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사랑한다는 건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은행나무 / 2011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알랭 드 보통의 작품<불안>과 같은 특별한 맛을 기대하며 ,한껏 기대에 부풀어 선물 상자를 열어보니 그것은 완성품이 아닌 작품 조립을 위한 퍼즐 조각들 이었다.제목에서 풍기는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내용에 또 한 번 놀라게 만든 작품이다.러브 스토리와 에세이와 전기와 철학적 사유,심리학적 관찰 등 온갖 것들이 한통에 버무려진 샐러드와 같은 오묘한 맛이었다.거기에 새콤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조각을 건져 먹는 맛이 일품이다.
 

  책은 재미를 바라고 읽는다면 끝까지 읽어낼 수 없다.재미는 일찌기 포기해야 한다.문체와 일반적인 러브스토리의 재미를 기준으로 본다면 최악이다.긴문장은 이해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되어 재미를 앗아간다.그러나 뛰어난 문장 표현력은 깊은 자아성찰을 담고 있다.그래서 놀랍다.애서가,다독가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줄 작품이다.살아있는 보통 사람의 전기라,정말 기발하다.이런식으로 글이 쓰여질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책은 난해하지만 신선하다.

 

 책은 이야기를 쓰고 있는 나와 연인인 이사벨에 대한 이야기다. 그들의 초기 데이트부터 마지막 만남까지 다루고 있다.이사벨을 처음 본 순간부터 그녀와의 관계가 가까워질수록 그녀의 이야기는 나와 친밀함을 만들어 간다.우리가 누군가와 친밀해 질 때 그것은 환상과는 큰 거리가 있다.사랑이 환상이라면 친밀감은 환상 뒤에 감춰진 부분이다.감히 그 누구에게도 드러낼 수 없었던 감춰진 비밀.그 비밀은 친밀한 사람에게만 드러나는 부분이다.그래서 이사벨에게 나는 친밀한 사람이다.그러면서도 이사벨은 우리 자신의 감춰진 모습과 만나는 순간이다. 

 

 이사벨의 사생활이 적나라하게 노출된다. 이사벨의 사생활은 그녀의 주변인물들의 사생활도 드러나게 만든다.저자는 그녀를 이루고 있는 기억 속의 부속품들을 하나하나 꺼내는 작업,이사벨에 대한 해체작업을 시도한다.193쪽에 그녀의 가족과 그녀가 사랑했던,한 때 연인이었던 인물들의 사진을 싣고 있다.그래서 이사벨과 협의하에 쓰여진 작품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책을 읽으면서 이사벨은 어떤 성격일까? 퍼즐맞추기를 해 봤다.그녀는 자유분망하지만 착하고,착하지만 좀 삐딱하다. 그럼에도 긍정적이고 밝다.직설적이면서도 수줍은 면이 있고 ,좀 산만하고 다혈질적이지만 어린아이와 같은 여린면이 있다.여성적인 면과 거친 남성적인 면도 있다.그래서 이사벨과 나와의 연인관계는 유지되기 어렵다.그녀가 하는 말들이 남자에겐 풀어야할 수수께끼이기 때문이다. 보통 남자와 여자는 다른 행성에서 살다 온 사람들로 표현된다.

 

 전기 쓰기와 이사벨의 관계? 대부분의 작가들은 한 사람의 전기를 쓸 때 연대기식 기록을 사용한다.하지만 알랭 드 보통이 쓴 이사벨의 전기는 그 모든 형식을 파괴한다.죽은 사람은 말이 없다.그래서 우리는 그들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난다면 자신의 전기를 보고 뭐라할까 무척 궁금해진다.'오! 이건 내 생각과는 달라.이건 너무 과장됐어! 이건 너무 축소시켰어..'이러지 않을까? 알랭 드 보통의 이사벨 전기쓰기에 어떤 기준이 있다면 그것은 프루스트가 마들렌의 감촉으로 어린시절을 기억해 내듯 프루스트적 방식을 선호한다는 사실이다.알랭 드 보통은 죽은 사람이 아닌, 살아있는 사람의 전기쓰기를 시도하고 있다.그래서 우리는 이사벨의 전기를 두 가지 관점에서 읽을 수 있다.어마어마한 발상의 전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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