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촌을 걷는다 - 과거와 현재를 잇는 서울역사산책
유영호 지음 / 창해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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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좀 특이한 책들을 만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저자에게는 미안한 말일 수도 있지만 나에게 이런 책은 좀 생소하다. 이런 책도 있구나.
공기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서촌을 걷는다>>는 나에게 그런 책이었다. 서울의 북쪽 항상 그곳에 있었고, 매일 지나다니면서도 음...항상 그렇게 있는 곳. 그곳이 우리나라 역사가 숨 쉬는 곳이고 그 역사와 함께 많이 아파하고 많은 추억이 있는 곳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솔직히 없다. 매일 지나다니던 길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고 거리를 사랑하게 만드는 책이다.

작가: 유영호
1990년 연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자기가 살고 있는 땅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통일로 가는 첫걸음이라고 생각하게 된 저자는, 최근 대한민국 중심부인 서울의 역사와 기행에 대한 글쓰기에 관심을 쏟고 있다.
그동안 펴낸 책으로 '하나를 위하여', '북한영화, 그리고 거짓말', '21세기 민족주의'(공저), '한양도성 걸어서 한바퀴'등이 있다.

머릿말
4p 겉으로 보기에 서촌은 지극히 평범한 강북의 한 지역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곳에는 한양으로 천도한 조선왕조 500여 년과 근현대 우리의 역사가 켜켜이 쌓여 있다. 조선의 법궁이었던 경복궁부터 청와대, 정부종합청사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한반도의 심장부라고 할 수 있겠다. 따라서 한발 한발 내딛는 곳마다 역사교과서를 펼치듯 수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다. 그것들을 한 꺼풀 벗기면 사랑과 증오, 전쟁과 평과, 애국과 매국 등 우리 선조들의 삶이 눅진하게 녹아난다. 그래서 나는 서울 속 마을여행 첫번째로 서천을 선택했다. 

이 책을 보는 내내 이 책을 어떻게 서평을 써야 하나 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서촌을 걷는다'는 정말 서촌을 걷듯이 느릿느릿 봐야 하는 책이다. 단숨에 넘겨볼 수 있는 책이다. 읽으면서 자신의 추억과 서촌의 역사와 우리나라 역사를 하나하나 떠 올리며 그 그림들을 맞춰가면서 천천히 봐야 하는 책이다. 그리고 책의 내용을 가져오기 시작하면 한 권 전체를 통째로 가져와야 할 것 같은 느낌이 있다. 어느 거리는 소중하고 어느 거리는 안 소중한 곳이 있는가? 그냥 그 거리는 그  거리로 소중하고 내 기억은 내 기억대로 소중하고 역사는 역사대로 소중하다. 

책은 크게 5섯 챕터로 나누어져 
1장 느리게 걸어보자 서촌에서는 주로 길에 관련된 얘기들이 나온다. 

한양도성은 재사산(백악-낙산-남산-잉ㄴ왕산)ㅏ을 따라 축조되었다. 그런데 이 산들은 한반도가 동고서저 지형인 것과 달리 경복궁을 중심으로 서고동저 형태를 띤다. 그로 인하여 한양도성을 관통하는 내명당수 청계천 역시,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르는 외명당수 한강과 반대로 흘러 풍수상 좋다고 평가받는다.15p

1917년 지하철 1호선 설계 당시 동아일보사 건물의 일부를 철거해야 전동차가 시청역과 종각역 사이에서 정상적으로 운행될 수 있었다. 하지만 동아일보의 반대로 철로가 90도 가까운 직각 형태로 꺾이게 되었다. 그로 인해 전동차가 이 구간을 지날 때면 운행속도를 급격히 줄여야 한다. 또한 철로의 마모를 막기 위해 많은 양의 윤활유가 사용된다. 시민들 세금으로 그러한 일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세종대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조선일보사가 위치한 곳에 이르면 광화문에서 청계광장 입구까지 이어지던 차선 2개가 사라진다. 조선일보 사옥이 도로를 점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 자료에 따르면, 그로 인해 차량 1대당 평균 12초가 지체되며 연료 소비량 등 교통혼잡 비용이 크게 증가한다고 한다. 21p

2장 역사와 문화의 보물창고 서촌에서는 역사의 현장들 속에서 서촌은 어떻게 쓰여졌는가에 대한 얘기들이 나온다.

조선 말기 및 일제시대 최고 부자는 단연 친일파 민영휘였다. 삼청장은 민영휘의 막내아들 민규식 소유였다. 우리나라가 해방되고 정국이 변하자 민규식은 임시정부 부주석을 역임한 우사 김규식에게 그곳을 쓰게 했다. 하지만 1950년 12월 평북 만포진 부근에서 김규식이 사망함으로써 다시 민규식 소유가 되었다. 2007년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는 민영휘 후손 명의의 재산을 국고로 환수했다. 2009년 한국자산관리공사가 이를 공매했고, 결국 중앙일보 홍석현 회장에게 낙찰되기에 이른다.
삼청장을 낙찰받은 총석현 집안은 어떤가. 그의 부친 몽진기는 일제강점기에 판사를 지낸 친일파로, 2009년 발간된 '친일인명사전'에 올라 있다. 총지니기의 장인인 김신석 역시 총독부 중추원 참의로 재임했으며, 1944년 '경성일보'에 "조선의 부형들은 어린 딸을 여자 정신대로 안심하고 보내라"는 글을 기고했다. 그 또한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어 있다.
홍진기는 1959년 법무부장관으로 재직하며 죽산 조봉암의 사형 명령에 서명했고, 다음날 조봉암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갔다. 뿐만 아니라 1960년 내무부장관 시절에는 4.19 시위자들에게 발포명령을 내렸다. 그는 4.19 이후 사형선고를 받았지만 시간이 흐른 후 석방되었고, 이병철과 사돈을 맺은 뒤 중앙일보 사장에 올랐다.
위에서 언급한 친일파들은 모두 사망한 상태이다. 하지만 그 뿌리는 여전히 뽑히지 않았다. 민영휘의 아들 민규식 소유의 삼청장이 홍진기의 아들 홍석현 소유가 되었으며,  이병철의 아들 이건희는 홍진기의 사위가 되었다. 참으로 질긴 친일의 역사가 아닐 수 없다. 78p


3장서 부터는 서촌의 좀 더 세세한 얘기들이 나온다.
3장 수많은 예술가들의 둥지 서촌 에서는 예술가들이 살았던 집에 대한 얘기들이 나온다.

노천명이 졸업한 '진명여고'는 1906년 설립되었으며, 현재 양천구 목동에 위치해 있다. 하지만 본래는 경복궁 서쪽 담장 바로 옆 종로구 창성동에 있었다. 노천명 외에도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 나혜석의 모교이며, 탤런트 전양자, 아나운서 신은경, 국회의의원 임수경 등이 그곳을 졸업했다.
진명여고는 고종의 후궁인 순헌 황귀비 엄씨가 조카인 엄준원에게 땅을 하사해 설립되었다. 학교명인 진명은 '나아가서 밝힌다.'는 의미를 지닌다. 이는 학교의 교육방침인 진덕계명, 즉 '덕을 쌓고 학업을 닦아서 나의 빛으로 겨레와 온우리를 밝게 비춘다'는 뜻의 약어이다. 110p

4장 도심의 살아 있는 박물관 서촌 에서는 인물 중심의 역사 얘기들이 나온다.
박노수 가옥에서 100미터도 안 되는 연립주택 잠장에 신인 '윤동주가 하숙했던 집' (종로구 누상동 9)이라는 안내판이 보인다. 그곳은 윤동주가 존경하던 소설가 김송의 집이었다. '별 헤는 밤', '자화상','또 다른 고향' 등 윤동주의 대표작들이 1941년 그곳에서 하숙하던 시절 창작되었다고 소개되고 있다. 135p

미 국무부의 대일강화조약 작성시 1~5차까지의 초안에는 독도가 한국령으로 기술되어 있었다. 그런데 일본의 로비를 받은 미국이 독도를 일본 영토에 포함시키려 했다. 하지만 뉴질랜드와 영국이 반대하자, 일본과 한국 어디에도 포함시키지 않은 채 독도를 아예 빼버렸다. 여기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독도는 일본령이라며 미국이 일본을 지지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독도에 대해 한국령이라고 말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177p

이완용은 한일합방이 이루어지자 1913년 12월 옥인동에 새 집을 짓고 이사했다. 이완용의 전기 '일당기사'(1927)에 따르면, '조선조와 서양조를 혼용하고, 내사는 조선 구식에 약간 개량을 더하고 외사는 순 양식으로 한 2층짜리 건물'로 적혀있다. 총 3,700평 규모이다. 당시 식민지로 전략한 조선에서 이완용은 총독부로부터 백작 작위와 은사금 15만 원을 받고 일선에서 물러나 여유롭게 생활했다. 그는 세상의 힘이 어디로 향하는지,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자신에게 이익인지 명민하게 판단하고 반응했다. 죽기 전 아들에게 "내가 보니까 앞으로 미국이 득세할 것 같으니 너는 친미파가 되거라"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에게는 진정한 의미의 조국이 존재하지 않았다.

5장 우리가 몰랐던 서촌 에서는 우리가 몰랐던 서촌에서 벌어진 역사 이야기들이 실려 있다. 

서울맹학교와 서울농학교가 신교동에 있는데 영조의 후궁이며 사도세자의 생모인 영빈이씨(1696~1764)의 사당 '선희궁'이 있던 자리이다. 운동장 왼쪽에 일부 건물이 남아 있으며, 운동장 밑으로 궁벽을 이룬 돌들을 볼 수 있다. 선희궁을 만든 후 궁정동에서 그곳으로 넘어갈 수 있게 다르를 놓아 이 일대를 신교동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학교 정문으로 들어서면 왼쪽에 커다란 조각물이 있다. 개교 100주년 기념비인데, 두 손을 마주하는 모양새이다. 농학교의 건물 뒤쪽으로 세 칸의 맞배지붕을 한 작은 제각이 있는데, 학교 담장과 더불어 유일하게 남은 선희궁의 흔적이다. 219p

'서촌을 걷는다'는 시간순으로 배열되어 있지 않고, 직접 걸어라는 공간의 유사성 형성으로 구성되었다. 그래서 마치 작가가 나와 함께 걸어 다니며 골목 하나하나에 숨겨져 있는 역사 이야기를 해주는 것 같은 느낌을 들게 한다. 

이 책의 많은 부분은 현대사 위주이기 때문에 일제 강점기 시대의 우리의 모습과 그것들이 현재에 미친 영향을 서촌에 어떤 모습으로 남아있는지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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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코 - 대한민국 최초의 모로코 가이드북, 2018~2019 최신판 #해시태그 트래블
조대현 지음 / 해시태그(Hashtag)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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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별여행, 렌트카여행자를 위한 맞춤 여행서
모로코에 대한 이해를 통해 여행하는 방법을 찾아보는 개념여행서
렌트카 여행자를 위한 도로정보부터 소도시정보까지 수록

모로코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아직은 우리에게 많이 생소한 나라이고 잘 모르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카사블랑카, 사하라 사막은 다들 아실 것이다.
카사블랑카는 모로코를 대표하는 항구도시이다.
사하라 사막은 모로코여행에서 가장 이국적인 경험이 될 것이다.

위치
23p 모로코는 아프리카 대륙의 북서쪽 끝에 있는 나라이다. 내륙으로 갈수록 지대가 높아지고 일교차도 커진다. 동쪽에는 매우 높은 아클라스 산맥이 자리 잡고 있다. 아프리카 북부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인 투브칼 산은 높이가 4,166m나 된다. 남쪽으로는 사하라 사막과 이어져 있다.

종교
25p 모로코인은 대부분 이슬람교를 믿는다. 모로코의 이슬람을 지키는 최고 지도자가 바로 모로코의 왕이기 때문이다. 모로코 왕가는 이슬람교의 예언자 무함마드의 후손이기 때문에 국민들은 왕으르 존경하고 따르고 있다.
원래 이 땅에 살던 사람들은 유목 생활을 하는 베르베르족이었다. 그런데 700년대 초 아랍 군대가 들어와 왕국을 세우고 이슬람교를 전하면서 이슬람 무누화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게다가 지형적으로 유럽과 가까워 유럽의 문화와 베르베르족의 전통이 자연스럽게 뒤섞이면서 모로코만의 복합적인 문화가 형성되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언어이다. 모로코에서는 아랍어, 베르베르어, 프랑스어, 영어로 쓴 신문을 매일 동시에 발간하고 있다. 모로고인들은 이처럼 여러 나라 언어를 사용하고 살아가고 있다.

절대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는 왕
27p모로코는 입헌 군주제를 실시하고 있기 때문에 왕이 존재한다. 왕은 직접 촐리와 장관을임명하고, 법률을 공포하거나 의회를 해산하는 일을 한다. 모로코의 왕은 정치뿐만 아니라 종교적으로 이슬람을 지키는 최고의 지도자이다.

모로코에 꼬 가야할 8가지 이유
1. 사하라 사막
2. 아틀라스 산맥
3. 서퍼들의 천국
4. 장엄한 토드라 협곡
5. 이슬람 문화의 체험메디나 - 옛 도시
8. 모로코의 매력

책에서는
모로코의 국가 정보, 예방접종, 역사 등 출발하기 전 다양한 정보들을 만나볼 수 있다. 

여행하면 역시 빼 놓을 수 없는 부분은 음식이다.
모로코는 아랍 음식과 지중해 음식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이탈리아의 영향을 받아 파스타가 보편화 되었고, 풍부한 해산물을 이용한 요리가 많다. 그래서 아랍 음식과는 약간 다르다. 모로코의 요리는 세계적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로모코의 축제
불의 축제
60p 마라케쉬에는 지금도 많은 베르베르족이 살면서 노랜 기간 동안 전통을 보존하고 있다. 그들의 축제는 낮이 가장 긴 날인 하지에 열리는 불의 축제가 있다. 여자들이 함께 노래를 부ㅜ르는 매우 특이한의식을 치른다.

이밀칠 축제
60p 사하라 사막근처, 이밀칠에서는 9월에 축제가 3일간 열리는데 사람들은 천막에서 지내며 가축, 곡식, 옷 등겨울을 나는 데필요한 것들을 마련한다. 말, 낙타, 염소, 양 등 가축과 옷, 양찬자, 곡식, 무화과 등을 가지고 나와 자기가 필요한 물건으로 바꾸어 간다.
이 축제에는 '로미오와 줄리엣'이야기와 비슷한 전설이 있다. 이밀칠의 청년 이슬리와 티슬릿 아가씨는 서로 사랑했지만 양가가 원수 집안이어서 결혼을 허락받지 못했다. 그들은 결국 슬픔을이기지 못하고 호수에 몸을 던지고 말았다. 그 뒤로 사람들은 자녀가 사랑하느 사람과 결혼하도록 하였다. 그래서 주변 여러 마을 사람들이 다 모이는 이밀칠 축제 때는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약속하는 풍습니 생겼다.

헤지라
60p 이슬람교의 새해를 헤지라라고 하는데, 이 날은 예언자 무함마드가 622년에 메카에서 메디나로 옮겨 가서 이슬람 공동체를 세운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이슬람력으로 첫 번째 달을 뜻하는 무하람은 성스럽게 여겨지는 날이다.

라마단
62p 이슬람력의 아홉 번째 달은 '라마단'이라고 한다. 이슬람교도들은 이 기간에 무함마드가 알라의 첫 번째 계시를 받았다고 믿기 때문에 라마단 기간을 특별하게 생각한다. 라마단 기간에 이슬람교도들은 금식을 한다. 마지막 10일간의 밤은 '라일라툴 카드로'라고 하는데, 이 기간에는 밤마다 사원에 간다. 이때에 천사가 내려와서 알라를 진심으로 믿는 사람들에게 복을 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모로코 여행은 겨울에 즐기가
1. 겨울 한낮의 온도 20도
2. 오렌지, 아르간과 올리브를 즐기자
3. 그래도 보온양말, 패팅은 쳉겨 가자

숙소

 

 

추천 일정

도시 소개
탕헤르
모로코 최북단에 있는 항헤르는 지브롤터 해엽과 맞닿아 있어 예부터 유럽과 아프리카 대륙을 잇는 주요 거점으로 다양한 문화가 혼재한다. 
쉐프샤우엔
모로코 북서부 산 중턱에 있는 리프Rif산맥의 푸르고 하얀 아기자기한 예쁜 마을은 예전에 쉐우엔으로 불리던 마을로 여행자들에게 인기 있는 곳이다. 건물과 골목이 온통 파란색으로 칠해진 것이 특징인데 모로코의 산토리니로 불리는 도시로, 스페인의 하얀 마을인 '미하스'와도 비슷하다. 모로코 북쪽 리프 산맥 중턱에 자리한 고대 도시, 쉐프샤우렝은 현재 모로코의 대표 관광지로 유명하지만, 19세기까지만 해도 외부의 출입이 제한된 요새 도시였다.

 

 

라바트
카사블랑카가 많은 사람으로 북적이는 대도시라면, 라바트는 수도이지만 조용한 느낌의 도시이다. 라바트는 모로코의 정치, 행정, ㅁ문화의 중심지로 왕이 머무르는 왕국과 정부 기관, 의회 등이 이곳에 있다.특히 하산 탑은 라바트를 상징하는 건축물로 12세기 경 이 탑의 공사를 지휘했던 알모하드 왕조의 3대 왕이 죽으면서 미완성으로 남게 된 거대한 탑이다.

카사블랑카
아름다운 항구 도시 카사블랑카는 라바트 남쪽의 대서양 연안에 있는 모로코의 제1의 도시로 '하얀 집'이라는 뜻이다. 이곳은 14세기 포르투갈 인들이 항구를건설한 이후 급성장하여 긴 역사를 담고 있다. 다른 나라들과의 무역이 대부분 이 도시를 통해 이루어지며, 섬유, 전자, 통조림 음료 등의 공업이 발달했다. 카사블라카는 상업 도시이면서 수많은 해수욕장과 공원이 있어서 세계적인 휴양지로도 유명하다.

에사우이라
에사우이라는 모로코에서 배낭 여행자에게 가장 인기 있는 해변 마을 중 하나이다.

이슬람교와 크리스트교는 어떻게 다른가?

 

세계 최대의 사하라 사막은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까?
모로코에는 사하라 사막1박2일이나, 2박3일 투어하는 낙타 사파리가 있다고 한다. 사막까지는 1시간 30분~3시간 정도 걸리는데 저녁이 되면 화덕에 구운 베르베르식 피자와 육즙이 듬뿍 밴 양고기가 나오는 사하라의 만찬도 있다고 한다. 또한 기묘한 연주와 함께 춤판이 벌어진다고 하니 꼭 참가해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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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으로 떠나는 인도여행 인문여행 시리즈 1
허경희 지음 / 인문산책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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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여행자들의 성지, 여행의 종착역. 인도는 참 많은 이름으로 여행자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모든 여행은 아는 만큼 보인다. 그 중에서도 인도는 특히나 아는 만큼만 보인다. 그만큼 여러가지를 배울 수 있는 곳이고 많은 걸 준비할 필요도 있는 곳이다.
'인문학으로 떠나는 인도여행'은 그런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알려줄 수 있고, 준비할 수 있게 하는 책이다. 이 책을 읽고 인도를 방문하게 되면 읽지 않은 사람과는 다른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고 올 수 있을 것이다.

저자: 한국외국어대학교 인도어과를 졸업하고, 5년 동안 출판사에서 근무하다가 20대 후반 인도로 유학을 떠났다. 자와할라 네루대학교 사회과학대학원에서 인도사로 석사학위를 마쳤고, 귀국 후 단행본 출판사에서 10년동안 기획편집자로 활동했다.

나도 인도 주재원 생활만 2번 4년 넘게 인도에 있었다. 첫번째 주재원때 인도 안에서 비행기를 100번 넘게 탔다. 거의 1~2주에 한번씩은 다른 지역으로 이동했다. 그래서 인도는 나에게 각별할 수밖에 없다. 여러분은 인도에 왜 가고 깊어 하는가? 인도에 가서 무엇을 얻어 올 수 있는가 '인문학으로 떠나는 인도여행'을 통해 인도를 먼저 만나보기를 바란다.

지도를 보면 인도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인구만 13억이다. 실재 인구수는 아무도 모른다. 인도는 주민등록증이 없기 때문에 출생신고를 안하고 사는 경우도 상당해서 인구집계보다 실 인구수는 훨씬 많다.
사진을 보면 인도는 우측으로는 중국에서부터 서쪽으로 파키스탄까지 엄청나게 큰 국가이다. 인도사람들에게 우리나라는 500km면 북에서 남까지 간다고 얘기하면 웃는다. 내가 많이 들었던 얘기는 너희처럼 그 작은 나라에 어떻게 삼성, 현대, 엘지같은 큰 업체가 그렇게 많냐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정말 작은 나라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시각으로 다른 나라를 볼려고 하는데 땅이 큰 나라는 우리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 우리의 개념에서는 도저히 상상해 낼 수 없는 부분들이다.
인도 공용어로 인정된 언어만 10가지가 넘고 지역별로 영화를 따로 만들고 사람들의 생김세는 완전히 다르다. 쉽게 생각해 인도에는 티벳인처럼 생긴 사람도 있고, 우리가 흔히 아는 인도 영화배우처럼 생긴 사람도 많고, 정말 까만 피부를 가진 사람도 있다. 문화 천차만별이다. 음식도 지역별로 다르다. 신문도 여러 언어로 되어 있다. 인도 남부가서 힌디어를 쓰면 대부분 못 알아 듣는다.

카스트 제도
21p 카스트의 지위는 각 지방에서 다양하게 나타나고 사회적 이동도 가능하지만, 상호 관계는 세습적으로 결정된다.  카스트는 지역적이고 특별한 직업과 연관되어 있는 만큼 다른 카스트 집단과의 결혼은 금지된다. 카스트 제도는 네 계급
브라만 Brahman(사제 계급), 크샤트리야 Kshatrya(군인, 또는 정치적 지배 계급), 바이샤Vaisyas(농공상인), 수드라 Sudras(노예 계급)로 나누어진다. 카스트 제도가 성립된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지만, 아리아족이 인도에 정착한 베다 시대에 피정복민을 지배하기 위해 만들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지배적이다.
>> 지금은 법적으로 카스트제도는 없어졌다. 하지만 수천년동안 내려온 카스트제도가 하루 아침에 없어 지겠는가? 카스트 제도는 저자의 말처럼 아직도 인도인을 쫓아 다닌다. 그리고 현대 사회에서는 지역에의해, 돈에 의해, 학벌에 의해 사회적 카스트제도마져 생기고 있다. 차를 따르는 사람은 청소하는 사람의 일을 도와주지 않는다. 같은 회사에 다니는 같은 과장이라고 할 지라도 같이 밥을 안 먹는 경우도 있다. 계층차이가 몸에 베어 있어서 다른면에서도 상하관계, 지배-피지배의 관계가 명확하고  하는 것들이 나눠져 있다. 인도를 이해하기 위해선 기본적으로 카스트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힌두와 무슬림
38p 오랜 역사 속에서 보면 힌두와 무슬림은 하나였다. 하지만 200년의 영국 통치는 인도를 힌두와 무슬림의 나라로 쪼개놓았다. 영국에 대한하는 인도 민족주의의 성장으로 1883년 국민회의가 탄생하게 되었다면, 또 하나는 새로운 흐름으로 무슬림 공동체의 이익을 추구한 무슬림연맹이 1906년에 형성되었다. 1929년 간디는 국민회의 지도자로서 네루를 지목했고, 진나는 무슬림 민족주의를 이끌고 있었다. 이후 디 두 흐름은 1935년 선거에서 결정적 갈등을 야기하게 된다. (중략)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946년 국민회의와 무슬림연맹의 갈등은 극한으로 치닫는다. 극민회의와 무슬림연맹의 교착 관계를 깨기 위한 모든 회담은 시래로 돌아가고, 결국 초대 수상 네루는 1947년 영국 측이 제시한 힌두 정권과 무슬림 정권의 분리 독립안에 동의함으로써 힌두 정권이니 인도와 무슬림 정권인 파키스탄으로 분리된다.
>> 아직까지도 인도와 파키스탄의 경계에서는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 우리는 잘 모르지만 테러도 일어난다. 10여년 전에는 델리(수도) 한복판에서 3개의 폭탄을 터트린 경우도 있었다. 빠하르간지시장은 화약냄세로 뒤덮히고, 수십 명이 사망하거나 부상당했고,  모든 유리창은 깨졌다. 30분 후에는 지하철역, 또 30분 후에는 버스정거장에서 잇따라 폭탄이 터졌다.

배우자찾기 광고
42p 최근 인도  사회의 재미있는 현상 중 하나는 신문광고의 배우자 구인난을 볼 수 있다. 이 구인난을 통해 보면 인도 남녀에게 있어 이상형이 누구인지 쉽게 알 수 있다. 어느 사회에서나 마찬가지로 인도 사회에서도 남자들은 얼굴이 하얗고 예쁜 여자를 찾고 있으며, 여자들은 경제적 능력이 있는 남자를 찾고 있다. 하지만 계급 사회답게 같은 카스트여야 함이 전제조건이다.
>> 참고로 종교와 종파도 같아야 한다. 같은 힌두교라고 다 결혼하는 것은 아니고 종파도 같아야 한다. 주류 신문을 펼쳐보면 2p이상은 결혼상대자를 찾는 광고이다. 실제로 그런 광고를 통해 배우자를 찾는 경우도 많다. 이제는 연예결혼도 많아지기는 했는데 아직도 70%이상은 부모님이 정해주는 혼처와 결혼을 한다. 그렇다고 연예를 안하는 것은 아니다. 연예도 많이 한다. 다만 그 연예상대와 결혼하겠다는 생각은 거의 없다. 연예는 연예일뿐 결혼은 다른 사람하고 하겠다고 생각하고 만나는 경우가 많다. 연예결혼의 경우는 어느정도 만나고 그 사람과 결혼할 생각이 들면 부모님께 서로 말씀드려 양가에서 괜찮다는 얘기에 서로 합의하면 연예결혼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문화도 우리나라처럼 그저 결혼전 상경례와는 다르다.

재혼
51p 법률적으로 재혼은 허락되어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인도의 법과 현실의 차이를 살펴볼 수 있다. 그들은 여성을 재산과 순결의 잣대로 본다. 여성에 대한 물적 접근인 것이다. 그래서 여성은 힌두 전통 시스템 아래에서 철저히 보호되어야 한다. 이 브라만 남성들은 여성을 보호해야 한다는 명분 아래 사촌 간의 결혼을 제도로서 받아들인다. 고대부터 내려온 이 제도는 오늘날까지 강고한 힌두 브라만 계급의 가족제도를 형성한다. 

'사티Sati' 풍습
53p '사티Sati'라는 풍습은 분명히 비인간적이다. 사티는 사암한 남편을 화장하는 장작더미에 살아 있는 부인을 함께 화장시키는 풍습니다. 이것의 기원은 과거 한 미망인이 죄를 정화하는 불꽃을 통해 죽은 남편과 재결합하기를 열망하여 행한 '자발적' 행동이었다. 한 여인의 고귀한 사랑의 존재 형태로 아라려져 온 풍습이 현실에서는 다양하게 변형되어 나타난다.  만약 이민족이 침입하여 여성들을 겁탈하게 되는 경우 여성들은 자신의 순결을 지키기가 어렵니다. 또 다른 경우는 철정한 가부장제도에 의한 여성의 일방적 희생이다. 남편이 먼저 죽었을 경우, 그들의 재산은 미망인에게로 돌아간다. 당연히 시댁에서는 아들의 재산이 처가로 유출되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이럴 경우 미망인은 고귀함이란 허울 아래 남편과 함께 장작더미에서 태워졌을 것이다. 이 제도는 19세기에 이르러 서구 세력인 영국에 의해 폐지되었다.

 

>> 인도는 나라가 큰 만큼 아름다운 무덤과 성들 및 건축물들이 많이 남아있다. 왠지 타지마할과 비슷하지 않는가? 무굴제국 4대 황제 자항기르의 아내의 무덤이다. 이 아름다운 무덤은 타지마할에 영감을 주었다고 하며, 최초의 대리석 무덤이다.

빛의 축제 디왈리
64p 디왈리 전설은 '라마야나'에서 시작한다. '라마야나'는 세계에서 가장 긴서사시로 힌두 문학을 대표한다. 그 기원은 기원전 3세기경 시인 발미키Valmiki에 의 편찬된 '라마 왕의 이야기'로 알려져 있다. 그것은 격렬한 전투와 악에 대한 선의 승리를 이야기한다. 오늘날 '라마야나'에는 2만 4천편이 넘는 시가 존재하는데, 인도인들이 가장 사람하는 문학으로 자리 잡고 있다.
전설에 따르면, 아요디아 Ayodhya의 왕자 라마 Rama는 비데하의 공주 시타Sita와 결혼했다. 비록 라마가 정당한 왕의 계승자였을지라도 그의 아버지는 젊은 아내의 아들을선호하여 라마와 시타, 그리고 그의 형제 락슈마나Rakshmana를 멀리 추방해버린다. 왕에 의해 쫓겨난 그들은 14년 동안 숲속에서 피난처를 구해 거기에서 은둔자로 살았다. 그러던 중 시타는 랑카(스리랑카)의 악마 왕인 라바나Ravana에 의해 납치되고, 라마는 원숭이 신 하누만의 도움을 받아 납치된 그의 아내 시타를 구출하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타지마할
107p 너무나 사랑했던 아내 뭄타즈 마할(1593~1631)의 죽음을 슬퍼한 샤 자한(1592~1666)은 그래를 위해 아름다운 묘지를 22년에 걸쳐 만든다. 그들은 뭄타즈 마할이 15세에 시장에서 처음으로 만나 서로 사랑에 빠졌다. 그들의 사랑은 첫사랑이자 마지막 사랑으로 영원히 남게 된다. 그리고 19세의 나이가 되어 샤 자한과 결혼한 그녀는 일생을 남편을 위해 헌신하면서 그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샤 자한은 그녀와 함께 모든 국가 문제를 의논했으며, 심지어 전쟁터에까지 왕비를 데리고 갈 정도였다. 

카마수트라 & 카주라호
127p 카주라호에 있는사원들은 1000년 찬데라 왕조의 한 세기 동안 건설되었다. 당시 무슬림과 히두의 피비린내 나는전쟁의역사 속에서 사람들은 비참한 죽음을 보았고, 김픙 슬픔에 빠졌다. 이에 한 브라만 사제는 그들을 위로할 무엇인가를 찾았던 것 같다. (중략) 이 사원의 에로틱 석상들은 굽타 시대(320~550년)쓴 사랑의 지침서 '카마수트라Kamasutra'에서 상상력을 빌려 왔다.(중략) 당시 이 지역에는 80여 개의 화려한 에로틱 힌두 사원들이 건설되어졌지만, 오늘날에는 단지 20여개의 힌두 사원들만이 남아 있다. 대부분의 힌두 유적들이 무슬림의 침입으로 사라ㅏ졌는데, 다행히 이곳은 지역적으로 소외되어 있었기 때문에 아슬아슬하게 그 피해를 벗어났다고 한다.
>>보기에는 그냥 에로틱한 장면인 것 같지만 당시는 몸을 바르게 사용하고 건강을 유지하는 방법중의 하나이자 중요한 부분이 성관계라고 여겼다고 한다. 그래서 그 중요성으로 인한 바로 앎의 한 부분이었다고 한다.

콜카타
244p 19세기 말에는 뱅골 르네상스 운동으로 영국과 인도 문화를 결합한 새로운 도시 중산 계층이 생겼지만, 수도를 델리로 옮기면서 콜카타는 급격히 쇠락하였다. 더군다나 독립운동 중에 불거져 나온 힌두와 무슬림의 갈등은 파키스탄으로 분리 독립되면서 400만 명에 이르는 난민들이 밀려들면서 콜카타는 빈미니가로 변하게 되었다.

바라나시 갠지스 강

 

254p 갠지스 강을 사이에 두고 버닝 가트에서는 매일 시신을 태우는 행위가 계속되고 있다. 우리의 매장 풍습과는 달리 이 풍습은 고대 베다 시대부터 굳어진 독특한 힌두인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풍습이다.
266p 바라나시는 인도의 가장 오래된 도시 중의 하나로 본래는 카시Kadhi(빛의도시)로 불렸다. 불교 문헌인 '자카타'에서는 이 지역 최초 왕국의 이름이 카이시고, 바라나시는 이 왕국의 수도였다고 전한다. 인도의 문헌 '푸라나Purana'(산스크리트어로 '오래된 이야기'를 의미함)에서는 이 도시가 바루나Varuna와 아씨Assi강 사이에 있어 바라나시Varanasi로 불렸다고 한다. 이 오래된 문헌들로 추정해보면 바라나시는 3000년 이상의 역사를가지고 있다. 이곳에서 힌두교의 전신인 고대 베다 종교가 탄생했다. 

>> 지금으로부터 10년전쯤에 incredible India라는 슬로건이 생겼다. 이 단어가 정말 인도와 잘 맞는 단어다. 인도는 그 어떤 말로도 규정 지을 수 없다. 인도에 1달 다녀왔다고 인도를 안다고 할 수 있을까? 한달이면 북부관광지만 그냥 돌아다녀도 빠듯하다. 인도는 정말 지역별 계층별 직업별 차이가 엄청나다. 한 지역안에서도 우리나라의 1960대에서 현재까지 모든 시간이 공존하는 것 같은 곳이다. 단순히 하나로 설명할 수가 없다.
인도여행 1달 미만으로 갈려면 가지 말아라. 더러운 것만 보고 온다. 그리고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틀린 말만 계속한다. 옆에서 보기 참 민망하다.
1달이상 갈 생각이고, 당신이 생각하는 관념들 산산히 부서트리고 싶다면 한번 가봐라. 당신을 송두리째 들었다 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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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 진짜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아 - 어린 왕자 심리 수업
김서영 외 지음 / 은행나무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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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이런 종류의 책은 처음이다.
처음에는 그저 어린왕자라는 소설에 대한 프로이드 시점에서 심리분석을 한 책이겠거니 하고 생각했다. 근데 그런 것이 아니었다.
'광운대학교'에서 심리학 강의한 내용은 모아 놓은 것이다.
초반부는 담당 교수의 심리학 강의가 나오고, 후반부에는 학생들의 어린왕자에 대한 토론이 나온다.
이 책이 반가울 수밖에 없는 내용은 떡하니 쓰여있는 '광운대학교' 나의 모교이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어린왕자'분석이라니, 그것도 내가 좋아하는 '심리학'을 통해서.


이 표지의 '어린왕자'의 그림, 너무 좋지 않은가? 언제 봐도 생텍쥐페리의 이 그림은 그냥 최고이다. 단순하면서도 아름다운 왠지 모르겠지만 생명력이 있다.
교수님을 비롯한 학생들 한 명 한 명의 이름이다.
김서영 교수, 손병진, 김건욱, 이수빈, 이창수, 조일남, 김은빈, 박재희, 이혜림, 지승엽

나중에라도 만나면 술 한 잔 사주고 싶은 선배 마음 ^^
이들이 처음 강의를 들으며 이렇게 책까지 낼 거라고 생각이라도 했을까?
나도 대학교 때 심리학과 프로이드에 관심이 많았었고, 프로이드 꿈 분석을 정말 즐겁게 들었었다.
'어린 왕자, 진짜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아' 이 책에서는 기본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참여해서 만든 책이니 만큼 많은 해석을 들을 수 있다. 이런 책들의 좋은 점은 책 하나만을 읽어도 한 번에 여러 방면의 생각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책을 읽다 보면 자연스레 이런 방향으로 생각이 흘러가다가 좀 있다 보면 또 다른 방향으로 생각이 흘러간다. 마치 유영을 하는 듯 생각이 너울너울 춤추며 여러 곳을 왔다 갔다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런 식의 책들이 좀 더 많아졌으면 한다. 마치 한 학기짜리 강의를 듣고 있는 듯한 느낌이 너무 좋았다. 문체도 교수님이 학생들에게 설명하는 문체를 사용해서 교실에 앉아 수업을 듣는 것처럼 읽게 된다.
14p 하나의 작품을 정신분석학적으로 분석한다는 건 성적 상징을 찾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어린 왕자'에 나오는 우물을 남근의 상징으로 설명하거나, 비행기가 사막에 불시착하는 장면을 성적으로 해석하면 '어린 왕자'의 아름다움과 신비가 사라져버립니다. (중략) 정신분석으로 작품을 설명한다는 것은 그 작품이 가진 치유적 에너지를 포착하고, 그 힘을 더 많은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도록 퍼뜨리는 작업으로뜻합니다. 정신분석학은 아픈 사람을 치료하는 이론이자 망가진 마음이 회복되는 이야기예요. 그것은 행복하고 건강하고 기쁜 삶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진정한 정신분석적 비평은 '어린 왕자'를 읽었을 때 우리의 마음이 왜 따뜻해지는지, 우리가 왜 이 동화를 사랑하는지를 설명해주고 긍정적 감정을 증폭시킬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그것이 정신분석학이라는 이론의 역할입니다.
>> 프로이드의 이론을 대충 알고 있는 사람들은 위에 얘기된 것처럼 잘못 알고 잘못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정신분석이라는 것은 분석하는 게 아니고 분석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근데 분석에만 집중하고 저는 이렇게 분석했습니다라고 하는 것은 진정한 의미에 반도 쫓아가지 못한 것이다. 그것은 '저 이만큼 분석 잘합니다.'라는 자기 자랑에 불가하다. 분석을 했으면 그래서 어떻게 할 것인가가 나와야 하는 것이다. 그런 것 없이 분석만 하다 보니 '프로이드'는 이상하다. 모든 걸 리비도(성)에만 집착하고 있다. 유아기가 어떻게 현재에 적용될 수 있냐'등의 문제만 제기하는 것이다. 물론 현대 정신분석학에서는 프로이드의 분석법 외엔 많은 분석법이 도입이 되었고 올바른 판단을 위해 여러 가지를 함께 봐야 하겠지만  그 기초에는 '프로이드'가 있었고 그의 사상으로 인해 많은 부분이 해석이 되고 있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지그문트 프로이트
25p 1856년 지금의 체코령인,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모라비아 직역의 작은 마을, 프라이베르크에서 태어났습니다. 4 살 때 빈으로 이주한 이후 1938년까지 그곳에 살았어요. 빈 대학 의학부를 졸업하고, 브로이어라는 선배와 함께 히스테리 연구를 하게 된 계기로 프로이트는 심리 치료의 영역에 뛰어들게 됩니다. 사실 '정신분석학'이라는 학문은 브로이어가 시작했다고 볼 수 있어요. 그는 프로이트보다 열네 살 위였으며, 이미 베르타 파펜하임이라는 환자를 치료하며 정신 치료에 가장 중요한 것은 '대화'라는 사실을 깨달았거든요. (중략) 프로이트는 진정으로 한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연구한 사람입니다.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모든 것을 잘 관찰할 필요가 있어요. 그 관찰 방법이 바로 정신분석학이죠.

27p 프로이트는 정신분석학을 말로 생각을 표현하는 치료라고 정의했어요. 말을 많이 하다 보면 현재의 문제도, 그리고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의 실마리도 드러난다는 거죠

28p 프로이트는 그러한 말 하기를 '해석'이라고 불러요. 하나의 사건에 대해 우리는 모두 다른 방식으로 설명해요. 그 사건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도 사람의 개성에 따라 모두 다르답니다. 내게는 힘든 문제인데, 그 사람에게는 별일이 아닐 수 있어요. 그럴 땐 내가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즉 내가 그 문제를 어떻게 해석하는지에 대한 이야기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것, 그리고 물론 나 자신을 이해하는 것 역시 해석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하루는 한 사람이 프로이트에게 묻습니다. "선생님, 결국 어떻게 해도 과거는 바뀌지 않잖아요?" 프로이트는 이렇게 답합니다 "네, 바뀌지 않아요. 그렇지만 해석은 달라질 수 있죠. 과거에 대한 해석이 달라지면 현재도 바꾸긴답니다." 현재가 바뀌면 물론 미래도 바뀝니다.
>> 회사일을 하다 보니 어떤 동일한 문제를 여러 사람이 똑같이 겪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근데 그 문제를 바라보거나 대처하는 시각은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사람은 일단 짜증부터 내고, 어떤 사람은 일단 다른 사람에게 문제를 전가한다. 다른 사람은 또 원인을 파악하려 하거나 해결책을 찾으려고 한다. 이렇게 사람들의 목소리를 잘 듣고 있다가 나중에 다른 문제가 발생했을 때 관찰해보면 문제를 대하는 방식이 전 문제와 똑같다.
전에 안된다고 했던 사람은 또 안된다고 하고, 화내던 사람은 화내고, 전가하는 사람은 또 전가한다.
문제는 이들이 자기 자신이 어떤 문제든 동일한 방법으로 대처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게 쌓이다 보면 매사가 짜증스럽고 힘들고 스트레스를 받고 결국 몸이 안 좋아진다. 책에서 말하고 있는 해석은 달라질 수 있다는 것 그것은 행동 패턴을 바꾸는 것이다. 패턴 하나만 바꿀 수 있다면 삶의 관점을 바꾸는 것이고 관점을 바꾸면 정말 모든 게 바뀔 수 있다.

49p 우리가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은, 하나의 세부가 더해지면 그 무게를 잃게 될 수도 있습니다. 생각이 바뀌고 분석이 확장되며 새로운 답을 가지게 되죠. 그러나 여기서 멈추면 자신도 모르는 새 못 보는 뒤치로 이동하게 돼요. 성숙이란 이렇게 방점을 찍은 후에도 해석을 열어놓고 변화해 나갈 수 있는 용기를 뜻합니다.

2부 토론
93p 이혜림 "제발.... 나를 길들여줘!" '어린 왕자'의 세계관에서는 길들이는 일이 몹시 중요합니다. 길들여진 다는 건 서로에게 정체성을 부여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꽃을 길들여 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아름답게 핀 장미꽃의 부분 부분을 의미 있게 바라보지 않을 겁니다. 지리학자에게 꽃은 기록할 가치가 없는, 덧없는 것에 불과합니다. 꽃을 길들인 어린 왕자는 장미꽃을 보며 그녀가 가시를 만들어 내기 위해 겪었던 고통을 떠올릴 것이며, 비록 영원할 수는 없지만 함께이기에 소중한, 꽃과의 시간들에 감사할 것입니다. 이제 왕자는 자신의 꽃과 닮은 장미꽃이 널려 있더라도 울지 않을 수 있습니다. 길들이는 게 무엇인지 알게 되면서 어린 왕자가 성장한 것입니다.
>> 길들인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다. 사랑한다는 것에는 많은 것이 포함되어 있겠지만 길들이고 길들여지는 것이 그 대부분을 차지할 것이다. 서로에게 익숙해지고 서로를 맞추어가는 되는 것이다. 연인 혹은 부부 사이에서 싸우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의 방향으로 상대방을 맞춰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온다. 내가 길들여지기보다는 상대방이 나에게 길들여지려는 마음이 강할 때, 서로를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나에게 맞추기를 바랄 때, 그리고 그것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 서로에 대한 실망감이 생기며 논쟁과 싸움이 시작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방이 나에게 맞춰주기를 바라기보다 내가 상대방에게 맞춰주려고 하는 노력이다. 그리고 그것이 안되는 부분에 있어서는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 줄 수 있는 넓은 마음이 필요하다. 
나는 부부는 항상 같은 방향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자신이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잘 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자신의 길로 가면서 힘들 때가 있을 때 기댈 수 있는 사람이 되어주고 넘어지려고 할 때 부축해 줄 수 있는 관계여야 한다. 사람은 쉽게 변하는 것이 아니고 살아온 경험이 다르다. 그 다름을 있는 그대로 온전히 품어 줄 수 있을 때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소통이라는 것도 항상 상대방이 주인공이어야 한다. 내가 주인공이 되어서 나만의 얘기를 한다면 소통은 이루어질 수 있다. 상대방의 얘기를 들어주고 그에 맞는 대답을 해줄 때 소통이 되는 것이다. 내 얘기, 내 행동 위주의 삶이 상대방 위주로 바뀔 때 함께 걸어갈 수 있게 된다.

94p 이수빈: 역설적이지만, 진정으로 자기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우린 다른 행성을 길들여야 해요. 그래야 비로소 온전한 나 자신이 될 수 있어요. 길들인다는 건 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받아들이는 거죠. 그건 나 자신의 의지로써, 노력으로써 합일을 이루어내는 개성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 어린 왕자에서는 소행성에 사는 사람들 얘기가 많이 나온다. 사실 우리도 모두 우리만의 소행성에서 살고 있다. 지리학자의 소행성, 왕의 소행성 등 자신만의 소행성안에서 자신만의 울타리를 펼치며 살고 있다. 그 소행성안에서 하는 일은 당연히 모든 것이 옳은 일들뿐이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해도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어린 왕자가 혹은 누가 내 소행성을 방문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다. 그의 소행성과 내 소행성이 충돌을 하며 서로 다른 것들이 맞닥뜨리게 된다. 나만의 소행성은 침범당하고 상대방도 자신의 소행성을 침범당한다. 서로 그 소행성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서는 이해할 수가 없고 내가 가지고 있는 장미꽃과는 다른 장미꽃이 있고, 나의 바오바브나무와는 다른 바오바브나무가 있다. 그 꽃과 나무는 결국 내 것이 처음부터 아니었다. 그 꽃과 나무에 물을 주기 위해서는 물주는 방법을 물어봐야 하고 그 소행성에 들어갈 때도 어떤 방식으로 들어가야 소행성이 아프지 않은지 물어봐야 한다. 진흙 묻은 신발을 신고 들어가도 되는지, 맨발로 들어가도 되는지, 혹은 뛰어도 되는지 먼저 물어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소행성이 아파하거나 나무나 꽃이 아플 수도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소행성에 들어가게 된다면 작은 부분도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한다.

96p 이창수 : 어쩌면 우리는 지금 내면의 우주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내가 길들여야 하는 건 나 자신일 수도 있어요. 장미는 밖에 있는 게 아닙니다. 우리 안에는 꽃이 한 송이 있어요. 꽃은 내 마음속 작은 먼지부터 거대한 은하까지 모든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어느 나 순수한 열정으로 빚었던 꿈일 수도 있고, 타오르는 사랑일 수도 있습니다. 혹은 지극히 아름다웠던 순간일 수도 있죠. 꽃은 그 차제만으로도 우리를 빛나게 해줍니다.
>> 내 마음속을 들여다본 적이 있는가? 그 안에는 무엇이 있는 줄 아는가? 가끔은 남이 나보다 내 마음속을 더 잘 들여다보고 얘기해주는 경우가 있다. 내 소행성에 무엇이 있는지 당연히 알 것 같지만 시간 내서 자신의 소행성을 걸어 다니지 않으면 잘 모르게 된다. 매일매일 돌아다니며 꽃에 물도 주고 바오밥나무가 얼마나 커졌는지 화산이 폭발하려고 하는지 확인하고 확인해야 한다. 특히 화산은 매일 청소를 해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화산이 폭발할 수도 있다.

100p 김건욱 : 타인과 관계를 맺다 보면 알게 모르게 서로가 서로를 길들이게 돼요. 그런데 상대방과 관계를 맺을 때, 우리는 지극히 개인적인 기준에서 자신의 방식으로 상대방을 바라보고, 사랑하고, 심지어 상대방을 자신의 마음에 맞게 바꾸려 애쓰기도 해요. 서로에게 익숙해질 때 상대방은 더 잘 알게 되었다고 생각하지만, 관계의 위기는 이때 찾아오는 게 아닐까요? 길들여진 나는 나만의 공간이 좁아졌다는 생각에 답답해하고, 길들이는 나는 그런 내 모습에서 두려움을 느끼죠.
다시 여우가 말합니다. "네가 길들인 것에 너는 언제까지나 책임이 있어." 간단명료하지만 가슴을 꿰뚫는 말입니다. 우리가 나약했기에 그간의 관계들은 그르친 건 아니었을까요?

>>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누구를 길들이고 있지 않나? 나는 내 책임을 다하고 있나? 내 소행성 돌아다녀 본제 언제지? 화산 청소는 했나? 이제 나도 지구로 한번 가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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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처럼 술술 읽히는 철학 입문
가게야마 가츠히데 지음, 김선숙 옮김 / 성안당 / 2018년 5월
평점 :
절판


우리가 흔히들 철학서적 하면 드는 생각들
우선 어렵다. 두껍다. 쉽게 손이 안간다. 재미없다. 이정도?
근데 누구나 안다. 읽으면 좋다는 것을.
하지만 그 많은 철학서적을 아니 한 권도 읽기 힘든게 사실이니 이 정도 책만이라도 보는 것도 입문을 위해서가 아닌 이런 사람들이 있었구나 정도의 개념을 잡기에는 괜찮은 책이다.

'만화처럼 술술 읽히는 철학 입문'은 책 속에 사진들도 꽤 들어가 있고, 쉽고 재미있게 쓰여져 있어서 정말 간단히 하루 이틀에 훝어보기 좋다. 물론 이 한권으로 얼마나 그 위대한 사람들의 사상을 꽤뚫어 볼 수는 없겠지만 '공리주의'가 뭔지 정도 아는 정도의 기본 개념이라도 잡아 놓게 된다. 다만 일본 저자이다보니 가볍게 든 예시들이 일본 만화, 드라마 관련된 것들이 많은데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다.

저자: 가게야마 가츠히데
링본 최대 입시학원인 '요요기 세민'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명강사, 윤리, 정치, 경제, 현대 사회를 가르치고 있다. 재미있고, 알기 쉽게 설명하는 수업으로 유명하다. 20권에 가까운 참고서와 문제집을 냈으며,  TV와 잡지 등의 미디어에서도 뉴스 해설을 맡아 활약 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다시 쓰는 경제사', '다시 쓰는 전후사', '가게야마의 세터 윤리', '세계를 움직이는 종교와 사상을 2시간에 독파할 수 있다.' 등이 있다.

목차
제1장 고대 그리스 철학
제2장 기독교사상
제3장 서양 근대 철학
제4장 계몽사상
제5장 독일 관념론 철학
제6장 공리주의
제7장 실존주의
제8장 정신분서학

책이름은 '철학입문' 인데 내용은 '서양철학입문'이다. 동양철학은 어디로?

프롤로그에 이런 사람은 이 책을 읽으라고 하는데 그 중 하나가
"술자리에서 말할 거리를 마련해두고 싶다."
가끔 아무도 모르는 얘기를 혼자서 하면 좀 유식해 보이기는 한다. 하지만 조심해라, 그 분야에 조금이라도 더 잘아는 사람이 있으면 안하니만 못하니.

서문에서
20p '철학은 인간의 존재 증명'이다. 생활과는 관계없다.  의문이 일기 때문에 답을 찾을 뿐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인간 볼래의 일이다.
그런데 우리가 9시에서 5시까지 하는 일은 생명 유지와 물질적 풍요를 구할 뿐인 '짐승이 가는 길'이다. 짐승의 길을 가면 먹고 살수는 있어도 마음의 풍요는 전혀 기대할 수 없다.
>> 나는 이중 '철학은 인간의 존재 증명'이라는 말에는 동감한다. 하지만 밑에 있는 9시에서 5시까지 하는 일은 생명 유지와 물질적 풍요를 구할 뿐인 '짐승이 가는 길'이다 라는 말은 전혀 동감할 수가 없다. 우리가 9시에서 5시까지 하는 일도 곧 철학공부다. 철학은 단순이 존재 증명만을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 대한 의미를 찾아 나서는 것이다.
내가 아침에 일어나서 물 한잔을 먹어야 하는 이유를 알고 있는 것도 철학이고, 오늘 다이어트를 실패한 이유를 알고 있는 것도 철학이고, 회사에 나가 일하는 모든 순간 순간이 철학이다.
철학은 그 모든 순간이 왜 일어나고 무엇을 하고 있으며 무엇을 해야 하는가의 삶에 대한 고찰이다.
작가의 얘기대로 철학 공부를 하고 있지 않은 모든 이는 짐승이 가는 길만 가고 있는가. 결코 그렇지는 않다. 단지 우리가 철학자들의 얘기를 듣고 알아야 하는 이유는 그 깊이에 있는 것이다. 우리가 현재 느끼고 생각하는 철학의 깊이를 좀 더 깊에 만들어주고 그것으로 인하여 또 다른 방향과 넓이로 생각해 볼 수 있게끔 도와주는 것들이 바로 철학자들의 책이다. 그리고 그런 책들을 보다보면 '아! 저거 내가 한동안 생각했던건데. 이렇게 볼 수도 있구나. 이 생각을 2천년 전에도 하구 있었구나' 하는 것들이 많다.

플라톤이 소크라테스의 질문을 통해 이데아론을 만들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을 비판하며 현실세계의 본질을 보고자 했다. 이렇듯 철학자들도 모두 그의 스승이나 기존의 사상에 영향을 받고 그로 인해 자신만의 가치관과 사상을 정립하고 성장한다. 우리도 이런 철학들에 좀 더 가까워지면 자신의 가치관과 사상이 좀 더 깊어지고 확고해 질 것이다.

제1장 고대 그리스 철학
철학의 탄생
탈레스 - 인간은 원래 물주머니야
피타고라스 - 수학자이며 종교가, 종교 단체인 '피타고라스 교단'의 창설자
헤라클레이토스 - 기인, 만물은 흔들린다고 주장(만물유전설)
데모크리토스 - 만물의 근원은 '원자'라고 제창
소피스트 - 아테네에서 변론술을 가르치던 사람들, 프로타고라스와 고르기아스가 대표자

소크라테스 - 모든 것에 대한 의문, 내가 정말 알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책도 쓰지 않고, 제자도 키우지 않았다.
플라톤 - 이상주의자, 이데아이론, 동굴 이론. 우리는 동굴안에 갇혀 있어 제대로된 모습을 보지 못하고 그림자만 처다보고 있다.
아리스토 텔레스 - 플라톤의 제자, 꽃미남. 현실의 본질을 파악하고자 했다.
----------이민족 마케도니아 왕국의 침략---------------
에피쿠로스 - 쾌락주의를 제창
제논 - 스토아학파의 창시, 금욕주의를 제창

그리스 철학이 서양철학의 시초라고 한다. 그리스 철학의 시초는 소크라테스가 아니다. 그전에 소피스트들이 있었고, 우리가 잘 아는 피타고라스가 있고 탈레스가 있었다. 그들이 있었기에 서로 사상을 가다금고 반대하며 자신의 사상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39p 피타고라스는 종교 교단의 교주 였다. 이건 농담도 비유 표현도 아닌 사실이다. 그는 당시 남이탈리아에 있던 식민 도시 코로톤에 본거지를 둔 '피타고라스 교단'의 교주였다.
이 교단의 교의는 '인간의 영혼은 원래 신성을 가진 천상의 종족이었으나 츅체에 같혀 버렸기 때문에 생과 사를 반복하는 인생이라는 윤회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숫자로 자연의 질서를 바르게 배우면, 이윽고 영혼은 정화돼 더러워진 윤게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그리고 육체로부터 자유로워진 영혼은 이윽고 천상에 올라가 거기서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다. 즉, 피타고라스에게 수학은 수험 과목이 아니라 영혼을 구원하기 위한 도구였다.
"여자가 2고, 남자가 3인 것은 이성이 1이기 때문이다. 여자는 이성이 부족하다.
"무리수를 발견한 녀석을 죽여라! 질서가 무너진다." 신자들은 아주 성실했으나 진지하게 말할수록 이단색이 짙어진다. 결국 그들은 인근 주민이 불을 지르는 바람에 쫓겨났고, 피타고라스는 누에콩 밭 앞에서 목을 매 죽었다고 한다.
>> 여기 나오는 얘기와 같이 윤회라는 사상은 인도에서 처음 시작되진 않았다. 이전부터 많은 종교와 사상에서 윤회라는 사상이 있었고, 그것이 인도에서 힌두교의 기본사상으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종교라는 것은 얼마나 절대적인 것일까? 피타고라스에서 피보나치까지 자연의 수에 대한 연구는 계속되어 왔고 정말 신기하게도 자연은 수에 의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피타고라스 교단은 지금은 존재하지 않기에 역사속의 한 얘기처럼 보이지만 만약 피타고라스 교단이 성장해 지금까지 이어지고 많은 수학적 발견들이 덫붙여진다면 그리고 인류의 상당수가 이 종교를 믿고 있다면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봐야할까? 어떤 종교가 진정 세상의 이치를 알고 있는 것이고 절대적인 것인가. 어느 종교의 어느 사상이 옳은 것이고 어느 종교가 잘못된 것인가. 나는 종교란 우선 믿는 것이 아니라 비판해봐야 한다고 믿는다. 내가 믿는 종교만 옳고 다른 종교는 다 그르다고 정말 말할 수 있을까? 장담할 수 있을까? 무조건적인 맹신은 판단의 잣대를 흐트려 놓을 수 있다. 오히려 끊임없이 의심하고 질문하고 반문해봐야 한다. 피타고라스 교단이 정말 잘못된 말도 안되는 종교이고 내가 믿는 종교는 바른 종교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가에 대하여 생각해봐야 한다.

49p 소피스트의 대부분은 그리스 본토가 아닌 주변 식민 도시 사람들이다. 식민 도시는 탈레스가 있던 밀레토스 섬과 마찬가지로 예로부터 자연 철학인 발달해 주민들의 지적 수준이 높았다. 지자라고 불린 이들이 특별히 지적인 작업을 하러 아테네에 온 것이 아니다. 시민에게 변론술을 가르치러 온 것이다. 소피스트들은 돈 냄새를 맡고 그리스 전 지역에서 아테네로 몰려들어 시민에게 변론술을 지도했다. 왜냐하면 그들이 가르친 케크닉은 거의 궤변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너무 간단하고 나쁜쪽으로만 소개되었지만 소크라테스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소피스트를 제대로 알고 있어야 한다. 그들은 지식인이었고, 그리스 최고의 철학자들이었다. 사람들과 토론하고 만물의 이치에 대하여 논하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없었으면 소크라테스도 없었다. 그들 중 일부가 변질이 되서 돈을 받고 변론을 해주고 토론 및 법정에서 이기기 위해 궤변을 한 것이지 모두가 다 궤변론자는 아니었다. 우리 현 사회도 더하면 더했지 덜 하지는 않는다. 일부의 문제를 전체의 문제로 보면 안되는 것이다.

그리스 시대에는 변호사가 없었기 때문에 법정에 서면 보통 본인이 직접 얘기를 해야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논리있는 말하는 법을 배워야 했고 소피스트들에게 돈을 내고 변론술을 배우게 된 것이다. 이런 내용도 책에 좀 들어가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53p 소크라테스는 민주 정치가 위기 상황에 처해 있던 아테네에  나타나 모두 함께 지켜야 할 절대적인 선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54p 소피스트의 변론술을 비판하며, 인간이 선하게 사는 방법을탐구했다. 그는 무척 못생기고 키는 작았지만, 신체는 건강했고 토론과 남자를 좋아했다.

>>책에 소트라테스의 와이프에 대한 얘기들이 나온다.
"매미는 좋겠다. 부인이 말이 없어서..."
"아내의 잔소리가 나를 철학자로 만들었다."
"내 아내의 잔소리를 참을 수 있다며, 모든 인류에게 친절하게 대할 수 있다."
이 책에도 그렇고 다른 책에서도 소크라테스가 마치 극빈자처럼 묘사되어 있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는 안았던 것 같다. 그는 그리스의 시민이었다. 그래서 기본적인 생계의 걱정은 없었을 것이다. 집에 2명의 시종도 있었다. 출세를 하지는 않았지만 부유하지 않았던 것이지 결코 빈곤한 생활을 하진 않은 것으로 보인다.
58p 소크라테스가 사용한 수단은 '문답법'이다. 이 문답법은 '대화'를 함으로써 상대가 자기의 무지를 깨닫도록 돕는 수법이다.
60p 소크라테스는 이러한 문답법을 산파인 어머니의 직업에 빗대어 '산파술'이라 불렀다. 대화를 통해 상대방이 자기의 무지를 깨닫도록 함으로써 더 깊은 지니리를 산출하도록 했다.

64p 플라톤은 아테네의 귀족 출신으로, 젊었을 때는 정치에 뜻을 두고 있었다. 그런데 스승 소크라테스를 불합리한 죽음으로 몰고 간 아테네의 정치에 실망해 철학자가 됐다.
65p 모든 선의 기준이 되는 진짜 선이 어딘가에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알고 있다. 그러니까 여러 선이 나와도 우리는 그것들이 모두 선이라는 것을 안다. 플라톤은 이 진짜 선을 '선의 이데아'라고 불렀다.
이데아란, 이세상에 존재하는 만눌의 '본질이나 원형'을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만물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천상의 이데아계에 있다. 이에 비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세계는 불완전하다. 절대적인 선의 기준도 없지만, 영원불변한 것도 없다.
그렇지만 실망하지 않아도 된다. 왜냐하면 우리의 영혼은 이미 이데라를 알기 때문이다. 우리의 영혼은 원래 이데아계의 주민이다. 우리의 영혼은 윤회해서 현실 세계와 이데아계를 왔다 갔다 하고 있다. 그러니까 영혼만이 이미 이데아계를 알고 있으며, 알고 있기 때문에 이데아를 상기할 수 있다.
69p 플라톤은 '영혼의 삼분설'을 주장했다. 이것이 플라톤식 이상국가론이다.
"우리의 영혼은 이성, 의지, 욕망이라는 세 부분으로 이뤄져 있다."
- 이성. 이것은 정치가가 최대한 활용해 '지혜'라는 덕을 삼는다.
- 의지. 이것은 군인이 최대한 활용해 '용기'의 덕으로 삼는다.
- 욕망. 서민이 활용을 제어해 '절제'의 덕으로 삼는다.
  플라톤은 저서 '국가'에서 언급했는데, 이 책은 정말 무서운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책에 그려진 국가는 이상국가라고 할 수 없다. 사람들에게 자유란 없고, 있는 것은 영혼의 질서와 조화뿐이다. 특히 서민에 대한 언급이 심하다. 서민은 욕망을 제어해 절제의 덕을 세워야 하기 때문에 먼저 사유재산이 전부 몰수된다. 그리고 자식을 만드는 날도 정해져 있어 정부가 지정한 날에 일제히 부부관계를 맺어야 한다. 태어난 아이는 전부 정부가 맡기 때문에 부모 얼굴을 모른 채 다른 곳에서 자라야 한다.
이 계획은 행인지 불행인지 좌절됐다. 이계획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철인왕육성에 플라톤이 실패한 것이다.
71p철인왕은 지혜.용기.절제.정의의 네 가지 덕을 조화시키는 이상국가의 요소다. 플라톤은 '철인왕 육성 계획'을 수행하기 위해 왕을 교육하는 곳에 가서 기꺼이 수학을 가르쳤다. 그런데 왕은 수학을 싫어해 결국에는 플라톤이 잘렸다. "이 불완전한 현실세계에서 완전 무결한 철인왕을 만들려고 생각한 것 자체가 잘못이었다!" 플라톤은 이 말을 남기고 교육을 포기했다.
73p 플라톤은 남자를 좋아했던 남자였다. 이것은 플라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고대 그리스 전체가 기본적으로 양성애자였다.
도시국가였던 스파르타에서는 우수한전사를 육성하기 위해 동성애를 '시민의 의무'로 정했다.
74p 소크라테스는 미청년을 아ㅏ주 좋아했으며, 청년들에게도 인기가 있었던 듯하다.
"나는 너의 자태에 빠진 게 아니다. 너의 영혼에 빠진 거지."
플라톤의 '향연'에 따르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에로스의 양 옆에는 '우라니아'와 '판데모스'라는 두 아프로디테가 있는데, 우라니아는 고귀한 사랑, 판데모스는 저속한 사랑을 나타낸다. 여기서 고귀한 사랑이란, '청년이 소년을 사랑하는 것'을 말한다.
왜 고귀한가? 그것은 이 사랑이 육체에 빠지는 이성애와 달리 영원불변의 존재인 '영혼에 대한 사랑'이기 때문이다. 플라톤은 오후에 친구 집에서 술을마시고 인사불성이 돼서도 고귀한 사랑이 좋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러니까 이러한 육체 관계가 없는 사랑을  '플라토닉 러브'라고 하게 됐다.
이에 반해 저속한 사랑이란 '이성에게 향하는 사랑'을 말한다. 영원불변의 영혼보다는 영속성이 없는 육체에 빠지기 때문이다.
77p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 사상의 가장 핵심인 이데아론을 비판했다. 79p 원래 플라톤은 스승 소크라테스를 불합닐한 죽음으로 몰고 간 추악한 현실세계로부터 눈을 돌려 천상만을 바라보는 이상주의자였던 것이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그 플라톤을 비판하며 현실세계 안의 본질을 본다. 현실세계를 철저하게 관찰하고 자연과학의 기초를 만들어 '만학의 아버지'라고 불리게 됐다.
80p "인간에게는 이성이 있고, 그 이성을 100% 발휘하고 싶어 하는 욕구가 있다. 그 이성을 100% 발휘해 우주의 진리를 탐구하는 생활이 바로 우리에게 최고의 행복이며, 인간의 본분에 맞는 생활이다."
85p 아리스토텔레스가 어쩔 수 없이 권장한 국가 형태는 민주제다. 다만, 노예제라는 덤이 붙는다. 왜냐하면 정치만으로도 벅찬 시민이 일상의 잡다한 일까지 신경 쓰면 진리 탐구에 몰두할 수 없기 때문이다.
>> 이러한 사상은 시대를 거쳐 거의 모든 시대에 동일하게 사유 되어졌다. 흑은 노예제도는 말할 것도 없고, 우리나라 조선시대까지 계급을 나뉘고 양민과 평민 그리고 노예의 신분의 차이를 두었다.
인류 역사에 있어 계층척 분화가 없던적이 없고, 이런 문화는 지금 또한 그렇다. 단지 우리같은 평민이 귀족계층의 지배를 받고 있다는 생각을 못하고 있을 뿐이지 현대에 있어 '기득권층'이라 불리는 계층이 과거의 지배계층과 다를 바가 뭐가 있겠는가? 우리는 좀 더 현실을 냉철하게 볼 수 있는 눈이 필요하다. 그 시작이 과거를 이해하는 것이고 철학을 배우는 것이다.
89p 에피쿠르스학파의 쾌락주의를 아편굴 같은 이미지로 받아들이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어디까지나 그들이 추구한 것은 '정신적 쾌락'이다. 에피쿠르스는 이것을 '평정심(아타락시아)'이라고 불렀다.
90p 스토아학파는 금욕주의를 부르짖었다. 창시자는 제논이다. 금욕주의를 내세우고는 있지만, 그 방향성은 쾌락주의인 에피쿠로스학파와 거의 같다. 제논은 자연의 질서와 법칙(로고스)에 따라 사는 것이 인간의 행복이라고 받아들였다.
제3장 서양 근대 철학
153p 베이컨의 경험론은 '자신의 눈으로 본 것'을 중시한다. 즉, 실험이나 관찰과 같은 감각적 경험에서 올바른 지식을 얻고, 그 지식을 자연을 이용하고 지배하기 위해 사용한다. 바로 베이컨의 명언대로 '아는 것이 힘'이다.
그리고 그 지식을 더기 위한 수단이 '귀납버'이다.
귀납법은 '개개의 사실 -> 실험과 관찰 ->진리의 법칙을 얻는다'는 것이다. 실험과 관찰을 중시한 이상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그것은 관찰을 하는 자신의 눈이 편견으로 흐려 있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163p 데카르트가 먼저 발견한 것은 '의심하는' 자신의 사고의 작용이 지금 이 곳에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자신의 정신 작용이 지금 여기에 있다는 것은 그 사고의 주체인 나 자신의 육체도 지금 여기에 존재한다는 말이 된다. 이것이 데카르트의 유명한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는 말이다.
데카르트는 이것을 '철학의 제1원리'로 삼았다. 즉, 그의 철학은 의심할 수 없는 자기의 정신을 사용해 의심할 수 있는 모든 사물을 고찰한다고 하는 형태가 된다. 이것이 바로 자신의 머리로 생각하는 합리론니다.
165p 이와 같이 이성의 움직임을 중시하는 합리론에서는 과학적인 개년도 당연 그와 같은 형태를 취한다. 이것이 '연역법'이다.
이것은 베이컨의 '귀납법'과는 반대되는 사고 패턴이다.
즉, '진나나 법칙 -> 추리와 추론 -> 개개의 사실으르 추측한다.'는 방법이다.
제4장 계몽사상
172p 독일의 철학자 칸트는 그의 저서 '계몽이란 무엇인가'에서 계몽을 '미성년의 상태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미성년이란, 타인의 지도 없이는 이성을 발휘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우리는 누구나 이성을 갖고 있다. 그러나 사용하라 수 없다. 사용하는 것이 무섭다. 잘못 하용해 교회로부터 화형당할까 무섭니다. 왕에게 목이 날아가는 것이 두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이성을 봉인했다. 그러니까 칸트는 호소한다."아는 용기를 갖고, 사용하는 용기르 가져라"라고...이것이 칸트가생각하는 계몽이다.
176p 볼테르는 프랑스에 귀국한 후 뉴턴의 물리학, 로크의 정치사상 등과 같은 영국의 문물을 소개했고, 사람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당연하다. 그것은 영구에서는 단지 과학이나 정치 책이라도 프랑스인의 '눈으로 보면 '혁명의 선구자들의 사상' 이니까.
사람들은 영국의 문물을 읽고 거기서 힘을 얻었다. 이렇게 해서 단지 무지몽매에 이성의 빛을 비췄을 뿐인 계몽사상은 프랑스에서 차츰 '혁명을 정당화하는 사상'으로 변해갔다.
178p 국왕은 교회와 결탁해 벽과전서파를 탄압했다. 그러나 그들은 거기서 그만두지 않았다. 지하에 숨어 집필을 계속했고, 결국 이 대작을 완성했다. '백과전서'는 총 35권, 약 30년이라는 세월이 걸린 초대작이다.
'백과전서'의 내용은 이미 백과사전이 아니라 이성의 빛으로 프랑스인에게 사고의 혁신을 불러일으키는 계몽사상의 집대성과도 같은 작품이었다.
제5장 독일 관념론 철학
칸트가 음미하고 검토한 것은 인간의 '이성의 능력'이다. 그 결과 아주 배미있는 사실 하나를 발견했다.
'인간에게는 이성이 2개 있다.'는 것이다. 칸트에 따르면 인간에게는 '이론이서어'과 '실천이성'이 있는데 재각기 취급하는 영역도 다르다. 이ㅣ론이성은 자연과학세계, 실천이성은 도덕세계에 관여한다. 그리고 칸트 철학에서는 이들의 움직임이나 한계를. 보면서 최종적으로 도덕세계의 확립을 목표로 했다.
188p 종래 인식론'인식이 대상으 따른다.'라고 했다. 하지만 칸트는 다르다. 칸트는 '대상이 인식을 따른다.'라고 한다.
189p 인간의 인식 능력에는 한계가 있다.
칸트느 이 충격적인 발견을 '인식의 코페르니쿠스적 회전'이라 불렀다. 즉, 종래의 '노력하면 뭐든 알 수 있다.'에서 노력해도 알 수 없는 세계가 있다'는 전환이다. 바로 180도 회전하는 '뒤로 돌아'다.
지금까지의 철학은 렌즈 바깥쪽에 펼쳐진 세계라도 '노력하면 보인다'라고 믿고, 근시 나안 시력으로 그 주변을 억지로 보려고 했다. 하지만 이것은 불가능한 데다, 철학이 볼래 해야 할 일이 아니다.
칸트에게 있어 철학이 해야 할 것은 가능하지도 않은 '세계의 본체'인식이 아니라 '인간은 어떤 세계를 목표로 해야 하는지'를 생각하는 것이다.
196p 헤계릉 칸트의 자율을 '내면적 자유'라 부루렀다. 왜냐하면 칸트의 자유는 너무나도 내면세계에서 자기 완결돼 있기 때문이다.
197p 헤겔은 인간의 자유를 향하는 행동의 축적이 사회나 역사를 발전시켰다고 하는 역사관을 명확히 갖고 있다.
인간은 왜 이와 같이 역사 속에서 자유를 향한 행동을 하는 것일까? 헤겔에 따르면 그것은 자신의 의지가 아니다. 우리는 자유를 본질로 하는 뭔가에 의해 조종당해홨다.
헤겔은 그 뭔가의 존재를 절대 정신(세계정신)이라고 했다.
198p 절대정신은 우주의 근원에 있는 커다란 정신 또는 이성으로, 자유를 본질로 하는 신과 같은 존재다. 그 하나님은 이 세상에 자유를 늘린다. 왜일까?
그것은 자신이 자유를 아주 좋아히기 때문이다. 특별히 인간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인간을 위하기는 커녕 자유를 위해서라면 인간들을 이용한다. 인간 세계에 때때로 영웅이 나타나 혁명을 일으키는 것은 바로 그것이다. 절대정신은 약삭빠른 녀석이다. 헤겔은 이것을 '이성의 꾀'라고 했다.
201p 헤겔철학에서는 대립에 의해 더욱 높은 곳으로 비약하는 것을 '변증법적 발전'이라 한다.
변증법은 정확히 말하면 어떤 것과 대힙함으로써 보다 나은 것을 만들어내는 운동이다. 이 발전법칙은 다음 세 단계를 거친다.
정 - 있는 것(테제)만이 존재하고, 대립물은 아직 없는 상태
반 - 그것과 대립하는 다른 것(안티테제)가 나타난다.
합 - 양자가 서로를 부정하면서도 좋은 부분은 남겨 보다 나은 것(안티테제)을 만들어 낸다. 이보다 나은 것을 만드는 운동을 지양이라 한다.
제6장 공리주의
211p 공리주의는 행위에 대한 선악의 기준을 '쾌락이나 행복을 가져다주는가, 아닌가'로 판단하는 개념이다. 공리주의에서는 선악을 판단하는 잣대가 '괘락과 고통'이다. 쾌락의 증대가 선이고, 고통의 증대가 악이라는 개면이다. 이 사상의 제창자는 벤담이다. 그는 법과 사회의 근저에 있어야 할 '정치목표'와 '도덕원리'를 발견했다. 그거서이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과 '쾌락이야말로 선'이라는 것이었다.
216p 벤담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쾌락의 양을 늘리기 위한 정책을 펴나가자고 제안했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쾌락의 양의 합=사회 전체의 쾌락의양'을 늘리는 것이 가장 자연스런 사고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벤담의 공리주의, 소위 '양적 공리주의'다. 여기에 가장 중요한 개념이 '만인은 평등하다'는 인간관이다.
217p  벤담의 이러한 생각은 '1인1표'의 보통 선거 실현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231p 존 스튜어트 밀은 단 한 번도 학교를 다닌 적이 없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벤담의 공리주의를 중심으로 강의했다. 이 외에도 밀이 3세 무렵부터 그리스어를 가르치고, 플라톤과 소크라테스의 철학을 배우게 했다. 또한 10세 때부터는 경제학을 가르치고 13세 때는 아버지의 친구이며, 경제학자인 리카도의 '경제학 및 과세 이론'을 읽게 했다.
234p 밀은 쾌락의 '질;'에 집착했다. 즉, 그는 '육체적 쾌락보다 정신적 쾌락이 위헤 있다.'라고 생각했다. 이것은 벤담이 '질보다 양'에 집착한 거서과는 대조적이다.
'만족한 돼지보다 불만족한 인간이 낫고, 만족한 바보보다 불만족한 소크라테스가 낫다.' (공리주의론)
239p 밀은 '각자가 자신에게 맞는 쾌락을 추구함으로써 가능하면 많은 사람이 행복해지는 사회'를 꿈꿨다. 인간에게는 질적 차이가 있는 것이 당연하니까 말이다.
제8장 정신분석학
328p 프로이트는 인간의 마음에는 세각지 층이 있다고 했다.
1. 에스(이드) - 무의식에 자리 잡은 본능적 추우동. 리비도를 원천으로 한다.
2. 슈퍼에고(초자아) - 주로 의식 부분에 형성된 '도덕적 양심'
3. 에고(자아) - 1과2 양쪽에 걸쳐 있으며, 양쪽을 조절한다.
339p 인류 공통의 무의식이 있고, 그 속에 전 세계가 공유하는 공통의 이미지인 '근원'이 있다. 융은 이것을 '원형'이라고 불렀다.

>> 이렇게 까지 많이 쓸 생각은 아니었는데 쓰다보니 어쩔 수 가 없었다. 그래도 이렇게 써 놓으니 이 글을 읽는 사람한테 조금의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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