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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친절한 죽음을 원한다 - 삶의 완성으로서의 좋은 죽음을 말하는 죽음학 수업
박중철 지음 / 홍익출판미디어그룹 / 2022년 4월
평점 :
"이제는 좋은 죽음에 대해 이야기할 때"
박중철의 <나는 친절한 죽음을 원한다>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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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죽는다는 것은 잘 사는 것의 연장선에 있다."
-삶의 완성으로서 좋은 죽음을 이야기하는 박중철의 죽음학 수업-
과학과 의료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인간의 기대수명도 연장이 되었다. 현재 2021년 대한민국의 기대수명은 83.5이다. 2020년보다 2.5년이 늘어났다. 이렇게 기대수명이 늘어났다고 해서 우리가 죽는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그리고 오히려 늘어난 기대수명 때문에 우리는 66년은 건강하게 살 수 있지만, 17년은 각종 질병에 시달리며 살아야 한다. 집에서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하지 못하고 많은 사람들이 병원 응급실과 중환자실에 죽음을 맞이한다. 과연 병원 임종은 인간다운 죽음인가.
이 책 『나는 친절한 죽음을 원한다』에서 저자는 우리 사회의 죽음의 문화와 그 현실을 살펴보면서 죽음에 관한 담론을 이어나간다. 여러 의학자료들과 사례들을 통해 수명연장보다는 웰 다잉이 중요함을 보여주고 있다. 생존보다는 실존이 중요하듯이, 죽음 또한 끝까지 살아서 죽음을 늦추는 것보다는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며 죽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내가 이 글을 통해 주장하고 싶은 것은 죽음은 내 삶의 일부이고, 잘 살아온 삶에 어울리는 좋은 죽음은 우리 스스로가 도전해야 할 삶의 마지막 과제이다."
-p. 18-
잘 죽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이제는 웰빙(Well-being)만큼 웰 다잉(Well-dying)도 중요해졌다. 과거에는 어떻게 하면 일찍 죽지 않고 오래 살 수 있을까 하는 인간의 수명이 관심사였다면 이제는 어떻게 고통없이 잘 죽을 수 있을까 하는 것과 관련된 문제가 중요해졌다.
잘 죽는다는 것! 어떻게 하면 잘 죽을 수 있을까. 세계 많은 나라에서 이제는 웰다잉 측면에서 많은 방법들이 연구가 되어오고 있고 호스피스 치료를 통한 고통 완화 치료 또한 일반적으로 행해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많은 사람들이 병원에서 죽는다. 과거에는 의료 서비스가 개선되지 않아 제대로 치료를 못 받고 집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제는 병원에서 마지막까지 치료받고, 중환자실에서 연명치료까지 받고 난 후 죽음을 맞이한다. 이런 방식의 죽음은 어쩌면 웰 다잉과 거리가 먼 것일지 모른다.
저자는웰 다잉의 요건으로 '고통 없는 죽음, 준비된 죽음, 두려움 없이 평온한 상태에서의 죽음 등을 좋은 죽음의 요건으로 제시하였다.
그러나 우리나라 현실은 아직 웰 다잉에 대한 준비가 미흡하다. 많은 사람들이 고통 속에서 괴로워하다가 죽는 것 같다. 아직도 호스피스 치료 시설도 부족하고 호스피스 치료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까지 생명연장에만 치중해온 나머지 호스피스 치료에 대해 체계적으로 준비하는 것이 미흡했다. 또한 여전히 의사와 가족의 역할과 책임은 마지막 순간까지 환자를 포기하는 것에 있다고 받아들여져 왔다. 그렇기에 연명치료는 더더욱 포기할 수 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연명치료가 진정으로 환자를 위한 것일까. 연명치료는 과연 누구를 위해 필요한 것인가? 진정으로 환자를 위한 것인가? 환자의 수명을 연장하는 것이 오히려 환자를 죽이는 것은 아닐까.
이에 대해 저자는 연명치료는 환자를 위한 것이 아닌 의료진과 가족들의 자기만족과 자기위로를 위한 변명이라고 말한다. 심정지에 이른 환자에게 심폐소생술을 실시하는 것이 어찌 환자를 죽이는 것일까. 처음에는 의사들의 연명치료가 정말 환자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환자의 생명을 중시해서 끝까지 환자를 포기하지 않는구나. 하지만 그렇게 생명이 다해가는 환자를 다시 살리면 환자는 과연 행복할까. 마치 꺼져가는 촛불을 살리듯 환자가 살아있는 나날들을 좀더 늘릴 수는 있을지 모르겠지만, 결국은 촛불은 꺼지게 마련이고 환자의 생명도 다하게 된다. 그것은 환자뿐만 아니라 가족들에게도 분명 고통일 것이다.
이제 우리나라도 연명치료에 대한 포기를 선택하는 DNR이 가능해졌다. 하지만, DNR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고, 선뜻 DNR 결정을 내리기 어려운 상황이다.하지만 존엄하고 인간다운 죽음을 위해서는 기꺼이 자신의 생의 마지막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무력감을 벗어나기 위해 환자에게 행하는 의료적 집착은 한 마디로 불필요한 것, 죽음의 과정을 연장하는 것, 환자에게 가하는 고통과 해로움 그 자체이다.
-p. 271-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한 결정권은 그 자신에게 있다. 어느 누구도 그 선택을 대신할 수도 없다. 하지만 지금까지 죽음에 대한 결정권은 자기 자신이 아닌 의료진과 가족들의 손에 쥐어져있었다. 잘 사는 것 못지않게 잘 죽는 것도 중요하다. 웰 다잉을 위해서는 환자 본인의 노력뿐만 아니라 의료진, 가족을 포함한 우리 사회의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의료인들은 마치 신과 같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존재가 아닌 안내자이자 파수꾼이자 목격자가 되어야 한다. 환자가 되도록이면 고통 없는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평온한 상태로 죽을 수 있도록의료적인 노력뿐만 아니라 인간적인 노력을 다해야 하는 것이다. 죽음이라는 것이 의사들에게는 의학적인 처치의 실패로 비칠 수 있지만,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는 점에서 자연스러운 결말일지도 모른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고 모든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삶을 정리할 수 있는 기회가 보장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이라면 당연히 가지는 권리인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우리나라 현실은 이런 인권조차 제대로 보장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이제는 '웰다잉', '좋은 죽음'을 생각해야할 때이다.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되돌아보고 그 인생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는 분명히 제공되어야 한다. 이제는 우리도 고통 없이 잘 죽을 수 있고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주장해야 할 때이다. 그럴 때 비로소 인간다운 죽음과 우리 사회 속에서 그 죽음이 존중받고 보장되는 삶을 꿈꾸어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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