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리만자로의 눈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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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장르소설을 제외하고 순수 소설 중 좋아하는 작가를 가장 먼저 꼽으라고 한다면 헤밍웨이를 꼽을 것이다. 그의 짧은 하드보일드 문체는 그의 글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해주고,또한 그의 작품 이외의 생활에서 일어난 여러가지 사건들이 작품 속에 투영되어있기 때문에 그의 작품을 읽는 것 자체만으로도 헤밍웨이의 삶의 일부분을 본 것 같은 느낌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아이러니하게 아직 그의 작품 중 제대로 읽어본 것은 <노인과 바다>와 이번에 읽은 단편집 <킬리만자로의 꿈>을 포함한 몇 편의 작품들 뿐이다. 많이 알려지고 책으로 나온 작가라 익숙해서 그런지 언젠가는 읽겠지하는 생각 때문에 아직까지 그의 대표 장편들도 읽어보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 읽은 단편집 <킬리만자로의 눈>이 반가웠다. 이 작품집에는 <킬리만자로의 눈>을 포함하여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온 땅의 눈>,<이제 내 몸을 뉘며>,<가지 못할 길> 등과 함께 에피소드 형태로 수록된 <닉 애덤스 이야기>까지 총 13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이 작품들 모두 헤밍웨이의 인생과 낚시,사냥 등 그의 취미와 종군기자,군인 생활 등을 하면서 경험한 삶의 희노애락이 모두 들어가있는 소중한 작품들이다.

 

개인적으로는 두 작품이 가장 눈에 띄었다. 이미 알려진 <킬리만자로의 눈>을 제외하고 <이제 내 몸을 뉘며>와 <프랜시스 머콤버의 짧고 행복한 삶>이었다. 물론 다른 작품들도 헤밍웨이의 예술적 완성도와 그의 경험에서 기초한 꼼꼼한 설명과 묘사,잔잔하게 흘러가는 인생의 한 단면을 가져온 듯한 소재를 살려낸 그의 가독성있는 문체가 빛났던 작품들도 있었지만 이 두 작품이 이들을 대표하는 대표적인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이제 내 몸을 뉘며>는 헤밍웨이가 1차 세계대전 때 적십자사 운전병으로 참전했을 때 겪었던 일을 바탕으로 해서 쓴 것인데,비교적 잔잔하게 흘러가는 묘사 속에 전쟁이라는 소재를 가져와 굳이 안 맞게 느껴졌지만 헤밍웨이만의 힘있는 문체로 비교적 잘 살려내고 있다. 여기에는 비슷한 내용의 <가지 못할 길>도 포함될 것이다.

 

<프랜시스 머콤버의 짧고 행복한 삶>은 프랜시스 머콤버라는 부자가 아내와 함께 아프리카로 사냥 여행을 떠났다가 겁쟁이라는 망신을 당하고 그 여행에 함께 한 사냥꾼 윌슨이 그 사자를 해치운 순간 아내가 자신을 버린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여기에서의 짧고 행복한 삶이란 머콤버가 변화하는 과정을 말하는 것인데,사자 사냥에 실패하고나서 몸소 물소 사냥을 성공시킨 장면에서 그의 행동변화가 나타난다. 그 변화로 자신감을 찾고 달라진 모습을 아내에게 보여주게 되는 것이다. 이 작품 역시 그의 취미인 사냥을 소재로 인간 내면의 변화를 기묘하게 포착해 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왠만한 작가라도 이 정도의 소재로 이런 작품을 쓰기는 힘들 것이다. 헤밍웨이만의 경험과 필력이 없다면 쓰지 못했을 것이다.

 

위 두 편만 예를 들었지만 다른 작품들도 충분히 매력적이고 힘이 있다. 짧은 대화와 설명을 자주 씀에도 쓸데없는 설명이나 묘사가 나오지 않는 것은 헤밍웨이만이 가진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헤밍웨이를 좋아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그래서 쉽게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수록된 작품 모두에 헤밍웨이의 삶이 투영되어있다. 비록 사생활에서는 네 명의 아내와 결혼했고,여러가지 사고로 온 몸이 거의 부상이었을 정도로 힘든 나날을 보냈지만,소설에서만큼은 그런 모습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드문드문 작품에 나오는 죽음도 무섭게 표현되지 않고 잔잔하게 그냥 시간 흘러가듯이 나타나고 있다. 아마 헤밍웨이도 작품 속에서만은 편안한 삶을 살고 싶어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201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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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조의 코미디
한스 케일손 지음, 정지인 옮김 / 올(사피엔스21)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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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제목에 붙은 단조는 슬픈 느낌이 묻어나는 구성이 특징이다. 그렇기 때문에 '단조의 코미디'라는 책 제목이 어딘가 맞지 않으면서도 왠지 모르게 그 제목 안에 뭔가가 숨겨져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는데,책을 읽고 난 후에 그 숨겨진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이러니한 상황을 작가 특유의 느린 필체로 승화시킨 작품이기 때문이다. 작가의 실제 경험에서 이 작품의 영감을 얻었기 때문인지 하나하나 세심한 묘사가 돋보이는 책이다.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네덜란드에서 살던 빔과 마리는 동료 욥의 부탁으로 유대인 니코를 숨겨주게 된다. 정말이지 아무런 의도 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니코를 받아들인 빔과 마리는 그 날 이후 유대인 니코와 동거를 하기 시작한다. 니코는 나치에게 잡히지 않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는데,그로 인해 니코가 병에 걸리게 되고,그 병이 이후 폐렴으로 악화되어 세상을 떠나고 만다. 빔과 마리는 니코의 시체를 처리하기 위해 고민하다가 시체를 밤 늦은 시각에 공원에 버리기로 결정한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그들이 니코가 입고 있던 옷에 빔의 이름이 있다는 걸 알고 되고,이것이 발견된다면 두 사람은 유대인을 숨겨준 죄로 목숨이 위태로울 수도 있는 상황이 되버린다.

 

이전에도 <사라의 열쇠>를 포함하여 2차 세계대전을 다룬 여러 작품들을 봤는데,대부분 유대인의 이야기가 많았다. 그만큼 당시 유대인들의 핍박이 엄청나게 심했음을 보여주는데,이 작품에서도 그러한 부분이 잘 나타나 있다. 책에서 나치에게 들키지 않게 하기 위해 모든 창문을 가린다든지,유대인 강제수용소에서의 동료들의 죽음으로 인한 악몽과 공포로 두려워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이 부분에서는 유대인이 아니더라도 충분한 공포를 느낄 만큼 세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 작품을 보면서 그 당시에도 실제로 이러한 일이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인생은 아름다워>처럼 아들을 위해 모든 것이 게임이라고 주장하는 아버지도 있었지만,그건 영화이고 이 작품이 작가의 실제 체험에서 기초한 것이기 때문에 작가의 체험이 어느 정도 들어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정도만 해도 우리에게 충분히 납득되고 이해될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등장인물들의 행동은 웃기지만 시대적 상황이 웃을 수 없는 상황에서 나왔다는 설정을 쓴 것은 아이러니하면서도 우리에게 공감을 얻는 데는 충분하지 않나 싶다.

 

201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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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의 아이들 1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79
살만 루슈디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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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커상은 왠만한 작품이라도 타기가 힘들 정도로 까다로운 상으로 알려져있는데,그런 상을 한 번도 모자라 세 번이나 받았다는 것은 이 작품이 얼마나 가치있고 소중한 작품인지를 말해주는 것일텐데,처음에 봤을 때는 까다로운 문장에 난해한 이야기 때문에 읽기가 정말 힘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거의 100% 이해하지 못했고,거의 문장으로만 나열되기 때문에 읽는 중간에 포기하려 했다가 끝까지 읽게 되었는데,책 한 권에 인도의 역사들을 모두 집어넣는다는 설정 자체가 작가에겐 무모한 도전이자 모험이었을 것이다. 이름만 들어봤지 살만 루슈디의 작품을 처음 접하게 된 나로서는 역시 그 이름값(?)을 해냈다고 말할 것이다.

 

이 작품에 나오는 살림은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순간인 1947년 8월 15일 밤 12시에 태어난 특별한 존재인데,그 한 시간 사이에 천 명의 아기가 태어난 것이다. 그 중에서도 살림은 인도를 대변하는 캐릭터라고 할 수 있는데,작가가 마치 살림을 인도에 투영시켜 만든 것처럼 비슷한 구조로 이야기를 만들었는데,아마 읽다보면 자서전 같은 형식에 공감이 될 것이다. 그래서 소설임에도 마치 한 권의 인도 역사책을 읽는 것 같은 사실감을 느끼게 해준다.

 

그러나 살만 루슈디는 그저 이 작품을 역사에만 투영하지 않는다. 역사에 허구와 사실을 적절히 섞어 소설로 완성해내고 있는 것이다. 중간중간에 나오는 현실과 환상을 왔다갔다하는 서술과,작가가 일부러 만들어낸 독특한 어투 같은 게 그 예가 될 것이다. 이것은 아마도 작가가 인도 역사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독자들에게 전해주기 위해 딱딱한 역사로 서술하는 것보다 이것이 더 낫다고 생각해서 선택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작가의 이 의도는 대체로 성공적이다. 비록 처음 읽는 독자들에게는 약간의 난해함이 오겠지만,그의 작품을 한 편이라도 읽어본 독자들에게는 이런 구성 방식에 호감을 표했을지도 모르겠다. 나도 그의 작품을 처음 읽어본 독자였지만,끝까지 읽은 후 그의 다른 작품에 대한 기대를 만들었다.

 

판타지적 설정과 구성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작품 속 나라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기억하고 있는 인도인 뿐 아니라 우리같은 외국 독자들에게도 감동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그것은 인도와 비슷한 운명을 걸어온 우리나라 독자들에게도 마찬가지의 감정을 불러일으키지 않을까 생각한다. 2권에서 살림에 대한 어떤 이야기가 더 나올 지 기대된다.

 

201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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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은 속삭인다
타티아나 드 로즈네 지음, 권윤진 옮김 / 비채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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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이혼하고 혼자 살게 된 파스칼린이 새로운 아파트로 이사를 오게 되는데,알고보니 몇 해 전 연쇄살인범에게 강간당한 후 살해당한 여자의 집이었다는 걸 알게 되면서 그녀의 아픈 상처가 다시 떠오르게 된다. 사실,그녀도 15년 전에 딸 엘레나를 겨우 생후 6개월 만에 떠나보낸 아픈 트라우마가 있다. 그것도 남편의 부주의 때문이라는 걸 알고 이혼하게 된 것이다. 그 사실 때문에 파스칼린은 이 집의 살해당한 여성을 포함하여 동일한 살인범에게 희생된 총 7명의 여성들의 사망일,장소,연쇄살인범이 갇힌 교도소까지 직접 방문한다. 거기에서 그녀는 살해당한 여성들에게 동정심을 가지게 되고 교도소 방문도중 살인범의 탈영은 엄청난 일을 발생시키게 된다.

 

200페이지가 되지 않는 짧은 소설임에도 그 소설 안에 들어간 내용의 깊이는 상상을 초월한다. 이 작품보다 먼저 <사라의 열쇠>를 읽었는데,그녀의 집과 벽에 대한 관심은 이 작품에서도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작품에서 여주인공 파스칼린은 피해를 당한 7명의 여성의 살해장소를 하나하나 방문하는데,과연 왜 그랬는지가 이 작품의 주요 핵심이다. 물론 작가는 그것을 여주인공 파스칼린의 딸의 죽음으로 구체화시키고 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녀는 위로를 받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위로를 해줘야 할 남편은 그녀에게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한다. 작품 마지막에 파스칼린이 이혼한 남편의 집을 찾아가는 부분이 나오면서 끝나는데,그 이후 이야기가 좀 더 나왔더라도 파스칼린의 마음의 상처를 해소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이 작품보다 <사라의 열쇠>를 먼저 읽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벽은 속삭인다>에 나오는 사라와 시대적 배경에 참 반가웠다. 그래서 그녀의 다른 작품이 기다려진다. 어떻게 보면 이 작품이 <사라의 열쇠>보다 훨씬 충격적이고 이야기가 좀 더 강렬하다는 느낌이 있다. 그러나 주인공의 사건에 대한 해소방식이나 결말에 있어서는 오히려 <사라의 열쇠>가 낫지 않나 생각해본다. 왜냐하면 <사라의 열쇠>가 이 작품보다 더 많은 시공간을 지나면서 이야기를 펼치고 있고,결말에서 감동적인 부분을 선사하고 있다. 그래서 이 작품이 왜 짧을 수 밖에 없었나 하는 아쉬움을 강하게 가진다. 여기에 좀 더 이야기가 추가되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을 평가한다면 이 작품에서 모티브를 얻은 <사라의 열쇠>와 두고두고 비교될 작품임에 틀림없다. 위에 쓴 부분들 뿐 아니라 주요 모티브라든지,주인공의 해소방식이라든지 여러 부분에서 비슷하거나 아니면 약간 줄어든 부분이 나오기 때문이다. <벽은 속삭인다>는 비록 주인공의 직접 경험을 주요 소재로 삼은 것은 아니지만 주인공이 사는 곳에서 과거에 일어난 사건이 주인공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치는 스토리를 통해서 인간의 내면에 숨겨진 공포와 슬픔을 어떻게 해소할 수 있는지를 나름대로 잘 보여준 작품이다. 군더더기 없는 문체에다 빠른 전개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있는 재미를 발견해낼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사라의 열쇠>보다는 이 작품을 먼저 읽는 게 나아보인다.

 

20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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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틀맨 & 플레이어
조안 해리스 지음, 박상은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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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책의 제목에 대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제목 <젠틀맨 & 플레이어>는 크리켓이라는 스포츠에서 유래한 말인데,2차대전 이전의 영국 정상급 크리켓경기에서 '젠틀맨'은 보수 없이 경기에 참가하는 유한계급의 아마추어 선수를,'플레이어'는 보수를 받고 뛰는 직업 선수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한다. 의미를 모르게 봤을 때는 젠틀맨과 플레이어가 서로 반대된다는 건 알았지만 정확하게 이 책이 어떤 내용인지는 모르고 읽게 되었다.

 

하류층인 스나이드는 어렸을 때부터 명문 사립학교 세인트오즈월드를 동경해왔다. 그 옆에 있는 서니뱅크마크에 다녔지만 적응하지 못하게 되고,그 무렵 어떠한 일 때문에 세인트오즈월드를 무너뜨리기로 결심하고 이후 교사로 들어오게 되면서 사건이 시작된다. 스나이드가 학교를 무너뜨리기 위해 신분 조작까지 감행하면서 신문과 방송 등을 이용하여 이간질 같은 계략을 꾸미게 되는데,초반부 이후 중반부부터는 스나이드와 다른 화자들의 시점에 대한 설명이 줃첩되어서 읽기에 약간 헷갈렸고 약간 느슨한 전개도 보여서 읽기에 조금은 거북한 느낌이 든 것도 있었다.

 

이러한 아쉬운 부분을 후반부에서 그나마 만회하고 있다. 반전이 있는 부분이라 설명하기에는 뭐하지만 읽는 동안 평면적으로 묘사되었던 부분에 대한 설명이 비교적 잘 나와있다. 스나이드를 포함하여 화자로 나온 다른 인물들의 치밀한 성격과 심리 묘사에 대한 설명은 이 작품의 백미가 아닐까 한다. 작가의 경험 때문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부분도 있었다.

 

특히 스나이드는 제목에서 표현한다면 '플레이어'인 것 같다. 세인트오즈월드에서 보수를 받는 교사로 일할 뿐 아니라 '젠틀맨'으로 표현할 수 있는 세인트오즈월드와 그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과 상반되는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배경이 사립학교로 한정되어 있다고는 하지만,왠지 모르게 우리 사회와 비슷하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을 것 같다.

 

201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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