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본 없음 - 삶의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기 위해 쓴 것들
아비 모건 지음, 이유림 옮김 / 현암사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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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상실에 관한 에세이" 

 

아비 모건의 <각본 없음>  읽고 

 



"우리는 모든 것을 잃지는 않았다. 전부는 아니다."

 

-메릴 스트립, 유진목 시인, 이다혜 기자 추천-

 



만약 세상에서 나를 가장 잘 알고, 나를 사랑해주던 사람이 갑자기 딴 사람이 된다면 어떨까? 나를 갑자기 모르는 사람 취급한다면 어떨까?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것과 같은, 모든 것이 다 끝난 것 같은 절망감에 사로잡힐 것이다. 

그런 일이 이 책  『각본 없음』의 작가 아비 모건에서 일어났다. 작가의 자전적 에세이를 읽으며 정말 이 책의 제목처럼 흔히 인생은 각본이 없는 드라마와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아무리 삶이 한 편의 드라마와 같다고 하지만, 드라마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들이 실제 현실에서 일어났다. 처음에는 제이콥과 화자인 나의 이야기가 소설 속 이야기인 줄 알았다. 하지만, 읽다보면, 소설 속 화자인 나가 이 책을 쓴 작가인 아비 모건임을,  제이콥이 작가가 사랑하는 남편임을 알게 된다.  드라마 속 소재라고 해도 너무 슬프고 절망적인 이야기인데, 이런 일들을 실제로 작가가 겪으며 이 글을 써내려갔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먹먹해진다.


<철의 여인>, < 더 스플릿>과 같은 화제의 드라마를 집필하고 실제 에미상을 수상한 극작가인 아비 모건에게 어느 날 한 편의 드라마 같은 일이 벌어진다. 그것은 누구보다도 그녀를 사랑하고, 지지해주던 배우자인 제이콥이 갑자기 쓰러진 것이다. 쓰러진 이후, 그녀는 다시는 예전에 그녀를 사랑해주던 제이콥을 만날 수가 없다. 그녀를 모르는 사람 취급하고, 그녀를 잃어버리고 ,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낯선 모습의 제이콥만 있을 뿐이다.  

다시는 그녀를 사랑해줄 수도, 지지해줄 수도 없는 다른 모습이 되어버린 제이콥을 보며 그녀는 희망과 절망 사이를 왔다갔다 한다. 그래도 그가 죽지 않고 살아있고 언젠가는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을 가지다가도, 이렇게 살아있을 바에는 차라리 죽어버렸으면 하는 절망도 품으면서 기약도 없는 기다림을 계속한다. 그런 지루한 기다림이 그녀를 가장 힘들게 한다.


모두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실제로 우리에게 일어난 일이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펼쳐지는 비극에 관해 그 누구도 말해주지 않는 사실은 그 모든 것이 두렵고 정신없다는 사실이 아니다. 비극이 지루하다는 사실이다. 기다림이 지루하다는 사실. 하지만 이 시간이 지나가기 전까지는 다음 장면으로 넘어갈 방법을 알 수 없다. 
-p. 150-151



하지만, 낯선 모습의 제이콥이라도, 몸과 마음을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제이콥이라도 그는 그녀에게뿐만 아니라 가족들 모두에게도 너무나 소중한 존재이다. 그는 그녀에게 사랑하는 남편이자, 아이들에게 아빠이며, 누군가의 아들, 누군가의 형, 누군가의 친구인 것이다. 그렇게 제이콥은 그녀를 비롯한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삶의 모든 순간에 엮어 있는 사람이다. 너무나 소중한 사람이기에 결코 그를 포기할 수도, 놓아버릴 수도 없는 것이다.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사랑하는 사람의 상실 속에서 그녀가 느끼고, 생각하고, 겪어야 했던 모든 것들이 이 책 속에 담겨 있다. 이 책은 극작가인 아비 모건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찾아온 비극 속에서 써내려 간 사랑과 상실에 대한 에세이이다. 

그녀에게 예고 없이 닥친 재난이 너무 가혹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상실뿐만 아니라 그녀에게 내려진 암선고까지 너무나 절망적이고 고통스러운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재난 앞에서 사람들은 쉽게 포기하기도, 절망하기도 하지만, 그녀는 끝까지 이 각본 없고, 기약도 없는 기다림을 계속한다. 사랑했기에 필연적으로 겪어야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그녀는 그 3년의 시간을 수많은 좌절과 절망 속에서도 어떻게든 그 사람 곁을 지키려고 했다. 


절망과 비극 속에서, 사랑이 송두리째 빼앗기긴 사랑 속에서도 그녀의 사랑은 퇴색되거나 사라지지 않는다.  그런 사랑과 믿음이 그녀가 쓴 자전적 에세이인 이 책 『각본 없음』이 담겨 있고, 우리는 읽으며 서로에 대한 사랑과 믿음의 가치에 대해, 그 위대한 힘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그리고 그 삶의 고난을 이겨내는 것 또한 인생이며, 그렇게 꿋꿋하게 살아가야 함을 새삼 깨닫게 된다. 

“너를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해 주고 싶다. 그 무엇보다 바라는 것이 있다면, 뭐가 됐든 아이들이 사랑과 우정을 나눌 수 있는 존재를 만나는 것이다. 남자든, 여자든, 물고기든. 그리고 바로 이 점에서 나는 제이콥과 내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리가 서로에게 한 맹세는 우리의 아이들, 그 모든 순간, 모든 이야기, 서로를 향한 헌신에 얽혀 있고, 종종 의심이 생길 때도 있었지만, 변함없이 단단했다.
- p.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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