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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손 도장 - 2010 대표에세이
최민자 외 49인 지음 / 에세이스트사 / 2010년 4월
평점 :
품절
수필을 읽어 본 적이 언제였던가? 20년전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읽어본 후 수필에 대한 기억이 없다. 수필에 대한 나의 기억은 <무소유> 외에는 무소유다.그것은 아마도 수필이라는 경계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수필은 인문서적으로 분류되어 버리기 때문에 굳이 수필인지 아닌지 따져본 적이 없다. 수필은 붓 가는 대로 쓴 글이라는 생각에 쉽게 쓴 글이라는 개념이 먼저 생겨나 수필을 만만하게 본 것도 그 이유다.다양한 역사나 철학 경제학등 뭔가 지식을 배울 수 있는 책과 재미있는 소설을 우선시 한 나는 수필을 만만하게 봤다.그래서 이 수필을 읽으면서 나의 충격은 너무 컸다.수필은 이제 더 이상 붓 가는 대로 쓴 글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그럼,뭐라고 칭할까? 수필은 인생이고 예술이고 과학이자 역사다.
이 책에 실린 수필가 50명은 대부분 50대다.인생의 희노애락의 모든 맛을 다 알아버린 그들은 자연의 모든 것에서 그들의 삶의 의미와 동질감을 발견한다.인간의 결국 자연으로 돌아간다.인생의 반 이상을 살아낸 그들의 글에서는 비움의 여유가 자연스럽게 묻어난다.치열하게 청춘을 살아냈던 그들의 글에서는 삶의 냄새가 난다.아직 알 수 없는 나,이쯤해서 너의 정체를 순순히 밝혀라.굳이 자백할 것도 없는데 가슴 한켠을 움켜쥔다.통증이 인다.쉰,그간의 시간이 뭉친 아픔이다.(P200)
<하느님의 손도장>이란 책의 제목이 상당히 궁금증을 유발했는데,글을 읽은 후 그 기발한 표현력에 놀랐다.<나의 멸치 존중법>의 제목만 보고 '이런게 과연 에세이의 소재가 될까?' 싶었는데 읽으면서 웃음이 절로 나고 그 관찰력과 감정이입 방법에 놀라웠다.멸치를 까다 보면 잠시 마음이 짠할 때가 있다.어느 한 놈도 내장이 까맣게 타지 않은 것이 없어서이다.얼마나 속을 끓였으면 저 지경이 되었을까 싶다.(P14)
<수박송> 또한 재미있다.수박을 예찬하기 위해서 그는 <욕망의 식물학>과 <연산군일기>등의 글을 인용하고 있다.그는 수박 써는 방법에서 잔인함을 은폐하는 문화를 읽어내기도 하고,수박을 두드리는 찰나에도 우주의 진리를 깨우친다.인간이든 과일이든 성숙한 단계에 도달하지 않으면 결코 낼 수 없는 소리가 있다.깊되 부드러워야 한다.모나지 않고 반향이 둥글어야 한다.두드리는 상대편을 무안하게 밀어내지 않아야 한다.(P53)
형편도 형편이지만,그토록 비천한 행색이 된 건 노인이 스스로 행하는 속죄행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휘청휘청 걸어가던 노인의 모습이 눈에 밟힌다.(P67) 인간의 늙음에 대해,업보에 대해,윤리에 대해 맘 쓰리게 읽어야 했던 <고운 노을이 졌으면 좋겠다>. 잘 안다고 생각했던 우리역사에 묻혀 있던 진실이 그들의 과거<애오개의 한>을 통해서 드러나기도 하고,<에스더와 미국>은 교포 2세와 우리에게 서로의 위치를 돌아보게 한다.부자간의 갈등,사랑,이해를 그린 <화해>와 부녀의 갈등,미움,용서를 그린 <아버지의 연인>.이데올로기의 희생양이 되었던 청년의 과거를 그대로 간직한 <녹슨 하모니카>.우연이 가져다준 미묘한 감정을 가슴뛰게 그려낸<낯선 남자에 대하여>와 <산길에서 만난 남자>.
한 작품도 맘에 들지 않은 작품이 없다.관찰력과 창의력,상상력이 돋보이는 멋진 문장들에 반하게 만든다. 짧아서 쉬울 줄만 알았던 수필 한 편을 쓰기 위해 그들은 다양한 책을 읽고 문헌까지도 참고하고 있어서 놀랐다.한창 치열하게 살아야 하는 내 나이에는 인생의 반을 너머서 이제 잠시 돌아봄,쉼의 여유가 있는 50대가 부럽기도 하다.세대차이가 느껴질 법도 한데 이상하게 이질감 하나 없이 이 책을 읽어냈다.생의 따스한 느낌이 그대로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