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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화가 처음인 당신에게 - 제대로 알고 즐기는 옛 그림 감상법
이장훈 지음 / 미술문화 / 2025년 7월
평점 :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평소 서양 미술사에 대한 관심으로 전시회나 관련 서적을 즐겨 찾았다. 하지만 문득, 동양 미술에는 너무 무심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서양 화가들의 이름과 작품에는 익숙하지만, 정작 동양의 화가들은 손에 꼽을 정도로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서 한쪽으로만 치우친 지식을 바로잡고 싶다는 생각에 [동양화가 처음인 당신에게]라는 책을 펼치게 되었다.
저자는 서양 미술에 비해 동양 미술을 감상하는 방법이 널리 알려지지 않은 현실에 아쉬움을 표하며, 이 책을 통해 한국,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회화사를 다루었다. 그는 서두에서 미술사를 '볼 수 있는 것을 읽을 수 있게 해주는 학문'이라고 정의하였다. 작품 자체의 설명에 그치지 않고, 어떤 과정을 거쳐 표현 방식이 정립되었는지, 해당 작품이 어떤 영향을 주거나 받았는지 등 전반적인 맥락을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나면, 스쳐 지나갈 수 있는 동양화 작품이 나에게 온전한 의미를 가진 이야기로 다가올 수 있겠다는 기대감을 갖게 되었다.
저자는 한, 중, 일의 미술사를 설명하기에 앞서, 1부 동양화를 알아가는 시간을 통해 동양화란 무엇인지, 동양화는 어떻게 그리는지 그 방식 등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였다. 그 중 동아시아에서 산수를 바라보는 관점에 관한 글이 매우 인상 깊었다. 서양의 원근법과 달리, 동양에서는 삼원법을 사용해 자연을 점차 알아가며 바라보는 시점을 담아냈다. 그래서 삼원법이 적용된 산수화 속 풍경은 한눈에 파악하기 어렵고 어색하게 느껴지기 쉬운데, 그림을 아래에서 위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찬찬히 살펴보면 그 속에 담긴 생동감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그동안 동양화를 볼 때 느꼈던 막연한 어색함의 이유를 알게 되면서, 앞으로 동양화를 더욱 즐길 수 있으리라는 설렘이 생겼다.
2부 동양화를 즐기는 시간에서는 중국, 한국, 일본의 역사의 흐름과 함께 각 나라의 미술사에 대해 다양한 그림과 함께 톺아볼 수 있었다. 중국의 긴 역사와 미술사를 약 100페이지 정도로 압축해 위진남북조 시대부터 청나라까지의 미술사를 전체적으로 설명하였다. 그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든 그림은 송 시대의 화가 곽희의 조춘도이다. 1072년에 그려진 작품으로, 초봄의 생기를 머금은 풍경을 그려냈다. 구불구불한 나무에서 굉장한 생동감이 느껴졌고, 아득히 높은 산을 표현하기 위해 산의 중간 부분에 여백을 두어 마치 구름처럼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 매우 신기하였다. 그는 자연을 그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취사선택을 하여 시적인 정취가 느껴지게끔 그릴 것을 주문했다고 한다. 그 의도 덕분인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연의 웅장함을 상상하게 하는 힘이 그림 속에서 그대로 전해졌다. 폭포 위에는 잘 보이지 않지만 사원이 자리한 것을 볼 수 있었는데,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학문을 연구하며 은거할 수 있는 이상적 공간이란 바로 이곳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이어서 한국 편에서는 조선 시대의 미술사에 대해 다루었는데, 그 중 이암의 그림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익히 보아왔던 '모견도'의 화가가 이암이었다는 것을 책을 통해 알게 되었고, 그의 다른 작품인 '화조구자도'를 감상할 수 있었다. 순박하게 낮잠을 자는 강아지, 호기심이 가득한 눈빛의 강아지들의 모습이 정말 사랑스럽고 평화롭다는 느낌을 주었다. 아름답게 꽃이 핀 나무, 꽃을 찾아온 새와 나비까지 전체적으로 매우 조화롭다. 저자는 이러한 평화로운 분위기를 통해, 조선 시대의 안정화된 사회상을 간접적으로 엿볼 수 있다고 설명하였다. 이렇게 그림을 통해 역사적 흐름까지 추측할 수 있다는 것이 미술사의 큰 매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책의 마지막은 일본 편이다. 표지에 그려진 가쓰시카 호쿠사이의 가나가와의 거대한 파도 그림이나 인상파에 영향을 준 우키요에 이외에 어떤 그림을 볼 수 있을까 기대가 되었다. 일본의 미술사를 나라-헤이안 시대부터 다루었는데 가장 마음에 들고 인상적인 그림은 오가타 고린의 야쓰하시도병풍이었다. 제비붓꽃을 그린 작품으로 배경은 전부 금색의 종이로 마감되어 있어 오로지 꽃과 다리에만 시선이 집중되게 하였다. 장식성을 강조한 일본의 전통 야마토에를 계승하면서도, 불필요한 요소를 제거해 세련된 느낌을 주었다.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아름다움에 감탄을 하는 한 편, 어디서 많이 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검색해 보니 고흐의 아이리스 작품에 영향을 준 작품이라고 한다. 현재 도쿄의 네즈 미술관에 보관되어 있으나 상설 전시는 아니고 매년 4~5월에 공개된다고 하니 봄 시즌에 도쿄 여행을 가게 된다면 실제 작품을 꼭 보러 가야겠다는 다짐을 하였다.
[동양화가 처음인 당신에게]를 읽고 난 후, 그동안 서양 미술에 치우쳐 있던 지식 외에 한, 중, 일 3국의 미술에 대한 지식을 쌓을 수 있게 되었고, 덕분에 동양 미술의 매력에 눈을 뜨게 되었다. 이제 더 이상 동양화가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 작품을 넘어 그 속에 담긴 시대적 배경과 화가의 의도를 읽어내는 방법을 배운 덕분에, 앞으로의 동양화 감상이 단순한 '보기'를 넘어 '읽기'로 확장될 것이라 기대한다. 나처럼 동양 미술에 막연한 어려움을 느꼈던 경험이 있다면 꼭 읽어보라고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