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하게 헤어지는 방법
이은정 지음 / 마음서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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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서지기 쉬운 삶에서 끝끝내 찾아낸 사랑과 희망의 빛

한국 문학의 뜨거운 신예, 이은정 작가 첫 작품집

“ 혜자는 그날 미주가 이모라 부르는 수많은 여인의 품에 안겨 지상으로 내려왔다. 누구 옷인지 알 수 없는 촌스러운 바바리코트로 온 몸을 감싸고 있었다. 미주는 혜자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 혜자는 막 끄집어낸 신생아처럼 응애응애 소리 내 울었다. (...) 어쩌면 혜자는 타인의 품이 더 편안했을지 모른다. 바로 옆에 서 있는 미주를 미처 챙기지 못하고 자신의 슬픔에 집중하는 것 같았다 .”

현실은 남루하기도 하고 가끔은 잔인하기도 합니다. 이은정 작가의 단편집에는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엄청난 빚만 남기고 떠난 아버지 때문에 가장 역할을 하느라 꿈은 커녕, 하루 살기도 힘든 청년의 이야기... 술주정뱅이에 폭력 남편이라는 삶의 무게로 인해서 마치 어린이처럼 퇴행해버린 어머니와 그녀를 감싸돌기만 하는 큰 언니를 냉정하게 바라보는 애어른 미주의 이야기.... 남편이 보는 앞에서만 살갑게 대하고 없는 데서는 며느리에게 가장 아픈 말을 서슴없이 해대는 시어머니 등등등... 그녀의 단편들에서는 도저히 제 정신으로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은 사람들이 힘겨운 인생을 살아나갑니다


이 중에서 가장 인상 깊게 읽은 단편 [ 완벽하게 헤어지는 방법 ] 엔 학대에 가까운 방임으로 인해서 냉소적인 아이가 되어버린 미주라는 아이가 등장합니다. 그녀는 가족들을 가장 냉정하게 바라보는 시선입니다. 사랑이 뭔지 제대로 모르는 아버지 종수, 종수의 술주정과 학대에 지쳐서 어린이가 되어버린 어머니 혜자, 그리고 그런 어머니를 측은하게 여기고 보호자로 자처하는 큰 딸 미진. 그리고 자신을 가족의 일부로 여기지 않는 냉정한 아이 미주가 있습니다. 그녀는 부모님을 이름으로 부릅니다. 그만큼 정이 없다는 뜻이겠지요. 각자의 짐에 휘둘려서 비틀거리는 가족들을 보면서 냉소의 비웃음을 짓지만 결국 그녀는 자신에게 사랑을 주지 않은 부모에게 그런 식으로 복수를 하는 것이겠지요. 어쩌면 제일 큰 아픔을 겪고 있는 사람이 미주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들 가족은 서로 맞지 않는 퍼즐 조각을 내밀며 가족이라는 퍼즐판을 완성해보려하지만... 어쩌면 그들은 이미 비극의 씨앗을 품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네요.

" 미주는 물 빠진 바닷가에서 바닷물이 빠진 것도 모른 채 버둥거리는 혜자처럼은 살기 싫었다. 처음부터 일방적으로 시작된 종수의 사랑, 사랑하는 법을 몰라 평생 비틀린 사랑만 하는 종수처럼도 살기 싫었다. 그렇게 다짐은 했는데 어떻게 살아야 그렇게 살 수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미주는 그냥 슬픈 아이로 살고 싶었다 "



[ 숨어 살기 좋은 집 ] 에는 소위 잘난 아들 두어서 벼슬하는 시어머니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자신의 아들이 며느리에 비해서 너무 잘났다고 생각하는 시어머니는 결혼 생활 내내 며느리를 가만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결혼하자마자 일주일에 한번씩 와서 자신을 돌보기를 바라던 시어머니는, 아들과 함께 먹는 밥상에서는 며느리의 숟가락 위에 가시 바른 생선을 놓아줍니다. 하지만 아들이 없을 땐 막말을 서슴치 않습니다.

" 내가 말 안하려고 했는데 결국 하게 되는구나. 너희 결혼하기 궁합을 보러 갔는데, 네 사주가 날 잡아먹을 거라고 하더라. 절대 집에 들여놓지 말라고. (...) 조상님이 하신 말씀 틀린 게 없어. 여자가 잘못 들어오면 집안이... (...) 사생아라고 했을 때부터 반대했어야 했는데."

며느리에게만 유독 서슬퍼런 시어머니를 피해서 작은 시골 동네로 이사온 아들과 며느리. 비록 수돗물도 제대로 안 나오고 변기 사용도 원활하진 않지만 이제 시어머니의 간섭과 자신과 시어머니 사이에서 쩔쩔 매는 남편의 모습을 보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그녀는 천국으로 온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그런 생각도 잠시, 시어머니는 자신이 폐암에 걸렸다며 이젠 행복을 만끽하는 주인공의 집으로 다짜고짜 쳐들어와서 몇 달 있다가 가겠다고 합니다. 며느리를 괴롭혔었지만 결국 혼자서는 외로웠던 것일까요? 급기야는 그들의 옆집에 새 집을 짓겠다고 나서는데....

" 예민하게 바라보던 여자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내가 더럽고 천박하다는 양 바라보던 시선과 다 알고 있으니 까불지 말라는 듯 얄팍한 미소. 도리질할 때 헝클어지던 여자의 머리카락마저 내 안에 어떤 수치심을 불러일으켰다. 여자가 그럴수록 나는 더 숨고 싶었다. 여자의 아들과 함께 "

이은정 작가의 작품 속에서 가족이라는 보기 좋은 허울은 벗겨지고 해체되고 낱낱이 분해됩니다. 그들은 더 이상 관계 속에 숨어있지 않습니다.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나 가족이라는 껍데기가 건넨 부담과 짐을 벗어버립니다. 부모님은 이름으로 불리워지고 시어머니에게는 여자라는 수식어가 달립니다. 철저한 타자와 타자의 만남이라고 할까요? 모래알을 뭉친다고 덩어리가 되지 않듯이 가족이라는 형식이 사람들을, 특히나 싫어하는 사람들을 묶어둘 수는 없는 것 같아요. 지극히 냉정하고 현실적인 눈으로 가족의 굴레에서 겪게 되는 모순과 아픔을 그린 작품 [ 완벽하게 헤어지는 방법 ]. 작가는 말하고 있는 것 같아요. 우리는 오늘도 헤어지기 위해 애쓰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요. 그것도 아주 완벽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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