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키지
정해연 지음 / 황금가지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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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스 짐칸에서 7토막으로 발견된 한 아이의 시체!

그리고 그 뒤에 숨은 비극적인 가족사 "

패키지

뉴스에서 심심치않게 들려오는 아동에 대한 방임과 학대 소식은

과연 우리 아이들이 사랑받기 위해서 태어난 것이 맞는지를 의심하게 만든다. 어느 탤런트는 " 꽃으로도 아이를 때리지 말라 " 라고 했는데, 왜 이렇게 아동학대 소식은 끊이지 않는 것일까?

병든 사회가 아이에게 휘두르는 날카로운 주먹을 반영이라도 하듯,

[ 내가 죽였다 ] 와 [ 유괴의 날 ] 등으로 큰 인기를 얻은 정햬연 작가의 신작 [ 패키지 ]는 분열된 가족들 속에서 피해받을 수 밖에 없는 아동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서울에서 부산을 거쳐 대마도로 향하는 싸구려 패키지 여행에 수상한 커플이 등장한다. 패키지 여행이라면 대개는 계를 하는 아줌마들이나 부부중심의 가족들이 가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짐도 매우 단촐한 아버지와 어린 아이들 둘만 패키지 여행이라니...

게다가 아이에 대해 궁금해하는 주변인들의 호기심어린 눈길을, 그 아버지는 차가운 표정으로 차단해버린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한 휴게소에서 점심을 위해 머물렀던 관광버스가 길을 떠나려했을때 아버지와 아들은 자취를 감춰버리고,

이후 한 시장에서 멸치를 구매하기 위해 자신의 트렁크를 열어 지갑을 찾던 한 여성은 트렁크 속에서 아이의 토막난 시신을 발견하고 비명을 지르는데....

도대체 무슨 일이 발생한 걸까? 아이가 토막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는 사실은 매우 비극적이나 그렇게 짧은 시간에 아이를 살해할 수 있었다는 사실과 자신의 트렁크가 아닌 남의 트렁크에 아이 시신을 몰래 숨길 수 있었다는 것은 의문으로 남았다. ( 독자가 궁금해하도록 작가님이 의도하신건가? )

그리고 자신의 유전자를 담고 있는 아이를 그렇게 잔인하게 살해했다는 사실과 ( 얼굴이 뭉개지도록 ) 단지 자신의 분을 풀기 위해서 고속도로 휴게소까지 가서 살인을 했다는 사실이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은계경찰서의 형사 박상하는, 자신의 아들 은우가 아내에게 지속적으로 폭행을 당하여 장애를 평생 안고 살아야한다는 사실 때문인지 유독 이 사건에 큰 관심을 가지고 조사를 한다.

그런데 아이를 토막낸 후 종적을 감췄던 아버지 김석일은 한 빌라에 침입, 주인남자를 칼로 수십번 찌르고 신고를 받고 도착한 경찰에게 순순히 투항하여 체포당한다. 알고보니 김석일은 아내 정지원과 이혼후 두 아들 수현, 도현을 자신이 맡아 기르고 있었고 빌라 주인은 이혼 하기 전 정지원이 몰래 만났다고 추정되는 남자 권경석이었다.

이혼 후 한국을 떠나 일본에 있었던 정지원은 아들의 시신을 확인하기 위해 한국으로 들어오고 시신 확인 후 무너지면서 오열하는 그녀를, 형사 박상하는 씁쓸한 표정으로 바라보는데.....

범죄자가 너무 쉽게 잡히고 범죄의 비밀도 너무 쉽게 드러나나 싶었는데..

여기서는 절대로 밝힐 수 없는 치명적인 반전이 도사리고 있다.

형사 박상하가 계속 찜찜해했던 부분... ( 독자인 나도 찜찜해했던 부분 ) 이 있었는데 이야기의 뒷편에 드러나는, 김석일과 정지원이 결혼 하기 전에 있었던 일 등이 김석일 모친의 입에서 흘러나오고 정지원과 김석일이 잠깐 이야기를 나눈 후 180도로 변한 그들의 표정에서 힌트를 얻은 박상하는 모든 비밀을 다 알아버린다. 나머지는 책을 통해서 읽어보시길..

정말 독자들의 허를 찌르는 어마어마한 반전이 등장한다.

점점 파편화되어가는, 그래서 아이들의 보호장치가 없어져가는 이 나라는

이미 비극의 씨앗을 품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소설을 통해서 비극을 보고 있지만현실은 언제나 이야기를 앞서서 달려가고 있는 법이다.

지금도 어디선가 고통 속에서 떨고 있을 아이들을 생각하니 너무 가슴이 아프다. 우리의 아이들이 행복하게 그리고 건강하게 클 수 있을 사회를 그리며 책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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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라와 모라
김선재 지음 / 다산책방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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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는 칠 년을 함께 살았다.

그게 내가 누군가와 살았다고 느끼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

비슷한 이름을 가진 노라와 모라, 똑같이 외로웠지만

서로의 손을 잡아주지 못했던 어린 시절의 그녀들.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마음을 읽어주지 못한 그녀들.

노라에게는 존재를 인정받지 못한 자의 쓸쓸함과 고독이 엿보이고,

모라의 웃는 얼굴 이면에는 계속 버림받을 수 밖에 없었던 자의 억울함과 분노가 보인다

노라가 건너온 인생의 길엔 우울의 강이 흐르고 모라가 내뱉는 한숨 한숨엔 미처 말하지 못한 이야기가 숨어있다.

“ 지금 나에게는 들리고 모라에게는 들리지 않는 말들이 있다.

모라에게는 보이고 내게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다.

다시 만났지만 우리는 여전히 서로에게 묻지 않는 말들이 있다.

나는 모라의 손을 본다. 손등이 두툼하고 손가락이 짧고 뭉툭한 손.

그와 같은 모양의 손을 가진 사람을 알고 있다. ”



눈을 감고 있는 사진 외에는 다른 사진도 없고 아버지의 모습이 거의 기억도 나지 않는 노라는

그녀에게 모진 소리만을 내뱉는 엄마 밑에서 자라났다.

유산을 하지 않았으면 생겼을 아들 이야기를 하고 

너무나 자주 그녀에게 “ 너만 없었다면... ”을 내뱉는 여자

존재를 인정받지 못한 탓에 어릴 때부터 인생의 많은 것을 포기하고 

관조하듯 살아가는 노라에게

엄마는 그냥... 철부지에 욕심쟁이일 뿐이다.

새벽기도를 하지만 돈을 벌겠다고 춤쟁이들에게 집을 빌려주고

밖으로만 나도는 엄마는 뭐가 중헌지 모르는 사람이다.

“ 아무것도 모르는 엄마는 지금쯤 뭘 하고 있을까.

뭘 모른다는 무구함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생각한다.

누구에게나 더는 순진과 무구가 면죄부가 될 수 없는 나이가 온다.

가슴이 답답해서 손바닥으로 명치 끝을 문지른다 .”

6살 때 친어머니의 가출로 인해 버려진 모라, 일을 해야했던 아버지는

모라를 한 눈이 침침한 노인에게 맡기고 모라는 노인과 함께 

감 떨어지는 것을 구경하며 자란다.

다시 가정을 꾸린다고 찾아온 아버지를 통해 노라와 노라의 어머니를 만나게 된 모라.

가족이 생겼지만 그녀는 여전히 외로웠다.

몰래 노라만 챙기는 새어머니와 자기 안에 갇혀있는 듯 정을 내지 않는 노라 떄문에.

그러던 어느날 아버지의 인쇄소는 망하고 가족은 다시 뿔뿔이 흩어진다.

돈을 떼어먹은 친구를 찾겠다고 가출한 아버지는 수십년째 소식이 없고

그렇게 모라는 새로 생긴 가족과 아버지로부터 차례차례 원치 않는 이별을 당하고,

그것은 친어머니와의 이별만큼 갑작스러웠다.


" 이런 식으로 모라를 다시 만나게 될 거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죽음이 우리를 만나게 하다니. 우리는 만난 게 맞을까.

모라에게 다가서며 나는 생각한다.

죽음은 언제나 눈을 감은 자의 사진을 보는 것과 같다.

보고 있지만 끝내 보이지 않는 것.

영영..... 알 수 없는 것."

20년이 가까운 세월동안 연락 한번 하지 않았던 노라와 모라는,

16년만에 시신이 되어 돌아온 모라의 아버지를 계기로 다시 만나게 된다.

여전히 노라는 차갑고 모라는 화가 나 있지만 그들이 다시 만났다는 것은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 아닐지...

너무 어려서 서로의 마음을 헤아릴 수 없었고 이해도 할 수 없는 상태로

이별을 맞이해야 했던 과거를 떨쳐버리고

새로운 가능성을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

" 웅크리고 있던 어린 새들이 입을 벌려 우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 생겨나는 세계가 있다.

나는 새로 태어난 우리들의 손바닥을 본다.

낯선 사탕을 아껴 먹던 언젠가의 마음이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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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신도들 버티고 시리즈
오스틴 라이트 지음, 김미정 옮김 / 오픈하우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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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신이 존재하는지 어떤지의 문제는 인류 역사 내내 물음표를 달고 인류를 따라다녔습니다.

종교전쟁이나 마녀사냥과 같은, 종교를 앞세운 잔인한 일도 인류사에서는 많이 벌어졌죠.

누군가는 신이 존재한다고 이야기하고 누군가는 무신론을 주장합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 불가지론 ", 즉 신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다라는 주장을 펼치기도 합니다.

이 [ 광신도들 ] 이라는 책의 주인공은 해리 필드라는 과학사 교수입니다.

그에게는 주디라는 딸이 있고 주디는 혼자의 몸으로 헤이즐이라는 딸을 낳게 되어서

직장을 다니는 동안은 해리가 헤이즐을 봐주는 입장입니다.

그러던 어느날, 헤이즐의 아버지인 올리버 퀸 ( 무책임하고 자신의 불행에 대해 세상을 탓하는 전형적인 사람 )

이 나타나 헤이즐을 납치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사실 올리버 퀸은 항상 분노해있는 사람입니다. 목사 아버지에게 제대로 사랑받지 못했다고 생각하고

아버지의 종교를 배척하는 입장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을 " 신 " 이라고 부르게 만드는 일종의 사이비교주에게 끌려서

헤이즐을 그 사이비 종교의 교주가 이끄는 공동체로 데리고 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 그가 교주에게 끌린 이유는.... 그에게서 아버지의 대체물을 본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정에서 제대로 된 애정을 받지 못한 사람의 전형적인 인물이랄까? )

한편, 헤이즐이 사라진 것을 발견한 주디는 썸을 타고 있는 남친인 데이비드 레오의 도움을 받게 됩니다.

아직 정식 남자친구는 아니지만 주디에게 잘 보이고 싶은 데이비드는

헤이즐을 미치광이 전 남자친구의 품 그리고 폭도들이 우글대는 사이비 종교인들의 품에서 구해내면

영웅 소리를 듣지 않을까 싶어서 이 모험에 뛰어든 것입니다.

이 책이 독특한게 뭐냐면, 마치 작가가 신인 것처럼 여러 인물들을 오가며

한 사건을 보는 여러명의 관점을 꼼꼼하게 제시합니다.

일인칭 화자 시점이 아니라 전지적 작가 시점이라

독자들인 우리는 등장인물들이 이 사건을 대하는 마음 자세를 고스란히 다 알 수 있습니다.

심지어 아기를 구하러 온 데이비드가 온통 아기 걱정에 빠져있는 주디를 보고는

언제쯤 그녀의 침실로 들어갈 수 있을까? 를 고민하는 부분까지.. 아주 세밀합니다.

( 데이비드가 참 이기적이다.. 라고 생각되는 부분이었기도 했고

인간이라면 당연하다..라고 생각되는 부분이었어요 )

그런 부분이 이 책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어요.

헤이즐을 사이비 종교인들, 즉, 세속에서 두려워하는 존재들,

자칫하면 폭도로 쉽게 변할 수 있는 사람들로부터 과연 데이비드가 구해낼 수 있을까?

조마조마했지만, 의외로 사건은 쉽게 풀립니다.

데이비드를 함정에 빠뜨리려했던 올리버 퀸이 그만

자신이 놓인 덫에 자기가 걸려서 사망하게 되거든요.

헤이즐을 구해서 집으로 돌아가는 3명을 보며

이야기가 이렇게 평화롭게 끝이 났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지만

역시.... 미스터리물은 이렇게 싱겁게 끝이나면 안되겠지요.

올리버 퀸을 따르고 숭상하던 닉 포스터라는 청년은

올리버 퀸의 죽음을 데이비드의 탓으로 돌리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데이비드를 잡아 그들만의 재판에 회부하고 싶어하는데

이 일에 아주 교묘한 지략가가 얽혀있어요.

닉은 원래 올리버의 부하였지만 이 교묘한 지략가는 올리버가 없어진 이후

닉을 자신의 부하로 삼아 그를 이리저리 조종하고 싶어하지요.

그들은 데이비드를 잡아서 그들만이 알고 있는 장소에 가두어놓은 다음

자신만의 재판을 치르려하는데요... 과연 데이비드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요?

이 [ 광신도들 ] 이라는 책은,,, 예상만큼 특정 사이비 종교를 숭상하는 무리들의 폭력과 광기가 보이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사람들의 " 어리석음 " 이나 " 개인적 편견 " 그리고 " 무지 " 를 희화화하고 싶어했다면

작가의 의도가 그것이었다면 어느 정도 성공한 것 같아요.

" 광신도들 " 은 특정종교를 믿고 따르는 무리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는 걸

작가가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듯 했습니다.

인간은 너무 약하디 약해서 뭔가를 따르고 싶어합니다.

그게 " 사랑 " 이 될 수도 있고 " 신 " 이 될 수도 있고

" 학문 " 이 될 수도 있고 그냥 자신이 믿고 따르는 " 누군가 " 가 될 수도 있지요.

미스터리로 접근했다가 상당히 수준높은 심리학 서적을 읽은 느낌이에요.

닉 포스터라는 인물을 통해서 자신의 신에게 버려진 어린 양을 본 듯한 느낌도 들고...

자신을 " 신 " 이라고 지칭하는 인물과 그를 합리적 의심없이 따르는 인물들을 통해

근거없는 믿음과 신념이 얼마나 위험한지도 볼 수 있게 되었네요...

다시 한번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하게 읽고 복기하고 싶은 수준높은 책입니다.

신보다는 "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 " 를 느끼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 출판사의 후원을 받아서 솔직한 주관을 담아 리뷰를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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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나의 도시를 앨리스처럼 1~2 - 전2권
네빌 슈트 지음, 정유선 옮김 / 레인보우퍼블릭북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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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다보면 이유없이 좋아지는 책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좋은 쪽으로 인상적인 책들이 있고 나쁘게 인상적인 책들도 있어요. < 나의 도시를 앨리스처럼 > 이라는 제목의 이 책은 이유를 알 수 없지만 너무나 좋았던 책입니다. 이 책은 고난이 닥쳐왔을 때 용기와 단호한 의지를 발휘해야한다는 것을 그리고 다른 사람의 삶과 주위 세상을 보다 나은 쪽으로 바꾸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줘요. 비록 이 책은 주로 누군가의 고통과 힘든 사연을 다루고 있지만 약간의 로맨스로 인해 소소한 재미도 있습니다.

작가 네빌 슈트는 자신이 들었던 2차 세계대전 동안 네덜란드 여성과 아이들에 겪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이 소설을 지었다고해요. 그 여성과 아이들은 전쟁 포로였는데 일본군들이 이들을 수용할 수용소가 제대로 없어서 이 장소에서 저 장소로 계속 이동해야만 했다고 하네요. 그 와중에 많은 사람들이 사망을 했다고하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네요. 그는 이 이야기를 토대로 젊은 영국인 여성인 진 패짓의 일대기를 그려낸 거에요.

그녀는 일본군이 지배하게 된 말레이 반도에서 끔찍한 상태로 이 마을과 저 마을을 강제로 행군해야 했던 여성들과 아이들의 지도자가 됩니다. 길을 걷는 동안 그는 호주인 전쟁 포로인 조 허먼이라는 사람을 만나게 되는데, 그는 그들에게 음식과 다른 일상용품을 구해주고 진과 좋은 친구 사이가 되어요. 그러나 진과 조는 영양결핍이던 한 무리의 여성과 아이들을 위해서 닭을 훔치다가 봉변을 당하게 됩니다. 그 당시 발생한 사건은 끔찍했으나 결국 후에 황홀한 이야기의 단초가 되어주는데요,,, 더 이상 이야기하면 스포일러가 될까봐 여기서 그냥 마무리!!


전쟁 이후에 진은 약간의 돈을 상속받고 자신의 신탁인이 된 나이 많은 변호사 노엘 스트래천과 좋은 친구가 되어요. 사실 스트래천이 이 소설의 주요 화자입니다. 나이 들어가고 일만 하는 이 변호사의 화법이 때때로 지루하고 건조한 면이 없지 않았지만 동시에 그는 원숙한 매력과 냉소적인 유머감각을 뽐내기도 합니다. 2권 부분에서 노엘은 진이 사랑에 빠지는 모습을 뭔가 유감섞인 감정으로 지켜봐요. 그녀가 곧 영국을 떠날 것이기에. 뭐라고 할까? 약간 진에게 분홍빛 감정을 품은 것 같기도 하지만 사람의 감정은 한가지로 정의내릴 순 없겠죠? 아쉬웠지만 스트래천 변호사는 진이 자신이 살 곳으로 정한 호주의 아웃백 마을을 개혁하는 것을 계속해서 도와줍니다.

진이 겪는 몇 가지 법률 문제를 도와주기 위해서 그가 진을 만나러갈 채비를 하는 동안 그의 친구 동료중 한 명이 그의 건강을 걱정하는 말을 해요. 그가 별로 중요하지 않은 문제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다고 그 친구는 이야기 하지만 노엘은 진을 도와주는 일이 이제는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되는 일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낯선 타인이었던 진이 그렇게 느껴지다니,,, 나이와 성별을 초월한 우정이 위대해보이는 순간이었어요.

나의 도시를 앨리스처럼에는 마치 영화와 같은 몇몇 장면이 나오는데 특히 감동적인 장면에 대한 묘사가 바로 이런 것들이었어요.

“ 기억 속의 그녀는 검고 긴 머리카락을 하나로 땋아 등에 늘어뜨리고 있었다. 피부는 심하게 그을려서 거의 말레이 사람처럼 갈색이었다. 낡고 빛바랜 블라우스 같은 상의와 값싼 면 사롱을 걸치고, 갈색으로 탄 꼬질꼬질한 맨발로 늘 아기를 안고 걸어 다녔다 ”

“ 찌르르한 고통이 그녀를 스치고 지나갔다. 쿠안탄의 비극이 조를 그렇게 만들었고, 그는 영원히 그렇게 살아야 했다. 당연히 그럴 줄 알고 있었지만, 막상 그의 모습을 보니 예전과 다름없이 고통스러웠다 .”

사실 1950년대 작품이어서 그런지 오래된 표현도 많이 보이고 글의 속도감도 조금 느리다고 느꼈습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이 글은 사람들에게 벅차오르는 감동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살다가보면 지은 죄 없이 고난을 겪어야 할 때가 있어요. 그때는 하늘을 원망하거나 남에게 해꼬지를 하기 보다는 좋은 날이 오기를 기다려야할 것 같아요. 진짜 좋은 날이 오거든요!! 이 책 속의 진 패짓처럼요.. 그녀는 정말 위대한 사람이에요. 인류를 위해 봉사하기위해 태어난 사람 같아요... 이 책은 꼭 읽어봐야할 명작으로 인정받을 수 있어요. 별 다섯개 드립니다!!

* 이 책은 출판사의 지원을 받아서 최대한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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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하게 헤어지는 방법
이은정 지음 / 마음서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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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서지기 쉬운 삶에서 끝끝내 찾아낸 사랑과 희망의 빛

한국 문학의 뜨거운 신예, 이은정 작가 첫 작품집

“ 혜자는 그날 미주가 이모라 부르는 수많은 여인의 품에 안겨 지상으로 내려왔다. 누구 옷인지 알 수 없는 촌스러운 바바리코트로 온 몸을 감싸고 있었다. 미주는 혜자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 혜자는 막 끄집어낸 신생아처럼 응애응애 소리 내 울었다. (...) 어쩌면 혜자는 타인의 품이 더 편안했을지 모른다. 바로 옆에 서 있는 미주를 미처 챙기지 못하고 자신의 슬픔에 집중하는 것 같았다 .”

현실은 남루하기도 하고 가끔은 잔인하기도 합니다. 이은정 작가의 단편집에는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엄청난 빚만 남기고 떠난 아버지 때문에 가장 역할을 하느라 꿈은 커녕, 하루 살기도 힘든 청년의 이야기... 술주정뱅이에 폭력 남편이라는 삶의 무게로 인해서 마치 어린이처럼 퇴행해버린 어머니와 그녀를 감싸돌기만 하는 큰 언니를 냉정하게 바라보는 애어른 미주의 이야기.... 남편이 보는 앞에서만 살갑게 대하고 없는 데서는 며느리에게 가장 아픈 말을 서슴없이 해대는 시어머니 등등등... 그녀의 단편들에서는 도저히 제 정신으로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은 사람들이 힘겨운 인생을 살아나갑니다


이 중에서 가장 인상 깊게 읽은 단편 [ 완벽하게 헤어지는 방법 ] 엔 학대에 가까운 방임으로 인해서 냉소적인 아이가 되어버린 미주라는 아이가 등장합니다. 그녀는 가족들을 가장 냉정하게 바라보는 시선입니다. 사랑이 뭔지 제대로 모르는 아버지 종수, 종수의 술주정과 학대에 지쳐서 어린이가 되어버린 어머니 혜자, 그리고 그런 어머니를 측은하게 여기고 보호자로 자처하는 큰 딸 미진. 그리고 자신을 가족의 일부로 여기지 않는 냉정한 아이 미주가 있습니다. 그녀는 부모님을 이름으로 부릅니다. 그만큼 정이 없다는 뜻이겠지요. 각자의 짐에 휘둘려서 비틀거리는 가족들을 보면서 냉소의 비웃음을 짓지만 결국 그녀는 자신에게 사랑을 주지 않은 부모에게 그런 식으로 복수를 하는 것이겠지요. 어쩌면 제일 큰 아픔을 겪고 있는 사람이 미주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들 가족은 서로 맞지 않는 퍼즐 조각을 내밀며 가족이라는 퍼즐판을 완성해보려하지만... 어쩌면 그들은 이미 비극의 씨앗을 품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네요.

" 미주는 물 빠진 바닷가에서 바닷물이 빠진 것도 모른 채 버둥거리는 혜자처럼은 살기 싫었다. 처음부터 일방적으로 시작된 종수의 사랑, 사랑하는 법을 몰라 평생 비틀린 사랑만 하는 종수처럼도 살기 싫었다. 그렇게 다짐은 했는데 어떻게 살아야 그렇게 살 수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미주는 그냥 슬픈 아이로 살고 싶었다 "



[ 숨어 살기 좋은 집 ] 에는 소위 잘난 아들 두어서 벼슬하는 시어머니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자신의 아들이 며느리에 비해서 너무 잘났다고 생각하는 시어머니는 결혼 생활 내내 며느리를 가만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결혼하자마자 일주일에 한번씩 와서 자신을 돌보기를 바라던 시어머니는, 아들과 함께 먹는 밥상에서는 며느리의 숟가락 위에 가시 바른 생선을 놓아줍니다. 하지만 아들이 없을 땐 막말을 서슴치 않습니다.

" 내가 말 안하려고 했는데 결국 하게 되는구나. 너희 결혼하기 궁합을 보러 갔는데, 네 사주가 날 잡아먹을 거라고 하더라. 절대 집에 들여놓지 말라고. (...) 조상님이 하신 말씀 틀린 게 없어. 여자가 잘못 들어오면 집안이... (...) 사생아라고 했을 때부터 반대했어야 했는데."

며느리에게만 유독 서슬퍼런 시어머니를 피해서 작은 시골 동네로 이사온 아들과 며느리. 비록 수돗물도 제대로 안 나오고 변기 사용도 원활하진 않지만 이제 시어머니의 간섭과 자신과 시어머니 사이에서 쩔쩔 매는 남편의 모습을 보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그녀는 천국으로 온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그런 생각도 잠시, 시어머니는 자신이 폐암에 걸렸다며 이젠 행복을 만끽하는 주인공의 집으로 다짜고짜 쳐들어와서 몇 달 있다가 가겠다고 합니다. 며느리를 괴롭혔었지만 결국 혼자서는 외로웠던 것일까요? 급기야는 그들의 옆집에 새 집을 짓겠다고 나서는데....

" 예민하게 바라보던 여자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내가 더럽고 천박하다는 양 바라보던 시선과 다 알고 있으니 까불지 말라는 듯 얄팍한 미소. 도리질할 때 헝클어지던 여자의 머리카락마저 내 안에 어떤 수치심을 불러일으켰다. 여자가 그럴수록 나는 더 숨고 싶었다. 여자의 아들과 함께 "

이은정 작가의 작품 속에서 가족이라는 보기 좋은 허울은 벗겨지고 해체되고 낱낱이 분해됩니다. 그들은 더 이상 관계 속에 숨어있지 않습니다.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나 가족이라는 껍데기가 건넨 부담과 짐을 벗어버립니다. 부모님은 이름으로 불리워지고 시어머니에게는 여자라는 수식어가 달립니다. 철저한 타자와 타자의 만남이라고 할까요? 모래알을 뭉친다고 덩어리가 되지 않듯이 가족이라는 형식이 사람들을, 특히나 싫어하는 사람들을 묶어둘 수는 없는 것 같아요. 지극히 냉정하고 현실적인 눈으로 가족의 굴레에서 겪게 되는 모순과 아픔을 그린 작품 [ 완벽하게 헤어지는 방법 ]. 작가는 말하고 있는 것 같아요. 우리는 오늘도 헤어지기 위해 애쓰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요. 그것도 아주 완벽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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