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의 밤 - 당신을 자유롭게 할 은유의 책 편지
은유 지음 / 창비 / 2024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은유법을 좋아한다. 은유를 좋아하는 건 압축 폴더 같은 마음이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거나, 전하고 싶은 마음이 너무 크거나, 이루다 설명하지 못할 때 쓰는 방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은유 작가님은 이름부터 와닿았다. 작가님의 책 <글쓰기의 최전선>, <있지만 없는 아이들>을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작가님의 이름을 외고 어떤 믿음이 생겼다. 그리고 그 어떤 믿음이 어느 것에서 비롯된 것이었는지 창비 출판사에서 나온 은유의 책 편지 에세이 [해방의 밤]을 통해 알 수 있었다.





"내 삶은 책 기둥에서 시작되었다."

에세이 [해방의 밤]의 프롤로그 첫 문장이다.

삶을 받쳐주는 기둥이 책 기둥이었다니, 그리고 나 역시 힘들 때면 어느 책방에 들어가 수많은 책 기둥에 적힌 제목들을 보며 순간을 이어 나가곤 했다.

그 많은 책이 있지만 어떤 날은 내게 필요한 글을 만나지 못해 헛헛해 하던 날도 있다.

은유 작가님의 에세 [해방의 밤]은 강연, 독자와의 만남 등 사람들을 만나며 들었던 질문과 미처 답하지 못한 마음을 책 편지 형식의 글을 통해 말하고 있다.

누군가에게 직접적으로 닿을 글이지만 누구라도 해당되고, 혹은 누군가를 생각하게 만드는 책 편지다.





[해방의 밤]은 작가님의 이런 마음으로 뿌려졌다.

"나를 자유롭게 해준 말들, 아픈 데를 콕 짚어주어 막힌 곳을 뚫어주는 신통한 말들, 기어코 바깥을 보게 만드는 문장들, '더 이상 그렇게 살 필요 없어' 같은 위대한 말들. 혼자만 알고 있으면 반칙인 말들을 널리 내보낸다. 해방의 씨앗을 뿌리는 마음으로." 프롤로그 25P

은유 작가님의 책에는 언뜻 들었던 이야기들이 주인공이다. 당연하다고 여겼던 사실들의 실상을 들려줘 불편해지는 책이기도 하다. 이 불편함은 씨앗과도 같아 결국 어디에선가 이해의 꽃으로 피어날 것이다.




책은 4부로 나뉘어 있다. 글 하나하나에 책이 책갈피처럼 껴들어 있다. 책 편지 에세이 [해방의 밤]을 읽고 나면 읽고 싶어지는 책이 늘어난다. 책뿐 아니라 해보고 싶어지는 것도 생긴다.



흔히 자녀들이 다 커서 독립하면 중년 여성은 집에서 홀로 '빈둥지증후군'을 겪는다고들 하잖아. 왜 엄마는 꼭 남겨진 자의 역할이어야 하는가? 나도 떠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자각이 들었고, 떠나보고 싶었다. 43P



재밌게 읽었다기보다는 어른으로서, 같은 시대를 사는 사람으로서 무게감 있게 읽었다는 게 맞겠다.


여러 에피소드 중 그 어느 하나 쳐짐이 없다. 그리고 이런 글을 아무나 쓸 수 없고, 나는 그저 존경할 뿐 한자도 옮기지 못할 거라는 것이다.

그래서 서평을 쓰는데 어려움이 있다. 사회의 한 부분, 섣불리 말했다가는 어느 누가 상처를 받을지, 어느 누구에게 질타를 받을지 몰라 망설여지는 이야기들도 있다. 그럼에도 작가는 쓴다. 이 책에서만이 아니라 이미 다른 책에서도 시작하고 있었고, 누군가의 상처와 질타를 다시 받아들여가며 지금의 글을 써낸다.


다음 책에서는 또 다른 글을 계속 뿜어낼 것이라는 믿음. 은유 작가님의 글은 그저 좋은 글을 넘어선다. 어떤 믿음이란 이런 것이었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 글을 쓰면서도 그들을 약자라 칭하는 자체에 저항한다. 나는 결국 은유 작가님을 글 쓰는 변호사로 부르고 싶어졌다.




기억하고 싶은 책 편지 내용이 많지만 그중 <연민과 배려 사이> <슬픔에 무지한 종족>을 꼽고 싶다.


산 자식 얘기하듯 죽은 자식 얘기도 하고 싶다는 것을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생활에선 감당하지 못했던 모양입니다. 내 미안함이 미안했습니다. 166P

중략-

생일이 지나면 생일만큼 힘든 기일이 오고 기일이 지나면 기일만큼 괴로운 명절이 오고... 내 이웃이 슬픔의 둑이 터지고 무너져내리는데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일상을 나누는 일상을 고민합니다. 168P

슬픔을 표현하는 말도, 슬픔에 공감하는 말도 공동체에 흐르지 못하니까 슬픔에 관한 언어가 빈곤하죠. 슬픔에 관한 지혜가 모자랍니다. 171P



세월호, 이태원, 노동자의 죽음 다양한 슬픔 곁에서 지켜보는 이들은 결국 지나간다. 그리고 이런 아픈 이야기는 쉽게 쓸 수도 없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의도와 다른 글의 방향에 질책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기에 더 피하게 된다. 가늠할 수 없는 아픔이기에 섣불리 넘겨짚다 난처해지길 피하기 위해 쉽사리 쓸 수 없다.

하지만 은유 작가님은 그러기에 쓴다. 누군가는 들어주고 들려주어야 하는 일을 말이다. 그 과정에 듣게 된 말들도 많았을 테지만 잘못된 표현은 정정하며 중간에서 다리를 놔준다.

슬픔을 말하고 싶어 하는 이에게 슬픔을 들어주고 같이 걸어갈 수 있는 마음을 글씨로 퍼트린다.


슬픔에는 유효기간이 없다.



"나는 내 상처를 공유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 내 아픔을 말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 나를 숨기지 않을 수 있어서 행복하다." 266P



숨기는 것들, 공유할 수 있는 상처, 사회적 약자라는 시선으로부터의 해방.

사는 방식이 여러 갈래라는 걸 아는 게 해방이라고 말하는 [해방의 밤]

일을 마치고 비로소 노동에서 벗어나 짧게라도 읽는 책을 통해 해방의 밤을 맛보고 그 어느 날을 위해 노력하는 이들의 이야기. 질문하는 아이들. 답하려 고민하는 어른.

은유 작가님이 이끄는 세상 끝에 해방이 있는 게 아니라 읽는 순간 갇힌 사고로부터의 해방이 일어난다.




우리가 의심 없이 행했던 일을 의심하는 순간 이미 해방의 바람은 불어오고 있을 것입니다. 250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