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항과 창조의 브로맨스 에밀 졸라와 폴 세잔
박홍규 지음 / 틈새의시간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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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터운 우정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긴 사람들을 우리는 여럿 알고 있다. 백아와 종자기가 그러하고 관중과 포숙아가 그러하다. 그리고 여기, 에밀 졸라와 폴 세잔이 있다. 두 사람이 죽마고우였지만 말년에 절연했다는 사실, 그리고 그 이유가 에밀 졸라가 소설 〈작품〉에 세잔의 모습을 투영한 ‘실패한 화가’를 등장시킨 일이라고 세간에는 널리 알려져 있던 모양이다(나는 몰랐다).


하지만 세잔은 그렇게 옹졸한 사람이 아니었다. 사실 두 사람의 우정에 금이 가기 시작한 까닭은, 에밀 졸라의 〈나는 고발한다〉 투서로도 널리 알려진 ‘드레퓌스 사건’이었다. 두 사람의 정치적 입장이 극명히 대립되었기 때문에 둘은 서로를 포용하기보다는 각자의 길을 걷기로 한 것이다. 그 뒤로 두 사람은 각자의 자리에서 예술 활동에 매진했고, 서로를 그리워하기도 했지만 두 번 다시 만나지 않았다고 한다.


진보적이고 세련된 도시의 지식인의 이미지를 가진 에밀 졸라와, 보수적이고 촌스러운 이방인의 이미지를 가진 폴 세잔, 두 사람은 확연히 다른 면이 많지만 닮은 점도 많았다. 어린 시절에는 사회적으로 소외된 처지였지만, 그럼에도 세상에 대한 반항심으로 충만했다. 대학 입시에 실패하는 아픔도 겪었지만 각기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서로를 격려하며 버텼던 까닭에는 그러한 반항심이 자리 잡고 있었으리라. 반항심은 창조를 낳았고, 그 근저에는 뜨거운 우정이 있었다.


두 사람의 우정이 겨우 정치적 입장차로 깨졌다는 사실이 의아하지만, 당시 프랑스의 상황을 들여다보면 그렇게 가볍게 치부할 수는 없다. 당시 보불전쟁에서 패배한 프랑스는 혼란스러운 정국을 맞이했고, 민족주의 사상이 고조되어 반유대주의를 탄생시켰다. 그때 유대인 장교 드레퓌스에게 스파이 혐의를 씌운 이 사건으로 프랑스 내에는 극심한 정치적, 종교적, 사회적인 대립 관계가 형성되었다. 단순히 ‘정치 성향’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깊고 복잡하다.


결국 두 사람이 만년에 이룩한 예술 세계는 고독으로 완성되었지만, ‘안정과 조화’를 추구했다는 점에서 묘하게 일치한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우정이자 ‘브로맨스’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널리 알려져 있지만 조금은 생소한 두 사람의 일생과 당대 프랑스의 정치 상황, 예술 경향도 소상히 담고 있어 흥미로웠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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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하는 태도 - 기억은 사라져도 기록은 남는다
이수현 지음 / 지식인하우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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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에는 글쓰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특히 일기 쓰기는 하루 일과 중 가장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아마도 ‘강요당한’ 글쓰기여서 그랬으리라. 내가 글쓰기에 흥미를 갖게 된 것은 좀 더 크고 나서의 일이다. 잠시 머물다 사라지는 감정들을 오래오래 간직하고 싶어서, 혹은 그 감정을 남들과 공유하고 싶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한 ‘자발적인’ 글쓰기는 지금껏 나의 ‘취미’가 되어 있다. 물론 아직도 일기는 쓰지 않지만, 책을 읽고 그때그때의 감상을 남기는 서평 쓰기가 일종의 꾸준한 글쓰기 습관이 되어, 지금은 하나의 낙으로 자리 잡았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또래(라고 하고 싶다😂)인 이수현 작가님의 일상은 여러모로 나와 닮았다. 지금은 직장인이자 작가, 대학원생으로 분주하게 살고 있는 작가님은, 고달팠던 취업 준비 기간에 홀로 고뇌하다가, 가장 행복했던 ‘나’는 역시 ‘글을 쓰는 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나 역시 지난했던 취업 준비 기간에 밤마다 짧은 글을 쓰며 복잡한 심경을 달래곤 했고, 오랜 직장 생활에서 원인 모를 무력감과 자괴감을 느껴 대학원에 진학했기 때문에 많은 동질감을 느꼈다.


그렇게 바쁜 일상 속에서 꾸준히 집필 활동을 한다는 것은 더욱이 힘든 일이다. 작가님은 오히려 다양한 자아로서의 경험이 다양한 글감을 낳았다고, 하나의 자아가 무너질지라도 다른 자아로서 힘을 되찾아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고 말한다. 아마도 그러한 경험들이 차곡차곡 쌓여 전작 《유리 젠가》가 탄생했을 것이라고 나는 짐작했다. 순간, 일상이 무료하다는 핑계로, 또는 바쁘다거나 피곤하다는 핑계로 글쓰기를 접어 두고 있었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작가님이 말하는 ‘기록하는 태도’는 거창하지 않다. 자유롭게, 천천히 사유하며, 자신의 마음을 담는 것이다. 누군가의 시선을 의식한, 타인의 강제에 의한 기록은 자신의 마음을 오롯이 담을 수 없다. 내가 어릴 적부터 지금껏 ‘일기 쓰기’를 싫어하는 이유일 것이다. 진심에서 우러나온 글은 자기 자신을 더욱 사랑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고, 남들에게 진실한 마음을 전달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 아직은 작고 미약하지만, 나도 나만의 ‘추억의 책장’을 열심히 채워 갈 힘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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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밖의 사람 - 어느 소설가의 택배일지
정혁용 지음 / 마이디어북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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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써서 먹고산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때문에 대부분의 작가들은 본업을 따로 두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소설 〈침입자들〉과 〈파괴자들〉의 정혁용 작가 역시 그러하다. 소설 〈침입자들〉을 읽으며, 주인공의 직업인 택배기사의 삶이 정말 현실적으로 그려져서 놀랐는데, 작가님의 본업 역시 택배기사라는 말에 적잖이 놀란 적이 있다. 낮에는 택배기사로, 밤에는 소설가로 살아가는 삶이 궁금했기에, 작가님이 에세이를 출간하셨다는 소식은 내게 큰 기쁨으로 다가왔다.


사실 ‘잘 안다’고 하기에는 부족하지만, 짧게나마 택배 일에 몸을 담았던 적이 있다. 택배 일은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굉장히 고된데, 일단 꼭두새벽에 집을 나서서 밤 늦게 들어오는 일이 허다하다.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기 때문에 그만큼 진상을 만날 확률도 높다. 언젠가는 ‘걸어 왔다고’ 면박을 주는 인간을 만난 적도 있다. 아무리 감정적으로 엮이지 않으려 해도 사람인지라, 화에 휩쓸리기 십상이다. 작가님은 그 진상들에게 화를 내기도 지쳐서, 그리고 똥에 시간을 투자하기 아까워서 화를 내지 않게 됐다고 말한다. 이 대목을 읽으며, 가히 인생을 통달한 현자를 만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작가님의 전작을 읽어봤더라면, 주인공의 시니컬한 말투가 인상 깊게 다가왔을 것이다. 에세이를 읽으며, 작가님이 살아온 시간들이 그 시니컬함을 만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힘든 시간들 속에서도 ‘소설’이라는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점이 멋지게 느껴졌다. “포기하고 싶지만 좋아서 참는다”는 것, “그저 퇴근해서 사랑하는 연인을 만나러 가듯” 글을 썼다는 대목에서, 고된 현실도 사그라뜨리지 못한 작가님의 열정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작가님은 스스로를 “고만고만한 인생을 고만고만하게 살아온 사람”이라 말하지만, 나는 가히 ‘치열한 인생을 살아온 멋진 사람’이라 말하고 싶다. 오디오북으로 책을 들으며, 틈틈이 휴대폰으로 글을 쓰는 열정은 아무나 가질 수 없다. (아마도 작가님은 낯간지러워하실지도 모르겠지만) 그 열정 끝에 자리한 인생의 의미에 진정으로 경의를 표하고 싶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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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독본 - 미시마 유키오 소설론 미시마 유키오 문학독본 2
미시마 유키오 지음, 강방화.손정임 옮김 / 미행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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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마 유키오에 대해서라면 할 말도 많고 논란도 많지만, 적어도 그의 문학 세계를 비난할 수 없다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그의 소설 <금각사>를 읽고 감격에 젖었던 때를 기억한다. 그의 심오하고도 모호한 문학 세계를 좀 더 탐구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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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저도시 타코야키 - 김청귤 연작소설집
김청귤 지음 / 래빗홀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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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지가 바다에 잠겨버린 암울한 미래를 이야기하는 소설이지만, 그 미래가 마냥 절망적이지는 않다. 이 소설이 말하고 싶었던 진정한 메시지는 어떠한 순간에서도 사랑하고, 또 희망을 믿으며 연대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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