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라와 모라
김선재 지음 / 다산책방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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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는 칠 년을 함께 살았다.

그게 내가 누군가와 살았다고 느끼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

비슷한 이름을 가진 노라와 모라, 똑같이 외로웠지만

서로의 손을 잡아주지 못했던 어린 시절의 그녀들.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마음을 읽어주지 못한 그녀들.

노라에게는 존재를 인정받지 못한 자의 쓸쓸함과 고독이 엿보이고,

모라의 웃는 얼굴 이면에는 계속 버림받을 수 밖에 없었던 자의 억울함과 분노가 보인다

노라가 건너온 인생의 길엔 우울의 강이 흐르고 모라가 내뱉는 한숨 한숨엔 미처 말하지 못한 이야기가 숨어있다.

“ 지금 나에게는 들리고 모라에게는 들리지 않는 말들이 있다.

모라에게는 보이고 내게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다.

다시 만났지만 우리는 여전히 서로에게 묻지 않는 말들이 있다.

나는 모라의 손을 본다. 손등이 두툼하고 손가락이 짧고 뭉툭한 손.

그와 같은 모양의 손을 가진 사람을 알고 있다. ”



눈을 감고 있는 사진 외에는 다른 사진도 없고 아버지의 모습이 거의 기억도 나지 않는 노라는

그녀에게 모진 소리만을 내뱉는 엄마 밑에서 자라났다.

유산을 하지 않았으면 생겼을 아들 이야기를 하고 

너무나 자주 그녀에게 “ 너만 없었다면... ”을 내뱉는 여자

존재를 인정받지 못한 탓에 어릴 때부터 인생의 많은 것을 포기하고 

관조하듯 살아가는 노라에게

엄마는 그냥... 철부지에 욕심쟁이일 뿐이다.

새벽기도를 하지만 돈을 벌겠다고 춤쟁이들에게 집을 빌려주고

밖으로만 나도는 엄마는 뭐가 중헌지 모르는 사람이다.

“ 아무것도 모르는 엄마는 지금쯤 뭘 하고 있을까.

뭘 모른다는 무구함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생각한다.

누구에게나 더는 순진과 무구가 면죄부가 될 수 없는 나이가 온다.

가슴이 답답해서 손바닥으로 명치 끝을 문지른다 .”

6살 때 친어머니의 가출로 인해 버려진 모라, 일을 해야했던 아버지는

모라를 한 눈이 침침한 노인에게 맡기고 모라는 노인과 함께 

감 떨어지는 것을 구경하며 자란다.

다시 가정을 꾸린다고 찾아온 아버지를 통해 노라와 노라의 어머니를 만나게 된 모라.

가족이 생겼지만 그녀는 여전히 외로웠다.

몰래 노라만 챙기는 새어머니와 자기 안에 갇혀있는 듯 정을 내지 않는 노라 떄문에.

그러던 어느날 아버지의 인쇄소는 망하고 가족은 다시 뿔뿔이 흩어진다.

돈을 떼어먹은 친구를 찾겠다고 가출한 아버지는 수십년째 소식이 없고

그렇게 모라는 새로 생긴 가족과 아버지로부터 차례차례 원치 않는 이별을 당하고,

그것은 친어머니와의 이별만큼 갑작스러웠다.


" 이런 식으로 모라를 다시 만나게 될 거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죽음이 우리를 만나게 하다니. 우리는 만난 게 맞을까.

모라에게 다가서며 나는 생각한다.

죽음은 언제나 눈을 감은 자의 사진을 보는 것과 같다.

보고 있지만 끝내 보이지 않는 것.

영영..... 알 수 없는 것."

20년이 가까운 세월동안 연락 한번 하지 않았던 노라와 모라는,

16년만에 시신이 되어 돌아온 모라의 아버지를 계기로 다시 만나게 된다.

여전히 노라는 차갑고 모라는 화가 나 있지만 그들이 다시 만났다는 것은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 아닐지...

너무 어려서 서로의 마음을 헤아릴 수 없었고 이해도 할 수 없는 상태로

이별을 맞이해야 했던 과거를 떨쳐버리고

새로운 가능성을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

" 웅크리고 있던 어린 새들이 입을 벌려 우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 생겨나는 세계가 있다.

나는 새로 태어난 우리들의 손바닥을 본다.

낯선 사탕을 아껴 먹던 언젠가의 마음이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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