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물만두 > 요시모토 바나나 작품들

 세련된 글쓰기를 자랑하는 요시모토 바나나의 여행 소설집. 라틴 아메리카 특유의 색채감과 분위기를 잘 살린 일곱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아르헨티나를 배경으로 한 이 소설집을 통해 독자는 그곳의 사람들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분위기를 한껏 느낄 수 있게 될 것이다. 아르헨티나 사람들의 발자취와 숨결이 씨실을 이루고 그것을 바라보는 이방인인 작가의 시선과 상상력이 날실이 되어 각각의 단편들이 탄생했다.
제목에서의 '불륜'은 여러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실제로 남녀의 불륜관계를 의미하기도 하고, 인간의 지각 밖의 다른 차원의 세계, 혹은 삶을 살아가는 테두리를 벗어난 특별한 경험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 각각의 단편에 등장하는 7명의 주인공은 "현대인은 많은 사람을 만나니까, 연애를 하지 않기가 오히려 더 어려운(<창밖>)" 결코 부정적으로 해석되지 않는 불륜의 사랑에 빠져 있기도 하고, 스스로가 감지할 수 없었던 어떤 것을 라틴 아메리카에서 느끼고, 또는 <플라타너스>의 주인공처럼 자신의 일상을 벗어난 또 다른 일상을 경험하기도 한다.

 어두운 밤중 하얀 강에 떠오르는 한 척의 배와 같은 외롭고 안타까운 세계를 그려낸 단편집
요시모토 바나나는 소설 속의 인물들이 생명을 가진 존재로 독자들에게 다가가게끔 하는 신비한 힘을 가지고 있다. 이 책에서 그녀는 젊은 여성 셋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녀들은 모두 주문에 걸린 것처럼 정신적인 휴면 상태에 빠져 있다. 죽은 애인으로 인한 슬픔에 빠진 마리에는 밤에 몽유병자처럼 돌아다니고, 식물인간이 된 부인을 둔 남자와 연인 관계인 테라코는 잠에서 깨어나기 불가능한 상태에 놓여 있다. 후미는 한때 삼각관계에서 연적이었던 다른 여성의 영혼에 사로잡혀 알코올 중독에 빠져 있다. 부조리하고 악몽 같은 현실을 초현실주의의 필치로 그려낸 이 은밀하고 신비한 이야기들은 다시 한 번 바나나만의 매력을 느끼게 한다.
살아가면서 누구나 한번쯤은 소위 슬럼프라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이 책에서 바나나는 그 슬럼프가 단순히 몸과 마음의 일시적인 무기력 상태라는 일반적인 진단을 넘어 스스로를 지켜내어 생을 지속시켜 나갈 힘을 기르는 겨울잠임을 깨닫게 한다. 즉, 몸과 마음이 몹시 지쳤을 때나, 감당하기 어려운 격한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렸을 때, 의식은 삶의 에너지마저 고갈시키는 외부로부터의 모든 자극을 차단하여 산산이 부서질 위기를 비켜가는 것이다.
‘밤’의 세계를 배회하는 주인공들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 역시 깊고 어두운 바다의 바닥을 걷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소설 속의 인물들과 같은 상황이나 비슷한 수준의 침잠은아니었을지라도 자신도 모르게 과거 자신의 경험 안으로 빠져 드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얼핏 무겁지 않아 보이는 바나나의 문장과 심각하지 않고 단순한 어휘들이 오히려 훨씬 강한 힘으로 독자를 사로잡는 이유이다. 드라마틱한 스토리나 직접적이고 강한 메시지 하나 없어도 독자들은 어느새 자신의 경험을 반추하고 있는 스스로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애써 덮어두었던 상처나 잊었다고 믿었던 고통의 자국들을 다시 들추어낸다. 책장을 덮는 순간 독자들은 주인공들처럼 정면으로 자신의 상처를 마주한 뒤 한결 밝아진 자신을 만나게 될 것이다. '하얀 강 밤배'는 상처는 외면하고 덮어두는 것이 아니라 치유의 과정이 필요함을 깨닫게 하는 동시에, 그 치유와 소생의 힘을 가져다주는 바나나의 따뜻한 선물이다. 물속을 헤엄치며 살기보다는 바닥을 치고 나서 수면 위로 떠오르라는 바나나의 건강한 외침이 바로 전 세계의 독자를 사로잡은 이유이다. 절망에 빠진 이들에게는 따뜻한 구원의 힘을, 절망에 빠진 사람의 곁에 있는 이들에겐 아름다운 조언의 기회를 얻게 할 책이다.

 요시모토 바나나, 2000년 작. 일상에 묻혀 기억 저편으로 밀려나 있던 '몸의 감각'이 어느 날 불쑥 일상의 '기억'으로 되살아나는 순간, 그 찰라를 잡아낸 글을 모았다.
주인공인 '나'(<초록반지>)는 앞마당을 가득 메운 알로에의 왕성한 식물성에 데어, 조만간 뿌리채 없앨 생각을 한다. 하지만, 병상에 누운 할머니는 링거 주사 바늘 때문에 시퍼렇게 변해버린 손을 내밀며 더듬더듬 이렇게 말한다. "알로에가, 자르지 말라고, 하는구나. 알로에가, 여드름도 상처도 치료하고, 꽃도 피울 테니까, 자르지 말라고... 알로에 하나를 구해 주면, 앞으로 많은, 여러 장소에서 보는 알로에도, 너를 좋아하게 될 거다. 식물끼리는 다 이어져 있거든." 가늘고 토막난 목소리로,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할머니의 그 말에 '나'는 섬뜩하다. 하지만 할머니의 장례식을 치른 그 해 겨울, 나는 어느 시골 민가를 지나다가 어떤 부드럽고 정겨운 기운이 몸을 감싸는 듯한 느낌을 받고 주위를 둘러본다. 소박한 민가의 마당 가득, 소름이 끼칠 정도로 무성하게 자란 알로에 무리... 햇볕을 받아 한껏 잎을 뻗친 알로에는 우둘투둘 빨간 꽃을 피우고는, 살아있음의 기쁨을 마음껏 '나'에게 전하고 있었다.
여기저기 흥미거리가 생기면 놀라운 집중력으로 끝장을 보고야 마는 남자친구. '재주는 많으나 가난한 자의 길을 거침없이 선택'하며 사는 남자친구가 '나'(『지는 해』)는 불안하지만, 상당히 벌이가 괜찮았던 아르바이트를 때려치고 그를 따라 호주에 올 만큼 그에게는 나를 끄는 마력이 있다. (그는 현재 '서핑'에 미쳐있다). 나름대로 착실히 쌓아올려왔던 내 '초촐한 인생'을 한번에 팽개칠 만큼 강렬한. 하지만 나는 이내 그 모든 것에 싫증이 나버린다. 늘 뭔가에 몰두에 있는 사람과 사는 일상, 나는 뭔지 모르게 서글프고 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던 어느 저녁, 친구를 만나러 택시를 타고 가던 길.'나, 임신했나 봐!' 돌연 떠오른 생각! 순간 정체되었던 도로가 뚫리고 차가 덜컹 움직이며 속력을 내기 시작하자, 나는 갑자기 재미있는 요소는 하나도 없는데 '기뻐하라!'고 나를 부추기는 본능의 소리를 듣고 어쩔 줄 몰라한다.
과거의 시간과 사물, 그리고 내밀한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짤막하고 상큼한 단편 13편을 만나볼 수 있다.상처와 치유, 상실과 따뜻한 희망을 이야기해 온 요시모토 바나나의 최신작 『몸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가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까맣게 잊고 있던 소중한 기억,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자기의 진짜 속마음이, 사실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몸에 기억되어 있다는 바나나의 생각이 짤막하고 상큼한 13편의 단편에 담겨 독자를 찾는다.
너무나도 익숙해서 잊혀진, 사소하지만 아주 소중한 감정들
“알로에가, 자르지 말라고, 하는구나.” 혼자 살던 할머니는 죽기 직전 이렇게 말한다. 식물의 생명과 교감을 나눴던 따뜻한 마음을 가진 할머니로부터 ‘내’가 물려받은 힘에 대한 이야기 「초록 반지」, 어딘가에 정착할 생각 없이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는 남자 친구의 인생에 휘둘리면서 고민하지만, 결국엔 그의 아기를 갖고 생명의 숨결을 느끼며 기뻐하게 되는 작은 이야기 「지는 해」, “멈추지 않는 시간은 아쉬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름다운 순간을 하염없이 품기 위해 흘러간다.”라고 말하며 인생의 첫 기억을 노래한 「검정 호랑나비」, 이십 대 직전에 찾아오는, 하늘에 걸린 무지개처럼 잠깐 빛나는 예민한 감수성의 시기에 맞은 특이한 만남을 그린 「미라」 등 『몸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에는 마음과 몸, 사람과 풍경이 하나가 된,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단편들이 잔잔하게 떠올라 있다.
이런 아기자기한 이야기들 사이에는 톡톡 튀는 다채로운 단편들도 숨어 있다. 아홉 살 때 알코올 중독인 엄마에게 납치당했던 사건과 그때 느낀 애틋하고 슬픈 감정을 그린 「보트」, 세탁기 뒤에 사는 무엇과 고요하게 생활하는 사람, 빌딩과 빌딩 사이의 조그만 화단 같은 사람 다도코로 씨의 이야기 「다도코로 씨」, 열다섯 살이나 터울 진 언니, 할아버지 할머니뻘인 부모님과 함께 소박한 삶을 꾸려나가는 주인공이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눈치 채고도 달짝지근한 봄꽃 향기 속에 그대로 묻어버리는 이야기 「사운드 오브 사일런스」 같은 단편들에선 그녀만의 독특한 감성이 묻어난다. 『몸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에서 독자는, 한층 차분해진 목소리와 바나나 특유의 아름다운 문장으로 그려내는 긍정적이고 밝은 13명의 매력적인 주인공을 만나게 된다.
몸이 떠올리는 아름다운 기억의 조각, 오늘을 살게 하는 힘이 되는 이야기
이 소설에서 요시모토 바나나는 “사람의 몸과 마음이 자신들이 아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정보를 발신하고 수신한다는 것만은 확실한 듯하다. 그 신비로운 색채는 자신이 벌거벗고 있는 듯한 감각으로 나를 소스라치게 하고, 때로는 위로하고 가슴을 찡하게도 한다.”(「사운드 오브 사일런스」, p140~141)라고 하며 새로운 몸의 기능을 제시한다. 그녀가 말하는 것은 사소한, 그냥 지나쳐버리기 쉬운 우리와 우리 주변의 작은 이야기들이다. 삶의 물살에 휩쓸려 어딘가로 열심히 달려가면서 잊어버리는 빛나는 순간과 기억의 조각은, 때로 그 삶의 거친 물살에서 우리를 살아남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그리고 그걸 일깨우는 것은 바로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우리의 몸’이다.
우리는 스트레스가 쌓이면 이렇게 곧잘 드라이브를 하고, 서로 아무 말 없이 앉아 있는다. 가끔 투덜투덜 푸념을 늘어놓으면 농담으로 되받는다. 그러다 보면, 이렇게 기억의 깊은 곳에서 도움이 될 만한 일이나 따스하게 기운을 북돋는 일이 떠오르곤 한다. 우리는 그런 식으로 많은 것들을 풍경 속에 털어놓는다. 그리고 온천에 들르면, 참 멀리도 왔다고 말하면서 노천탕에 몸을 담그고 밥을 먹고 맥주를 마시고, 또 노천탕에 몸을 담그고는 축 늘어져 도심으로 향하고 졸린 눈으로 헤어진다. 그러고 난 다음 날에는 어린 시절처럼 말똥말똥하게 눈이 떠진다.
살아 숨 쉬는 동안 기억이란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법이다. 그 기억은 세월의 힘에 밀려 희미해졌다가도, 감각이 그때를 되새기는 순간 지금으로 환원된다. 바쁜 일상에 묻혀버리는 많은 것들, 시간에 밀려가 버린 반짝이던 추억이 어느 순간 아, 하고 되살아나는 경험을 해본 이라면 이러한 그녀의 이야기에 미소 지을 것이다. 무심히 지나치기 쉬운 나의, 또 내 이웃의 에피소드들은 바나나의 목소리에 실려 이것을 듣는 독자에게 오늘을 살게 하는 힘이 되어준다.

 데뷔작『키친』에 이어 1988년에 발표된 요시모토 바나나의 첫 장편소설로, 어느 한적한 여름 바닷가를 배경으로 소녀에서 여자로 탈바꿈하는 열아홉 살 두 소녀의 우정과 사랑을 그리고 있다. 바나나 특유의 예민한 감성과 문체가 '너무 맑아서 조금은 정처없고, 절박하기도 했던' 사춘기의 소녀의 내면을 잘 묘사해내고 있다. 바다 내음 속절없고, 잠은 오지 않는 밤... '끝이 보이지 않는 사랑'을 꿈꾸던 그 시절의 풍경이 물씬 밀려온다.카이엔 문학상(1987) 신인상, 이즈미교카 상(1988) 등 일본의 굵직한 문학상을 수상하여 일본 현대 문학의 대표 작가로 꼽히는 요시모토 바나나(吉本ばなな)의 장편소설 『티티새』가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바나나는 『티티새』로 일본의 양대 대중문학상의 하나인 야마모토 슈고로 상(1989년, 제2회)을 수상했다. 요시모토 바나나는 이제 일본이나 아시아권을 넘어 전 세계적인 명성을 누리고 있으며, 대중적인 인기와 문학성을 고르게 인정받고 있고, 출간되는 책마다 베스트셀러와 스테디셀러 목록을 장식하는 작가다.
『키친』을 비롯한 세 편의 단편으로 세상에 각인되었던 요시모토 바나나에게 『티티새』는 그녀의 작가적 역량과 긴 호흡을 실험하면서 처음으로 시도한 장편소설이다. 『티티새』는 미국(Grove Press), 영국(Faber and Faber), 이탈리아(Feltrinelli) 등지에서 번역 출간되었고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눈부신 햇살로 가득 찬 여름날의 사랑 이야기
『티티새』는 바닷가 마을에서 보낸 열아홉 살 시절 여름의 추억을 그린 일종의 성장소설이다. 주인공인 마리아와 그녀의 사촌 츠구미, 요코 언니와 함께한 그 여름은 눈부신 태양만큼이나 인상적인 추억을 남겼다.
“츠구미는 정말이지, 밉살스러운 여자 애였다.”라는 첫 문장에서 알 수 있듯이, 사촌 츠구미는 엉뚱하고, 괴팍스러운 말괄량이였다. 그녀는 때로 지나친 장난으로 주위 사람들을 골탕 먹이기도 하고, 때로 가슴 따뜻한 행동으로 눈물짓게 만들었다. 츠구미는 어린 시절부터 몸이 허약해 자주 병을 앓아서, 온 식구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고, 그래서 다들 그녀의 엉뚱한 행동을 너그럽게 이해해 주곤 했었다.
마리아(화자인 ‘나’)의 아버지는 전처와 별거 중이었고, 전처와의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 마리아와 어머니는 이모네가 운영하는 바닷가 마을의 야마모토야 여관에서 지낸다. 츠구미와 요코 언니는 이모네 딸들로, 마리아와 츠구미는 동갑이었고, 요코 언니는 두 살 위였다. 츠구미가 무슨 짓을 하든 너그럽게 용서해주는 이모네 가족과는 달리 마리아는 츠구미의 괴짜스러운 짓을 참을 수만은 없었다. 어느 날, 츠구미가 도깨비 우편함(부서진 백엽상에 편지를 넣어두면 영계와 소통할 수 있다고 믿었다)에서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편지를 찾아온다. 살아 계실 때 마리아를 유난히 아끼셨던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되살아나 눈물을 흘렸지만, 다음 날 그 모든 것이 츠구미의 장난으로 판명되면서 마리아는 불같이 화를 낸다. 제아무리 심한 장난을 쳐도 그 결과에 대해서는 나 몰라라 하던 츠구미의 입에서 “마리아, 미안.”이라는 말이 나온다. 그 사건을 계기로 마리아와 츠구미는 진짜 친구가 되었다. 아버지의 이혼 문제가 해결되고, 대학 진학을 위해 어머니와 함께 마리아는 도쿄로 떠난다. 어린 시절을 보낸 바닷가 마을의 추억을 가슴에 안고, 마리아는 이모네 가족들과 이별한다. 그해 여름방학에 마리아가 바닷가 마을을 다시 찾으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하나도 변한 것 없이 여전히 짓궂은 츠구미와 함께 바닷가를 산책하다가, 그들은 쿄이치와 그의 강아지 겐고로와 마주친다. 마을에 새로 생기는 호텔집 아들인 쿄이치에게 츠구미는 단박에 호감을 느낀다. 마리아는 우연히 재회한 쿄이치에게 아파서 누워 있는 츠구미를 위해 문병을 가자고 하고, 여전히 엉뚱한 짓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츠구미를 쿄이치도 사랑스럽게 바라본다. 그리하여 그 여름 두 사람은 애틋한 사랑을 나눈다.
그러던 어느 날, 한적한 바닷가 마을에 들어설 대형 호텔에 앙심을 품고 있던 동네 사내들이 쿄이치의 강아지 겐고로를 훔쳐가는 사건이 벌어진다. 쿄이치만큼이나 겐고로를 아끼던 츠구미는 바닷가에서 허우적대던 겐고로를 찾아온다. 그러나 돌아온 겐고로는 그날 밤으로 다시 없어지고,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 겐고로가 없어져 시름에 빠졌던 쿄이치는 집으로 돌아간다. 겐고로와 쿄이치를 모두 떠나보낸 츠구미는 겐고로를 잡아간 사내들에게 복수한다. 그러느라 안 그래도 허약했던 츠구미의 건강은 악화되기에 이른다. 여름방학이 끝나서 다시 도쿄로 돌아온 마리아는 츠구미가 심각한 상태라는 전화를 받고 달려가지만, 츠구미는 한결 나아진 상태로 마리아를 맞는다. 자신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말을 하는 츠구미를 뒤로하고 돌아오지만, 며칠 후에 츠구미가 보낸 편지가 도착한다.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을 소녀들의 찬란한 계절
『티티새』는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을 열아홉의 여름을 그린 소녀들의 성장소설이다. 또한 죽음 저편에서만 세상을 바라보던 주인공 츠구미가 첫사랑을 가슴에 안으면서 그 힘으로 죽음의 이편에서 세상을 보듬게 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마리아는 말괄량이 츠구미와 어울리면서 자신이 좀 더 너그럽고 여유 있는 성인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자신이 죽을 거라 믿고 마지막으로 마리아에게 보낸 츠구미의 편지에서는 그 여름을 보내며 한층 성숙하고 성장한 츠구미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그런 츠구미를 옆에서 지켜본 마리아도 이제 완연한 스무 살의 여인으로 성장했다.
『티티새』를 읽다 보면 츠구미의 엉뚱한 장난에 미소를 짓기도 하고, 츠구미의 사랑스럽고 귀여운 모습에 연민과 애정을 느끼기도 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바나나의 탁월한 인물 구성을 눈여겨볼 만하다. 바나나는 단순한 인물 묘사가 아니라 행동과 말투, 다양한 사건 등을 통해 츠구미, 마리아, 요코 언니의 캐릭터를 실감나게 빚어냈다. 또 이 작품에서도 바나나 특유의 속도감 있는 문체가 돋보인다. 특히 여름 바닷가를 둘러싼 아름다운 풍경이 그림을 그리는 듯한 생기 넘치는 묘사로 그려졌다. 초기 작품인지라 다소 어색한 듯, 서툰 듯한 묘사가 역으로 훨씬 더 현실적이고 실감 있는 힘을 발휘한 듯하다. 바나나의 독특한 문체와 묘사를 그대로 살려내는 데에는 김난주의 탁월한 번역이 큰 몫을 했다. 김난주는 바나나의 대부분의 작품을 번역하면서 작가의 특징을 누구보다 정확하게 파악하면서 감칠맛 나는 번역을 해냈다. 한편, 이 책의 한국어 제목인 ‘티티새’는 여주인공 츠구미(つぐみ, 동음이의어로 티티새(개똥지빠귀)라는 뜻)의 이름을 풀어 쓴 것이다. 이번에 출간된 『티티새』는 김난주의 새로운 번역으로 현대적인 감성에 훨씬 더 가까운 작품으로 재탄생했다.
츠구미는 말괄량이 같은 소녀 시절을 지낸 사람들에게 따뜻한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츠구미는 바로 우리 주위에 가까이 있는 그 누구일 수도 있고, 바로 어린 시절의 나 자신일 수도 있다.

 이미 매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는 나라 요시토모의 그림이 인상적인 요시모토 바나나의 신작 '하드보일드 하드럭'을 처음 받아보았을 때의 첫인상은 이젠 책도 그 내용만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자체가 우리에게 주는 이미지로서도 평가받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표지에서부터 요시모토 바나나의 책을 설명하고 있다는 표현이 들어맞을지 모르겠지만, '죽음에 대한 두개의 이야기'를 바나나식으로 담고 있는 이 책은 리얼한 묘사 속에서도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묘한 소설이다.어둠에서 빛으로, 겨울에서 여름으로 상실의 아픔에서 生을 이어갈 힘을 이끌어내는, 슬프고도 따사로운 이야기 두 편. 실제로 사랑하는 이를 잃고서 쓴 요시모토 바나나의 신작 소설.
■ 죽음에 관한 두 개의 변주
요시모토 바나나의 최신작『하드보일드ㆍ하드 럭』은 죽음을 소재로 한 2편의 중편소설,『하드보일드』와『하드 럭』이 담겨 있다. 이 두 작품은 모두 요시모토 바나나가 실제로 가까운 이의 죽음으로 겪고 그때의 상황과 아픔을 반추하며 단기간에 쓴 글이다. 그는 그 아픈 경험을 가지고, 흔히 그렇듯 단순한 회한에 빠져들지 않고, 힘겨운 상실의 고통을 삶에 대한 새로운 희망의 빛으로 바꾸는 긍정적인, 그래서 힘이 있는 두 편의 따사로운 이야기로 만들어냈다.
어느 날 영원히 잃어버린 그녀와 마주하게 된 여행중의 기이한 하룻밤 이야기『하드보일드』. 결혼을 앞두고 과로로 쓰러진 언니를 영원히 떠나보내게 되기까지의 이야기『하드 럭』. 이 두 편의 소설은 모두 어느 순간 다가온 사랑하는 이의 죽음으로 겪게 된 시린 아픔을 특유의 담담하면서도 시적인 문체로 애잔하게 그리고 있다. 그리고 그 아픔을 삶의 또 하나의 소중한 부분으로 녹여내는 과정으로써 묘사함하여, 사람이란 참으로 약하면서도 강한 존재이고, 삶이란 눈물나게 아름다운 순간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보여준다.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미술가인 요시토모 나라(奈良美智)가 이 작품을 읽고 그린 네 컷의 그림이 포함되어 작품의 분위기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하드보일드Hard-boiled』, 상실을 감싸 안는 따뜻한 이해의 꿈
나는 그 어느 곳도 아닌 곳에 와버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제 어디로도 돌아갈 수 없을 듯한 기분이었다. 그 길은 어디와도 이어져 있지 않고, 이 여행에 끝은 없고, 아침은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것만 같았다.
홀로 여행을 하던 주인공 <나>는 어느 날 밤, 갑자기 시간이 멈춘 듯 기이한 일을 반복해서 겪게 된다. 그리고 몇 년 전에 드라이브를 갔다가, 산길에서 영원히 헤어진 그녀, <어찌해야 좋을지 모를 기억으로 내 안에 유보된 채 남아 있던> 그녀, 치즈루가 떠오르기 시작한다.
그 무렵에는 나 자신의 의식마저 모호했다. 나는 상처 입어 미묘하게 지쳐 있었고, 아직 어린애였다. 창밖에는 늘 구름이 끼어 있었던 것 같다. 아니, 구름만 낀 것이 아니라, 그 해에는 안개가 유난히 많았다. 늘, 창밖은 탁한 회색이었다.
<여자가 생겨 오래도록 집을 비웠던 아버지가 나에게만 비밀리에 유산을 남기고 죽었다. 그리고 엄마는 그 쥐꼬리만한 유산이 탐이나 온갖 수단을 다 썼고, 급기야 나의 인감과 통장을 훔쳐 도망가 버리고 말았다.> 친엄마는 아니었지만 같은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여 내게 존재의 이유가 되어주던 엄마. 그녀의 갑작스런 배신은 내게 복수심을 불러일으켜 결국 엄마가 도망가 살고 있던 집에 들어가 통장을 훔쳐내고 만다. 유산의 딱 절반을 떼어 우편으로 부치는 순간, 이제 이 세상에서 <영원히 혼자가 돼버린 나>를 치즈루가 함께 살자고 하여 동거를 시작했다. 그러나 그녀는 나를 사랑했지만, 그녀 안의 어둡고 쓸쓸한 부분을 알게 될수록 사랑할 자신이 없어진 나는 곧 독립을 결심한다. <어떤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일이, 다른 어떤 사람에게는 죽음과 똑같을 만큼 괴로울 수도 있다>는 걸 몰랐기에, 드라이브하러 나간 산길에서 나는 그녀를 내려주고 떠나온다. 그게 영원한 이별이 될 줄 모른 채.
그렇게 헤어진 후 한 달쯤 지나 안정되자 걸어본 전화에서, 그녀는 내게 이렇게 말한다. <넌 정말 운이 강해. 그래서 좀 남다른 인생을 보내게 될 거야. 하지만 자기를 질책하면 안 돼. 하드보일드하게 사는 거야. 어떤 일이 있어도.> 그러나 그때 이미, 나를 사랑했고 이 세상에서 그 누구보다 외로웠던 존재인 그녀는 화재로 죽어버린 상태였다. <나는 울지 못했다. 지금도, 제대로 울지 못하고 있다.>
이 밤, 외로운 여행지에서 그때의 추억과 꿈이 뒤섞여 끊임없이 떠오르고, 마침내 나는 꿈속에서 치즈루를 마주하게 된다. 나를 원망하던 모습에서부터 따뜻한 시선으로 모든 걸 이해하는 모습까지. 그리고 그 악몽 같기도 하고 천국 같기도 했던 기나긴 하룻밤이 끝나고 새로운 아침이 시작된다.
사람들은, 자기가 상대방에게 싫증이 났기 때문에, 혹은 자기 의지로, 또 혹은 상대방의 의지로 헤어졌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사실은 다르다. 계절이 바뀌듯, 만남의 시기가 끝나는 것이다. 그저 그뿐이다. 그것은 인간의 의지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러니까, 뒤집어 말하면, 마지막이 오는 그날까지 재미있게 지내는 것도 가능하다.
■『하드 럭Hard Luck』, 불행 속의 행복, 혹은 힘겨운 행운
결혼으로 퇴직하게 되어 인수인계 작업으로 매일 철야를 하던 언니는 갑자기 쓰러져 혼수상태가 된 후 하루하루 죽어가고 있다. 식물인간이 되면 몇 년이 되든 살려두겠다는 엄마의 마지막 바람마저 불가능해진 채. 약혼자는 파혼하고서 도망쳐 버리고 가족들은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찾아보려 발버둥치지만 모두 허사이다. 기적마저 바랄 수 없다. 이젠 인공호흡기를 뗄 날만 기다릴 뿐.
폭풍 같던 고통의 기간이 한바탕 지나간 후, 이제는 언니를 떠나보낼 준비를 한다. 시시때때로 덥쳐오는 슬픔과 아픔 속에, 언니와 함께했던 모든 추억들, 언니가 쓰던 작은 물건들 하나하나가 더없는 의미를 지니고 내게로 다가온다. 그리고 어느 순간, 시간의 농도가 짙어지고 삶의 작은 부분, 주위의 작은 애정에도 감사하게 된다. 언니의 죽음은 불행과 행운을 함께 가져다준 것이다. 함께 있는 사람들, 흐르는 순간, 작은 추억마저도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일러준 것이다. 아픔으로 가슴 한 켠에 영원히 남아 있지만 그 아픔을 안고 미래로 나아가게 하는 힘을 주는 것이다. 살아 있는 사람에게 사랑하는 이의 죽음은 그런 것이고, 또 그래야만 산 사람들은 계속 생을 이어갈 수 있는 것이리라.
생각도, 희망도, 기적도 없이, 언니가 이제 세상을 떠나려 한다. 의식도 없이, 몸은 따뜻한데, 모두에게 시간을 주고서. 그 시간 속에서, 나는 조그맣게 웃었다.
■ 절묘한 필치로 그려내는 삶의 통과제의
요시모토 바나나 소설이 젊은 세대들을 사로잡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픔을 아픔으로 인정하고 그로부터 성숙해 나가는 주인공을 보여주되, 어디까지나 가르치려들거나 강요하는 법 없이 어느 순간 보면 그의 목소리에, 그의 의견에 가랑비에 옷이 젖듯 살며시 젖어들도록 독자를 사로잡는 그의 뛰어난 묘사력에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하드보일드 하드 럭』은 그런 그의 능력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일 것이다.
『하드보일드』는 사랑을 하는 법도, 사랑을 주는 법도 모르던 철모르던 시절, 뜻하지 않게 영원히 헤어진 사람에 대한 마지막 초혼(招魂)의 노래이자, 아픔으로 유보된 채 남아 있던 기억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갈무리하고 서로간에 따뜻한 이해를 주고받는 꿈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하드 럭』은 사랑하는 언니의 죽음이라는 불행 속에 내가 마주한 힘겨운 행운을 그리고 있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이란 고통과 회한만을 남기는 것이 아니다. 죄스러울 때도 없지 않지만, 남은 생을 더 열심히 살아가도록 열심히 도움닫기를 하도록 이끌기도 한다.
그리고 이 책을 펼친 독자는 이 두 이야기에 어느새 빠져들어 그 아픔과 후회, 미안함과 고마움, 또한 새로운 희망마저 주인공과 함께하게 된다. 그리고 이야기가 모두 끝나고 나면,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숨어 있던 아픔마저 가라앉아 있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일종의 삶에서의 통과제의라 할 수 있고 요시모토 바나나는 그 누구보다 능수능란한 솜씨로 그 과정으로 독자 모두를 이끈다.

 저자 특유의 감성적인 문체와 시공을 넘나드는 신비한 상황을 배경으로 한 작품으로, 사고로 기억을 잃어버린 후 자기 자신도, 자신이 사랑한 사람도 모두 잊어버린 한 여인이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고 삶을 사랑으로 바라보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담고 있다. 그 과정에서 저자는 무엇보다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에 관해 질문을 던지고 지혜로운 해답을 드러내 보인다.원고지 1600매가 넘는 바나나의 최대 장편소설 『암리타』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린 상실감을 이겨내고 새로운 만남 속에서 존재의 의미를 찾아가는 한 여인의 이야기이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작품은 줄곧 상실에서 오는 상처와, 그 상처에서 오는 슬픔을 이겨내는 따뜻한 사랑의 양상을 보여주었다. 한마디로 그는 상처 입은 인간이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는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그 해답을 찾는 작가이다. 『암리타』 역시 그러한 기존 주제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하겠다.
그러나 『암리타』의 가장 큰 특징은 바나나 문학의 모든 특징을 한꺼번에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 소설에서 바나나는 시종일관 젊은 여성의 복잡미묘한 감정의 결을 그대로 드러내 보이는 특유의 명쾌한 문체를 구사하고 있다. 또한 현실을 뛰어넘는 감성의 세계를 구축하여, 롤러코스터를 탄 듯 독자들이 그 속에 정신없이 빠져들게 한다. 그와 함께 가족 붕괴 후 더욱 강해지는 가족에 대한 깊은 애정과, 서로 소통되는 인간이 마음이 낳는 힘에 대한 강한 믿음으로 사람들 사이의 따뜻한 유대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그 외에도 이미 『키친』을 통해 모두의 찬사를 불러일으킨 바 있는, 일상적인 소품들에 대한 진지한 관찰로 일상을 새로이 돌아보게 한다.
무엇보다 『암리타』의 세계는 과거의 추억과 미래의 가능성, 현재의 불안정성, 삶과 죽음, 눈에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 등 무수한 테마가 무수히 교차하면서 느슨한 듯 정교하게 짜여 있다. 한번 그 세계에 발을 들여놓으면 독자는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넘어 바나나만의 세계와 감성에 동참하게 된다. 그 세계는 비현실적인 때도 많지만 어디까지나 일상의 아픔에 뿌리박고 따스하게 그것을 감싸 안으려 하기 때문에 결코 환상적이거나 몽환적이지 않다. 이 같은 바나나만의 세계가 『암리타』 만큼 효과적으로 구축된 작품은 전에 없었다.
요시모토 바나나는 『암리타』를 두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작품을 쓰면서 나는 내 자신이 할 수 있는 한계에까지 이르렀다." 그 자신의 말대로 이 작품은 그야말로 바나나 문학의 결정판이라 하겠다.

 정작 자신은 한번도 결혼하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하지 않을 거라는 작가 요시모토 바나나가 인생의 가장 황홀한 시기에 바치는 찬가이자, 사랑과 꿈이 필요한 십대들이 사춘기를 넘어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바깥 세상을 만나고 그것을 감싸안게 되기까지의 방황을 그린 소설. 일본의 신세대 일러스트레이터 마야 막스가 그린 삽화 14컷이 소설과의 독립적이면서도 조화로운 공존을 시도하고 있다.바야흐로 결혼의 계절이다. <결혼>을 인생의 무덤이라고 했던가. 그래도 결혼을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허니문>만큼은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 아닐까? 수없이 많은 신혼부부들이 또 달콤한 <허니문>에 오를 계절에 요시모토 바나나의 신작 소설 『허니문』이 출간되었다. 1988년 『키친』으로 화려한 문학적 데뷔를 하며 <나의 최종 목표는 노벨문학상을 타는 것>이라는 당찬 포부를 밝혔던 요시모토 바나나는 이후 활발한 작품활동과 수상경력을 쌓으며 1990년대 일본문학에 하나의 전설을 낳았고 21세기 일본문학을 이끌어갈 대표적 작가로 꼽히고 있다.
정작 자신은 한번도 결혼하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하지 않을 거라는 작가 요시모토 바나나가 인생의 가장 황홀한 시기에 바치는 찬가 『허니문』에는 깜찍한 일러스트가 함께 실렸다. 일본의 신세대 일러스트레이터 마야 막스Maya Maxx가 그린 삽화 14컷이 그것이다. 마야 막스는 요시모토 바나나가 글을 써 나가는 동안 내내 함께 일러스트 작업을 하였다고 한다. 소설을 위한 삽화나 삽화를 위한 글쓰기가 아닌, 서로 독립적이면서도 조화로운 작업을 위해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며 작업했다고 밝혔다.
『허니문』은 사랑과 꿈이 필요한 십대들이 사춘기를 넘어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바깥 세상을 만나고 그것을 감싸안게 되기까지의 방황을 그린 소설이다. 사교에 빠져 집을 나간 부모에게 버림받고 할아버지와 함께 사는 소년 히로시와 그의 옆집에 사는 소녀 마나카의 우정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다른 작품들, 예컨대 『키친』이나 『도마뱀』에서처럼 『허니문』의 주인공들도 자기만의 비밀과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사교 집단에 속해 끔찍한 행각을 벌이던 부모의 집단 자살을 겪은 십대 소년과 부모의 이혼을 경험한 십대 소녀가 서로 다른 사람의 상처를 이해하며 자기의 것을 치유하게 되는 과정, 다른 사람의 영혼과 교류하며 세상의 신비로움에 눈떠 가는 과정을 바나나 특유의 담백한 문체로 들려준다. 그래서 어린 부부가 달빛 속에서 서로의 알몸을 들여다보는 장면도, 불길하고 음습한 집안의 비밀을 발견하는 장면도 침침하지 않다. 상심한 남편에게 우동을 끓여주는 어린 아내와 아내의 창가에 매일 밤 풀꽃 다발을 가져다놓는 어린 남편이 사는 새둥지의 따뜻함만이 감돌 뿐이다.
P.S. 작가는 이 책을 <바리코>에게 바치고 있는데 바리코가 누구인지 작가에서 문의했던 편집자에게 돌아온 답은 <묻지 말아달라>는 것뿐이었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이 작품은, 그녀가 '지금까지 써 온 소설의 테마 전부(레즈비언, 근친간의 사랑, 텔레파시와 심퍼시, 오컬트, 종교 등등)를 가능한 한 적은 등장인물들과 조그만 동네 안에 쏟아부은 이상한 공간으로 채워져' 있다. 작가는 '재능이든, 결함이든, 살아가기 힘든 문제를 짊어지고 걷고 있는 사람들, 하지만 이 세상에 사는 어떤 사람도, 아무도 거리낌 없이 저 좋은 위치에서 그 사람이 생각하는 바 대로 살아도 무방하다는, 그런 바람을 정성껏 담아 작품으로 꾸미고 싶었'다고 한다.

 

 이 책은 아주 색다른 사랑이야기이다. 신비로운 예언으로 시작되는 어린연인들의 기이한 만남과 이별의 이야기이며 바나나 소설 특유의 초현실적 분위기와 감각적인 문체로 삭막한 일상에서는 만나기 어려운 상큼하고 낭만적인 환상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주인공 마오는 어느 날 할머니로부터 이상한 예언을 듣는다. 임종 자리에서 열에 들뜬 체 할머니는 마오에게 "너는 하치의 마지막 연인이 될 거다. 하치, 중요,'하치의 마지막 연인'이라는 유언을 남긴다. 마오는 <종교 단체 비슷한 집>에서 태어나 지나치게 자유분방한 엄마 곁에서 다소 뒤틀린 성장기를 보낸 소녀이다. 그녀는 아버지가 누군지 모른다. 그녀의 엄마는 집을 드나드는 남자들과 열심히 육욕을 살찌우느라 딸의 고뇌 따위 아랑곳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마오가 보는 세계는 생기도 활기도 없이 죽어 있는 회색 세계이다. 그런 마오의 세계에 어느 날 할머니의 유언 그대로 하치라는 이름을 가진 남자가 나타난다.

 여기 실린 여섯 편의 소설들은 삶의 아픔과 상처, 그리고 그것의 극복에 대한 이야기이다. 요시모토 바나나는 ``삶의 진실을 새로이 발견했을 때 드는 당확감이나 정신적인 짐을 정리해 갈 때 느끼는 산뜻한 기분, 그런 것들이 테마가 되어 있다``고 밝힌다. 바나나 소설의 주인공들의 기이한 행동은 흔히 볼 수 없지만 금세 친숙한 느낌을 불러온다. 바나나만큼 현대인의 일상적인 감성을 섬세하게 짚어낸 작가도 없을 것이다. 그는 무심코 지나쳐가기 쉬운 삶의 작은 의미들을 아기자기하게 다룰 줄 아는 작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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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그라미 2007-01-19 1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님의 서재에는 책에 대한 정보가 다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