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려라, 아비
김애란 지음 / 창비 / 2005년 11월
구판절판


나는 어머니가 좋았지만 그것을 무어라 표현해야할지 몰라 자꾸만 인상을 썼다. 나는 내가 얼굴주름을 구길수록 어머니가 자주 웃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 나는, 사랑이란 어쩌면 함께 웃는 것이 아니라 한쪽이 우스워지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9쪽

아버지가 비록 세상에서 가장 시시하고 초라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 그런 사람도 다른 사람들이 아픈 것은 같이 아프고, 다른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같이 좋아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러니 아버지는 내가 아버지를 상상했던 십수년 내내, 쉬지 않고 달리는 동안 늘 눈이 아프고 부셨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밤 아버지의 얼굴에 썬글라스를 씌워드리기로 결심했다.-28쪽

그러나 무엇보다도 급한 것은 잠이었다. 자야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자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 그녀는 잠 못 들던 수만 가지 이유는 다 잊어버렸다. 그녀는 오직 텔레비전만 없어진다면 아주 아주 달고 깊은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그날, 집에 돌아가 아버지가 화장실에 간 사이 가위로 텔레비전 유선을 싹둑 잘라버렸다. 그것은 과거, 아버지가 그들 가족과의 관계를 끊었던 것처럼 잘 잘라졌다.
-102쪽

나는 이해받고 싶은 사람, 그러나 당신의 맨얼굴을 보고는 뒷걸음치는 사람이다. 나는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 그러나 그 사랑이 '나는'으로 시작되는 사람이 하고 있는 사랑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다. 나는 '그래도 나는'이라고 말한 뒤 주저앉는 사람, 나는 한번 더 '나는'이라고 말한 뒤 주저앉는 사람, 그러나 나는 멈출수 없는 사람, 그리하여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자주 생각하는 사람이다'라고 처음부터 다시 말하는 사람이다. -138쪽

바람이 들고 날 때마다 모든 벽면은 바깥을 향해 천천히 부풀어 오르다 다시 원상태로 천천히 가라앉았다. 그럴 때면 다섯 개의 벽면에 붙은 포스트잇들은 일제히 파르르 몸을 떨었다. 그러자 그것은 더욱 살아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그 방 전체가 하나의 종이 비늘이 달린 물고기가 되어 부드럽게 세상을 헤엄쳐다니는 상상을 했다. 반대로 자신이 물고기의 뱃속에 들어가 있는 것 같은 기분도 느꼈다.-2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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