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외우는 시 한 편
바람의 사생활 창비시선 270
이병률 지음 / 창비 / 2006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외면 

받을 돈이 있다는 친구를 따라 기차를 탔다 눈이 내려
철길은 지워지고 없었다

친구가 순댓국집으로 들어간 사이 나는 밖에서 눈을
맞앗다 무슨 돈이기에 문산까지 받으러 와야 했느냐고 묻
는 것도 잊었다 

 친구는 돈이 없다는 사람에게 큰소리를 치는 것 같았다
소주나 한잔하고 가자며 친구는 안으로 들어오라 했다

몸이 불편한 사내와 몸이 더 불편한 아내가 차려준 밥
상을 받으며 불쑥 친구는 그들에게 행복하냐고 물었다
그들은 행복하다고 대답하는 것 같았고 친구는 그러니
다행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믿을 수 없다는 듯 언 반찬그릇이 스르르 미끄러졌다

흘끔흘끔 부부를 훔쳐볼수록 한기가 몰려와 나는 몸을
돌려 눈 내리는 삼거리 쪽을 바라보았다 눈을 맞은 사람
들은 까칠해 보였으며 헐어 보였다

받지 않겠다는 돈을 한사코 식탁 위에 올려놓고 친구
와 그 집을 나섰다 눈 내리는 한적한 길에 서서 나란히
오줌을 누며 애써 먼 곳을 보려 했지만 먼 곳은 보이지
않았다

요란한 눈발 속에서 홍시만한 붉은 무게가 그의 가슴
에도 맺혔는지 묻고 싶었다




이병률의 ‘장도 열차’를 처음 읽었을 때가 생각이 난다. 단조롭고 흔한 시어의 선택이었

 

는  데도 때 묻은 기차 시트의 감촉이 전해져 오는 것이었다. 멍하니 그녀를 기다리는 시

 

간 사이.

'외면'이라는 시를 읽고 한 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담담한 서사구조 속에서 이토록 진한 서정이 나올 수 있다니....

 

속울음을 울어버리게 나를 몰아치고 가다니.....

 

그의 시속에서 시적 배경이나 사물들은 일사불란하게 한치의 불필요함도 없이 움직인다.

 

반찬그릇이 두 부부의 행복 속에서 스스르 미끄러지고, 눈발 속에서

 

홍시만한 붉은 무게가 가슴에 맺힌다. 자신의 절박함과 그들의 소박한 행복이

 

불구를 극복하면서 해소된다.

 

'외면'이라는 시와 함께 '겹'이라는 시도 주목할만하다. 먼 친척형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세상을 떠도는 형에게 보내는 돈, 행려병자가 되어서도 그 돈을 받으며 작은 종이 

 

귀퉁이에다  날짜를 기록해두는 형,

 

되돌려주지 않는 보답이 없는 그의 생활이었지만 변변찮은 생활에서 한 사람이

 

한 사람에게 의미가 된다는 것....

 

내가 누구에게 의미가 되었던 적이 있었던가.....

 

'바람의 사생활'시집 안에는 어떤 시집안에도 세 개이상 붙어 있지 않았던

 

체크 테입이 곳곳에 깃발처럼 붙어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