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깊은 구절 130-가슴속에 담긴 생각은 얼굴에도 그대로 드러나는 법.흐르는 시간은 그 표정들을 놓치지 않고 사람의 얼굴에 새겨 둔다.바람과 함께 온 세월이 바위의 얼굴을 조금씩 깎아 놓는 것처럼. 한 사람이 일생동안 읽을 수 있는 책의 양을 만권으로 알고 있었던 나에게, 그건 고정관념이라고 말한 이덕무 선생님을 드디어 만났다.사람들이 그리고 자기 스스로 간서치(看書痴)라고 불렀던 이덕무 앞에서 나는 bibliophile(애서가)라는 표현이 부끄러워진다.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이덕무가 세상과는 단절한 채 산 속에 틀어박혀 책만 읽은 줄 알았다.그런데 이덕무 역시 나와 비슷한 나이에 궁핖한 살림살이로 인한 가족 부양의 짐을 이고 있었는 것을 알았다. 이야기는 1792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전기가 아닌 저자에 의해 재구성된 팩션이다.책을 읽다보면 잘 알고 있던 그의 명성에 비해 이업적이 거의 없음에 놀란다.그래서 책을 읽고 나서도 공허함을 감출 수 없다.그의 처지가 신분의 굴레에 갇혀 있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날개가 있어도 날 수 없었으리라는데 생각이 미친다.그나마 좋은 임금을 만나서 그는 규장각의 검서(檢書)관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그는 서자(庶子)로 태어나서 외로운 세월을 견뎌야 했다.자신의 신분을 자손들에게 대물림 해야만 하는 고통과 자신의 가치를 발하기 힘든 고독한 시간들,궁핍한 가장의 버거움과 책을 사랑하는 맘 사이에서 많이 갈등했다.그의 갈등이 내 모습을 보는 것처럼 눈에 선하다.지독히도 가난해서 책을 구하기도 힘들었던 가장 이덕무.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고 책표지만 바라보아도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는 간서치 이덕무.책은 그에게도 나에게도 세월을 견뎌내게 해준 벗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