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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이끄는 곳으로
백희성 지음 / 북로망스 / 2024년 8월
평점 :
_겉으로는 인정받는 건축가에 부러울 것 없는 사람으로 비쳤지만 내면은 언제나 공허했다. 내가 원했던 꿈이 무엇이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 그렇게 살다보니 주변 사람들의 진심도 믿지 못하게 되었고 나 또한 진심을 다하지 않는 그런 사람이 되어버렸다._p39
몸과 마음의 재충전을 위한 휴가 중에, 본인을 위한 건축을 하기 위해 집을 알아보던 주인공, 정말 운 좋게 파리 중심부에 생각지도 못한 가격에 나온 고택을 소개받게 된다. 두꺼운 먼지 아래에 훌륭한 자재와 수수께끼 같은 구조를 숨기고 있는 이 건물이 너무 궁금하다. 헌데 이 집주인이 묻는 질문들과 조건이 신기하다. 종국에는 요양원에 있는 자신을 찾아와달라는 것.... 특실표와 경비를 보내왔다.
그래서 주인공은 스위스 루체른행 기차 1등석에 몸을 싣고, 긴 여행 끝에 ‘외로운 부자들의 무덤’ 이란 별명을 가진 요양병원에 도착하게 된다. 병원은 별명과는 달리 신비로운 분위기를 뿜어내는 건물이였는데, 온통 건축가로서의 ‘나’를 자극하는 요소들이 가득하다. 정작 만나기로 한 장본인과의 미팅은 미뤄지고 나가지 못하고 있지만 이 건물의 매력에 매료되어 가게 된다. 비밀을 알고 싶어진다.
“우리는 그 통로를 자연의 나팔관, 자연의 통로라고 불러요. 거기는 사람이 지나는 통로가 아니에요.”
....... “그 공간을 통해 자연의 소리를 듣고 향기도 맡을 수 있어요. 그것도 아주 선명하게요....”_p83
집주인 피터씨와 파리의 고택에 대한 호기심으로 시작하는 이야기는 요양병원에 가서는 주인공의 건축가적 시점에서 끌리는 이 건물의 모험에 홀딱 빠지게 된다. 종종 주인공의 환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장면을 통해 궁금증은 더 커지게 되는데 마치 모험판타지 소설 같이 느껴졌다.
집주인이 전달한 숙제, “왜 4월15일인가? 그리고 왜 당신이어야 하는가?” 의 의미를 쫓아가다가 발견한 일기.... 드디어 돌아오는 열차를 타게 된 주인공은 파리의 집을 당신에게 팔기로 했다는 편지도 가슴주머니에서 발견하게 된다. 알고보니 그냥 준다는..... 뜻이였다..
하지만 일기의 내용은 계속 이어지고, 아직 밝혀지지 않은 비밀이 있는 듯하다. ‘나’는 무사히 이 고택을 자신의 건축으로 거듭나게 할 수 있을까?
집에는 역사가 새겨져 있다. 한 집안의 연대기를 두 집을 통해 풀어내고 있는 #빛이이끄는곳으로 는, 저자가 건축가일 때 얼마나 재미있는 소설이 나올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듯 했다. 건축기법의 역사와 함께 독특한 공법으로 집에 빛과 소리가 젖어드는 묘사와 구조도 등이 일찍이 읽어봤던 소설들과 달라서 신선했고 무척 재미있었다.
방황하던 주인공도 이 과정에서 길을 찾아가고 있었을 것이다. 집을 찾아가고 있었을 것이다. 미스터리한 전개의 끝은 우리의 추억과 이끌어주는 빛이 있었다. 넘 좋다, 이 책..
_“맙소사!” 손으로 먼지를 걷어내자 와인빛의 대리석이 드러났다. 희귀한 대리석이었다. 물고 잘 닦아내면 반짝거릴 정도로 아름다운 색의 돌계단임이 확실했다. 호기심에 바로 위에 있는 계단의 먼지를 걷어내니, 이번에는 주황빛의 돌이 드러났다. ..... ‘백여 년 전의 건축가는 왜 이런 색감이 있는 돌계단에 한쪽이 낮은 난간을 설치했을까?’_p29
_어딘선가 들어본 적이 있다. 중세 수도원의 보물이 도서관이라는 말을. 그 정도로 진귀한 책을 보관한 곳이 바로 수도원의 도서관이다. 지금의 병원이 되기 전에 이 비밀의 공간은 바로 수도원의 도서관이었던 것이다._p1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