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률로 바라본 수학적 일상 - 확률이 이끈 지성, 과학 그리고 인공지능의 세계
장톈룽 지음, 홍민경 옮김, 김지혜 감수 / 미디어숲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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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판돈 배분 문제, 확률론의 시작


주사위 던지기 게임 도중 게임을 중지할 경우 남은 판돈을 어떻게 나눌지 고민한 프랑스 귀족 드 메르의 질문은 확률론이라는 위대한 수학 이론의 씨앗이 되었다. 17세기, 블레즈 파스칼과 피에르 드 페르마는 이 '판돈 배분 문제'를 두고 서신을 교환했다. 그들은 기대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남은 게임에서 각 플레이어가 이길 기댓값을 계산해냈고 남은 판돈을 어떻게 분배해야 가장 합리적인지 결론을 내렸다. 즉, 위대한 두 수학자는 미래의 불확실성을 수학적으로 예측하는 혁신적인 사고방식을 제시한 것이다. 훗날 확률론의 탄생일을 파스칼과 페르마가 서신을 주고받기 시작한 날로 했다니 참으로 그들의 업적을 기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결정이다. 도박 문제에서 시작해 인류의 지식 체계를 확장한 그들의 능력이 정말 놀랍고 감탄스러웠다.​


이처럼 과거 도박의 판돈 문제에서 시작된 확률은, 오늘날 인공지능이 세상을 학습하는 핵심 원리에 이르기까지 우리 삶의 거의 모든 분야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이론물리학 박사이자 중국의 대표적인 과학 교양 작가인 저자 장톈룽의 [확률로 바라본 수학적 일상] 책을 통해 바로 이 확률의 놀라운 여정을 들여다보았다.


수상한 데이터의 첫 숫자, 벤포드 법칙


저자는 확률이 가진 놀라운 힘을 보여주는 사례로 데이터 조작을 감지하는 벤포드 법칙에 대해 설명하였다. 이 법칙은 현실 세계의 다양한 데이터에서 첫 자리가 특정 확률(1이 약 30%, 2가 약 17% 등)로 나타난다는 것을 수학적으로 증명한다. 따라서 이 확률 분포를 벗어난 데이터는 조작되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벤포드 법칙은 실제로 회계 부정이나 탈세 혐의 등을 조사할 때 유용하게 사용된다고 한다. 확률의 규칙이 수많은 데이터를 감시하는 강력한 도구가 된다는 사실이 매우 흥미로웠다. 


여섯 단계의 연결, 세상은 생각보다 좁다


십수 년 전, 서프라이즈라는 TV 프로그램에서 접했던 ‘케빈 베이컨 게임’을 아직 기억하고 있다. 이 게임은 할리우드 배우 케빈 베이컨이 다른 배우들과 얼마나 가깝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나타내는 ‘베이컨 넘버’를 겨루는 방식으로, 어떤 사람도 6단계를 넘지 않는다는 사실이 놀랍고 신기했다. 당시에는 그저 재미있는 게임으로만 생각했는데, 책을 통해 이것이 수학적 원리에 기반한 현상이라는 것을 자세히 알게 되어 매우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에서는 이 게임의 개념을 그래프 이론의 ‘지름'이라는 수학적 개념으로 풀어낸다. 지구상의 임의의 두 사람은 평균적으로 여섯 단계만 거치면 모두 연결될 수 있다는 ‘6단계 분리 이론’이 바로 그것이다. 이처럼 수학적으로 계산된 네트워크의 지름을 통해 우리는 세상이 생각보다 훨씬 더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복잡해 보이는 인간 관계망 속에서 정보가 빠르게 퍼져나가는 이유도 이 ‘좁은 세상’ 네트워크의 특성 때문이다. 2016년 페이스북 자료에 따르면 현재의 네트워크 지름은 3.57로 추정된다고 하니, 우리의 연결망은 이제 여섯 다리가 아니라, 세 다리로 좁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처럼 우리는 모두 서로에게 닿을 수 있는 가까운 이웃이라는 사실이 새삼 놀랍고 흥미롭게 다가온다. 동시에, 우리가 던지는 작은 메시지나 행동이 생각보다 훨씬 더 멀리, 빠르게 퍼져나갈 수 있겠다는 걱정이 들기도 했다. 


확률론과 베이즈의 승리: ChatGPT


저자는 ChatGPT에 대해 확률론과 베이즈의 승리라고 표현하며 책을 마무리한다. ChatGPT는 방대한 양의 텍스트 데이터를 학습하여 다음에 나올 단어가 무엇일지를 확률적으로 예측하고, 가장 가능성이 높은 단어를 선택하여 문장을 완성해 나간다. 이는 마치 무작위로 주사위를 던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수많은 단어의 조합 중에서 가장 자연스럽고 문맥에 맞는 '확률'을 찾아내는 과정이다. 예를 들어, 가을바람이라는 텍스트가 주어졌을 때, 다음에 올 텍스트로 불다, 따뜻하다, 찾아오다 등이 올 수 있는데 그 중 확률이 가장 높은 따뜻하다를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ChatGPT는 모든 가능한 단어에 확률을 부여하고, 그중 가장 높은 확률을 가진 단어를 선택하여 문장을 생성한다.


여기서 베이즈 정리의 개념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베이즈 정리는 새로운 정보를 통해 기존의 확률을 업데이트하는 방법이다. ChatGPT는 단순한 단어 예측을 넘어, 사용자와의 대화 맥락(새로운 정보)을 지속적으로 반영하며 답변을 생성한다. 결론적으로, ChatGPT는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통해 언어의 통계적 규칙과 패턴을 학습하고, 확률과 베이즈 정리를 통해 가장 적절한 답변을 생성해 내는 예측 기계라고 할 수 있다. 불확실성 속에서 최적의 해답을 찾아내는 이 기술의 발전은 놀라움을 넘어 경이롭기까지 하다. 우리에게 확률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주는 대목이었다.


책을 읽고 난 후


[확률로 바라본 수학적 일상]은 확률이 단순한 수학 문제를 넘어, 우리 삶의 모든 현상에 숨 쉬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도박 판돈 문제부터 인공지능에 이르기까지, 세상을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원리 중의 하나가 확률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 책 덕분에 복잡하고 예측 불가능해 보이는 세상도 결국은 확률이라는 논리적 틀 안에서 이해하고 예측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서포트 벡터머신, 신경망, 딥러닝 등의 개념이 나오기도 하고, 인공지능의 역사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도 있어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하는 대학생, 또는 전공을 원하는 고등학생들에게 꼭 읽어보라고 권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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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화가 처음인 당신에게 - 제대로 알고 즐기는 옛 그림 감상법
이장훈 지음 / 미술문화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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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평소 서양 미술사에 대한 관심으로 전시회나 관련 서적을 즐겨 찾았다. 하지만 문득, 동양 미술에는 너무 무심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서양 화가들의 이름과 작품에는 익숙하지만, 정작 동양의 화가들은 손에 꼽을 정도로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서 한쪽으로만 치우친 지식을 바로잡고 싶다는 생각에 [동양화가 처음인 당신에게]라는 책을 펼치게 되었다.


저자는 서양 미술에 비해 동양 미술을 감상하는 방법이 널리 알려지지 않은 현실에 아쉬움을 표하며, 이 책을 통해 한국,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회화사를 다루었다. 그는 서두에서 미술사를 '볼 수 있는 것을 읽을 수 있게 해주는 학문'이라고 정의하였다. 작품 자체의 설명에 그치지 않고, 어떤 과정을 거쳐 표현 방식이 정립되었는지, 해당 작품이 어떤 영향을 주거나 받았는지 등 전반적인 맥락을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나면, 스쳐 지나갈 수 있는 동양화 작품이 나에게 온전한 의미를 가진 이야기로 다가올 수 있겠다는 기대감을 갖게 되었다.


저자는 한, 중, 일의 미술사를 설명하기에 앞서, 1부 동양화를 알아가는 시간을 통해 동양화란 무엇인지, 동양화는 어떻게 그리는지 그 방식 등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였다. 그 중 동아시아에서 산수를 바라보는 관점에 관한 글이 매우 인상 깊었다. 서양의 원근법과 달리, 동양에서는 삼원법을 사용해 자연을 점차 알아가며 바라보는 시점을 담아냈다. 그래서 삼원법이 적용된 산수화 속 풍경은 한눈에 파악하기 어렵고 어색하게 느껴지기 쉬운데, 그림을 아래에서 위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찬찬히 살펴보면 그 속에 담긴 생동감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그동안 동양화를 볼 때 느꼈던 막연한 어색함의 이유를 알게 되면서, 앞으로 동양화를 더욱 즐길 수 있으리라는 설렘이 생겼다.


2부 동양화를 즐기는 시간에서는 중국, 한국, 일본의 역사의 흐름과 함께 각 나라의 미술사에 대해 다양한 그림과 함께 톺아볼 수 있었다. 중국의 긴 역사와 미술사를 약 100페이지 정도로 압축해 위진남북조 시대부터 청나라까지의 미술사를 전체적으로 설명하였다. 그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든 그림은 송 시대의 화가 곽희의 조춘도이다. 1072년에 그려진 작품으로, 초봄의 생기를 머금은 풍경을 그려냈다. 구불구불한 나무에서 굉장한 생동감이 느껴졌고, 아득히 높은 산을 표현하기 위해 산의 중간 부분에 여백을 두어 마치 구름처럼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 매우 신기하였다. 그는 자연을 그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취사선택을 하여 시적인 정취가 느껴지게끔 그릴 것을 주문했다고 한다. 그 의도 덕분인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연의 웅장함을 상상하게 하는 힘이 그림 속에서 그대로 전해졌다. 폭포 위에는 잘 보이지 않지만 사원이 자리한 것을 볼 수 있었는데,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학문을 연구하며 은거할 수 있는 이상적 공간이란 바로 이곳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이어서 한국 편에서는 조선 시대의 미술사에 대해 다루었는데, 그 중 이암의 그림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익히 보아왔던 '모견도'의 화가가 이암이었다는 것을 책을 통해 알게 되었고, 그의 다른 작품인 '화조구자도'를 감상할 수 있었다. 순박하게 낮잠을 자는 강아지, 호기심이 가득한 눈빛의 강아지들의 모습이 정말 사랑스럽고 평화롭다는 느낌을 주었다. 아름답게 꽃이 핀 나무, 꽃을 찾아온 새와 나비까지 전체적으로 매우 조화롭다. 저자는 이러한 평화로운 분위기를 통해, 조선 시대의 안정화된 사회상을 간접적으로 엿볼 수 있다고 설명하였다. 이렇게 그림을 통해 역사적 흐름까지 추측할 수 있다는 것이 미술사의 큰 매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책의 마지막은 일본 편이다. 표지에 그려진 가쓰시카 호쿠사이의 가나가와의 거대한 파도 그림이나 인상파에 영향을 준 우키요에 이외에 어떤 그림을 볼 수 있을까 기대가 되었다. 일본의 미술사를 나라-헤이안 시대부터 다루었는데 가장 마음에 들고 인상적인 그림은 오가타 고린의 야쓰하시도병풍이었다. 제비붓꽃을 그린 작품으로 배경은 전부 금색의 종이로 마감되어 있어 오로지 꽃과 다리에만 시선이 집중되게 하였다. 장식성을 강조한 일본의 전통 야마토에를 계승하면서도, 불필요한 요소를 제거해 세련된 느낌을 주었다.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아름다움에 감탄을 하는 한 편, 어디서 많이 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검색해 보니 고흐의 아이리스 작품에 영향을 준 작품이라고 한다. 현재 도쿄의 네즈 미술관에 보관되어 있으나 상설 전시는 아니고 매년 4~5월에 공개된다고 하니 봄 시즌에 도쿄 여행을 가게 된다면 실제 작품을 꼭 보러 가야겠다는 다짐을 하였다.


[동양화가 처음인 당신에게]를 읽고 난 후, 그동안 서양 미술에 치우쳐 있던 지식 외에 한, 중, 일 3국의 미술에 대한 지식을 쌓을 수 있게 되었고, 덕분에 동양 미술의 매력에 눈을 뜨게 되었다. 이제 더 이상 동양화가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 작품을 넘어 그 속에 담긴 시대적 배경과 화가의 의도를 읽어내는 방법을 배운 덕분에, 앞으로의 동양화 감상이 단순한 '보기'를 넘어 '읽기'로 확장될 것이라 기대한다. 나처럼 동양 미술에 막연한 어려움을 느꼈던 경험이 있다면 꼭 읽어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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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시 위의 세계 - 지리 선생님이 들려주는 세계의 식량
전국지리교사모임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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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취미가 베이킹인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밀가루 가격이 말도 안 되게 오르는 것을 체감하였다. 밀가루 값 상승은 빵, 과자, 라면 등 각종 가공식품의 가격을 끌어올렸고, 먹거리 물가가 전반적으로 인상되는데 큰 영향을 끼쳤다. 이처럼 세계화된 우리의 식탁에는 다양한 국가, 기업체에서 생산된 식재료들이 올라오고 있기에, 각 지역의 전쟁, 가뭄, 전염병 등의 이슈로 인한 영향을 피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번에 읽게 된 [접시 위의 세계]라는 책은, 국가별로 어떤 식재료들이 주로 생산이 되고 어떻게 공급이 되는지, 생산 및 공급 과정에 있어 법적, 윤리적 문제는 없는지, 미래의 식량작물은 어떤 모습일지 등에 대해 자세히 그리고 어렵지 않게 설명해 준다. 덕분에 이 책을 통해 음식에 대해 더욱 깊이 있는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은 물론,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식탁이 곧 세계의 축소판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책에서 가장 먼저 인상 깊었던 부분은 쌀과 밀의 특성을 비교하며 그 작물이 어떻게 그 지역의 정치, 사회, 문화에까지 영향을 주었는지에 대한 이야기였다. 노동력이 많이 필요한 쌀은 공동체 문화를, 집단 노동이 불필요한 밀은 독립적인 문화를 발달시켰다는 내용은 나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어떤 관점으로 접근하느냐에 따라 역사를 이토록 새로운 시각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점이 매우 흥미로웠다. 


다음으로 초콜릿 산업에 드리운 불법적인 아동 노동에 관한 이야기 역시 인상 깊었다. 카카오는 주로 서아프리카의 코트디부아르와 가나에서 생산되는데, 주변 국가에서 아동을 납치해 무급으로 일하게 하고, 도망가지 못하도록 숙소에 가두는 등 각종 범죄가 끊이질 않고 있다고 한다. 네슬레, 허쉬 등 글로벌 식품 기업들은 원료비를 줄이기 위해 카카오 가격을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에 거래하려 하고, 카카오 농장주들은 가격 조건을 맞추기 위해 노동비를 절약하고자 아이들에게 가혹한 노동을 시킨다는 것이다. 


특히, 2천원짜리 초콜릿을 소비자가 구매할 때 3%인 겨우 60원이 생산자에게 돌아갈 정도로, 초콜릿을 먹는 소비자 모두가 어쩌면 아동 노동 착취로부터 이익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구절이 굉장히 충격적이었다. [접시 위의 세계]는 문제 제기에서만 끝을 내지 않고 이 문제의 해답으로 공정무역이란 개념을 제시한다. 농부와 아이들을 착취하지 않고, 환경 생태계를 해치지 않은 올바른 과정을 거친 음식이야말로 진정으로 좋은 음식이며, 그런 음식을 먹는 것이 결국 나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행위라고 설명은 나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덕분에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윤리적이며 현명한 소비를 위해 우리가 먹는 음식에 대한 다양한 지식을 쌓아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었다.   


이 책은 우리가 단순히 음식을 소비하는 존재가 아니라, 생산 과정과 연결된 책임감 있는 주체임을 일깨워 주었다. 마지막으로 작물과 관련된 전쟁, 지속 가능한 식량, 미래의 식량 작물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며, 각 장마다 우리에게 끊임없이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따라서 논술을 준비하는 학생들을 포함하여, 식량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얻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 꼭 읽어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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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나무, 손수건, 그리고 작은 모자가 있는 숲 열다
로베르트 발저 지음, 자비네 아이켄로트 외 엮음, 박종대 옮김 / 열림원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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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숲을 산책하며 글을 쓰는 사람, 로베르트 발저. 그의 글을 읽는 내내 다양한 숲의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했다. 그는 짧은 시, 긴 산문을 통해 숲의 아름다움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다. 숲을 사랑한 한 작가의 깊은 사유가 담긴 이 책에서 인상 깊었던 부분을 나눠보고자 한다.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하이덴슈타인'에 대한 산문이었다. 저자가 자주 거닐던 아름다운 전나무 숲속에는 '하이덴슈타인'이라는 거대한 화강암 바위가 있다. 저자는 이 영원한 바위를 보며 '너는 진정 살아있나?'라고 묻는다. 스러지지 않는 존재, 생각과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운 존재인 하이덴슈타인은 인간이 겪는 취약함이나 한정된 시간 따위에 구애받지 않는 완벽한 존재처럼 보인다. 


그러나 바로 그 유한함과 허약함이야말로 인간의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 아닐까? 저자는 돌의 완벽한 상태를 찬양하면서도, 과연 그러한 존재를 '살아있다'라고 할 수 있냐며 우리에게 의문을 던진다. 결국 인간에게 주어진 유한의 시간, 인간이 가진 생각이나 감정의 허약함이야말로 '살아있음'의 증거라는 깨달음을 전하고 있는 것이다. 숲을 산책하며 흔하게 보는 바위를 통해, 과연 진정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이야기를 할 수 있다니, 책을 읽으며 그의 깊은 성찰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 다음으로 인상 깊었던 부분은 '숲의 축제 1'이다. 저자는 '숲의 축제 1'에서 숲에서 열린 축제를 즐기는 사람들의 행복한 모습을 묘사한다. 대도시의 축제처럼 화려하지는 않아도 숲속에서 열리는 축제이기에 훨씬 푸르렀다는 구절에서도 숲에 대한 그의 애정을 다시 느낄 수 있다. 그는 '행복하다는 것은 아마 세상에서 가장 영리한 일일 것이다'라고 말하며 '일상의 즐거움을 무시하지 마라'라고 주문한다. 


그러나 그 뒤에 바로 이어지는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우리나라의 국기 색도 흰색과 붉은색이 아니던가 '라는 문장은 연결이 잘 되지 않고 마치 문장이 뚝 끊기는 것처럼 느껴져 그의 의도가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 보았다. '행복하다는 것은 아마 세상에서 가장 영리한 일 일 것이다'는 문장에서 '영리함'은 단순히 머리가 똑똑하다는 뜻이 아니라, 삶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지혜를 가진 것을 의미한다. 즉, 일상의 즐거움 속에서 진정한 행복을 발견하는 것이야말로 영리한 일인 것이다. 하지만 일상의 즐거움, 행복을 말하면서 갑자기 스위스의 국기를 예로 든 이유는 무엇일까?  신체적 평온함을 의미하는 '건강한 것'과 정신적 평온함을 뜻하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처럼 서로 다른 두 가지 요소가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상태를 시각적으로 가장 잘 표현하는 대상으로, 붉은색과 흰색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는 스위스 국기를 예로 든 것이란 생각을 하였다. 


'숲의 축제 1'에서 그는 키스를 하는 연인 근처에 있던 한 청년을 향해 "당신은 고독을 좋아하시나봐요" 라고 말을 걸지만, 청년을 그를 바라보며 아무 말을 하지 않는다. 나는 여기서 그 청년이 로베르트 발저 본인을 상징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였다. 그는 평생 독신이었고, 일정한 직업과 거처가 없는 외로운 삶을 보냈다. 나무에 기대어 홀로 서 있는 청년의 모습은 바로 이러한 발저의 고독한 내면을 표현하는 상징 같다. 하지만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는 부분에서, 한 편으로 언어로 표현해 낼 수 없는 그의 깊은 내면을 추측하게 되었다. 어쩌면 그 깊은 내면이 있었기에 이처럼 아름다운 사유와 글을 남길 수 있었을 것이다.


로베르트 발저는 유한한 시간 아래 우리가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생각해 보게 한다. 그는 숲과 같은 평온함 속에서 일상의 즐거움을 소중히 여기라고 말한다. 덕분에 사랑하는 사람과 건강하게 살아가는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온전히 느껴야겠다는 다짐을 할 수 있었다. 삶의 의미를 찾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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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게무의 여름 - 제73회 소학관 아동출판문화상 수상작, 제71회 산케이 아동출판문화상 수상작 다산어린이문학
모가미 잇페이 지음, 마메 이케다 그림, 고향옥 옮김 / 다산어린이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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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4학년 여름방학을 최고로 보내자는 목표 아래 천신 마을 탐험을 나서는 아이들의 이야기이다. 표지의 파란 하늘과 푸른 들판만 봐도 이들의 모험이 자연과 함께라는 것을 예상할 수 있다. 아무 데서나 벌렁 눕는 슈, 가장 겁이 없는 야마, 근위축증을 앓고 있는 가쓰, 그리고 아킨 이렇게 네 명이 함께하는 모험이 시작된다. 책 소개 글에 적힌 "가쓰에게 보통인 것은 우리 셋에게도 보통이었다."라는 문구를 보고 이 책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근위축증을 앓고 있는 친구인 가쓰를 위해 모두들 가쓰의 집으로 자연스레 모이고, 가쓰와 외출을 할 때 가쓰가 느리게 걷더라도 친구들은 그것이 가쓰의 최선임을 알고, 아무도 그것을 이상하게 여기거나 가쓰를 구박하지 않는다. 가쓰 역시 본인이 느리게 걷는 것에 대해 미안해하지 않는다. 그저 가쓰는 다소 느리게 걷는 것이 특징인 친구 그 자체로 함께 하는 것이다. 다소 느릴지언정 스스로 할 수 있다면 친구들의 도움을 부탁하지 않는 가쓰, 그리고 가쓰가 부탁하지 않는다면 굳이 친구들이 나서서 도움을 줘야 한다고 여기지도 않는 모습에서,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존중하는 진정한 우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배려는 특별한 행위가 아닌 일상적인 공감과 이해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었다. 아이들은, 젊은 시절 곰을 업어치기 하여 쫓아내 본 적이 있다는 센키쓰 아저씨 집에 몰래 들어가서 아저씨가 정말 병아리를 잡아먹는 사람인지 알아보기도 하고, 천신 다리 위에서 강으로 뛰어내리는 의식을 치르기도 하고, 천 살이나 먹은 거대한 요괴 침엽수를 보러 깊은 산으로 들어가 보기도 한다. 시골 아이들의 모험은 어찌 보면 그리 특별할 게 없지만 어린 시절 느꼈던 순수한 즐거움이란 이런 것이었지 하며, 나의 어린 시절을 회상케 한다. 그리고 아름다운 일러스트를 보며 아이들의 발걸음을 따라가다 보면, 마치 함께 천신 마을을 누비는 듯한 생생함이 느껴진다. 모든 모험이 다 재미있지만 요괴 침엽수를 찾아 나선 모험이 가장 인상 깊었다. 가파른 길을 올라갈 수 없는 가쓰를 위해 아이들은 손으로 미는 작은 외바퀴 수레를 빌려와 가쓰를 앉힌 채 모험에 나선다. 어린아이들이다 보니 수레를 잘 끌지 못해 가쓰를 몇 번이나 떨어뜨리게 되는데, 바닥을 엉금엉금 기어 비틀거리며 일어나는 가쓰를 보며 속으로는 다소 놀랐지만, 가쓰는 어떻게든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친구라는 걸 알기에 아무도 손을 내밀거나 부축해 주지 않는다. 그저 다친 데는 없냐고 물어보고, 가쓰는 불사신이라고 말할 뿐이다. 넘어지고 일어서는 가쓰의 모습과 이를 지켜보는 친구들의 의연한 태도는 뭉클한 감동을 선사한다. 장애가 친구 사이에 있어 어떤 제약도 되지 않는, 진정한 동행의 의미를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서로를 믿고 지지하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깊은 유대감을 느낄 수 있었다. 힘겹게 오른 산등성이에 서 있는 침엽수를 보며 감탄하던 아이들은 침엽수의 밑동에 있는 동굴에 누워, 성공적인 모험을 해낸 것을 만끽하며 어른이 되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이야기한다. 세계를 다니면서 땅에 누워 보고 싶다는 슈, 만담가, 의사, 우주 비행사 등 다양한 꿈을 말하는 가쓰, 모험가가 되고 싶은 야마, 그리고 다리를 놓는 사람이 되고 싶은 아킨. 아이들은 꿈을 적은 종이를 동굴 가장 깊숙한 곳에 숨긴다. 모험 끝에 꿈을 이야기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희망적이며, 미래를 향한 어린이들의 밝은 에너지를 느끼게 해준다. 순수한 마음으로 꿈을 말하는 아이들의 이야기는 싱그러운 여름날의 추억처럼 내 마음속 오래도록 빛나는 여운을 남겼다. 이 책은 아이들의 모험담을 통해, 타인에 대한 깊은 이해와 존중, 그리고 진정한 우정의 가치를 일깨워 준다. 또한, 친구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어우러지는 관계라는 것을 자연스레 보여주었다. 진정한 우정 속에서 피어나는 따뜻한 행복을 느낄 수 있기에, 초등학생뿐만 아니라 성인에게도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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