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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보우의 성
와다 료 지음, 권일영 옮김 / 들녘 / 2011년 1월
평점 :
일본소설은 가볍지 않으면서도 재미있고, 무겁지 않으면서도 깊이가 있다.그래서 일본소설은 특유의 맛이있다.나는 유럽소설을 가장 좋아한다.유럽역사에 호기심을 느끼면서 그것이 소설에 대한 관심으로 연결된 것이다.그 나라의 역사에 관심을 갖다보면 자연히 소설도 좋아하게 된다. 알다가도 모를 나라 일본의 역사는 학교에서 배운 몇 조각이 전부다.그래서 일본의 역사소설은 나에게 도전해야 할 어려운 과제다.<노보우의 성>도 책의 서두부분에서 성에 갇힌 노보우처럼 답답하게 만들어버렸다.등장인물들의 이름만 기억하기도 어려웠다.그런데 모든 책은 100쪽을 넘기면 게임 끝이다.100쪽부터는 술술 풀리고 일본역사소설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다.
일본서점대상 2위를 차지한 책이라면 일단 그 재미는 따 놓은 당상이다.책은 제29회 기도상을 수상한 각본 <시노부의 성>이 모태가 된 소설이다.2008년 나오키상 후보에 오른 작품이기도 하다.책의 역사적 배경은 일본의 센코쿠 시대로 덴쇼 18년(1590년대)이다.뛰어난 무예를 최고의 가치로 삼는 시대이면서도 배반이 횡행한 시대이기도 하다.센코쿠 시대에는 화승총이 보급된 때로 <삼국지>와는 전략과 전술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책은 방대한 역사 문헌을 참고로 한 소설이다.
간토 지방의 호조 가문의 자그마한 오시 성에 거대한 회오리가 몰아친다.호수 위에 지어진 구조 때문에 100여년 넘게 외부 세력의 침입을 꿋꿋히 견뎌냈지만,천하통일을 눈앞에 둔 도요토미 히데요시 진영의 공격은 버텨낼 재간이없다.호조 가문을 공격하기 위해 히데요시는 50만 명까지 동원할 계획이다.거기에 비하면 호조 가문의 병사는 농민까지 동원해야 겨우 3만4250명이다.실제 전투를 치룰 때는 미쓰나리의 군사2만5천여명에 비해 노보우에게는 겨우 4천여명이 전부다.
오시오 성의 성주 나리타 우지나기는 싸우지않고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군대에 항복할 계획을 세워놓는다.상대진영에서 항복을 받으러 왔을 때 나가치카가 싸우겠다고 해서 모두 경악한다.나리타 가문 당주인 우지나가의 사촌동생 나가치카를 사람들은 (바보,멍청이,꼭두각시)를 뜻하는 노보우님이라고 부른다.이목구비도 제각기 자기주장을 하는 듯 생겼고 바보같은 행동만한다.그러나 몇 명만은 그에게는 묘한 위화감을 느끼고 있다.책의 서두부분은 다들 바보라고 생각하는 노보우라는 인물이 호기심을 끈다.또한 불보듯 뻔한 전투가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 것인가? 반전이 있을 것인가? 궁금증을 자아낸다.
인물들의 다양한 성격들이 재미있다.노보우가 삼국지의 유비와 같다면, 불같은 성격의 소유자이면서도 상대를 멋진녀석이라고 생각하는 미쓰나리는 조조와 비슷한 구석이 있다. 미쓰나리는 오시오 성의 사무라이들을 시험하고 싸울의사가 없는 이들에게 싸울 욕구를 일으킨다.그럼 나카치카가 미쓰나리의 계획에 말려든건가? 의문이 들지만 노보우의 속마음은 아무도 모르는 베일 속에 가려져 있다.미쓰나리는 한마디로 자살골을 넣은 선수지만,노보우 못지않게 멋있는 인물이다.
삼국지가 스케일이 큰 맛이 있다면 노보우의 성은 그 무대가 작아서 섬세한 맛이 있다.책의 끝부분에 나와 있는 노보우의 성은 미로형태다.성의 모양이 말해주듯 노보우의 마음과 전략이 바로 미로와 같다.삼국지와는 다른 전략과 전술이 재미있다.세계인들이 이순신장군을 칭송하는 것처럼 노보우는 국적을 불문하고 멋있다.
이순신 장군이 명랑해전에서 일본군보다 군사의 수자 적어 학익진을 구사하지 않고 바다의 흐름을 이용해 12척의 배로 일본의 배 130척을 이긴것처럼,노보우의 성은 상대편의 병력보다 지형에서 유리하다.성이 아무리 견고해도 전쟁이 길어지면 뚫리게 되어있다는 통념을 뒤엎게 만들어버리는 노보우.전쟁의 승패는 결코 숫자에 있지않다!
노보우는 삼국지의 유비와 판박이다.바보같은 모습하며,그 속에 무슨 뜻을 품고 있는지 알기 어렵게 만드는 점이 딱 유비다.유비와의 차이점이 있다면 유비에게는 책사 재갈량이 있었지만,노보우는 그 자신이 바로 책사다.노보우는 현대판 CEO가 배워야할 모습이다.그는 군사들에게 전권을 부여하고 절대 간섭하지 않는다.자신은 전쟁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지만 그의 머릿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아무도 모른다.어리석게 보이지만 뛰어난 지략을 구사하는 노보우가 난세에 버텨낼 수 있는 비결은 바로 백성들의 마음을 얻는 것이 일찌기 전쟁에서 승리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때문이다.정말 감동깊게 읽었다.삼국지 저리가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