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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촌을 걷는다 - 과거와 현재를 잇는 서울역사산책
유영호 지음 / 창해 / 2018년 6월
평점 :
요즘 좀 특이한 책들을 만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저자에게는 미안한 말일 수도 있지만 나에게 이런 책은 좀 생소하다. 이런 책도 있구나.
공기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서촌을 걷는다>>는 나에게 그런 책이었다. 서울의 북쪽 항상 그곳에 있었고, 매일 지나다니면서도 음...항상 그렇게 있는 곳. 그곳이 우리나라 역사가 숨 쉬는 곳이고 그 역사와 함께 많이 아파하고 많은 추억이 있는 곳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솔직히 없다. 매일 지나다니던 길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고 거리를 사랑하게 만드는 책이다.
작가: 유영호
1990년 연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자기가 살고 있는 땅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통일로 가는 첫걸음이라고 생각하게 된 저자는, 최근 대한민국 중심부인 서울의 역사와 기행에 대한 글쓰기에 관심을 쏟고 있다.
그동안 펴낸 책으로 '하나를 위하여', '북한영화, 그리고 거짓말', '21세기 민족주의'(공저), '한양도성 걸어서 한바퀴'등이 있다.
머릿말
4p 겉으로 보기에 서촌은 지극히 평범한 강북의 한 지역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곳에는 한양으로 천도한 조선왕조 500여 년과 근현대 우리의 역사가 켜켜이 쌓여 있다. 조선의 법궁이었던 경복궁부터 청와대, 정부종합청사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한반도의 심장부라고 할 수 있겠다. 따라서 한발 한발 내딛는 곳마다 역사교과서를 펼치듯 수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다. 그것들을 한 꺼풀 벗기면 사랑과 증오, 전쟁과 평과, 애국과 매국 등 우리 선조들의 삶이 눅진하게 녹아난다. 그래서 나는 서울 속 마을여행 첫번째로 서천을 선택했다.
이 책을 보는 내내 이 책을 어떻게 서평을 써야 하나 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서촌을 걷는다'는 정말 서촌을 걷듯이 느릿느릿 봐야 하는 책이다. 단숨에 넘겨볼 수 있는 책이다. 읽으면서 자신의 추억과 서촌의 역사와 우리나라 역사를 하나하나 떠 올리며 그 그림들을 맞춰가면서 천천히 봐야 하는 책이다. 그리고 책의 내용을 가져오기 시작하면 한 권 전체를 통째로 가져와야 할 것 같은 느낌이 있다. 어느 거리는 소중하고 어느 거리는 안 소중한 곳이 있는가? 그냥 그 거리는 그 거리로 소중하고 내 기억은 내 기억대로 소중하고 역사는 역사대로 소중하다.
책은 크게 5섯 챕터로 나누어져
1장 느리게 걸어보자 서촌에서는 주로 길에 관련된 얘기들이 나온다.

한양도성은 재사산(백악-낙산-남산-잉ㄴ왕산)ㅏ을 따라 축조되었다. 그런데 이 산들은 한반도가 동고서저 지형인 것과 달리 경복궁을 중심으로 서고동저 형태를 띤다. 그로 인하여 한양도성을 관통하는 내명당수 청계천 역시,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르는 외명당수 한강과 반대로 흘러 풍수상 좋다고 평가받는다.15p
1917년 지하철 1호선 설계 당시 동아일보사 건물의 일부를 철거해야 전동차가 시청역과 종각역 사이에서 정상적으로 운행될 수 있었다. 하지만 동아일보의 반대로 철로가 90도 가까운 직각 형태로 꺾이게 되었다. 그로 인해 전동차가 이 구간을 지날 때면 운행속도를 급격히 줄여야 한다. 또한 철로의 마모를 막기 위해 많은 양의 윤활유가 사용된다. 시민들 세금으로 그러한 일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세종대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조선일보사가 위치한 곳에 이르면 광화문에서 청계광장 입구까지 이어지던 차선 2개가 사라진다. 조선일보 사옥이 도로를 점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 자료에 따르면, 그로 인해 차량 1대당 평균 12초가 지체되며 연료 소비량 등 교통혼잡 비용이 크게 증가한다고 한다. 21p
2장 역사와 문화의 보물창고 서촌에서는 역사의 현장들 속에서 서촌은 어떻게 쓰여졌는가에 대한 얘기들이 나온다.
조선 말기 및 일제시대 최고 부자는 단연 친일파 민영휘였다. 삼청장은 민영휘의 막내아들 민규식 소유였다. 우리나라가 해방되고 정국이 변하자 민규식은 임시정부 부주석을 역임한 우사 김규식에게 그곳을 쓰게 했다. 하지만 1950년 12월 평북 만포진 부근에서 김규식이 사망함으로써 다시 민규식 소유가 되었다. 2007년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는 민영휘 후손 명의의 재산을 국고로 환수했다. 2009년 한국자산관리공사가 이를 공매했고, 결국 중앙일보 홍석현 회장에게 낙찰되기에 이른다.
삼청장을 낙찰받은 총석현 집안은 어떤가. 그의 부친 몽진기는 일제강점기에 판사를 지낸 친일파로, 2009년 발간된 '친일인명사전'에 올라 있다. 총지니기의 장인인 김신석 역시 총독부 중추원 참의로 재임했으며, 1944년 '경성일보'에 "조선의 부형들은 어린 딸을 여자 정신대로 안심하고 보내라"는 글을 기고했다. 그 또한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어 있다.
홍진기는 1959년 법무부장관으로 재직하며 죽산 조봉암의 사형 명령에 서명했고, 다음날 조봉암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갔다. 뿐만 아니라 1960년 내무부장관 시절에는 4.19 시위자들에게 발포명령을 내렸다. 그는 4.19 이후 사형선고를 받았지만 시간이 흐른 후 석방되었고, 이병철과 사돈을 맺은 뒤 중앙일보 사장에 올랐다.
위에서 언급한 친일파들은 모두 사망한 상태이다. 하지만 그 뿌리는 여전히 뽑히지 않았다. 민영휘의 아들 민규식 소유의 삼청장이 홍진기의 아들 홍석현 소유가 되었으며, 이병철의 아들 이건희는 홍진기의 사위가 되었다. 참으로 질긴 친일의 역사가 아닐 수 없다. 78p
3장서 부터는 서촌의 좀 더 세세한 얘기들이 나온다.
3장 수많은 예술가들의 둥지 서촌 에서는 예술가들이 살았던 집에 대한 얘기들이 나온다.
노천명이 졸업한 '진명여고'는 1906년 설립되었으며, 현재 양천구 목동에 위치해 있다. 하지만 본래는 경복궁 서쪽 담장 바로 옆 종로구 창성동에 있었다. 노천명 외에도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 나혜석의 모교이며, 탤런트 전양자, 아나운서 신은경, 국회의의원 임수경 등이 그곳을 졸업했다.
진명여고는 고종의 후궁인 순헌 황귀비 엄씨가 조카인 엄준원에게 땅을 하사해 설립되었다. 학교명인 진명은 '나아가서 밝힌다.'는 의미를 지닌다. 이는 학교의 교육방침인 진덕계명, 즉 '덕을 쌓고 학업을 닦아서 나의 빛으로 겨레와 온우리를 밝게 비춘다'는 뜻의 약어이다. 110p
4장 도심의 살아 있는 박물관 서촌 에서는 인물 중심의 역사 얘기들이 나온다.
박노수 가옥에서 100미터도 안 되는 연립주택 잠장에 신인 '윤동주가 하숙했던 집' (종로구 누상동 9)이라는 안내판이 보인다. 그곳은 윤동주가 존경하던 소설가 김송의 집이었다. '별 헤는 밤', '자화상','또 다른 고향' 등 윤동주의 대표작들이 1941년 그곳에서 하숙하던 시절 창작되었다고 소개되고 있다. 135p
미 국무부의 대일강화조약 작성시 1~5차까지의 초안에는 독도가 한국령으로 기술되어 있었다. 그런데 일본의 로비를 받은 미국이 독도를 일본 영토에 포함시키려 했다. 하지만 뉴질랜드와 영국이 반대하자, 일본과 한국 어디에도 포함시키지 않은 채 독도를 아예 빼버렸다. 여기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독도는 일본령이라며 미국이 일본을 지지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독도에 대해 한국령이라고 말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177p
이완용은 한일합방이 이루어지자 1913년 12월 옥인동에 새 집을 짓고 이사했다. 이완용의 전기 '일당기사'(1927)에 따르면, '조선조와 서양조를 혼용하고, 내사는 조선 구식에 약간 개량을 더하고 외사는 순 양식으로 한 2층짜리 건물'로 적혀있다. 총 3,700평 규모이다. 당시 식민지로 전략한 조선에서 이완용은 총독부로부터 백작 작위와 은사금 15만 원을 받고 일선에서 물러나 여유롭게 생활했다. 그는 세상의 힘이 어디로 향하는지,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자신에게 이익인지 명민하게 판단하고 반응했다. 죽기 전 아들에게 "내가 보니까 앞으로 미국이 득세할 것 같으니 너는 친미파가 되거라"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에게는 진정한 의미의 조국이 존재하지 않았다.
5장 우리가 몰랐던 서촌 에서는 우리가 몰랐던 서촌에서 벌어진 역사 이야기들이 실려 있다.

서울맹학교와 서울농학교가 신교동에 있는데 영조의 후궁이며 사도세자의 생모인 영빈이씨(1696~1764)의 사당 '선희궁'이 있던 자리이다. 운동장 왼쪽에 일부 건물이 남아 있으며, 운동장 밑으로 궁벽을 이룬 돌들을 볼 수 있다. 선희궁을 만든 후 궁정동에서 그곳으로 넘어갈 수 있게 다르를 놓아 이 일대를 신교동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학교 정문으로 들어서면 왼쪽에 커다란 조각물이 있다. 개교 100주년 기념비인데, 두 손을 마주하는 모양새이다. 농학교의 건물 뒤쪽으로 세 칸의 맞배지붕을 한 작은 제각이 있는데, 학교 담장과 더불어 유일하게 남은 선희궁의 흔적이다. 219p
'서촌을 걷는다'는 시간순으로 배열되어 있지 않고, 직접 걸어라는 공간의 유사성 형성으로 구성되었다. 그래서 마치 작가가 나와 함께 걸어 다니며 골목 하나하나에 숨겨져 있는 역사 이야기를 해주는 것 같은 느낌을 들게 한다.
이 책의 많은 부분은 현대사 위주이기 때문에 일제 강점기 시대의 우리의 모습과 그것들이 현재에 미친 영향을 서촌에 어떤 모습으로 남아있는지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