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광장과 밀실의 경계가 무너져버린 시대에 살고 있다.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어딘가에서 누군가에게 사생활이 노출되는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매스컴은 대중을 관음증 환자로 만드는데 선동을 하고,심심한 대중은 술안주로 그만인 오징어 땅콩처럼 타인의 비밀을 소모한다.네티즌은 마녀사냥을 즐기고,스마트폰은 또 다른 차원의 사생활 침해의 위협을 느끼게한다. 인간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을까? 생각해보면 우리를 만드는 것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이어주는 기억들이다.어찌보면 우리를 이루고 있는 기억 중에서 무의식이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무의식은 무한한 기억이 아닐까? 무의식의 많은 부분은 자신도 해독하지 못하는 비밀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가 남에게 보여주는 부분은 사회적인 페르소나(persona)다.페르소나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착용하는 의복과 같다.그러면 우리의 진정한 자아는 보여지지 않는 부분,감춰진 부분에 있다고 할 수 있다.그런 비밀스러운 부분을 모두 드러낸다면 과연 우리의 자아가 온전할 수 있을까? 누구나 나름대로 비밀이 있다.어디까지 비밀로 해야하고 어디까지 드러내야 하는지는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 있다.커밍아웃을 하고 난후,무너져 버린 유명인이 얼마나 많았던가.자신의 비밀을 드러낸다는 것은 타인에 의해 자신의 자존감에 상처받을 준비까지 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꼭 지켜야할 비밀은 무덤까지 가지고 가는 사람도 있다.그런 비밀도 역사가 바뀌면서 드러나기도 한다.흔히들 글쓰기는 자신을 드러냄으로써 치유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그런데 이 책을 읽고 글쓰기에 상당히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드러낸다는 것은 더 이상 비밀이 존재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자신의 모든 비밀을 드러낸 후 자살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작가들에게는 더 이상 자신은 존재하지 않은 것과 같은 것이다. 아이를 키워본 이들은 부모의 무의식이 자녀에게 끼치는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를 잘 안다.남녀가 서로 다른 이성을 사랑하는 것도 비밀이 이성을 신비하게 해 주기 때문이고,결혼이 더 이상 연애와 같을 수 없는 것도 베일에 쌓여있던 비밀들이 드러나기 때문이다.사랑이란 우연도 아니고 운명도 아닌,인간의 심리적 요구의 충족이라고 한다.비밀을 드러내기를 종용하는 현대사회.비밀의 마지노선은 어디까지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