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녀의 편지를 몇 백 번이나 읽었다.

그리고 읽을 때마다 한없이 슬퍼졌다.

그것은 마치 그녀가 내 눈을

말끄러미 바라볼 때의 느낌과도 같은,

어찌할 바 모르는 슬픔이었다.

나는 그런 기분을 어디로 가져갈 수도

어디다 넣어둘 수도 없었다.

그것은 바람처럼 윤곽도 없고 무게도 없었다.

몸에 걸치는 것조차 할 수 없었다.

풍경이 내 앞을 천천히 지나갔다.

그들이 하는 말은 내 귀에까지 들려오지 않았다.


무라카미 하루키 / 개똥벌레 中

 

 

 

 





요즈음 늘 이런 상태가 계속되고 있어.

뭔가를 말하려 해도

늘 빗나가는 말밖에 떠오르지 않는거야.

빗나가거나 전혀 반대로 말하거나 해.

그래서 그걸 정정하려면 더 큰 혼란에 빠져서 빗나가 버리고,

그렇게 되면 처음에 내가 무슨 말을 하려 했는지조차 알 수 없어..

마치 내 몸이 두 개로 갈라져서 쫒고 쫒기는 듯한 느낌이 들어.

한복판에 굉장히 굵은 기둥이 서 있어서

그 주위를 빙빙 돌며 술래잡기를 하는 거야.

꼭 알맞은 말이란 늘 또 다른 내가 품고 있어서,

이쪽의 나는 절대로 따라잡을 수가 없게 돼...


상실의 시대 中  / 무라카미 하루키

 

 

 

 

 




사랑은 완성되어져야 할 그런 것이 아니라고 말이지요.

혁명이 그렇고, 삶이 그렇듯이..

하지만 우리는 끝을 보고 싶어했어요.

손으로 만질 수 있고, 눈으로 볼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라면

모둔 것은 처음부터 없었던 것과 같은 거라고.

그 중간이 존재하고 그 과정도 존재하며

사실은 삶이란 게 바로 그런 과정들 뿐인데 말이지요.

삶조차 완성될 수는 없는 건데요.

나는 조급히 끝을 만지고 싶어하는 그 여자를

지독히 사랑했나봐요.

아니, 사랑한 만큼 증오했나봐요.

끝이 보이지 않던 내 희망을 사랑하고 증오했듯이.

아마 그래서 그 여자 없이도 페루로 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존재는 눈물을 흘린다 / 공지영

 

 

 

 

살아 간다는 것은 저물어 간다는 것이다

슬프게도 사랑은 자주 흔들린다

어떤 인연은 노래가 되고

어떤 인연은 상처가 된다

하루에 한 번씩 바다는 저물고

노래도 상처도

무채색으로 흐리게 지워진다

나는 시린 무릎 감싸 안으며

나지막히 그대 이름을 부른다

살아 간다는 것은

오늘도 내가 혼자임을 아는 것이다.


이외수 / 저무는 바다를 머리맡에 걸어 두고

 

지금의 나를 사랑해 주세요

만일 자신을 용서하고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면
당신은 자신의 아름다움만
알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청명한 하늘, 반짝이는 별의 감동,
숨쉬는 것의 경이로움, 바람의 수목과
속삭이는 설렘, 꽃들의 화려한 외출,
비오는 날의 포근함 등 당신을 둘러싼
모든 사물의 아름다움도 보지 못합니다.
물론 친구와 부모 형제,
그리고 주위 모든 사람들의 아름다움도
알지 못한 채 세월을 보낼지 모릅니다.


- 가나모리 우라코의
<참으로 마음이 편안해지는 책>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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