지는 누구 못지않게 고통을 참을 수 있었지만지금은 지독한 상처를 지니고 있었고 그것이 자신을 파괴하고 있다고 느꼈을 즈음그 고통은 멈추었다._p53

 

 

뒤 이어지는 다른 작품들 중에서도 빗속의 고양이는 작품 해설편을 통해서 지금까지의 오역과 이번의 직역을 비교해 놓은 내용이 흥미로웠다아마도 나도 이전 번역으로 이 소설을 접했을 것이다약간은 은유적인 소설이라서 사실 느낌적인 면에서는 많은 차이점을 느끼지 못했으나지금 내가 읽은 빗속의 고양이는 소통의 어려움과 부부간의 무관심에 더 신경이 쓰였다어디에나 있을 수 있는 보편성을 발견하게 되었다.

 

_미국인 아내가 창밖을 내다보며 서 있었다창밖 바로 아래서 고양이 한 마리가 빗물이 떨어지고 있는 녹색 테이블을 중 하나 밑에서 웅크리고 있었다고양이는 떨어지는 빗방울에 닿지 않을 만큼 자신을 작게 만들려 애쓰고 있었다.

 

내려가서 저 새끼 고양이를 데려와야겠어.” 미국인 아내가 말했다._p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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