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자의 눈으로 바라본 역사의 흐름

소현
김인숙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3월

흔히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한다.그래서 우리가 마주보는 역사는 많은 부분이 왜곡된 것이다.후대에 이르러 역사의 진실이 밝혀지기도 한다.소현세자도 왕으로 등극하지 못하고 그 명을 다했기 때문에 우리는 그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기회가 적었다.인조는 기억하지만 소현세자는 기억하지 못하는 우리에게 패자의 눈으로 역사를 바라보게 한 저자의 노력에 감사한다.
 

 소현세자는 인조의 장자다.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 삼전도(조선 시대에, 서울과 남한 산성을 이어 주던 나루)에서 인조가 중국 청나라 태종에게 항복을 했다.소현세자는 전쟁의 패배에 대한 볼모로 아우 봉림대군과 함께 청나라에 끌려갔다.인조가 남한산성에서 청나라에 무릎 꿇었다는 비루함에 대한 기억이 어쩌면 우리를 소현세자에 대해 알고자 하는 마음조차 앗아갔는지도 모른다.소현세자는 후손들이 기억하고 싶지 않은 역사의 한 장에 불과 했다. 저자는 그런 소현세자를 당당하게 우리 앞에 부활시켰다.승자의 역사 못지 않게 패자의 역사도 우리가 다시 한번 되새겨 봐야함을 그녀는 당당하게 말해 주고 있다.

 

 인조 22년 심야의 소현.누르하치가 여덟번째 아들 홍타이지에게 칸의 자리를 물려줬다.소현은 적의 땅에서 9년을 머물면서 적국의 전쟁에도 종군해야만 했다.전쟁의 패배는 소현세자 뿐만아니라 조선의 많은 사람들이 노예로 끌려갔다.남한산성 수어사인 심기원의 아들 심석경은 세자를 보위하기 위해 자진해서 청으로 왔고,흔은 왕족 희은군의 딸로,청의 황제에게 바쳐졌다가 황제가 대학사 비파에게 선물로 주어졌다.끌려온 조선인 무녀 막금은 흔의 시종으로, 만상은 역관으로 그들 사이를 오고갔다. 

 

 세자를 사랑하지만 아버지를 따를 수밖에 없는 심석경에게 씌워진 양반의 자식이라는 굴레.힘없는 나라의 백성들이 겪어야 하는 온갖수모.차라리 죽느니만 못한 질긴 흔과 막금의 목숨.대국의 속국 왕인 인조의 울분.반정을 도모한 심기원.모든 것이 불안한 시기는 술로 도피한 회은군조차 그냥 두지 않는다.소설은 소현세자와 아우 봉림대군,심석경,흔,만상,막금,비파의 운명이 역사와 어떻게 엮여 나가는지 때론 팩션으로 아프게,때론 흥미진진한 추리소설로 펼쳐진다.다만 옛언어에 가까운 문장은 우리를 과거로 빠르게 스며들게 하면서도 그것은 완전한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누르하치의 14남 도르곤(구왕,예친왕,섭정왕)은 아버지가 죽을 때 홍타이지에 의해 생모 하바하이가 순장당한 것을 알게된다.소현세자는 적국에서 홍타이지가 살해되고 자신을 압송해온 도르곤이 섭정을 하는 시대를 살아간다.소현은 도르곤과 벗처럼 지내지만 그가 처한 위치는 항상 살얼음판이다.그의 말 한마디가 조선에 어떤 불똥이 튈지 모르기에 그의 삶은 모질게 세월을 견뎌내야만 하는 삶이었다.그의 울음은 안으로 삭이고 삭여야만 했고,와신상담한  소현세자에겐 운명이 가혹하기만 했다.

 

 권력이란 한 자리에 머무는 법이 없다.그것은 흐르는 물과 같다.그런 권력의 희생양이 되어버린 소현.조국인 조선과 적국인 청나라 그 어디에도 속할 곳이 없었던 소현세자. 그는 조선과 청나라 양쪽에서 이방인이었다.승자의 역사가 아닌 패자의 역사와 맛닥뜨리는 것은 참 쓰라리다.소현세자가 살아내야 했던 살얼음판 같은 적국에서의 삶.소현세자에게 쓰라렸던 역사는 반짝이는 햇빛 뒤로 감춰진채 우리는 오늘도 치열하게 살아간다.덧없는 역사 앞에서 오늘의 찬란한 햇빛도 내게는 참 쓰라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