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음성



큰소리로 말씀하지 않으셔도 들려옵니다.
나의 자그만 안뜰에 남몰래 돋아나는 향기로운 풀잎,

당신의 말씀, 그 말씀 아니시면
어떻게 이 먼 바다를 저어갈 수 있겠습니까.

아무리 둘러보아도
아직은 메마른 나무의 둘레, 나의 둘레, 꽃도 피지 않고
뜨거울 줄 모르는 미지근한 체온,

비록 긴 시간이 걸려도 꽃은 피워야겠습니다.
비 온 뒤의 햇살 같이 안으로 스며드는 당신의 음성.

큰소리로 말씀하지 않으셔도 가까이 들려옵니다.

빛나는 새아침을 맞기 위하여 밤은 오래도록 어두워야 한다고.

아직도 잠시 빛이 있을 동안에
나는 끔찍이 이 세월을 아껴 써야 한다고.

마음이 가난하지 못함은 하나의 서러움.

보화가 있는 곳에 마음이 함께 있다고.

아직도 가득 차 있는 나의 잔을
보다 아낌없이 비워야 한다고......

네 그래요.

큰소리로 말씀하지 않으셔도 분명히 들려옵니다.



당신의 음성 - 이해인의 <민들레의 영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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