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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내게 무해한 사람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7월
평점 :
재능 있는 작가의 탄생을 알리는 소설집 - (소설가 김영하)
인간에 대한 이해가 깊은 소설을 쓰는 작가 - (소설가 김연수)
이 소설은 위와 같은 평이 있는데, 소설가의 평과 나의 평은 다르다.
왜냐하면 이해가 되질 않는 문장, 낡은 기법, 공감할 수 없는 인물들 등이 있어, 소설가의 평에 동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나는 아래와 같은 문장들은 이해가 되질 않는다.
"그의 공격성에는 일종의 징그러움이 있었다." - 601,602 중
"나는 무정하고 차갑고 방어적인 방법으로 모래를 사랑했고, " - 모래로 지은 집 중
일종의 징그러움이란건 도대체 무엇일까?
무정하고 차갑고 방어적인 방법이란 무엇일까?
대화나 인물 행동을 통해 감정을 묘사하는게 어려운걸까? 내적독백으로 모호한 표현을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601,602 의 마지막을 읽으면 단편의 구성(결말)이 얼마나 중요한건지 생각해보게 만든다.
"엄마가 아들을 낳았어. 나에게도 남동생이 생겼다." 나는 효진이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에 그렇게 썼다. "이제 우리는 누구보다도 행복해질 거야. 우리는......." -601,602 마지막 문장
위의 촌스러운 결말은, 마치 저 시대로 돌아간 듯한 복고의 기분을 안겨줬다.
단편의 인물들은 정신 질환을 가진게 아닐까 생각되었는데, 왜냐햐면 평생을 저런 암울한 기분만으로 사는 사람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다른 분이 이 소설에 대해 "과거지향적인 노이로제" 라고 쓴 리뷰를 읽었는데, 그 안의 내용 중
http://m.yna.co.kr/kr/contents/?cid=AKR20170216169800017&mobile 이란 기사가 있다.
한마디로 부정적인 정신습관을 가진 이유를 환경과 남의 탓이라는고 이야기하는게 이 소설의 전부이다.
자신들의 인지에 오류가 있는건 모르고 영원히 탓만 하면서 살아가는 이 소설은 탓 증후군을 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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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평을 쓰고 시간이 지나고 이 소설에 대한 평가를 읽을때 마다 내가 이해를 못한 부분이 있었을까 생각되어 다시 한번 읽었다. 왜냐하면 칭찬의 일색이었기때문이다.
두번째 읽은 뒤에 첫 평을 썼고, 이번의 세번째 읽었을때도 느낌과 감상은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남성적 서사에서 벗어난 소설을 썻다는 작가의 인터뷰를 읽고선 생각은 달라졌다. 독자가 즐겁고 공감이 되는 소설을 쓰는게 작가인데, 작가는 100%의 독자를 만족시킬 수 없었고, 난 그 기준에 벗어난 독자인것이다. 예를 들어 작가가 90% 독자를 만족시킨다면 난 소외된 10%였다. 그 사실이 너무 당황스러웠고 어떻게 그 기준을 따라가야 될지 모르겠다.
이런 스타일의 소설이 독자의 공감을 끌어 낼 수 있었다면, 그렇지 못한 나는 고인물이 된 기분이다. 이 소설의 인물들에 대해 공감을 잘 못하겠지만, 이렇게 많은 독자의 공감을 끌어들인 작가에 박수를 보낸다. 더 많은 독자를 끌어들이고 공감을 얻는 작가의 노력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