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 미술은 생각하기 시작한 인간과 느끼기 시작한 인간의 솔직한 모습에 대한 기록입니다. 11p
사람은 생각하는 동물이다. 그에 걸맞게 많은 생각을 하고 사는 나는 때론 이 생각의 홍수를 감당 못해 커다란 둑을 세워두곤 했다.
생각하고 느끼는 것들을 표현하기엔 일상 대화와 걸맞지 않았고, 이방인 같은 껄끄러움에 늘 어설피 자리했다.
그림이라곤 학창 시절 미술 교과서가 전부이고, 아이를 키우며 명작들을 보여주며 나보다는 보다 넓은 시야를 갖길 바랐다. 그 안에는 혹시라도 모를 미술에 대한 관심과 가능성을 엿볼 심사기도 했다.
아이들에게 펼쳐놓는 것들을 보고 있자니, 어느 순간 내가 보고 싶고 다가서고 싶던 것이었다는 걸 알았다.
문학, 음악, 미술 다채로운 예술 분야의 것들을 접할 때 설명을 즐기지 않는다. 이미 숱한 시간 달달 외워오지 않았나.
주제가 무엇인가?
지은이는, 부른 이는, 그린이는 무엇을 이야기하려는가?
너는 무엇을 느꼈느냐?
허나 생각해 보면 내가 그들의 글, 그림, 음악을 접하는데서 그들을 알고 싶어서였겠나? 내가 취하고 싶어서 지. 취하고 나서야 나를 취하게 한 그것이 궁금해지는 것이지.
이래놓고선 또 설명을 들으면 빠져든다. 그때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중인 것이다. 누군가의 삶으로 들어간다.
이 책을 받아들고서 어떻게 첫 장을 열어야 하나 고민했다. 호기롭게 미술을 알아보고 싶다 하고 선 우아하게 걸어들어가는 이들의 꽁무니만 쳐다보고 섰다. 그러다 문고리 '프롤로그'를 먼저 슬쩍 봤다.
"천천히 가는 자가 건강하게 가고 멀리 간다. "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살면서 같은 자리를 끊임없이 맴돌던 나는, 다른 나라의 언어로 미술 공부를 해보고 싶었던 꿈을 이루기 위해 이탈리아로 떠났습니다. 그 꿈을 이루지 못해 후회하는 나의 늙은 모습을 상상하니 지체 없이 떠날 수 있었죠._07p
르네상스 미술의 키워드는 '이성'과 '아름다움'입니다.
스토아 철학에 따르면, 물질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타고난 본성이 있는데, 본성대로 따르면 세상은 평온하게 돌아간다는 것이었죠. 이것을 자연의 질서라고 부릅니다.
내가 만난 르네상스 미술은 인간의 이야기였습니다. _9p
르네상스 시대에는 이미 예술가의 '재능'을 이해했습니다. 인간의 재능을 이해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예술적인 재능을 가진 사람들을 분별하기가 쉬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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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이란 타고난 인간 본성이며 지성을 통해 발휘되는 능력입니다.
르네상스 시대는 인간을 생각하는 방식이 중세와 달랐습니다. 인간은 선과 악으로 판단되는 존재가 아니라 감각과 지성으로 세상을 이해하는 존재라는 것이죠. 인간의 감각은 자연과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했기에 자연 연구를 시작합니다. 24p
안타깝게도 나는 이 책을 멋지게 서평 할 수가 없다. 하지만 미술에 관심 있는 분이라면 읽었으면 좋겠다. 이 책을 읽고 시험을 치를 것도 아니기에.
책을 읽는 동안 나른한 행복감이 들었다. 그림이 사람들의 이야기가 되어가고 빛 하나 허투루 놓이지 않는 것들. 마치 숨겨진 보석을 볼 수 있는 눈을 선물받은 느낌이다. 저자가 그림을 두고 다정하게 설명해 주니 무엇보다 편하게 감상할 수 있었다.
13개로 나뉘어 소개된 작품과 그에 얽힌 이야기들.
사랑_ 마사초 '브랑카치 예배당 벽화'
중세 미술 1000년 동안 오직 신에게만 비쳤던 빛을 처음으로 인간의 영혼에 비춰 준 마사초.
59p
마사초는 광장에 앉아 오랫동안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봅니다. 그의 시선은 화가의 눈이자 사람들에게 공감하는 친구의 눈이고, 자연의 빛을 연구하는 과학자의 눈이었습니다.
영혼_ 베아토 안젤리코 '수태고지'
그림 속 천사는 인간을 심판하는 두려운 존재에서 인간과 교감하는 다정한 모습으로 바뀝니다. 인간을 '영혼을 가진 존재'로 존중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68p
행복- 필리포 리피 '리피나'
평범한 일상 속 완벽한 행복을 그린 화가.
중세에는 신의 은총이나 죽음만 중요하게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끝없이 행복을 추구했던 필리포 리피에 이르면 평범한 사람들이 일상에서 느끼는 소소한 즐거움도 예술이 됩니다. 94p
이성 _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브레라 제단화'
완벽한 균형을 그리기 위해 수학자가 된 화가
여성_ 비너스의 탄생과 시모네타 베스푸치
신화에 갇힌 여성을 현실로 소환하다
르네상스 시대에 미술은 아름다움의 이미지에 여성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여성의 이미지에서 아름다움을 찾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166p
인문학_ 산드로 보티첼리 '봄'
500년 동안 아무도 풀지 못한 수수께끼
인간의 생각이 표현력을 가진 언어가 되고, 그 언어들이 감성을 자극해서 시를 만들고, 시는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고, 그렇게 예술은 시적 자유를 얻게 된 것이었죠. 198p
한 번 읽고 르네상스 미술을 이해해버렸다고 말할 수 없다. 그저 르네상스 미술이 내게 어떻게 흘러와있나에 대한 경이로움이 남았다. 그 안에 고전이 있고, 시가 있고 사람의 욕망, 욕구, 사랑이 있다.
덥석 이탈리아로 떠나고 싶은 마음보다는 작은 미술관에 가서 그림을 들여다보고 싶어진다. 하나의 그림에 수많은 시선이 스쳐 지났을 터다. 그 시선이 남긴 자욱들을 볼 수도 있을까? 하는 몽롱한 생각까지 더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