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티켓
조 R. 랜스데일 지음, 박미영 옮김 / 황금가지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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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동생을 찾기 위한 한 소년 용기있는 모험 이야기   "

 

조 R. 랜스데일의 <빅 티켓>을 읽고



 

에드거 최고 장편소설상 수상작가

조 R. 랜스데일이 선사하는  화제작 <빅 티켓>
 

 

 

항상 스릴러 소설을 읽으면 왠지 모를 전율과 스릴을 느끼곤 한다. 그 소설 속에 담긴 모험, 복수, 미스터리들이 궁금증과 함께 재미와 스릴을 준다. 아마도 평범한 일상 속에서 뭔가 재미난 일이 일어났으면 하는 나의 심리가 반영된 것이 아닐까. 이번에 만난 조 R. 랜스데일의  『빅 티켓』은 스릴뿐만 아니라 액션, 모험까지 반영되어서 마치 헐리우드 서부 액션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실제로 이 책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헐리우드에서 제작중이라고 하니 더욱더 기대가 된다. 더군다나 <왕좌의 게임>, <시라노>에서 난쟁이 역을 맡아서 명연기를 보여주었던 피터 딘클리지가 출연한다고 하니 더욱더 영화가 기다려진다.

 

 

 『빅 티켓』은 에드거 최고 장편소설상 수상작가인 조 R. 랜스데일이 작품인데, 그는 이 작품에서  은행강도들에게 납치당한 여동생을 구출하기 위한 16세 소년의 여정을 보여준다. 그 여정 속에서 소년 잭은 난쟁이 총잡이, 거구의 흑인 추적자, 매춘부를 만나게 되고 그들과 함께 추적을 계속한다. 특히 그들이 사회에서 차별받고 소외당하는 약자들이라는 것이 인상깊었다. 저자는 이를 통해 미국 사회 속에서 깊게 뿌리박힌 인종 및 사회적 차별을 의도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제대로 존중받지 못하고 무시 당하는 그들이 16세 소년 잭을 도와 은행강도에게 납치당한 여동생을 구출하고 은행강도들을 처벌하여 사회의 정의를 실현한다는 설정이 참으로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또한 잭과 그의 여동생 룰라의 그런 운명에 처하게 만든 원인인 천연두의 등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잭의 부모님이 천연두에 걸려서 갑자기 사망하게 되고 잭은 할아버지를 따라 여동생과 함께 집을 떠나던 과정 속에서 은행강도들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천연두로 인해 10억 명 이상이 죽었다고 한다. 다행히 백신의 우두법이 계발되면서 1977년 이후 WHO가 근절을 선언했다. 천연두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죽는 과정을 보니 지금 코로나 사태가 생각이 났다. 다행히 천연두애 걸리지 않은 잭 남매는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 떠나게 되지만, 그들의 불행은 끝나지 않고 할아버지는 은행강도들에 의해 죽음을 당하고 여동생은 은행강도들에게 납치가 된다. 가족 모두를 잃고 하나 남은 여동생 룰라까지 빼앗긴 상황 속에서 잭의 마음을 어땠을까.

 

하지만 잭은 이 상황에 절망하지 않고 여동생 구출 작전을 세운다. 아직 16살이라 잭 혼자의 힘으로 여동생을 구출할 수 없어서 그는 자신이 유산으로 받은 땅문서를 담보로 하여 거구의 흑인 추적자 유스터스와 난쟁이 총잡이 쇼티를 고용하게 된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은행강도들을 추적하게 되고 결국엔 '빅티켓'이라는 지역까지 가게 된다. 이 지역은 각종 범법자들이 거주하는 지역으로 이 지역에 들어갔다가 살아돌아온 사람이 없을 정도로 무법천지의 위험한 지역이다. 하지만 잭은 절대 포기할 수 없다. 비록 목숨이 위험하더라도 잭은 여동생을 구출하기로 한다. 그리고 그 추적대를 이루는 거구의 흑인, 난쟁이 총잡이, 새로운 삶을 살고 싶은 매춘부, 보안관들은 각자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그 구출 작전에 합류한다. 과연 그들은 잭의 여동생 룰라를 구출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들은 은행강도들을 체포해서 법의 심판을 받게 하고 현상금을 받을 수 있을까. 그런 궁금증을 가지고 쉴새없이 책장은 넘어간다. 

 

또한 추적극 속에서 벌어지는 서부의 시대상과 결투 모습은 마치 서부 영화를 보는 재미를  제공한다.현대판 마크 트웨인이라는 극찬을 받아온 저자는 이 작품 속에서도 문명화, 산업화 등을 겪으면서 격변해가는 서부의 시대상과 무법과 살인이 판치는 서부의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하였다. 인종차별, 사회적 부조리와 차별, 그 당시 서부의 모습 등이 어우러져 이 추적극의 재미와 현실감을 높이고 있다. 

 

또한 이 추적 과정 속에서 주인공인 16세 소년 잭이 무엇을 느끼고 보았는지, 무엇을 생각하고 판단했는지, 얼마나 성숙했는지 등 잭의 성장 과정이 담겨 있는 것도 이 작품이 가진 매력이라 하겠다. '여동생 찾아 삼만리' 의 여정을 떠난 잭의 모험은 분명 모험과 스릴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분명 재미와 감동을 선사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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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건의 완벽한 살인
피터 스완슨 지음, 노진선 옮김 / 푸른숲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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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 스릴, 대반전 이야기  "

 

피터 스완슨의 <여덟 건의 완벽한 살인>을 읽고



 

피터 스완슨이 선사하는
복수, 스릴, 대반전의 종합선물세트

 

 

다양한 책들을 읽는 것을 좋아하지만, 그래도 나에게 최애는 바로 '스릴러 소설'이다. 그동안은 살인, 복수 등을 다룬 스릴러 소설을 즐겨 보았는데, 이번에 만난 책 『여덟 건의 완벽한 살인』은 복수, 대반전,  미스터리, 스릴러 등 모든 요소가 결합된 스릴러 종합세트 같은 책이었다. 특히 이 책의 저자가 피터 스완슨이기 때문에 '역시 피터 스완슨답다' 라는 말이 나올 정도이다.  『여덟 건의 완벽한 살인』은 피터 스완슨의 신작으로 전작인 『죽여 마땅한 사람들 』만큼의 스릴과 반전이 돋보이는 작품인 것 같다. 또한 범죄 소설 속 살인을 모방한 살인 사건이라는 흥미로운 소재를 사용하여 고전 스릴러 소설 팬들의 관심을 자극한다는 점에서 전작들보다 더 스릴있고 재미있는 것 같다. 

 

범죄 소설을 읽으면서 소설 속 살인사건이 실제로 일어난다면, 누가 이런 살인을 모방한다면 어떻게 될까 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런데 그 생각이 또 하나의 범죄 소설을 구성하는 소재가 되고, 그 소재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으니 한편으로 신기하기도 했다.

 

 이 책  『여덟 건의 완벽한 살인』은 누군가가 몇 년 전에 서점 블로그에 올린 포스팅의 제목이기도 하다. 보스턴의 한 추리소설 전문 서점을 운영하며 성실하게 살고 있는 맬컴 커쇼에게 어느 날, FBI  요원이 찾아온다. 그러면서 그에게 '당신이 몇 년 전 서점 블로그에 올린 포스팅을 기억하냐고 묻는다. 그 포스팅은 그가 몇 년 전에 지금까지 발표된 범죄소설 가운데 독창적이고 완벽한 살인에 가까운 여덟 개의 작품을 모아서 그 작품들에 대한 간단한 소개와 그 작품 속 완벽 살인에 대해 설명해놓은 글이었다. 단순히 책에 대한 소개나 생각을 적어놓은 글이었는데, 만약 누군가가 그 글을 읽고 실제로 이에 따라 범죄를 저지를 수 있을까.

 

'에잇, 설마' 하는 일이 정말로 현실에서 일어났다. 그웬 멀비 FBI 요원은 지금까지 몇 건의 살인 사건이 일어났는데, 그 사건들이 그 포스팅에서 소개된 범죄소설들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과연 그게 가능한 일일까. 그래서 그들은 다시 한번 그 여덟 건의 범죄소설들을 읽어보면서 그 살인사건과의 연관성을 검토하게 된다. 만약 범인이 그 책들에서 나오는 살인 방법을 모방한다면 완전범죄니깐 결코 잡히지 않는 것은 아닐까. 범인은 단순히 스릴러 팬이라서 범죄소설 속 살인이 가능한지를 테스트를 하고 싶어하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서점 주인인 맬컴 커쇼와 개인적인 원한이 있어서 그를 곤경에 빠뜨리려 하는 것일까.

 

“누군가 내 리스트를 읽고 그 방법을 따라 하기로 했다는 겁니까?
그것도 죽어 마땅한 사람들을 죽이면서요? 그게 당신 가설인가요?”

-p. 33

 

 

범인은 죽여 마땅한 사람들을 죽인다고 한다. 그런데 그들은 정말 죽여 마땅한 사람들인가. 그런 판단의 기준은 누가 정한 것인가? 사람들이 정한 것일까 아니면 범인의 주관적인 판단인 것인가. 처음에는 일련의 살인 사건들 속에서 죽은 사람들은 서로 연관성이 없는 낯선 사람들인 줄 알았지만, 점점 더 그 살인자의 손길은 맬컴에게 다가오는 것 같다. 닥터 세퍼드라는 사람이 댓글에 남긴 말은 마치 맬컴을 알고 있는 것 같다. 그러면 다음 타깃은 그 자신이라는 말일까. 범인은 누구이며 왜 범인은 이런 일을 저지르는 것일까. 이런 궁금증을 느끼며 정신없이 책장은 넘어간다.

 

피터 스완슨 특유의 흡입력 있는 전개와 탄탄하고 짜임새 있는 구성은 이번 작품에서도 빛을 발하였다. 범인과 주인공의 쫓고 쫓기는 대결, 주인공의 심리묘사와 서서히 드러나는 진실, 배신과 복수, 대반전 스릴러 등이 한시도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역시 피터 스완슨답다' 라는 절로 나올 정도로 숨가쁘게 몰아가고 놀라운 대반전이 피날레를 장식한다. 또한 완벽한 살인의 근거로 사용된 여덟 편의 범죄소설들의 소개를 통해 오마주를 경험하는 기회도 가질 수 있어서 좋았다. 범죄소설 속에서 범죄소설이 소개되니 참으로 신기한 경험이었다. 애거서 크리스티 작품 외에 아직 다른  작품들을 읽어보지 않았는데 이번 기회를 통해서 읽어보아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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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친절한 죽음을 원한다 - 삶의 완성으로서의 좋은 죽음을 말하는 죽음학 수업
박중철 지음 / 홍익출판미디어그룹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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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좋은 죽음에 대해 이야기할 때"

 

박중철의 <나는 친절한 죽음을 원한다>를 읽고



 "잘 죽는다는 것은 잘 사는 것의 연장선에 있다."

-삶의 완성으로서 좋은 죽음을 이야기하는 박중철의 죽음학 수업-

 

과학과 의료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인간의 기대수명도 연장이 되었다. 현재 2021년 대한민국의 기대수명은 83.5이다. 2020년보다 2.5년이 늘어났다. 이렇게 기대수명이 늘어났다고 해서 우리가 죽는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그리고 오히려 늘어난 기대수명 때문에 우리는 66년은 건강하게 살 수 있지만, 17년은 각종 질병에 시달리며 살아야 한다. 집에서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하지 못하고 많은 사람들이 병원 응급실과 중환자실에 죽음을 맞이한다. 과연 병원 임종은 인간다운 죽음인가. 

 

이 책 『나는 친절한 죽음을 원한다』에서 저자는 우리 사회의 죽음의 문화와 그 현실을 살펴보면서 죽음에 관한 담론을 이어나간다. 여러 의학자료들과 사례들을 통해 수명연장보다는 웰 다잉이 중요함을 보여주고 있다. 생존보다는 실존이 중요하듯이, 죽음 또한 끝까지 살아서 죽음을 늦추는 것보다는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며 죽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내가 이 글을 통해 주장하고 싶은 것은 죽음은 내 삶의 일부이고, 잘 살아온 삶에 어울리는 좋은 죽음은 우리 스스로가 도전해야 할 삶의 마지막 과제이다."

-p. 18-

 

 

잘 죽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이제는 웰빙(Well-being)만큼 웰 다잉(Well-dying)도 중요해졌다. 과거에는 어떻게 하면 일찍 죽지 않고 오래 살 수 있을까 하는 인간의 수명이 관심사였다면 이제는 어떻게 고통없이 잘 죽을 수 있을까 하는 것과 관련된 문제가 중요해졌다.

 

잘 죽는다는 것! 어떻게 하면 잘 죽을 수 있을까. 세계 많은 나라에서 이제는 웰다잉 측면에서 많은 방법들이 연구가 되어오고 있고 호스피스 치료를 통한 고통 완화 치료 또한 일반적으로 행해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많은 사람들이 병원에서 죽는다. 과거에는 의료 서비스가 개선되지 않아 제대로 치료를 못 받고 집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제는 병원에서 마지막까지 치료받고, 중환자실에서 연명치료까지 받고 난 후 죽음을 맞이한다. 이런 방식의 죽음은 어쩌면 웰 다잉과 거리가 먼 것일지 모른다.

저자는웰 다잉의 요건으로 '고통 없는 죽음, 준비된 죽음, 두려움 없이 평온한 상태에서의 죽음 등을 좋은 죽음의 요건으로 제시하였다. 

 

그러나 우리나라 현실은 아직 웰 다잉에 대한 준비가 미흡하다. 많은 사람들이 고통 속에서 괴로워하다가 죽는 것 같다. 아직도 호스피스 치료 시설도 부족하고 호스피스 치료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까지 생명연장에만 치중해온 나머지 호스피스 치료에 대해 체계적으로 준비하는 것이 미흡했다. 또한 여전히 의사와 가족의 역할과 책임은 마지막 순간까지 환자를 포기하는 것에 있다고 받아들여져 왔다. 그렇기에 연명치료는 더더욱 포기할 수 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연명치료가 진정으로 환자를 위한 것일까. 연명치료는 과연 누구를 위해 필요한 것인가? 진정으로 환자를 위한 것인가? 환자의 수명을 연장하는 것이 오히려 환자를 죽이는 것은 아닐까. 

이에 대해 저자는 연명치료는 환자를 위한 것이 아닌 의료진과 가족들의 자기만족과 자기위로를 위한 변명이라고 말한다. 심정지에 이른 환자에게 심폐소생술을 실시하는 것이 어찌 환자를 죽이는 것일까. 처음에는 의사들의 연명치료가 정말 환자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환자의 생명을 중시해서 끝까지 환자를 포기하지 않는구나. 하지만 그렇게 생명이 다해가는 환자를 다시 살리면 환자는 과연 행복할까. 마치 꺼져가는 촛불을 살리듯 환자가 살아있는 나날들을 좀더 늘릴 수는 있을지 모르겠지만, 결국은 촛불은 꺼지게 마련이고 환자의 생명도 다하게 된다. 그것은 환자뿐만 아니라 가족들에게도 분명 고통일 것이다.

 

이제 우리나라도 연명치료에 대한 포기를 선택하는 DNR이 가능해졌다. 하지만,  DNR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고, 선뜻 DNR 결정을 내리기 어려운 상황이다.하지만 존엄하고 인간다운 죽음을 위해서는 기꺼이 자신의 생의 마지막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무력감을 벗어나기 위해 환자에게 행하는 의료적 집착은 한 마디로 불필요한 것, 죽음의 과정을 연장하는 것, 환자에게 가하는 고통과 해로움 그 자체이다. 

-p. 271-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한 결정권은 그 자신에게 있다. 어느 누구도 그 선택을 대신할 수도 없다. 하지만 지금까지 죽음에 대한 결정권은 자기 자신이 아닌 의료진과 가족들의 손에 쥐어져있었다. 잘 사는 것 못지않게 잘 죽는 것도 중요하다. 웰 다잉을 위해서는 환자 본인의 노력뿐만 아니라 의료진, 가족을 포함한 우리 사회의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의료인들은 마치 신과 같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존재가 아닌 안내자이자 파수꾼이자 목격자가 되어야 한다. 환자가 되도록이면 고통 없는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평온한 상태로 죽을 수 있도록의료적인 노력뿐만 아니라 인간적인 노력을 다해야 하는 것이다. 죽음이라는 것이 의사들에게는 의학적인 처치의 실패로 비칠 수 있지만,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는 점에서 자연스러운 결말일지도 모른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고 모든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삶을 정리할 수 있는 기회가 보장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이라면 당연히 가지는 권리인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우리나라 현실은 이런 인권조차 제대로 보장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이제는 '웰다잉', '좋은 죽음'을 생각해야할 때이다.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되돌아보고 그 인생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는 분명히 제공되어야 한다. 이제는 우리도 고통 없이 잘 죽을 수 있고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주장해야 할 때이다. 그럴 때 비로소 인간다운 죽음과 우리 사회 속에서 그 죽음이 존중받고 보장되는 삶을 꿈꾸어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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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책 : 문학 편 1 - 르몽드, 뉴욕타임스 선정, 세기를 대표하는 100권의 책
디오니소스 지음 / 디페랑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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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통해 고전과 고전 작가들과의 만남을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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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친절한 죽음을 원한다 - 삶의 완성으로서의 좋은 죽음을 말하는 죽음학 수업
박중철 지음 / 홍익출판미디어그룹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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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의학적인 자료들과 사례들이 수명연장보다는 웰 다잉이 중요함을 보여주고 있다. 생존보다는 실존이 중요하듯이, 죽음 또한 끝까지 살아서 죽음을 늦추는 것보다는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며 죽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환자의 생명을 연장시키는 '연명치료'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연명치료는 과연 누구를 위해 필요한 것인가? 진정으로 환자를 위한 것인가? 환자의 수명을 연장하는 것이 오히려 환자를 죽이는 것은 아닐까. 

 

이에 대해 저자는 연명치료는 환자를 위한 것이 아닌 의료진과 가족들의 자기만족과 자기위로를 위한 변명이라고 말한다. 심정지에 이른 환자에게 심폐소생술을 실시하는 것이 어찌 환자를 죽이는 것일까. 처음에는 의사들의 연명치료가 정말 환자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환자의 생명을 중시해서 끝까지 환자를 포기하지 않는구나. 하지만 그렇게 생명이 다해가는 환자를 다시 살리면 환자는 과연 행복할까. 마치 꺼져가는 촛불을 살리듯 환자가 살아있는 나날들을 좀더 늘릴 수는 있을지 모르겠지만, 결국은 촛불은 꺼지게 마련이고 환자의 생명도 다하게 된다. 그것은 환자뿐만 아니라 가족들에게도 분명 고통일 것이다.

 

이제 우리나라도 연명치료에 대한 포기를 선택하는 DNR이 가능해졌다. 하지만,  DNR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고, 선뜻 DNR 결정을 내리기 어려운 상황이다.하지만 존엄하고 인간다운 죽음을 위해서는 기꺼이 자신의 생의 마지막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무력감을 벗어나기 위해 환자에게 행하는 의료적 집착은 한 마디로 불필요한 것, 죽음의 과정을 연장하는 것, 환자에게 가하는 고통과 해로움 그 자체이다. 

-p. 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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