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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 (무선) ㅣ 보름달문고 44
김려령 지음, 장경혜 그림 / 문학동네 / 2011년 4월
평점 :
이동식 건널목은 작가의 관찰력과 상상력이 만들어낸 꿈(이상)이다.거칠고 투박한 스케치에 대충 그린듯 보이는 황토빛 삽화 또한 정감이 간다.동화는, 이야기 속에 주인공이 있으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1인칭 주인공 시점이다.그래서 주인공의 의식의 흐름에 따라 쓴 소설같은 느낌이다.무엇보다 대화체가 많아서 지루하지 않다.어린이가 어른의 축소판인 것처럼 동화도 소설의 축소판이다.동화라고 하기엔 극적인 요소가 너무 많아서,소설같은 재미를 선사한다.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동화의 위력에 놀라울 뿐이다.
<내 가슴에 낙타가 산다>로 등단한 오명랑은 등단 후 내놓을 만한 후속작이 없어 7년째 백수다.직업은 그럴싸하지만,소득이 없으니 가족들에게 눈치도 보이고 제 밥벌이겸 세상공부겸 '이야기 듣기 교실'을 연다.그녀의 첫 제자는 종원이,소원이,나경이다.영특한 아이들은 처음에는 그녀의 이야기에 별기대가 없지만 차츰차츰 다음 이야기를 기대하게 된다.그녀의 이야기는 실뭉치처럼 술술 풀리는 이야기가 아니라 엉킨 실타래처럼 고민고민하다가 들려주는 이야기다.오명랑은 건널목씨와 자신의 가족이 얽힌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스무고개놀이 하듯 풀어놓는다.
<완득이>의 작가 김려령선생님의 자전적 동화일까? 아무렴 자전적 동화는 아닐거야.자전적 이야기라면 소설 몇 권 분량으로도 모자랄테니까.이건 나의 고정관념일까? 하지만 동화작가 오명랑과 작가를 꿈꾸는 나경이는 저자의 분신인 것이 확실하다.
이야기 속에는 신호등 모자를 쓴채 건널목을 등에 지고 다니는 <건널목씨>가 등장한다.건널목씨는 아리랑아파트 앞 골목에 건널목카펫을 펼쳐 아이들이 잘 건널 수 있게 도와준다.그런 아저씨를 사람들은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어느날 건널목씨는 불량배들에게 잡힌 쌍둥이 형제를 도와주다 불량배들에게 맞아서 다치게 된다.그 일을 계기로 건널목씨는 105동 경비실에서 살게된다.건널목씨의 거처는 도희의 피난처이기도 하다.건널목씨는 섬이 되어버린 태석이와 동생태희에게 등대지기가 되어준다.
건널목씨의 정체가 수수께끼의 베일에 가려져 있고,오작가의 올케는 또 다른 베일에 가려져 있다.이야기할 때마다 긴장의 줄을 팽팽하게 당기는 오작가의 등 뒤에서 엄마는 아슬아슬하게 숨을 죽인채 귀를 기울인다.오작가의 스토리는 가족에게 금기고,오작가는 그 성역을 무너뜨려 가족에게 치유의 드라마를 선사한다.
개울과 징검다리가 느림과 정감어린 시대를 말한다면,도시의 건널목은 차의 흐름만큼 빠르고 메마른 시대를 보여준다.건널목에서는 차도 사람도 함께 멈춰야 한다.그런데 우리사회는 흐름이 너무 빨라져 사람들도 함께 빨리 돌아가는 세상이 되어버렸다.그래서 아이들의 세계도 안전하지만은 않다.의심이 많은 어른들,예의가 없는 청소년,가정폭력으로 멍드는 아이,따돌림 받는 아이들.이야기는 현실을 잘 담아냈다.작가는 아이들도 알건 다 안다고 말한다.어른들의 세계가 아이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동화는 잘 보여준다.그런 아픈 현실을 건너는 아이들에게 손을 내미는 건널목씨는 ,살며시 선물을 두고 사라지는 산타처럼 따뜻한 사람이다.그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여러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