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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딸 루이즈
쥐스틴 레비 지음, 이소영 옮김 / 이덴슬리벨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제목에서 풍기는 느낌만으로 엄마 말 잘 안 듣는 사춘기 아이들의 이야기인 줄 알았다.그래서 책을 올 해 중학생이 된 딸아이에게 주려고 했다.아이가 이 책을 읽고 조금은 말 잘 듣는 고분고분한 아이가 되길 기대하면서..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듯 책의 서두부분은 사고뭉치같은 딸의 모습이 그려진다.그래서 칙릿소설처럼 가벼운 기분으로 읽어 내려갔다.그런데 이 책 좀 이상하다! 이게 아닌데..이거 왜 이러지? 14살의 사춘기 아이에게 줄 수 있는 책이 아니었다.! 읽을수록 의문이 더해간다.책의 이름이 왜 <나쁜 딸 루이즈>이지? 아무리 읽어봐도 나쁜건 루이즈의 엄마지,루이즈가 아니지 않은가?
책은 철학자인 베르나르 앙리 레비와 그의 첫번째 아내였던 모델 이자벨 두트르뉘뉴 사이에서 태어난 쥐스턴 레비의 자전적 소설이다.그녀의 첫번째 자전적 소설<만남>은 <콩트르푸앵 프랑스문학상>을 수상했다.두 번째 작품 <심각하지 않아>는 남편을 다른 여자에게 빼앗긴 자신의 자전적 소설이고,세번째 소설 <나쁜 딸 루이즈>역시 엄마의 병과 죽음과 자신의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쓴 자전적 소설이다.
엄마는 종양이 전이되어 투병중이다.그런 엄마를 두고 루이즈는 애인 파블로의 생일을 보내기 위해 로마여행을 떠난다.엄마는 죽어 가는데 그녀는 여행의 실수로 임신을 하게된다.그래서 루이즈는 엄마에게 죄책감이 크다.루이즈는 자신이 엄마가 된다는 이야기를 엄마에게 차마 말하지 못한다.엄마의 죽음을 딛고 태어나는 자신의 아이를 엄마가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그녀는 아이를 가지기에는 아무런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흡연,음주,약물 그 모든 것들로부터 아이는 방치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엄마의 죽음후 그녀는 엄마가 남기고 간 수첩과 광고지에서 엄마를 느낀다.엄마가 남기고 간 전화번호는 엄마의 삶의 흔적들이다.그 흔적들은 말해준다.엄마 어떤 사람이었는지.가출,해고,약물복용,루이즈를 방치한 사회 부적응자,그녀는 최악의 엄마였다.! 그러나 불쌍한 사람들에게 관대했던 엄마.루이즈가 자신이 나쁜딸이라고 죄책감을 느끼는 것에 비하면 엄마는 더한 나쁜 엄마가 아닌가!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 엄마인지 학습이 부재한, 그래서 루이즈는 자신의 딸에게 좋은 엄마다 되고 싶어도 자신이 없다.
파괴적인 모녀관계.그래도 엄마는 그 자체로 엄마다.자신의 있는 모습 그대로 열심히 살아냈던 엄마,엄마에게 세상은 충분히 힘든 곳이었다.그래서 엄마가 떠난 후에도 엄마의 흔적은 루이즈에게 고통이다.엄마는 그 모습 그대로 루이즈에게 사랑이었다.그래서 루이즈는 아프다.책은 엄마에 대한 원망,그리움,두려움,그 모든 감정을 섬세하게 담아냈다.그래서 독자는 읽는 내내 가슴 저리게 아프다.책은 독자가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의식의 흐름에 따라 쓴 소설이지만,어렵지 않아서 의아할 뿐이다.소설의 흐름이 신경숙 작가의 <외딴방>과 비슷한 형식이다.<외딴방>에서 작가가 소녀시절의 자신과 대화를 하듯,이 책 역시 자칭 나쁜딸 루이즈는 자기 자신의 내면과 대화를 한다.
읽다가 놀란 부분이 있다.<이별리뷰>를 서평하면서 내가 느꼈던 "봄이 아프다"는 감정과 <나쁜 딸 루이즈>에서 저자의 "엄마가 아프다"라는 표현이 그렇다.초봄에 멘토를 떠나 보내면서 아픈 나의 봄과 엄마를 떠나보내면서 느끼는 그녀의 아픔이라는 감정의 공유와 표현의 공유부분을 만나면서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 가지는 위력은 어마어마한 공감을 이끌어낸다는 점이다.현실에서 내가 느끼는 감정을 그녀도 똑같이 느끼는 것이다.작가가 느낀 감정을 나는 살아가며서 비슷한 상황에서, 똑같은 상황에서 느낄 것이다.인류가 다른 언어로 똑같은 감정을 담아낼 수 있는 공감의 위력을 실감한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