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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단편소설 40 - 중고생이 꼭 읽어야 할, 개정증보판 ㅣ 수능.논술.내신을 위한 필독서
김동인 외 지음, 박찬영 외 엮음 / 리베르 / 201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책에 실린 작품들은 한마디로 교과서가 죽여버린 소설들이다.학교에서 배웠다는 이유로 다시 읽지 않게 되는 책의 비애가 자식 세대로 대물림된다.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은, 아이러니 하게도 교과서가 아닌 서점에서 판매되는 책의 작품을 통해서다.학교에서 배웠다는 이유로 작품에 대한 호기심이 없어져버리는 책.학교에서 배웠기때문에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작품.그런 오만함이 철저히 깨지는 순간을 우리는 작품을 통해서 만나게 된다.
청소년기는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서 말하듯 하나의 세계가 그 껍질을 벗고 태어나는 시기다.그래서 청소년기에는 다양한 세계를 만나야 한다.그러나 우리 아이들이 경험할 수 있는 세계는 그리 많지 않다. 현실의 부족한 부분을 보충해 줄 수 있는 부분이 바로 다양한 책이다.그런 점에서 한국단편소설은 아이들에게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알아갈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특히 책에서 다루고 있는 부분은 우리 민족의 정체성이 위기에 직면했던 일제시대와 산업화시기에 걸쳐 있어서 파란만장했던 역사를 압축했다고도 볼 수 있다.논술과 수능에 대비한 교과서에 수록된 작품 위주로 싣다보니 독자들이 생각했던 작품과는 다른 작품들을 만날 수도 있다.
<1920>년대 작품으로는 액자소설의 형태를 갖춘 <배따라기>,환경결정론적인 작품<감자>,사회의 모순과 당시의 억압적인 상황을 그리고 있는 <술 권하는 사회>,반어적 기법이 비극성을 고조시키는 <운수 좋은 날>,인간의 이중성을 희극적으로 그려 낸 <B사감과 러브레터>,비극적이지만 낭만적인 <벙어리 삼룡이>,절망적이면서도 인도주의적인 <화수분>등이 단편소설의 미학을 보여준다.
<1930~1949년>까지 작품으로는 민족의 동질성과 조국에 대한 사랑을 그린 <삵>,절제된 사랑이 섬세하게 묘사된<사랑손님과 어머니>,지식인의 고뇌를 그린<김강사와 T교수>,서정적이면서도 해학적인 <동백꽃>,자유와 이상을 꿈꾸는 이상의 <날개>,한국 소설의 백미로 꼽히는 <메밀꽃 필 무렵>, 한국인의 숙명적인 세계관을 담고 있는 <무녀도>,성장기의 내적 갈등이 잘 드러나는 <하늘을 맑건만>,정신적 파산과 물질적 파산의 대비를 통한 사회 구조적 모순을 비판하는 <두 파산>등을 싣고 있다.
<1950~1959>년 작품으로는 위대한 장인상과 함께 전통적 가치 체계의 패배가 그려지는 <독 짓는 늙은이>,소년 소녀의 풋풋한 사랑을 그린 <소나기>,다른 이야기를 통해 주제를 전달하는 알레고리의 진수를 보여주는 <바비도>,<1960~1970>년대 작품으로 현대인의 심리적 방황과 연대감 상실을 그린 <서울,1964년 겨울>,도시 빈민 계층의 삶과 산업화 사회의 모순과 함께 고정관념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 <뫼비우스의 띠>,계층 간의 대립 구조를 보여주는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등 총 40편의 600쪽 분량이다.
하늘은 낮았다.모란봉 꼭대기에 올라가면 넉넉히 만질 수가 있으리만큼 하늘은 낮다.그리고 그 낮은 하늘보다는 오히려 더 높이 있는 듯한 분홍빛 구름은 몽글몽글 엉기면서 이리저리 날아다닌다.나는 이러한 아름다운 봄 경치에 이렇게 마음껏 봄의 속삭임을 들을 때는 언제든 유토피아를 아니 생각할 수 없다.우리가 시시각각으로 애를 쓰며 수고하는 것은,그 목적은 무엇인가? 역시 유토피아 건설에 있지 않을까? 유토피아를 생각할 때는 언제든 그 '위대한 인격의 소유자'며 '사람의 위대함을 끝까지 즐긴 진시황을 생각지 않을 수 없다.P25<배따라기>
책은 중학생이 이해하기 쉽게 씌였다.또한 다양한 형태의 작품을 만날 수 있어서 좋다.책에서 다루고 있는 작품들은 시대 배경상 반어적 표현이 많다.전체적으로 물질만능과 도덕성에 대한 비판적인 작품이 많다.우리는 이미 물질만능주의 세상에 길들여져 있어서인지 작품 속에서 만나는 물질만능주의 모습은 지금 세태에 비하면 오히려 순수하기까지 한다.
무엇보다 작품들의 부분이 아닌 전문을 싣고 있어서 좋다.<어머니와 사랑손님 >중 내 기억에 각인된 부분은 글의 서두 부분이었고,의무적으로 배워서 어떤 감흥도 없었다.그런데 이 책에서 전체를 만나고 보니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섬세함과 아름다움이 아린 감동을 준다.소나기가 풋풋한 사랑의 아름다움이라면 이 작품은 속으로 삭이는 사랑의 아름다움이 애절하다.어려서는 그저 공부로 알고 배워서 작품의 진정한 맛을 몰랐다.그런데 전문을 읽게 되니 작품의 묘미를 제대로 느낄 수 있어서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