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어디선가 누군가 울고 있다 - 장석주의 문장 예찬 : 동서고금 명문장의 치명적 유혹에 빠지다
장석주 지음, 송영방 그림 / 문학의문학 / 2009년 12월
평점 :
품절


우연히 알게된 장석주님의 <취선만필>은 나를 휘청거리게 만들었다.2만권의 장서가 장석주교수님은 시인이자 평론가다.한참 경제학 서적에 빠져 있던 나는, 경계를 허무는 장석주님의 독서력에 그만 얼이 빠져버렸다.편향된 독서를 하던 나는 드디어 새가 알을 깨고 나오듯 통증을 느끼며 그가 언급한 책들을 탐독하기 시작했다.그의 글의 특징은 어마어마한 독서량이 말해주듯이 다양한 언어를 사용한 다양한 표현력이다.그의 글을 접하고 나면 글쓰기의 넓이나 깊이도 다양한 독서량만큼 꼭 그만큼이다는 걸 알 수 있다.무언가를 표현하고 싶어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막막한 내게 그는 표현력의 질은 독서량에 있다고 분명히 보여준다.이 책 역시 책에 관한 책이다.

 

 지금 세상 어디선가 누군가 울고 있다/세상에서 이유 없이 울고 있는 사람은/나 때문에 울고 있다/지금 세상 어디선가 누군가 웃고 있다/밤에 이유 없이 웃고 있는 사람은/나를 비웃고 있다/지금 세상 어디선가 누군가 걷고 있다/정처도 없이 걷고 있는 사람은 /내게로 오고 있다/지금 세상 어디선가 누군가 죽어가고 있다/세상에서 이유 없이 죽어가는 사람은 /나를 쳐다보고 있다-라이너 마리아 릴케

 

 문장,인생,관조,사랑이라는 주제 아래 약50권의 책이야기가 비단치마폭처럼 아름드리 펼쳐진다.때론 고고하게 때론 관조적으로 때론 읽는 이의 가슴을 아리게 그의 펜이 손끝에서 마술을 펼친다.자신의 글에서 자신을 지우는 사람이라고 한  모리스 블랑쇼가 궁금해진다.언어의 가능성에 대한 사유를 극한까지 끌어가는 그는 분명 천재다.나는 때마침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의 칼>을 읽고 있던 중 롤랑 바트르가 일본문화 를 거대한 기호의 진열장이라고,자유로운 문화의 원형을 찾았다는 장서주님의 글을 읽었다.그래서 책을 비교해 보니 일본의 하이쿠가 텅빈 그 무엇이라는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평생 2만권의 책을 읽었다는 책만보는 바보 이덕무의 <간서치전>도 읽고 싶다.한 사람이 평생 읽을 수 있는 책의 양이 만권이라고 알고 있던 내 머리에 별이 반짝였다.

 

 일요일이던 어제는 내 쉰한 번째 생일이었다.어제 나는 고작 혼자 밥 끓여 먹고 종일 책을 읽었다.이렇듯 '말라 가는 수레바퀴 자국에 고인 물속의 붕어'처럼 사는 게 남의 눈엔 딱하게 뵐지 모르지만,그것 행복이라고 여기니 누가 그걸 말리겠는가? 본디 깊은 강과 너른 호수에서 태어났더라면,그 때도 책에 매달렸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왜냐하면 내 삶의 자리가 '수레 바퀴 자국에 고인 물속'이니까.-장자

 

 작가들은 유독 삶에 의문이 많다.세상과 적당히 타협하지 않는 이들이 바로 작가인가보다.그래서인지 작가들의 삶은 굵고 짧다.세상의 어느 한 가지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그들의 섬세한 관찰력,그래서 세상은 그들이 남긴 사유물인 책을 통해서 진화한다.보르헤스는 우주가 하나의 거대한 도서관이라고 했다.누군가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저마다 한 권의 책이라고 했다.그 누군가는 책은 세상을 보는 단 하나의 창이라고 했다.나에게 책이란 공기다.그래서 누군가 내게서 책을 빼앗아간다면 나는 숨을 쉴 수 없을 것이다.나는 책을 읽을 가장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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