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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시간을 그리다 - 풍경과 함께 한 스케치 여행
이장희 글.그림 / 지식노마드 / 201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프레임이 바뀌면 풍경이 달라 보인다.500년 역사 도시 서울의 현재 풍경을 사진이 아닌,크로키croquis(스케치,밑그림)에 담았다.그래서 스케치는 독자에게 피사체를 보는 또 다른 창이 된다. 작가의 기억 속에서 꺼내온 생각들과 현재 서울의 모습은 다양한 참고 문헌과 어우러져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낸다.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서울의 시간은 서울 토박이의 시선에서 미래의 모습을 덧 입는다.민초들은 자연스레 서울의 풍경이 된다.
도시공학을 전공하고 일러스트를 공부한 저자는,자라던 때의 서울의 모습과 변화한 서울의 모습을 잘 포착해 낸다.그래서 책은 저자의 주관이 첨가된 스케치 답사여행이다.작가가 짬짬이 스케치한 작품들과 여느 해의 여러 계절의 변화가 담긴 작품들 속에 문화재의 이름,거리 이름,건물의 명칭에 시대의 흐름이 담겨진다.
때론 충격적이고 웃지 못할 이야기들.고층건물에 사라지고 가려져 묻혀서 모르고 지나쳤던 것들이 너무 많아서 놀랍다.표지석만 남은 세종대왕의 생가터,저자도 몰랐다는 김구 선생의 집무실이 경교장에 있었다.자신의 생을 나라에 바친 위인들이 한 뼘 표지석으로 남겨진 것을 보며,세월의 흐름이란 것이 또 얼마나 덧없는 것인가? 무상함을 느낀다.그 때는 최고의 가치였던 것이 세월이란 강물 앞에 얼마나 변질되기 쉬운 것인지..아쉬운 여운이 남는다.역사 인물들의 집을 그대로 복원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건물의 본래의 목적과 멀어진 쓰임새도 놀랍다.일제가 남기고 간 역사의 흔적들은 아직도 문화재에 많이 남아있다.해학적인 석상들은 웃음짓게 하지만,깨지고,변형된 문화재의 모습은 참 안타깝다.서울에 있는줄도 몰랐던 것들이 수두룩해서 놀랐다.책을 읽다 쓰라린 문화재의 모습을 만나면,<미쳐 다 담지 못한 풍경들>을 보며 마음을 달랜다.
땅 속에 잠들어 있던 문화재를 꺼내는 고고학자처럼 작가의 손을 통해서 잠들어 있던 서울이 깨어난다. 과거에는 있었지만 현재에는 사라진 것들이 화가의 상상 속에서 자라나고,현재에는 없는 것들이 미래에는 첨가되어 한 폭의 수체화가 되기도 한다.사진만으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것들을 우리는 저자의 상상도를 통해서 보는 기쁨을 누리게 된다.다만 전체적으로 글씨가 작아서(폰트8정도) 눈이 쉽게 피로해진다는 점이 아쉽다.
역사를 무시한채 경제논리 우선으로 개발된 흔적들에 씁쓸하다.서울이 얼마나 무분별하게 개발 되었는지 이제야 알았다.서울이 과연 500년 역사를 가진 도시가 맞는가? 모든 겉모습은 자신의 정체성을 담아낸다.서울의 정체성? 한마디로 갓쓰고 양복입은 신사의 모습이다.겉모습만의 성장,그것은 우리나라가 얼마나 바쁘게 달려왔는지를 잘 드러낸다.서울의 현재는 전쟁과 보릿고개를 지나 산업화를 거쳐온 바쁘고 지친 한국인의 모습과 같다.삶이 바쁘게 돌아갈수록 디테일한 부분은 신경쓰기 어렵다.삶에 여유가 있을 때 비로소 디테일한 부분은 손이 간다.디테일은 느림과 여유를 필요로 한다.서울의 문화재들은 우리에게 이제는 돌아봐야 할 때라고 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