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가 지어낸 모든 세계 - 상처 입은 뇌가 세상을 보는 법
엘리에저 J. 스턴버그 지음, 조성숙 옮김 / 다산사이언스(다산북스) / 201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한 줄 평 : 뇌과학 전공서적으로 쓰여도 될만한 현재까지 밝혀진 뇌에 관한 거의 모든 것에 대한 최종 정리본

 

 

저자소개 : 엘리에저 스턴버그

엘리에저 J. 스턴버그 박사는 예일대학교 예일-뉴헤이븐병원의 신경과 상주의다. 그는 신경과학과 철학에 바탕을 두고 어떻게 하면 뇌 연구를 통해 의식과 의사결정의 신비를 밝힐 수 있는지 탐구한다. 17세에 그의 첫 책 『우리는 기계일 뿐인가(Are You a Machine?)』를 출간해 철학과 신경과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저술가로의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22세에 출간한 『뇌가 나를 그렇게 만든다(My Brain Made Me Do It)』는 전작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간 논의를 전개하며 뇌의 결함이 있는 사람의 도덕적 책임이라는 문제의식을 드러냈다. 이 책으로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이 주목한 젊은 과학저술가로 선정되었다. 지금도 《워싱턴포스트》 《파이낸셜리뷰》 《GQ》 등 다수의 매체에 기고하며 과학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책 소개

『뇌가 지어낸 모든 세계』의 부제는 '사어 입은 뇌가 세상을 보는 법'이라고 되어있다. 부제처럼 이 책은 뇌의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 행동하는 패턴에 대한 예시들이 상당히 많이 나와 있다. 뇌의 작동원리는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결과로 보이는 것을 가지고 추정하는 방식이 일반적인 연구 방법이다. 그렇기에 뇌의 상처를 입은 사람이 행동하는 패턴을 통해 뇌의 어느 부분에서 어떤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는 것을 추론하게 된다. 이런 방식을 통해서 현재까지 알아낸 것들을 조합해보면 우리는 뇌의 메커니즘에 상당히 접근해 있다. 그리고 이 책은 그런 수많은 사례들을 정리하고 분석해서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막연히 알고 있던 뇌에 관한 파편적인 지식들이 이 책을 일고 나면 한 권의 백과사전을 보듯 정리되고 연결되고 이해된다. 자칫 어려운 이야기로 이해하기 힘든 내용이 되어버릴 수 있지만 저자의 친절하고 상세한 설명은 뇌과학에 지식이 많지 않은 사람일지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개인적으로 정말 찾고 있던 책이고 관심분야의 책이어서 더욱더 반갑다. 이런 책을 써준 작가에게 감사한다.

의문인 점은 뇌 부위를 설명할 때 '배안쪽이마앞엽겉질'과 같이 생소한 단어를 쓰고 있다는 점이다. 보통 'ventromedial prefrontal cortex'은 '복내측 전전두피질'처럼 통용되고 있는데 '배안쪽이마앞엽겉질'과 같이 표기법이 바뀐 것인지는 아직도 의문이다.

이런 사람은 보세요

나는 예전부터 심리학과 뇌과학에 관심이 있었다. 나처럼 심리, 뇌과학 등 사람이 행동하는 원리에 대해 호기심이 많은 사람들에게는 꼭 추천해주고 싶다. 그동안 수많은 심리학 책과 뇌과학 책을 읽었지만 이렇게 그 원리에 대해 다양한 문제를 체계적으로 설명해 준 책은 없었다. 그간의 독서에서 과연 뇌과학 최고의 책으로 뽑고 싶은 책이다. 몇 번이고 다시 읽어도 좋을 만큼 기억하고 싶은 것들로 넘쳐난다.

 

책 속에서

습관

배안쪽이마앞엽겉질은 이런 흥분을 불러일으키는 중요 영역 가운데 하나다. 이 영역은 어떤 특정한 경험이 높은 보상을 가져온다고 예상할 때마다 활성화된다. 이것은 긍정적 강화를 일으켜 그 행동을 계속하라고 부추긴다. 따라서 음식이 놓이기를 들뜬 마음으로 기다릴 때 배안쪽이마앞엽겉질은 높은 보상을 감지하고 신호를 멀리까지 보낸다. 하지만 일단 배가 부르면 이런 반응은 확연히 줄어든다.

이처럼 배안쪽이마앞엽겉질은 하나의 피드백 회로에 관여한다.배안쪽이마앞엽겉질은 배고플 때는 먹는 행위를 긍정적으로 강화하지만 나중에는 먹고 싶은 마음을 없애고 포만감을 느끼게 만든다.

이 실험 결과는 배고프지 않은데도 자꾸 먹으려고 하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습관 체계에 통제권을 넘기는 순간 자동으로 먹게 된다. 105p

의사들은 과식할 수 있기 때문에 텔레비전을 보면서 밥을 먹지 말라고 강조한다. 수동적으로 텔레비전을 보는 순간 텔레비전이 의식계의 독점권을 가져간다.그러므로 텔레비전을 보면서 포테이토칩을 먹으면 습관 체계가 그 행동을 장악한다. 멍한 상태에 있을 때에는 의식적으로 행동을 통제하는 능력이 유예되고 미리 프로그램된 절차에 따라서만 행동한다. 106p

수면의 4단계

1단계는 잠이 들락 말락 하는 상태로 잠에서 쉽게 깨며, 깬 다음에는 자신이 자고 있었다는 것조차 깨닫지 못할 수 있다.

2단계는 근육의 긴장이 풀리는 상태이지만 가끔은 자발적 근육 수축이 일어날 수 있다. 심박수가 느려지고 체온이 낮아지면서 깊은 수면에 들어갈 채비를 마친다.

3단계는 서파 수면이라고도 하는데, 전체 수면 사이클 가운데 가장 깊은 잠에 빠지는 단계다. 야경증이나 야뇨증은 이 서파 수면 단계에서 생기며 몽유병 증상도 이 단계에서 나타난다.

마지막은 근육이 완전히 마비되는 렘수면 단계다. 이 렘수면 단계에 들어갔을 때 생생한 꿈을 꾸게 된다. 근육이 마비되어 있으므로 꿈이 생생해도 실제로는 움직이지 못한다. 그러나 서파 수면 단계에서 꾸는 꿈은 그렇지 않을 수 있다. 114p

멀티태스킹

멀티태스킹의 핵심은 습관적으로 해도 잘할 수 있는 작업이 한 가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오렌지 껍질을 까는 일은 좋아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거나 친구와 전화로 수다를 떠는 동안에도 쉽게 할 수 있다. 그러나 텔레비전을 보거나 통화를 하면서 물리학 교과서의 내용을 이해하기는 매우 어렵다. 물리학 공부는 자동 처리가 불가능하고 의식적으로 집중해야 한다. 123p

심적 시연(mental rehearsal)

샷을 치기 전 내 머릿속에서는 영화가 펼쳐진다. 영화 장면은 이렇다. 먼저 나는 내가 끝내길 원하는 곳에 있는 공을 본다. 깨끗하고 하얀 공이 선명한 녹색 잔디밭에 떨어져 있다. 그리고 내 누에는 그곳으로 향하는 공이 보인다. 공의 경로와 궤도, 심지어 떨어지는 움직임까지도 훤히 보인다. 다음 장면에서는 이런 이미지를 현실로 바꾸려면 내가 어떤 스윙을 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이 머릿속 영화야말로 내가 모든 샷에 집중하고 긍정적으로 접근하는 비결이다. 127p

신체 훈련 집단만큼은 아니지만 심상훈련(페틀렙 훈련)을 한 집단도 눈에 띄는 실력 차이를 보였다. 게다가 신체 훈련을 심상 훈련으로 보완한 집단은 실력이 더 향상되는 효과까지 거두었다. 136p

하품의 전염과 거울신경

피험자들이 하품 전염을 경험하는 동안 거울신경 네트워크의 일부로 알려진 아래이마이랑(하전두회)에서 볼드 신호가 점화되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피험자들이 무표정이나 웃는 표정을 보는 동안에는 거울신경 네트워크가 잠잠했다. 149p

거울신경이 다른 사람의 경험을 시뮬레이션하는 것처럼 신체표지는 우리 자신의 과거 경험을 시뮬레이션한다. 특정한 음식, 장소, 경험과 관련된 감정적 반응은 비슷한 상황에 직면하거나 그와 관련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갑작스럽게 되살아난다. 161p

기억의 기억 방식

행동 데이터를 수집한 결과 팬들은 자기 팀이 불리했던 경기보다 유리했던 경기를 더 잘 기억했다. 그러므로 긍정적 감정의 기억은 부정적 감정의 기억보다 더 정확한 경향이 있다. 178p

스냅사진으로 구성된 경험을 짜 맞출 때 뇌의 무의식계는 자기중심 접근법을 취한다. 우리는 경험을 떠올릴 때 개인사에 중요한 부분을 의식적으로 기억한다. 185p

인생

뇌는 기저의 논리에 따라 우리의 경험을 해석하고, 기억을 암호화하고, 개인사를 기록한다. 무의식계는 우리의 인생을 담은 여러 스냅사진 사이에서 연관성을 만들어내고 각 순간마다 우리의 감정을 관찰해 무엇을 강조할지 결정한다. 그리고 그 스냅사진들을 배열하고 정리해 통일되고 간명한,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사직이고 내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우리가 의식하는 인생이 된다. 207p

내가 나를 간지럼 태우지 못하는 이유

자기 몸을 간지럼 태우려고 할 때 원래 목표한 행동의 복사본이 감각계에 전해지고 수반 방출이 만들어진다. 수반 방출이 실제의 감각 경험(의도한 시간과 패턴대로 갈비뼈를 따라 손가락이 움직일 때의 느낌)에 들어맞으면 뇌는 일치 신호를 감지하고 수반 방출은 간지럼의 효과를 약화시킨다. 즉 뇌는 간지럼 괴물이 언제 어떻게 다가올지 알면 스스로 방어할 준비를 한다. 감각이 상쇄되어 취소되고 잔지럽다는 느낌을 받지 않는다. 281p

조현병 환자가 자기 손으로 직접 간지럼을 태웠을 때의 느낌과 실험자가 그들 손을 간지럼 태웠을 때의 ㄴ느낌을 비교한 연구에서 그들은 똑같은 수준의 간지럼을 느꼈다! 조현병 환자들은 자아와 비자아를 구분하지 못하는 범지구적 문제로 인해 나머지 사람들이 하지 못하는 것을 이루어냈다. 그들은 스스로를 간지럼 태울 수 있다. 282p

기시감(데자뷰 deja vu)

잘못된 정보를 접수한 후 무의식계는 이상한 상황에서 말이 되는 이야기를 만들어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자신의 증상에 대한 브랜던의 설명은.... 논리적이다. 수면마비라고 혼란스럽고 무서운 현상을 겪은 사람의 뇌는 추후 그 현상을 해석해야 한다. 기이한 경험에는 기이한 해석이 따르는 것이 당연하다. 그래서 뇌는 외계인 납치 같은 해석을 생각해낸다. 정말로 이상하지만 그것이 딱 맞는 설명이다. 이런 해석에는 감정적 경험을 풍이할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사건에 대한 인간의 호기심을 충족시키려는 무의식계의 성향이 반영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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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엔젤의 마지막 토요일
루이스 알베르토 우레아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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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평 : 유쾌하고 재미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멕시코인 특유의 유쾌함이 책 속에 가득 담겨있다.

 

저자 소개 : 루이스 알베르토 우레아

1955년 멕시코 티후아나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멕시코인, 어머니는 미국인으로, 멕시코를 비롯한 남아메리카와 미국에서 생활한 경험을 바탕으로 사랑, 상실, 승리, 죽음 등의 주제를 글로 썼다. 시, 소설, 수필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16권의 책을 출간했으며 펜포크너상, 에드거상, 라난 문학상을 비롯한 여러 상을 수상했다. 2005년에는 『악마의 고속도로(THE DEVIL’S HIGHWAY)』로 퓰리처상 논픽션 분야 최종 후보에 올랐다.

『빅 엔젤의 마지막 토요일』은 형의 마지막 생일 파티에 영감을 받아서 쓰게 된 소설로 뉴욕타임스 주목할 만한 책 TOP 100, 뉴욕타임스 북 리뷰 선정도서, 뉴욕도서관 올해의 추천도서, NPR 올해의 책 등에 선정되었으며,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최종 후보에 올랐고, 할리우드 TV 영상화를 앞두고 있다.

루이스 알베르토 우레아는 일리노이주 네이퍼빌에서 가족과 함께 살고 있으며 일리노이 대학 시카고 캠퍼스에서 문예 창작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역자 : 심연희

연세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독일 뮌헨대학교에서 언어학과 미국학을 전공했다. 현재 영어와 독일어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며 다수의 저서를 옮겼다. 그중 대표적인 것으로 『퍼펙트 마더』 『어른이 되기는 글렀어』 『고양이는 내게 행복하라고 말했다』 『마쉬왕의 딸』 『이사도라 문』 시리즈, 『캡틴 언더팬츠』 시리즈 등이 있다.

 

엔젤의 마지막 토요일

데 라 크루스 가문의 맞이인 미겔 엔젤을 가족들은 '빅 엔젤'이라고 부른다.

빅 엔젤은 자신의 70번째 생일을 얼마 안 남겨두고 암 선고를 받는다. 앞으로 남은 시간은 한 달밖에 없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만다. 가족들은 멕시코와 미국 전역에 흩어져 살고 있었기에 가족들을 모으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어머님의 장례를 1주일 미뤄 자신의 생일 파티와 함께 하는 것으로 일정을 조정했다.

그 날짜가 되자 가족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멕시코인 특유의 유쾌함이 소설 전반에 넘쳐흐른다. 장례식과 생일 파티라는 정반대 성격의 행사를 동시에 치르면서 벌어지는 작은 사건들과 그들의 인생에 걸친 많은 에피소드들은 죽음이라는 묵직한 소개를 멕시코인 특유의 유쾌함으로 바라보게 한다.

소설 전반에 흐르는 기운은 유쾌함이지만 그들이 살아온 삶은 결코 유쾌하고 즐거운 삶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멕시코인으로서의 슬픔과 애환이 있었다. 미국으로 가려고 국경을 넘으려다 겪은 고초는 수다스러운 말투로 가볍게 웃으며 마치 옆에서 자신의 재미있었던 과거 사건을 얘기해주는 것과 같이 편하게 들을 수 있다.

몸의 반이 움직일 수 없는 빅엔젤은 아이들에게 몸 절반이 잘려나갔다고 장난스럽게 말하고 아이들은 그 뜻을 이해 못 하는 모습 속에서는 웃음을 자아낸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얼마나 힘든 일이었을까? 그런 일들을 이렇게 유쾌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삶을 대하는 태도일 것이고 그 자신이 살아가는 방식일 것이다.

중간중간 나오는 빅엔젤의 아내 페르라 와의 대화 속에서는 70의 나이와 몸이 성하지 않지만 아직도 아름다운 사랑의 모습을 보여주는 모습을 보며 건강보다 더 소중한 것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과의 관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내가 삶을 대하는 태도는 나의 삶에 그대로 영향을 미치고 다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말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끼친다. 그리고 다시 그 사람들도 그런 말을 통해서 사랑이 다시 돌아오곤 한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즐거움을 잃지 않는 모습을 보며 어차피 벌어질 사건이라면, 그 속에 존재하는 사람이 받아들이는 방법을 조금만 바꾼다면 이렇게 삶을 유쾌하고 즐겁게 느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는 고개를 젓고 전화를 받았다.

"지금 자정이다! 난 죽어가고 있고!"

리틀 엔젤이 말했다.

"들어봐. 형은 오늘 밤에 죽지 않을거야."

"아니, 죽어가고 있어."

"아니라니까. 드라마는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고. '빅엑시트'를 생각해봐, 형. 레이먼드 챈들러라면 이 상황을 어떻게 끝낼 것 같아?"

빅 엔젤은 페를라를 보며 속삭였다.

"이 자식이 날 귀찮게 해. 내가 죽지 않기를 바라고 있네."

나도 내 죽음을 앞두고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 내일 당장 죽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이렇게 유쾌하고 경쾌하게 말할 수 있을까? 그것도 70의 나이에?

내가 지금 사는 방식대로 산다면 그렇게 하지는 못할 것 같다. '죽음'을 앞에 두고 그렇게 쉽게 '죽음'을 입에 담지는 못할 것이다. 어떤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겠지만 항상 진지하게 살 필요도 없는 것은 맞다. 때론 유쾌하고 경쾌하게 살아가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책을 읽으며 내 아이들의 모습을 돌아보았다. 스키를 타고 와서 신나게 얘기하고 있는 큰 아이, 화산에서 용암이 폭발하냐고 물어보는 둘째 아이 이렇게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 좋다. 앞으로 어떤 일이 있건 나도 조금은 유쾌해질 수 있을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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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의 음식을 먹는 여자들
로셀라 포스토리노 지음, 김지우 옮김 / 문예출판사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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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평 : 히틀러 시식단이라는 역사적 실화를 소재로 전쟁 속에서 선택의 여지가 없는 사람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을 던져준다.

 

자 소개 :

로셀라 포스토리노

로셀라 포스토리노는 1978년 이탈리아 남부의 항구도시 레조디칼라브리아에서 출생해 임페리아 지역에서 성장했다. 지금은 로마에 거주하며 집필활동과 동시에 출판사 편집자로 일하고 있다.

2007년 포스토리노는 전신이 마비된 아버지와 살아가는 소녀의 이야기를 다룬 《위층 방(LA STANZA DI SOPRA)》을 발표하고 이탈리아 주요 문학상인 라팔로 신인작가상을 수상하며 데뷔했다. 이를 시작으로, 과거와 다시 대면해야 하는 가족을 다룬 《신(神)을 상실한 여름(L’ESTATE CHE PERDEMMO DIO)》(2009)과 리비에라 지역의 이야기를 쓴 《밀물(IL MARE IN SALITA)》(2011), 교도소에서 태어난 여자 이야기인 《길들여진 몸(LL CORPO DOCILE)》(2013)을 출간했으며, 그 외에도 희곡 〈당신은 곧 당신이 하는 일이거나 혹은 그렇지 않다(TU (NON) SEI IL TUO LAVORO)〉(2013)를 발표했다.

히틀러의 시식가이자 유일한 생존자였던, 실존인물 마고 뵐크(MARGOT W?LK)의 고백을 바탕으로 쓴 《히틀러의 음식을 먹는 여자들(LE ASSAGGIATRICI)》(2018)은 이탈리아에서 출간 즉시 1개월간 3만 부 이상이 판매되었으며, 현재까지 전 세계 46개국에서 번역 출간되며 50만 부 이상 판매되었다. 공포 속에서도 살고자 하는 인간의 생존 욕구뿐 아니라 한나 아렌트가 말했던 ‘악의 평범성’까지, 제2차 세계대전의 단면과 그 이면을 균형 있게 다룬 이 소설로 2018년 포스토리노는 이탈리아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캄피엘로 비평가상 외에도 유수의 문학상을 받으며 작가로서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

역자 : 김지우

이탈리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한국외국어대학교 이탈리아어과를 졸업했다. 동 대학교 국제지역대학원에서 유럽연합지역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은 후 현재 이탈리아대사관에서 근무하고 있다. 주요 번역 작품으로는 엘레나 페란테의 《나의 눈부신 친구》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 《떠나간 자와 머무른 자》 《잃어버린 아이 이야기》 《버려진 사랑》 《잃어버린 사랑》 《성가신 사랑》, 파올로 발렌티노의 《고양이처럼 행-복》과 발렌티나 잘넬라의 《우리는 모두 그레타》가 있다.

책 소개

소설과 같은 얘기이지만 '히틀러의 음식을 먹는 사람들'은 실화에 근거한 이야기이다. 실존 인물 마고 뵐크(MARGOT WOLK)의 고백을 바탕으로 쓰인 소설이다.

나도 처음에는 이 특이한 소재에 이끌려 책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 안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을지에 대한 궁금증만으로 읽게 되었지만 이 책에서 '히틀러 음식을 시식하는 사람들'은 소재에 불가했다. 전쟁을 통해 그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루를 살아가게 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선택의 자유가 통재되었을 때 각 개인은 어떤 모습을 보일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읽는 내내 '책 읽어주는 남자'가 떠오르기도 했다. 직접적인 전쟁의 모습은 보여주고 있지 않는다. 전쟁 속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이지만 전쟁의 잔혹한 참상에 대한 얘기를 하는 책은 아니다.

전체 여성으로 구성된 열다섯 명의 시식단은 매일 '히틀러의 음식'을 미리 시식한다. 그리고 독이 들어 있는지 알기 위해 몇 시간을 대기한다. 한 번의 식중독은 있었지만 아무도 독으로 인해 목숨을 잃은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음식을 먹는 행위 자체와 대기시간이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 그 자체의 시간이었다. 같은 독일인이지만 마치 전쟁 포로와 같이 죽음의 공포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야만 했다.

어떻게 보면 '어차피 먹을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닌가?'라고 쉽게 생각할 수 있지만, 이탈이 허용되지 않고, 먹는 것의 지유가 허용되지 않는 인간이 기본적으로 누려야 하는 생존권이 박탈된 삶은 당사자에게는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는 것을 책을 읽다 보면 공감하게 된다.

생존권이 박탈된 여성들은 그 안에서 어떻게 해서든 삶을 영위해야 한다. 삶이라는 것은 항상 사건의 연속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녀들의 삶은 매일 공포를 마주하며 일상적이지 않은 선택을 하기도 한다.

단순 전쟁에서의 참혹성을 떠나 전쟁의 뒤편에 숨겨진 표면화되지 않은 일반인들의 삶의 모습에 대한 전쟁의 이면을 조망해 볼 수 있게 하며, 인간의 선택이 통재와 규율 속에서 변모하는 과정을 세밀히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출판사의 책 소개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마고 뵐크는 전쟁이 끝난 후 평화를 얻지도 못했다. 같이 히틀러의 음식을 감식했던 여자들은 모두 처형당했고, 그녀는 독일 장교의 도움으로 유일한 생존자가 되었으나, 소련군에게 잡혀 14일 간 성폭행을 당했다.

우리가 실존 인물 마고 뵐크이고 소설의 주인공 로자라면, 이런 상황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히틀러가 시킨 일을 하면 음식을 먹다 죽고, 히틀러를 추종해도 전쟁 종결 후엔 나치 추종자란 명목으로 죽어야 한다. 히틀러에 반대하면 그 역시 죽어야 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주인공 로자는 삶의 커다란 모순을 경험한다. 내가 살기 위한 일이 어떻게 모두 내가 죽기 위한 일이 될 수 있을까. 시대의 격류에 휩쓸려 스스로 자신의 생존을 결정할 수 없는 평범한 삶을 산 로자. 지금 이 시대에는 로자가 없다고 할 수 있을까.

이 책이 의미 있는 이유

전쟁을 소재로 하는 책은 정말 많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전쟁이라는 소재가 주는 극한성 때문일 것이다. 일반적으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전쟁 시기에는 일어나게 된다. 자유가 박탈당하고, 죽음과 직면하고 살기 위해서 누군가에게 해를 가해야 하는 상황이 일반적인 현실에서는 벌어지기 어렵다. 하지만 전쟁 속에서 그런 일들은 무수히 벌어진다.

이 책도 그런 일반적이지 않은 상태를 통해서 우리의 삶을 바라보게 하고 있다. 선택의 자유가 박탈된 상태, 죽음의 공포를 매일 마주하는 상태에서는 나는 삶을 잘 유지할 수 있을까?

독일 국민이지만 나치의 감시를 매일 받고, 히틀러의 음식에 독이 있을지 모르지만 먹어야 하고, 반대하면 죽음을 당하고, 이탈할 수도 없다. 어떤 선택을 해도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없다. 선택할 수 있는 것은 확정된 죽음을 선택하지 않는 것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갈 것인가? 그리고 이런 상황이 다른 선택을 할 때에는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 과연 나의 가치와 신념에 따른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책 속에서는 이런 선택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해서 나온다. 그녀들이 삶의 살아가며 선택한 것들에 있어서는 분명 잘못된 것도 존재한다. 그 사건 하나만 놓고 본다면 잘못된 것이 분명하겠지만 제한된 삶이라는 환경 속에서는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의문을 동시에 품게 된다. 그리고 우리 현대 사회 속에서 누군가는 이런 선택을 내릴 수밖에 없는 여건에 놓여있는 사람들이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책 속에서

그저 우리를 그곳에 격리시켜 놓고 경과를 지켜볼 뿐이었다. 그들은 우리 중 몇몇을 죽음으로 몰아가고 있는 이유를 파악하려는 것이다. 어쩌면 그들은 그 원인을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미 독극물에 중독된 우리가 쓸모 없어진 거다. 207p

"이제 그만해!"그가 내 입을 막았다. 내가 그의 손을 물자 그는 나를 벽으로 밀어붙였고 그 바람에 벽에 머리를 박았다. 나는 두 눈을 꼭 감고 고통이 최고점에 이러렀다가 사그라지기를 기다렸다. 고통이 사라지는 순간 나는 그의 얼굴에 침을 뱉었다.

순간 그의 총구가 내 이마를 눌렀다. 치글러는 조금도 떨지 않았다. "넌 내 명령을 따라야 해." 328p

지난 몇 달 동안 그녀는 엘프리데 바로 옆자리에서 음식을 먹었다. 그런데도 엘프리데 일에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광신도들'도 엘프리데와 매일 얼굴을 마주했고 그녀와 함께 죽을 고비를 넘겼고 그녀와 함께 죽음을 피했다. 그런데도 어떻게 일말의 동정심도 느끼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몇 년 동안 아니 수십 년이 지나도록 아무리 생각해봐도 여전히 그들을 이해할 수 없다. 344p

생각해 볼 문제

실제로 이 소설은 히틀러의 음식을 시식했던 실존 인물이자 유일한 생존자 마고 뵐크(Margot Wölk)의 인터뷰를 계기로 쓰인 책으로, 마고 뵐크는 70년 간 비밀로 간직했던 이야기를 공개하면서 식사 후에는 살았다는 기쁨에 '개처럼' 울어야 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매일 3번 죽음의 공포를 직면했다. 한 번에 끝나는 공포가 아닌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하루 3번의 공포이다. 이 일을 당한다는 것은 어떤 것이고 어떻게 다가올까? 나라면 제대로 된 삶을 영위할 수 있을까?

그 속에서 온전한 정신으로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나는? 우리는? 당신은? 이 질문에 답을 내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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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미술관 - 아픔은 어떻게 명화가 되었나?
김소울 지음 / 일리 / 2019년 10월
평점 :
절판


한 줄 평 : 어려운 미술, 그리고 예술가의 생각과 작품들, 『치유미술관』을 통해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에 대해 조금은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참 재미있게 읽었고 참 오랫동안 읽었다.

나에게 그림은 항상 어려웠다. 무엇을 어떻게 봐야 할지에 대해 도통 알 수 없는 존재였다. 해설이 그렇다고 하면 '아~ 그런가보다'라고 생각하고 말았다.

『치유미술관』 을 찬찬히 들여다보며 '이렇게 바라보면 되는 거였구나'로 조금씩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책 속에서 작가가 직접 그림의 이야기를 들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책의 구성 방식 일반적인 책과 다르다는 것도 큰 역할을 했다. 가상의 상담사가 15~20세기의 화가들을 만나며 상담을 해주는 방식이 화가들의 생각과 그림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저자 소개

김소울

홍익대학교에서 미술을 공부하고 가천의과학대학교에서 미술치료학 석사, 미국 플로리다주립대학교(FLORIDA STATE UNIVERSITY)에서 미술치료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국제임상미술치료학회 회장을 맡고 있으며,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상담심리학과 특임교수이자 가천대학교 조소과 객원교수이다.

10년 이상 미술치료 임상 경험을 쌓았다.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갈등을 겪고 있는 내담자들이 심리적 어려움을 극복하고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저서로는 『오늘 밤, 나 혼자 만나는 나에게』 『모르면 불편한 돈의 교양』 『하버드 생각루틴 - 창의융합 인재로 키우는, 명화를 활용한 12가지 생각놀이』 『그림으로 그리는 마음일기장』 『아이마음을 보는 아이그림』 『식욕의 배신』 『숲 속의 힐링캣』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이 있다. 역서로는 『집단미술치료 프로그램핸드북』 『자존감 향상을 위한 미술치료』가 있다.

블로그 : SOULARTTHERAPY.CO.KR

홈페이지 : WWW.FLORIDAMAUM.COM

연락처 : 카카오플러스친구 @플로리다마음연구소

유튜브 : 유튜브에서 ‘김소울’ 검색

소울 마음연구소 소개

<치유미술관>은 가상공간인 ‘소울마음연구소’의 내담자 일지를 묶은 것이다. 내담자는 한국인들이 사랑하는 유명 화가들이다. 빈센트 반 고흐, 에두아르 마네, 클로드 모네…. 조금은 낯설 수 있는 베르트 모리조,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등 여류화가들도 있다. 모두 15명. 16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의 인물들이다. 그들 모두 마음이 아파 고통 받았었다. 때로는 동정받기도 했고, ‘문제화가’로 손꼽히기도 했다.

그들이 ‘소울마음연구소’를 찾아오기도 했고, 연구소장 ‘닥터 소울’이 출장 상담을 가기도 했다. 그 덕에 ‘닥터 소울’이 조금 분주하기는 했다. 그러나 ‘닥터 소울’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을 지녔기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가상이라고 해서 모든 내용이 허구인 것은 아니다. 필요한 상황만 설정했을 뿐 결정적 내용들은 모두 사실이다. 답변 내용 중 상당부분은 그들이 직접 한 이야기들이다. 기록으로 남아있는 그들의 말, 표현들을 가상 상황에서 풀어냈다.

달리 말하면, <치유미술관>은 역사 속에 존재했던 화가들의 실제 이야기들, 즉 팩트(fact)와 ‘닥터 소울’을 만나는 픽션(faction)이 합쳐진 팩션(faction) 형식으로 꾸며졌다. 독특한 미술사 판타지라고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확실하게 검증되지 않았거나, 여러 가지 설이 존재하는 사실들은 ‘닥터 소울’ 나름의 판단에 따라 특정 방향으로 해석했다.

참…, ‘닥터 소울’은 현재 대한민국 서울에서 미술치료실을 운영하고 있으며, 다양한 임상 경험을 축적한 미술심리치료 전문가임을 밝혀둔다.

목차

01. 뭉크-죽음에 절규하다 태양을 만나다

02. 클로델-사랑의 파도를 넘지 못한 사쿤탈라

03. 로트렉-캉캉 춤에 장애 설움을 날리다

04. 드가-여자 예뻐요 … 그런데 싫어요

05. 마네-아버지와 ‘사랑’을 다투다

06. 모리조-여자는 왜 그림 그리면 안 되죠?

07. 르누아르-행복과 기쁨만 그릴 거야!

08. 모네-인상이 없다고 비판받은 인상주의 창시자

09. 세잔-아버지의 ‘무시’를 이겨내다

10. 젠틸레스키-카이사르의 용기를 품은 여심

11. 고갱-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

12. 고흐-‘별밤’에 편히 쉬기를…

13. 칼로-그 가혹한 운명을 어떻게 이겨냈을까

14. 실레-의심과 불안으로 뒤틀리다

15. 고야-난청이 꿈꾸게 한 자유

 

책의 구성

위에 설명되었듯이 소울은 저자의 이름이다.

책의 구성은 저자인 닥터 소울과 화가들의 대화를 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중간중간의 화가의 그림들이 상당량 삽입되어 있다.

총 15명의 화가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고 이 화가들은 각자 자신의 증상들이 있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조현병, 알코올중독, 신경쇠약, 우울증'등이다. 이런 증상을 먼저 보고 나서 본문에서 화가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림을 보다 보면 증상과 화가의 생각과 그림이 점점 이해가 되기 시작한다. 가장 좋았던 부분이 모네였었다. 책 표지의 작품도 모네의 작품이었다. 모네는 호소증상을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모네의 이야기를 들고 그림들을 보며 그 당시의 상황을 떠올려 보니 단순 그림만으로 이해하던 것과는 다르게 다가왔다. 그 사람의 삶이 어떠했을지 그 속에 들어가게 되었다. 상담은 '닥터 소울'이 하고 있었지만 나도 그 자리에 함께 앉아 이야기를 듣고 있는 듯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아래의 글과 사진을 보면 내가 느꼈던 감정을 동요를 대충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닥터 소울 : 아이고…, 카미유 씨께서 이래저래 참 마음 고생이 많았을 것 같아요. 마지막 가는 길은 고통 없었어야 했을 텐데….

모네 : 하아…, 사실 그 순간 때문에 제가 더 죄책감을 가지고 있어요. 제 아내가 분명 눈앞에서 죽어 가는데 저는 생명이 끊어져 가는 그 순간을 그림으로 남기고 싶었어요. 아내의 임종 앞에서 붓질을 마구 해댔죠. 이걸 보세요. <임종을 맞은 카미유 (Camille Monet on Her Deathbed)>dPdy. 저에게는 너무도 소중했던 여인이 죽음ㅇ르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에요. 그 순간 저 스스로에게 놀랐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마구 짙어지는 죽음의 색채를 본능적으로 따라가고 있던 저 자신을 발견한 거예요. 179p

그 많은 사진 중에 죽음을 소재로 한 작품을 예시로 드는 것이 조금은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이 그림과 글이 이 책의 이해를 돕기 위한 가장 좋은 설명이 될 듯하기에 예시로 들었다.

물론 이런 가상의 상담 기록이 처음 책을 접할 때는 거부감이 있었다. 처음 두 화가 뭉크와 클로델에 대하여 읽을 때는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에 대한 의구심, 가상의 상담사 '소울'에 대한 어색함이 몰입에 방해가 되었다. 하지만 지속해서 읽다 보니 시간을 넘나드는 '닥터 소울'에 대한 어색함에서 벗어나 화가들의 이야기에 깊게 빠져들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 구성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이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요 근래 미술 관련 서적을 몇 권 봐왔는데 이전까지의 책들은 아무리 그림에 대한 설명이 잘 되어 있어도 작가의 생각과 상황에 크게 연관 지어 다가오지는 않았다.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는 정도에 불과했다. 그래서 그림이 항상 어렵게 느껴졌다.

『치유미술관』속의 화가들은 자신이 그림을 그릴 당시의 상황과 그림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직접 상담사에게 들여준다. 왜 이런 그림을 그리게 되었는지, 그리고 어떤 점에 중점을 두고 그렸고, 그림 속에 어떤 이야기가 들어 있는지에 대해 상담사에게 찬찬히 들려준다. 책을 읽는 나는 마치 그곳에 '서기'가 되어 앉아 있는 듯 그 화가들의 이야기를 하나씩 듣게 된다. 이런 구성을 통해 작가의 감정과 생각에 대한 공감이 되었고, 그림을 바라보는 시각도 달라지게 되었다.

 

그림에 관심이 있는 분들께

그림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이면, 한 번 읽어 보시길 추천드린다. 나도 이 책은 몇 번 다시 읽어 보려고 한다. 물론 허구성에 대해 조금은 거부감이 들기는 하지만, 작가들의 상황과 그림소개에 대해 공감을 가지게 하는 데에는 이 방식이 상당히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15명의 화가 선정도 상당히 좋았었다. 특히 1800년대 드가, 마네, 모리조, 르누아르, 모네, 세잔의 구성이 너무 좋았다.

저자가 이런 책을 쓸 수 있었던 기반은 미술에 대한 깊은 이해와 지난 10년 이상의 미술치료 임상 경험 때문이었을 것이다. 저자 소개에 나와 있듯이 저자는 홍익대학교에서 미술을 공부하고 가천의과학대학교에서 미술치료학 석사, 미국 플로리다주립대학교(FLORIDA STATE UNIVERSITY)에서 미술치료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과 같이 이 책을 통해 화가의 삶에 좀 더 깊숙이 들어가 그들을 이해한다면 그림도 좀 더 깊숙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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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만 아는 농담 - 보라보라섬에서 건져 올린 행복의 조각들
김태연 지음 / 놀 / 2019년 10월
평점 :
절판


한 줄 평 : 보라보라 섬에서 9년간의 평화로운 삶 속에서 얻은 행복의 의미

 

저자 소개

김태연

언제나 여름인 남태평양의 외딴섬 보라보라에서 9년을 살았다. 맨몸으로 바다를 헤엄치고 계절마다 달라지는 별자리를 바라보며 온갖 나무와 꽃 이름을 알게 되는 근사한 삶을 꿈꿨지만, 사실은 암막 커튼 쳐놓고 넷플릭스 보는 날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먼 북소리가 아닌 인생 종 치는 소리가 들려서 글을 쓰기 시작했고, 라이프스타일 잡지에 ‘보라보라 사람들’이란 제목으로 약 4년간 칼럼을 연재했다.

지금은 잠시 섬을 떠나 한국예술종합학교 전문사에서 영화를 공부하고 있으며, 다시 심심한 세계로 돌아갈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중이다.

남태평양의 지상낙원 보라보라 섬 그리고 그 속의 삶

프랑스령 폴리네시아 소시에테 제도에 있는 조그마한 섬 보라보라는 '태평양의 진주'라고 불린다고 한다. 지상낙원으로 불릴만큼 휴양지로도 익히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바다상어 와칭 투어를 할 수 있고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가지고 있는 섬이기도 하다. 에메랄드빛 바다는 보고만 있어서 가슴이 시원해지기도 하다. 지상낙원, 태평양의 진주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을 만큼 아름다운 섬이다. 하지만 김태연 작가는 『우리만 아는 농담』에서 이런 섬의 아름다움과 볼거리에 대해서 얘기하지는 않는다. 그 속에서 한 사람이 살아가는 소박하고 잔잔한 삶의 모습을 얘기하고 있다. 9년간의 이 작은 섬에서 살고 있으며 일상에서 찾은 소소한 행복들과 물 흘러가듯 조용히 지나가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단조롭기도 하지만 여유로운 평온한 삶을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다.


소소한 기록이 주는 공감

『우리만 아는 농담』은 보라보라 섬에서 9년간 생활하며 작가가 느끼고 체험한 삶들의 기록이다. 이 기록은 너무도 잔잔하고 조용하며 소소한 일상의 아름다움이 묻어 있다. 책을 읽고 있으면 어느 조용한 카페에 앉아 원두 볶는 냄새를 맞고 있는 것처럼 마음의 휴식과 치유를 가져온다. 작가만의 담백하고 세미한 묘사는 소설책을 읽고 있는 듯한 기분마저 들게 한다. 바쁘게 살아가는 일상 속에서 작가가 들려주는 평화로운 삶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많은 것을 내려놓고 책 속으로 빠져 들어가게 한다.

따뜻한 섬 속의 따뜻한 이야기

자신이 추구하는 삶을 살고자 보라보라로 떠나고 그곳에서 9년간 지내며 작고 평화로운 시골의 일상을 풀어 말해주는 듯한 작가만의 따뜻한 문체는 작가의 모습과도 많이 닮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칠 때면 바다로 나가 물 위에서 휴식을 취하는 모습, 이웃집 고양이의 출산 과정과 분양을 받은 이야기, 모기떼 습격으로 외지의 큰 병원으로 치료를 받으러 가는 이야기 등 어찌 보면 우리 모두 겪고 있는 일상의 이야기이지만 작가의 손을 거치고 나니 그 소소한 일상이 이토록 아름다워 보일 수가 없다. 작가의 소소한 이야기들을 들으며 나는 내 소소한 일상 속에서 일어나는 작은 기쁨과 행복들을 잊고 지내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마치 파랑새를 찾아 여행을 떠나도 결국 파랑새는 내 삶 속에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우리의 일상이라는 것이 내가 느끼기에는 별일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고 무언가 더 나은 것을 위해 희상하고 무시하곤 한다. 하지만 그 소소한 것이 우리에게 그 어떤 것보다도 값진 것일 수 있고, 그 소소함에 목적을 두고 바라본다면 우리는 매일 이토록 아름다운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진정한 풍요로움

책의 내용도 참 좋았지만 저자 특유의 문체가 너무 좋았다. 글 속에서 따뜻함이 묻어 나오고 향기가 나는 듯했다. '우리만 아는 농담'을 읽으며 풍요로움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진정한 풍요로움은 물질로 가득 채워진 것이 아닌 내가 하고 싶고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채워진 것을 말하는 것 같다. 김태연 작가가 '보라보라 섬'에서 물질적 풍요를 느끼지는 않았겠지만 그 삶은 분명 풍요로운 삶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9년간의 풍요로운 삶이 이토록 편안한 글을 쓰도록 만들어 줄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보라보라 섬

책을 읽기 전까지는 보라보라 섬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며 나도 모르게 검색을 해보게 되었다. 인터넷에 있는 사진들을 보며 감탄이 자아났다. 이토록 아름다운 곳이 있었구나. 그리고 책을 읽는 내내 김태연 작가와 '우리만 아는 농담'에 푹 빠져 있게 되었다. 그녀의 삶의 모습이 더욱더 궁금해져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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