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우린, 별이 아니라
스스로 빛나지 못하는 차갑고 검은 덩어리예요
존재란 스스로 빛날 수 없는 것
누군가의 시선 속에서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만월도 되고 때론 그믐달도 되고, 그런 것 같아요


- 정미경의 단편소설 <나의 피투성이 연인>에 수록된
<달은 스스로 빛나지 않는다> 중에서-

나의 피투성이 연인]을 포함, 등단 후 발표한 [나릿빛 사진의 추억], [호텔 유로, 1203], [성스러운 봄], [비소 여인], [달은 스스로 빛나지 않는다] 총 여섯 편의 중단편을 모았다

 

「나의 피투성이 연인」은 견고하고 단단한 생의 틈새로 얼핏 드러난 붉고 무른 속살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 어떤 논리로도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 그 어떤 행동으로도 바꿀 수 없는 운명의 잔혹성, 그리고 그 속에서도 끊임없이 자기를 설명하며 나아가야만 하는 살아남은 자의 고통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것은 생의 모든 환멸과 미움과 분노의 감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자의 아픈 목소리를 들려준다. 그래서 유선은 “세상에서 가장 날카로운 칼을 그가 내 젖가슴에 겨눈다 할지라도 지금은 그를 안고 싶다.”고 고백하며, 죽은 남편을 영원히 자신만의 것으로 남기기 위해 그의 유고집 출간을 포기한다. - 덧칠하지 않은 진실을 비추는 거울 같은 언어.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초라한 골목. 지금 현재 나는 그 안에서 살고 있지만 머지않아 전혀 다른 세계로 건너갈 것이다. 아동물 출판 기획자인 정은은 결혼을 두 달 앞두고 잠깐 머무를 곳을 찾다가 시장 골목의 다가구주택에 세를 들어 지내게 된다. 첫날부터 소음에 시달리고 밤이 되자 심지어 옆집 여자가 부부싸움 끝에 남편을 피해 정은의 방으로 뛰어 들어온다. 견딜 수 없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녀는 당장이라도 짐을 싸들고 나가고 싶어진다. 그러나 어차피 이 골목의 사람들은 그저 잠시만 견디면 되고, 곧 치과 의사의 아내가 되어 시부모님이 마련해 준 아파트에서 소주와 순대 대신 칵테일에 초밥을 먹으며 지내게 될 테니까 하고 스스로를 위하며 버텨보기로 결심한다. 옆집 여자인 미옥은 건설노동자였던 남편이 사고로 성불구가 된 다음부터 남편의 의처증 때문에 시달린다. 정은은 그런 그녀에게 처음에는 거부감과 경멸을 느끼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녀를 이해하게 된다. 한편 영화감독 지망생인 승우는 골목의 사람들의 모습을 비디오카메라에 담아 단편영화를 제작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들 사이의 벽이 조금씩 허물어지려는 순간, 미옥은 외도를 의심한 남편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달은 스스로 빛나지 않는다」는 불공평한 생에 대해 투정부리지 않으면서도 상처를 위로하는 품위 있는 태도를 보여준다. 그리하여 독자들은 덧칠하지 않은 생의 진실 속을 느린 걸음으로 나아가는 법을 배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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