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집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억지스런 합리화로 스스로를 무장하고 가소로운 자존심을 앞세워서 먼저 열지 않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상대가 자신의 문을 열거나 나의 문을 열고 들어설 때까지 또아리를 틀고 있었습니다.
사실은 방법을 몰랐습니다. 어떻게 고리를 따고 열어야 하는지 어떡해야 내가 먼저 열어도 쑥스럽지 않을런지 마침내 열고 나면 또 어째야 하는지 망설이고 더듬거리다 시간이 갔습니다.
아니 정말은 무서웠습니다. 열고나면 보여야할 부끄러운 속살들이, 속으로 고여 있는 역겨운 냄새들이, 아니 문을 열고 당신을 맞아서 당신의 부피만큼 나를 비울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시간만 흘렀습니다.
문고리도 부숴지고, 칠도 벗겨졌습니다. 애써 열지 않아도 여기저기 삭아내린 부분들때문에 더 이상 감출 수 없어 삐걱거리며 문을 엽니다.
수척한 채로, 나보다 더 외로워하며 문앞에서 힘들게 나를 기다린 당신을 그제서야 봅니다.
(옆지기 홈페이지에서 가져옴)
지난 토요일 오후 혼자서 폐동물원으로 장비를 울러매고 갔다왔나봅니다.
그날의 주제는 시든 백합 한 송이였다고 하더군요.
황량하고 쓸쓸한, 아무도 기웃거리지 않는, 겨울바람 깃든 그곳에서
낡고 녹슨, 허물어질 것만 같은 문들을 찍고, 그 안을 들여다보고,
눈으로 마음으로 쓸고 다녔을 사람을 떠올려봅니다.
오늘아침 이 글을 노트북 화면에 띄워두고 나갔습니다.
제게 건네는 간접화법, 그렇다고 해도
전보다 훨씬 덜 우회적이라 마음에 듭니다.
당신의 고백, 나의 고백이기도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