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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의 뜰
강맑실 지음 / 사계절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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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하며 사는 건 '나이듦'이고, 나 때는 말이야를 하면 '아재'라는데. 딱 말이다. 내게도 그런 시절이 왔다. 언제부터인가 내 유년의 기억을 더듬고, 그 기억을 끄집어 내어 기록해 두고 싶다. 허나 기억을 글로 기록한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표현할 말을 찾지 못해, 나의 오랜 기억은 인출할 수 없는 깊은 장기 기억 속에 자물쇠로 채워져 보관되어질 위기에 처해 있다.


<막내의 뜰>을 읽노라니 내 유년 시절이 스틸 사진처럼 떠오른다. 엄마의 체온을 안으며 엄마 등에 업혀 있던 순간이며, 하필 그 때 눈이 내리기 시작했던 것이며, 굴뚝의 연기가 바닥으로 내려 앉는 뒷마당에서 산신령 놀이를 한 것이며, 문지방이 유난히 높아 오르기 어려웠던 네다섯살의 집이며, 바람부는 날 안테나를 잡고 텔레비전 채널을 돌렸던 기억이며, 학교를 시작하는 종이 들리는 앞마당에서 신발을 꺾어 신고 막 달려갔던 순간이며...


책 속의 '막내'를 보며, 유년의 나를 불러내고 있었다. 시인은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라 했다. 막내는 '우물' 속에 들어가 안온함을 찾았다 했다. 내 유년의 안온함은 무엇이었을까? 스무해 동안 나를 키운 것은 무엇이었을까?


"저 유년의 끝에서" 우리는 자신의 본질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과거의 은밀한 목록 어딘가에는 아마도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 그리고 미래의 나를 말할 수 있는 것이 고치가 되어 때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맘이 따뜻해지는 삽화가 들어있는 어느 막내의 유년의 기억을 읽으면서 햇살로 온기를 품은 장독같은 내 어린, 유년의 시절을 마주한다.

찌는 듯한 더위가 계속되던 여름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내일이 추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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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빠질 때 나누는 말들 사계절 1318 문고 119
탁경은 지음 / 사계절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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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소설은 생각컨대 '사랑, 우정, 공부, 꿈, 진로라는 땅 위에서 길을 찾고 있는 모든 10대에게 보내는 위로와 희망의 편지'입니다.

17살 소녀의 꿈과 느닷없이 찾아온 사랑과 우정, 그리고 공부를 둘러싼 이야기를 담고 있는 로맨스소설, 성장소설, 진로소설입니다. 한 사람의 인생을 어느 한 가지로 설명할 수 없듯이 10대의 삶도 마찬가지지요. 그들의 연두빛 시간속에도 어른의 삶처럼 모든 것이 담겨 있어요.


소설 속에는 완벽할 것 같은 인물과 부족하기만 할 것 같은 두 부류의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그들 모두에게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모두 나름의 열등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또한 마찬가지이지요. 나와 많은 이의 부러움을 받고 있는 어떤 사람조차 모두 열등감을 하나둘씩 품고 있을 것입니다. 다만, 우리는 그것을 감추고 싶어하고 그것을 극복하고 싶어합니다.


소설은 느닷없이 설레는 고백으로 시작합니다.

"우리, 사귈래?"

단짝 친구 지은이가 좋아하는 동주에게 고백을 받은 서현이는 지은이에 대한 미안함으로 갈등합니다. 하지만 결국 아름다운 동주의 고백에 조금씩조금씩 사랑에 빠지고 맙니다. (서현이와 동주의 설레는 사랑이 오가는 장면마다 덩달아 첫사랑이 떠오르고 심장이 빨개지더라구요. ㅎㅎ)


"동주의 눈빛이 반짝였다. 햇살을 받은 동주의 눈동자는 빛이 산란하는 수면처럼 분부셨다. 동주의 눈빛은 내게 말을 걸었고 나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가슴이 쿵 하고 곤두박질쳤다. 무서운 놀이 기구를 타는 것처럼 심장이 아찔하게 하강했다."


동주와 서현이는 소논문 동아리에서 만납니다. 그들은 사람을 범죄자로 만드는 건 유전자일까 아니면 성장환경일까를 주제로 잡고 논문 준비를 시작합니다. 자료 조사를 위해 서현이는 방화로 살인을 한 소년 수감자에게 편지를 쓰게 됩니다.


"..소년교도소를 다루는 5부작이었는데, 오빠는 그중 2부에 나왔죠. 오빠 이야기를 더 듣고 싶어 이렇게 편지를 쓰게 됐습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이야기를 들려주실 수 있나요?"


소년 수감자 현수는 처음에는 마음을 열지 않다가 서현이의 정성어린 소통의 노크에 마음을 서서히 열어가기 시작하고 편지를 이어가게 됩니다.


현수는 서현이의 진솔한 마음으로 자신의 불우했던 어린 시절 환경 이야기를 털어놓습니다. 그리고 점차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대한 꿈을 구체적으로 그리며 출소 이후의 삶을 기대하게 됩니다.

등장인물 모두가 열등감을 가지고 있다고 했지요? 그 열등감이란 이런 거랍니다.


논리적인 말과 글솜씨를 가진 주인공 서현이의 열등감은 수학을 못하는 것과 코가 낮다는 것입니다. 단짝 친구 지은이는 수학은 잘하지만 뚱뚱한 것에 대한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습니다. 완벽해 보이는 남학생 동주는 영재인 형에 대한 콤플렉스와 운동과 노래를 못하는 것에 대한 열등감이 있습니다. 그리고 반에서 왕따인 아름이는 열등감 투성이일줄 알았지만, 시를 쓰는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소녀였습니다. 수감자 현수는 불우한 가정 환경에서 자라나 살인으로 감옥에 살고 있긴 하지만, 빵을 만드는 사람이 되기를 진심으로 꿈꾸고 있습니다.


작가는 이러한 등장인물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건넵니다.

"저마다의 빛깔로 아름다운 아이들은 자기만의 열등감을 갖고 있다. 꿈이 없거나 너무 많아서, 꿈이 있지만 부모님이 반대해서, 눈이 작아서, 키가 작아서, 얼굴이 넓적해서, 종아리가 굵어서, 쌍꺼풀이 없어서, 수학을 못해서, 영어 듣기를 못해서, 체육을 못해서, 친구가 없어서 등등. 우리 무두를 열등감 덩어리로 만드는 건 대체 누구일까. 아무리 뭐라고 떠들든, 누가 뭐랄고 지적질하든, 나는 자신을 사랑할 거라고 당당히 외칠 수 있으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한 걸까."


이 소설은 공부 잘하고 싶고 멋진 꿈을 꾸고 싶고, 인정 받고 싶고, 상처받지 않고, 울고, 강해지고 싶은 약한 우리들에게 괜찮다고, 토닥토닥 위로를 건네주는 듯합니다. 또한 풋풋한 푸른 사과와 부드럽고 달콤한 하이얀 생크림 같은 첫사랑의 설렘도 느끼게 해줍니다. 읽는 내내 오래 전 10대의 나와 지금 10대를 앓고 있는 청소년들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사랑에 빠질 때 나누는 말들>이라는 제목처럼 소설은 아름답습니다. 서현이, 동주, 지은이, 아름이, 현수 그들의 맘과 말이 참 예쁘고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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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쉬운 양자역학 수업 - 마윈의 과학 스승 리먀오 교수의 재미있는 양자역학 이야기
리먀오 지음, 고보혜 옮김 / 더숲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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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역학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의 차이는 양자역학을 모르는 사람과 원숭이의 차이보다 크다." -머리 겔만


양자역학이란 띄엄띄엄 떨어진 양으로 있는 것이 이러저러한 힘을 받으면 어떤 운동을 하게 되는지 밝히는 이론 (출처:네이버지식백과)


몇년 전부터 양자가 궁금하긴 했지만, 이 책을 읽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김미경으로 비롯됐다. 양자역학을 통해 우라 사는 세상을 이해할 수 있었다는 의미의 말을 들은 것 같다. 쉽지 않을 터, 그래서 제목부터 '세상에서 가장 쉬운' 책을 골랐지만...


페이스북 창시자 마크 저크버그는 양자역학 공부가 자신의 사고방식에 매우 큰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고 한다. 이 말을 들으니, 부쩍 양자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그러나 이 책으로 그 호기심을 해결할 수는 없었다. 다만, 양자역학에 영향을 미친 수많은 과학자들과 양자역학에 관련된 여러 개념들을 접할 수 있었다는 것이 얻은 수익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중간중간 과학자들의 에피소드 부분이 재미있었다.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삼천포로 빠질 때의 내 눈빛같은 기분이었다고 할까?


흥미롭게 읽은 부분은 탁자 위에 컵을 놓으면 컵은 왜 탁자를 뚫고 떨어지지 않을까?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당연히 딱딱한 나무 위에 딱딱한 막혀있는 물체를 놓았으니 떨어지지 않지라고 생각하고 만다. 그러나 원자의 관점으로 설명하면 컵의 원자와 탁자의 원자가 부딪히기 때문에 컵은 탁자를 뚫고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컵이나 나무 탁자가 변하지 않는 안정적인 물체로 존재하는 이유는 물질의 원자 사이에는 거리가 존재하기 때문에 안정성을 띠는 것이고. ㅎㅎ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있겠는가? 살짝 알 것 같기는 하지만, 여전히 고개는 갸웃거린다.


또 하나 흥미로웠던 부분은 피부의 점이나 잡티를 제거할 때 쓰이는 레이저이다. 레이저는 양자역학의 한 부분이다. 물질은 모두 원자로 구성되어 있고 원자 한 가운데에 원자핵이 있고 그 바깥에는 고정 궤도에서 운동하는 전자가 있다. 서로 다른 궤도에서 운동하는 전자는 서로 다른 에너지를 갖는다. 레이저를 조절해 점과 잡티의 전자와 반응하게 해서 타버리게 만들어 버린다는 것이다. 멀쩡한 피부는 그대로 두고서 말이다. 레이저를 얼굴에 비출 때 점이 없는 부분의 전자 에너지와 레이저의 광자(빛 내부의 하나하나의 에너지를 광자라고 함) 에너지는 서로 맞지 않아 아무런 해를 끼지치 않는다. 하지만 검은 점이 있는 부분의 전자 에너지와 레이저 광자 에너지는 서로 맞아서 레이저를 흡수하고 레이저가 점을 파괴한다. 제모를 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마지막은 양자컴퓨터이다. 지금의 컴퓨터는 0,1이라는 두개의 상태를 따로 가지고 계산을 시행하는 체계로 되어있다. 그러나 양자컴퓨터는 불확정성의 원리에 의해 동시에 0과 1 상태를 가질 수 있다. 양자컴퓨터의 기본 부품인 스위치가 열린 상태이면서 동시에 닫힌 상태라는 점, 0과 1이라는 두 개의 숫자를 동시에 표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현재의 컴퓨터에 비해 엄청난 빠르기의 계산을 수행할 수 있다. 하지만 아직 양자컴퓨터를 만드는 단계에 와 있지는 않다.


물질을 구성하는 모든 원자, 그 원자 속에 양자 역학이 존재한다. 물질이 존재하고 반응하는 것을 이해한다면 나의 시각에는 어떠한 변화가 일어날까? 양자역할을 알고 싶은 이유이다.


"양자역학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의 차이는 양자역학을 모르는 사람과 원숭이의 차이보다 크다."고 했지만, 이 책을 다 읽은 후에도 여전히 나는 양자역학을 모르겠다. 궁금증이 더해졌을뿐. 또다른 양자역학 소개 책을 찾아나서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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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라틴어 수업 : 지적이고 아름다운 삶을 위한 라틴어 수업 1
한동일 지음 / 흐름출판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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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라틴어:

1. 언어 인도ㆍ유럽 어족(語族)의 하나인 이탤릭 어파(語派)에 속하는 언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에스파냐어, 포르투갈어, 루마니아어 등의 로맨스어의 근원이 되었다. 그리스어와 함께 전문 용어의 원천이 되었으며 아직도 로마 가톨릭교회의 공용어로 쓴다. (네이버 국어사전)

2. 인도유럽어족(語族)의 이탈리아어파(語派)에 속하는 로마인의 언어.

BC 1세기 이후 고대 지중해 세계의 공용어 ·공통어로서 광범하게 통용되어 우수한 문학을 낳았고, 프랑스 ·이탈리아 ·에스파냐 ·포르투갈 ·루마니아 등 로망스제어(諸語)의 근원이 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두산백과)


이 책은 서강대학교의 교양강좌 수업으로서 몇년간 큰 인기를 누렸던 라틴어 수업의 내용을 재구성하여 발매한 한동일 교수의 책입니다. 서강대생뿐만 아니라, 타학교 학생이나 일반인도 청강할 정도의 인기를 누렸다니, 어떤 강좌였을지 짐작이 되겠지요. 그런 강의 내용을 일부분이지만 글로 읽을 수 있다는 것은 큰 행운입니다. 제목은 라틴어를 알려줄 것 같기도 하지만, 실제는 언어분야 도서가 아니라 인문학을 포함한 자기계발서도서로 봐야합니다.


어떤 책은 저자가 느껴지지 않고 저자의 생각을 정보처럼 읽게 됩니다. 어떤 책은 저자의 개성이 유독 드러나기도 하고, 저자의 인품까지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책이 바로 그러합니다. 저자의 생각을 넘어서 그의 인품이 느껴지는 듯했으며, 마치 그가 바로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는 듯했습니다. 글 속에 저자의 정성과 진심이 느껴졌습니다.


28개의 챕터별로 하나의 주제를 두고 이야기를 전개하는 형식으로 12편의 에세이로 보면 될 것 같습니다. 각각의 챕터에서는 라틴어의 특징, 로마인의 삶의 일면, 라틴어의 명문 속에 담긴 의미와 삶의 자세에 대한 작가의 조언을 들을 수 있습니다. 작가의 라틴어와 관련한 인문학적 지식과 에세이가 자연스럽게 버무려져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글의 마지막 부분에는 라틴어 수업을 직접 수강했던 졸업생들의 헌사와 같은 글을 볼 수 있는데요, 그 글을 통해 학생들이 라틴어 수업을 통해 삶의 자세를 깨달을 수 있음을 알 수 있어요. 이 부분이 뭉클하게 와 닿더라구요.


한 학생은 학문 앞에서 자신이 오만함을 버리고 겸손함을 가져야 한다는 저자의 가르침을 배웠다고 하더군요. 저는 그 말 속에서 저자가 학문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 앞에, 삶 앞에서 겸손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고작 몇권의 책을 읽고 알은 채를 하는 나의 얄팍한 속내를 들킨 것 같고 부끄러워졌습니다. "모든 것을 조금씩 아는 것은 아무 것도 모르는 것과 같다"라는 저자의 조언 속에서 바로 그게 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무엇에든 진정한 전문가(마에스트로)가 되어 저만의 악보를 연주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 무엇보다 뇌리에 깊이 새겨졌습니다. 저자와 같은 인생의 멘토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으며, 부러워할 것 없이 인류의 수많은 저작들에서 그런 멘토들을 만나야지 하는 목표를 다시 설정하게 되었습니다.


"전공이 무엇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무엇을 추구할 것인지가 중요하다."는 말 속에 삶의 가치와 태도를 인생의 목적으로 보는 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취업이 잘 되는, 돈을 많이 버는, 인정받는 전공을 선택하고자 공부를 열심히 하는 사람들에게 '꿈'이란 그런 것이 아님을 가르쳐주는 인문학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저자가 제자에게 건넨 "그대는 어제도, 오늘도 자신의 길을 잘 걷고 있습니다."는 말은 마치 저에게 하는 말로 들립니다.


이제 저자의 조언을 정리합니다. 책을 읽으며 밑줄을 그은 부분들입니다.


1.

언어는 사고의 틀입니다. 상대에 대한 존중과 배려, 수평성을 가지고 있는 라틴어가 로마인들의 사고와 태도의 근간이 되었을 겁니다. ... 몇 개 국어를 하는가, 어려운 외국어를 할 줄 아는가가 대단한 게 아닙니다. 외국어로 유창하게 말할 줄 알지만 타인의 이야기를 듣지 못하는 유명 인사의 강변보다, 몇 마디 단어로도 소통할 줄 아는 어린 아이들이 대화 속에서 언어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종종 생각합니다. 나는 고상한 언어를 구사하고 있을까하고요.


2.

지식 즉 어떤 것에 대해 아는 것 그 자체가 학문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학문을 한다는 것은 아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 앎의 창으로 인간과 삶을 바라보며 좀 더 나은 관점과 대안을 제시해야 합니다. ... 배운 사람이 못 배운 사람과 달라져야 하는 지점은 배움을 나 혼자 잘 살기 위해 쓰느냐 나눔으로 승화시키느냐 하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배워서 남 주는 그 고귀한 가치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진정한 지성인이 아닐까요? 공부를 많이 해서 지식인은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 지식을 나누고 실천할 줄 모르면 지성인이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도 공부를 해나가는 본질적인 목적을 잊지 않기 위해 '나는 왜 공부하는가? 무엇을 위해서, 누구를 위해서 공부하는가?'에 스스로 되묻습니다.


3.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공부를 해나가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학생의 개인적인 성장이지 타인과의 비교가 아닙니다. 성찰없는 성장을 강요하는 한국의 상대평가 방식은 교육적이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라틴어의 성적 구분

Summa cum laude 숨마 쿰 라우데 (최우등)

Magna cum laude 마냐/마그나 쿰 라우데(우수)

Cum laude 쿰 라우데 (우등)

Bene 베네 (좋음/잘했음)

'잘한다'라는 연속적인 스펙트럼 속에 학생을 놓고 앞으로의 가능성을 열어둡니다. '남보다' 잘하는 것이 아닌 '전보다' 잘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는 이미 스스로에 또 무언가에 '숨마 쿰 라우데'입니다. (우리나라는 현재 평가척도가 상/중/하 또는 매우잘함/잘함/보통/미흡/매우미흡으로 되어있어요.)


4.

공부에 지치고 세상이 자신을 보잘것없게 만들어 스스로가 초라하게 느껴지더라도 언제나 자기 스스로를 위로하는 케루빔의 천사가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어떤 상황에 처하든 스스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일을 멈추지 않을 때 자기 자신을 일으켜세울 수 있습니다. 스스로에 대한 객관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때로는 누구보다 자시 자신에게 가장 먼저 최고의 천사가 되어주었으면 합니다.


5.

매일 출근해 일하는 노동자처럼, 공부하는 노동자는 자기가 세운 계획대로 차곡차곤 몸이 그것을 기억할 수 있을 때까지 매일 같은 시간에 책상에 앉고 일정한 시간을 공부해줘야 합니다. 머리로만 공부하면 몰아서 해도 반짝하고 끝나지만 몸으로 공부하면 습관이 생깁니다. '하비투스'라는 말처럼 매일의 습관으로 쌓인 공부가 그 사람의 미래가 됩니다. 공부는 자동판매기가 아닙니다. 당장 결과가 좋지 않은 경우가 수두룩하지만 체계적으로 학습량을 쌓은 두뇌는 어느 때부터 '화수분'이 될 수 있습니다. 저는 공부하는 노동자입니다. 공부라는 노동을 통해 지식을 머릿속에 우겨넣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을 통해 나를 바라보는 노동자입니다.


6.

Si vales bene est, ego valeo.

시 발레스 베네 에스트, 에고 발레오

당신이 잘 계시다면 잘 되었네요, 나는 잘 지냅니다.

Si vales bene, valeo

시 발레스 베네 발레오

당신이 잘 있으면, 나는 잘 있습니다.

이것은 로마인의 편지 인사말입니다. 타인의 안부가 먼저 중요한, 그래서 '그대가 평안해야 나도 평안하다'는 그들의 인사가 마음 따뜻하게 다가옵니다. 내가 만족할 수 있다면, 내가 잘 살 수 있다면 남이야 어떻게 되든 별로 신경 쓰지 않는 요즘 우리의 삶이 위태롭고 애처롭게 느껴집니다.


7.

Hodie mihi, cras tibi

호디에 미기, 크라스 티비

오늘은 나에게, 내일은 너에게

로마의 공동묘지 입구에 새겨진 문장입니다. 오늘은 내가 관이 되어 들어왔고, 내일은 네가 관이 되어 들어올 것이니 타인의 죽음을 통해 자신의 죽음을 생각하라는 뜻의 문구입니다.


8.

카르페 디엠은 원래 농사와 관련된 은유로서 로마의 시인인 호라티우스가 쓴 송가의 마지막 부분에 있는 시구입니다.

Carpe diem, quam minimum credula postero.

카르페 디엠, 쾀 미니뭄 크레둘라 포스테로.

오늘을 붙잡게, 내일이라는 말은 최소한만 믿고.

카르페란 말은 카르포carpo(덩굴이나 과실을 따다, 추수하다)라는 동사의 명령형비니다. 과실을 수확하는 과정은 사실 굉장히 고되고 힘들지만, 한 해 동안 땀을 흘린 농부에게 추수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행복일 겁니다. 그래서 '카르포'동사에 '즐기다, 누리다'란 의미가 더해져 '카르페 디엠' 곧, '오늘 하루를 즐겨라'라는 말이 됐습니다. 시의 문맥상 '내일에 너무 큰 기대를 걸지 말고 오늘에 의미를 두고 살라'라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오늘을 산다고 하지만 어쩌면 단 한순간도 현재를 살고 있지 않은지도 모릅니다. 과거의 한 시절을 그리워하고 그때와 오늘을 비교합니다. 미래를 꿈꾸고 오늘을 소모하죠. 기준을 저쪽에 두고 오늘을 이야기합니다. 그때보다, 그때 그 사람보다, 지난번 그 식당보다, 지난 여행보다 어떤지를 이야기해요. 나중에 대학가면, 취직하면, 돈을 벌면 집을 사면 어쩧게 할 거라고 말하죠. 내일의 행복을 위해 오늘을 불행하게 사는 것도, 과거에 매여 오늘을 보지 못하는 것도 행복과는 거리가 먼 것이 아닐까요? .. 시인 호라티우스의 말은 내게 주어진 오늘을 감사하고 그 시간을 의미 있고 행복하게 보내라는 속삭입니다. 오늘의 불행이 내일의 행복을 보장할지 장담할 순 없지만 오늘을 행복하게 산 사람의 내일이 불행하지만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9.

Tantum vemus quamtum scimus.

탄툼 비데무스 콴툼 쉬무스.

우리가 아는 만큼, 그만큼 본다.

사람마다 자기 삶을 흔드는 모맨텀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나를 변화시키고 성장시키는 힘은 다양한 데서 오는데 그게 한 권의 책일 수도, 어떤 사람일수도, 한 장의 그림일 수도, 한 곡의 음악일 수도 있습니다. 그것을 통해 새로운 것에 눈 뜨게 되고 한 시기를 지나 새로운 삶으로 도약하게 되는 것이죠. 하지만 그런 모멘텀은 그냥 오지 않습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늘 깨어 있어야 한다는 말과도 같을 겁니다.


10.

라틴어에는 상처와 관련된 용어가 많습니다. 수많은 전쟁과 검투 경기 때문에 생긴 외상 환자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트라우마 trauma는 많은 상처를 의미합니다.


11.

Hoc quoque transibit!

혹 쿠오퀘 트란시비트!

이 또한 지나가리라!

분명한 것은 언젠가 끝이 날 거라는 겁니다. 모든 것은 지나갑니다. 그러니 오늘의 절망을, 지금 당장 주저앉거나 도망치고 싶은 마음을, 끝 모를 분노를 내일로 잠시 미뤄두는 겁니다.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에 나를 괴롭혔던 그 순간이 지나가벼렸음을 알게 될 겁니다.


12.

Dum vita est, spes est.

둠 비타 에스트, 스페스 에스트.

삶이 있는 한, 희망은 있다.

라틴어 명구 중에는 희망과 관련된 것들이 참 많아요. 과거에도 참 수많은 사람들이 희망을 꿈꿨구나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그 사실은 결국 그만큼 힘든 삶의 조건이 인간의 모든 세대마다 있었다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 제 희망은 삶이 죽음이라는 선택을 강요할 때 죽지 않고 사는 것입니다. 그게 저의 최고의 희망입니다. 저에게 희망이란 이루고 싶은 무언가, 어떤 것에 대한 기대와 그것이 충족되기를 바라는 마음, 그런 것들이 아닙니다. 그저 '희망' 그 자체로 저를 살게 하는 것이고 살아 있게 하는 겁니다.


"학문을 한다는 것은 아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 앎의 창으로 인간과 삶을 바라보며 좀 더 나은 관점과 대안을 제시해야 합니다."는 저자의 말처럼 꾸준히 독서를 하며 지식을 쌓아가면서 나의 프레임을 확대해 나 혹은 가족, 내 주변의 삶에 선한 변화를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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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무에게 인생을 배웠다 - 세상에서 가장 나이 많고 지혜로운 철학자, 나무로부터 배우는 단단한 삶의 태도들
우종영 지음, 한성수 엮음 / 메이븐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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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은 나무를 디자인하고 바람은 나무를 다듬는다."


1. 우듬지는 빛을 방해하는 장애물을 발견하면 즉시 방향을 전환한다.

나무의 우듬지는 나무 줄기의 맨 꼭대기 부분으로, 어느 방향으로 뻗어나갈지를 결정한다고 한다. 우듬지 빛을 향해서 뻗어간다. 빛은 나무에게 희망이고 목표이다. 나무가 주변에 장애물로 인해 빛을 제대로 받지 못하면 곧장 우듬지는 빛을 향해 몸을 튼다. 그래서 나무의 모양은 'ㄱ'자도 되도 'ㄷ'자도 된다. 나무가 희한하게 자랐다고 신기해하지만, 그건 다 빛을 따라간 나무의 인고라는 것을 알게 되니, 산책하면서 그냥 스쳐지나갔던 나무의 모양이 새롭게 느껴지고 우듬지가 겪었을 선택과 노력에 눈길이 간다.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을 계산하느라 오늘을 망치고 스스로를 죽이는" 사람들에게 나무의 우듬지는 말해준다. 선택을 주저하지 말라. 온 힘을 다해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면 선택을 인한 결과의 두려움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말이다.


2. 싹을 튀운 나무는 뿌리를 깊게 내리는 5년의 유형기를 거친다.

막 싹을 틔운 어린 나무는 성장을 하지 않고 땅 속의 뿌리부터 키우는데 집중한다. 이를 유형기라고 하는데 아무리 햇볕이 유혹해도 더 깊이 뿌리를 내린다. 웬만한 가뭄을 너끈히 이겨 낼 수 있도록 뿌리의 골격을 튼츤하게 만든다. 그런 후에 비로소 하늘을 향해 줄기를 뻗는다. 사람의 인생도 그런 유형기의 시기를 거쳐야 자신이 바라는 것을 행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나무나 사람의 인생은 같다. 값지고 귀한 것을 얻으려면 그만큼의 담금질이 필요하다. 나또한 지금은 유형기라는 생각을 한다. 빛을 향해 줄기를 키우기 위해 안으로 깊이 뿌리를 내려야 하는 시간. 그것이 내게 책읽기고 글쓰기가 아닐까.


3. 나무는 여름이 깊어질 때 성장을 멈추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여름이 깊어 갈 때 밖으로 내달리고 싶은 유혹을 이기고 꽃을 피우는 나무"처럼 자라야 할 때와 멈춰 서야 할 때를 아는 나무의 모습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점이 있지 않을까.


4. 숲이 생명이 자라는 땅이 되기 위해서는 틈이 필요하다.

"생존만을 위해 경쟁하는 숲은 죽어간다."


5. 주엽나무는 위협을 느낄 때 무성한 가시를 만들어낸다.

"주엽나무는 사람들이나 초식동물로부터 위협을 느끼면 무성한 가시들을 만들어낸다. 그런 위협으로부터 안전한 곳에서 자란 주엽나무는 가시가 거의 없다. 주엽나무의 가시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말이고 보호막인 것이다. 나무는 시련을 버티면서 가시를 만들어내며 적극적으로 자신의 삶을 만들어 간다. 인간과 다를 바가 없다."


6. 나무가 자식을 키우는 방법은 스스로 삶을 꾸려가게 하는 것이다.

"소나무는 씨앗이 최대한 멀리 갈 수 있도록 가지 제일 높은 곳에 열매를 맺고는 바람이 세게 부는 날 미련 없이 씨앗을 날려 보낸다. 어미 나무는 싹이 제대로 틀 때까지 필요한 최소한의 양식을 챙겨줄 뿐이다. 씨앗을 감싸고 있는 배젖은 먼 길 떠나는 씨앗에게 어미 나무가 챙겨 주는 처음이자 마지막 도시락인 셈이다. 그렇게 멀리 떠난 어린 씨앗은 싹을 틔우는 순간부터 오직 제 힘으로 자란 덕에, 죽을 때까지 저만의 삶을 씩씩하게 꾸려 간다."


7. 씨앗이 싹을 튀우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모든 씨앗이 싹을 틔우지는 않는다. 멀쩡한 씨앗이라도 100년 이상 싹을 튀우지 않은 채 그대로 머물러 있기도 하다. 씨앗은 자신에게 꼭 맞는 온도와 습도, 적절한 빛의 배분 등 여러 조전이 맞을 때를 기다려 땅 속의 인내의 시간을 보내고 싹을 튀운다. 작은 씨앗이 캄캄한 흙을 뚫고 세상 밖으며 머리를 내밀듯, 사람도 있는 자리에서 한 걸음 나아가려는 용기가 필요하다.


8. 뿌리 골무의 부드러움이 바위를 갈라지게 한다.


9. 아카시나무는 황폐한 산을 제일 먼저 프르게 하고 다른 나무들에 자리를 내어준다.


10. 나무는 빛이 디자인하고 바람이 다듬는다.

나를 디자인하고 다듬는 것은 무엇일까?



30년간 나무를 돌본 나무의사가 들려주는 나무의 생태가 재미있었어요. 그리고 나무에게서 저자가 발견한 인생을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씨앗, 뿌리, 인내, 기다림, 인고, 성장, 꽃, 열매, 빛, 바람, 변화, 생존

나무의 삶에 인간이 있음을 느낍니다. 무릇 모든 생명의 '살이'는 서로 닮아 있습니다. 바람과 비를 막을 옷 하나없이 살아가는 나무가 생존하는 법을 통해 인간이 배워야 할 부분을 발견합니다. 삼라만상이 다 스승이라더니, 참말로 그러한가봐요. 그걸 발견하는 저자가 있어서 나와 같은 사람은 덕을 참 많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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