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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 리뷰 - 이별을 재음미하는 가장 안전한 방법, 책 읽기
한귀은 지음 / 이봄 / 2011년 1월
평점 :
살아가면서 누군가를 만나고 헤어짐은 일상이다.어떤 만남은 울림을 동반하고,어떤 만남은 가벼운 스침으로 끝난다.그래서 누군가를 잃어버린 봄은 아프다.마음만 청춘인 나는,때이른 봄에 멘토를 떠나보냈다.더 큰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멘토를 지켜보며 내 마음 허허로운데,우주는 한 잎이 떨어질 찰나 공기의 떨림조차 무시한 채 제 길을 운행할 뿐이었다.나는 이제 고립된 섬이다.많이 의지하고 도움을 받았던 지인을 떠나보내고,또 다른 누군가 내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면 꼭꼭 여민 마음의 문을 활짝 열 수 있을까..그 잊음의 시간이 더디게 지나간다.
책은 봄이 아픈 이들을 위한 리뷰다.사람을 사랑한 댓가는 혹독하다.사랑한 시간보다 기억을 잊는데 몇 제곱의 시간이 걸린다.헤어짐보다 아픈 것은 그/그녀를 기억저편으로 보내야만 하는 사실이 아닐까? 실연,이혼,죽음,그 모든 종류의 이별의 뒷모습은 가슴저미는 쓰라린 모습이다.이별은 면역이 생기지 않는다.많은 이별을 했어도 매번 아픈 것이 이별이다.그래서 문학의 소명은 삶의 치유에 있다.
저자는 경상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이며,라디오 '책 테라피(bibliotherapy)'를 진행했다.이별이라는, 환부가 없는 상처는 그 누구에게나 어느날 문득 찾아오는 불가피한 손님이다.손님은 오래 머물지 않는 법이지만,이별이라는 손님은 어루만져 주지 않으면 아주 오래 머물다 곪아 터져 중증치료법을 요구할 수도 있다.그래서 저자는 이별을 완성하는 심리학적 여정인 '실연-부정과 슬픔-분노-우울-애도'라는 절차에 따라 이별을 자가치유할 수 있는 문학작품 30여 권을 선정했다.책은 물리적 여행이 아닌,들뢰즈가 말한 정신적 유목(Psychic Nomadism)에 가깝다.그래서 책 속의 책들은 독자에게 중층적인 시점으로 읽혀진다.또한 책은 자기 자신을 읽는 또 다른 책이 된다.
김경욱의 <위험한 독서>는 책을 통해서 이별의 아픔을 치유하는 치유의 소설이다.이별한 그녀는 독서치료사가 읽어준 한 권의 책이었다.<칼의 노래>는 이순신과 여진의 모호한 이별을 말한다. 이상의 <날개>, 그 관계의 부조리함도 사랑의 한 종류다.이태준의 <석양>은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게 만든 이별이었다.그들의 이별은 저무는 석양빛 만큼 가슴 아리다.책은 이태준의 저널테라피(Journal therapy)다.박현욱의 <아내가 결혼했다>는 많은 이들에게 공감보다 반감을 샀던 작품이다.그런데 저자는 책에서 공감을 말한다.책을 보는 또 다른 시각이다.롤랑 바르트에서 레비나스,크리스테바,많은 철학자들까지 미끄러져 내려가며 작품을 읽는 저자의 시각은 섬세하기 그지없다. 뛰어난 역설적인 상황 포착은 책읽기의 재미를 더해준다.그것은 이 책에서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사랑은 단 한 사람을 위한 집중이다.그래서 사랑을 잃은 사람은 주의력이 흐트러진다.이별은 누구나에게 우주가 무너지는 아픔이지만,세상의 모든 것은 순환한다.그래서 이별도 끝이 아니다.이별은 새로운 시작의 싹을 품고 있다.이별을 잘 하는 것은 좋은 사랑을 위한 희망이다.우리는 누군가에 저마다 읽혀져야 할 텍스트다.책은 저마다의 독서를 통해서 새로 태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