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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의 이름 - 하 ㅣ Mr. Know 세계문학 16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윤기 옮김 / 열린책들 / 2006년 2월
평점 :
절판
나에게 <장미의 이름>은 그 답을 미리 알고 읽는 역사추리소설이다.그래서 결과보다 과정을 즐기며 읽었다.장미의 이름(상)에서는 장서관과 연쇄살인사건과의 관계,서책과 범죄와의 관련성,살인자가 누구일까? 윌리엄과 아드소는 과연 범죄를 해결 할 수 있을까?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분신으로 보이는 호르헤노인은 범죄와 어떤 관련이 있을까? 많은 의문점을 만들어냈다.
상권에 비해 하권에서는 확대시킨 미궁의 도면이 그 아름다움에 취하게 만든다.크게 확대한 578쪽 미궁의 도면은 수수께끼를 푸는데 재미를 더해준다.상권에서 움베르토 에코가 계속 걸고 넘어지는 호르헤노인의 존재가 궁금했는데,하권에서는 호르헤노인이 보르헤스의 분신이라는 것이 명백해진다.그래서 보르헤스를 좋아하는 독자들은 이 책이 확실한 픽션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중세에 있었던 사건에서 그 아이디어를 차용한 움베르토 에코의 역사추리소설인 것이다.
윌리엄이 이 사건을 해결해 가는 과정에서 보이는 그의 추리력이 무척 흥미롭다.우리는,베난티오와 베렝가리오가 같은 물질을 만졌을 것이라는 가설을 세웠다.이것이 합리적인 가설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대전제를 오해하면 얼마나 엉뚱한 결과가 나오는지 아느냐?..논리라고 하는 것은 그것이 적용되어야 할 사상 안에 있을 때보다는 거기에서 떠나왔을 때 더욱 유용한 문제 해결의 열쇠가 되어 준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P470 ) 우리는 모든 질서와 무질서를 상상해 보아야만 한다(P747)
금단의 지식에 목말랐던 이들이 손에 잡는 순간 꿀이 아닌 전갈의 독으로 변해버린 한 권의 금서.금서를 지키고자 애쓰는 자.움베르토 에코가 이 소설을 집필하기 시작했을 때 애초부터 장서관은 축소된 바빌론이었던 듯 싶다.미궁으로 설계된 장서관은 설계당시부터 예정된 아마겟돈이었는지 모른다.현 세상이 타락했던 바빌론과 같지 않기를..
많은 용이자들 중에서 움베르토 에코는 왜 하필 호르헤노인의 역할에 보르헤스를 대입 시켰을까?중년의 나이에 눈이 멀었고,눈먼 상태로 도서관장을 지냈으며,5개 국어를 구사했던 석학< 보르헤스 전집>을 읽으면서 나는 보르헤스가 범죄를 지은다면 완전 범죄를 지으리라 생각했다.그만큼 보르헤스의 단편추리소설은 미궁과도 같다.그런점에서 윌리엄과 두뇌게임을 할 수 있는 호르헤노인의 역할에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이 보르헤스일 수밖에없다.
장서관,미로,거울,서책,종교와 철학적 사유등 많은 내용이 보르헤스의 세계를 떠오르게 만든다.하지만 <보르헤스와 오랑우탄>에서 저자 루이스 페르난두 베리시무가 범죄자의 아버지를 보르헤스로 설정하고 보르헤스에게 편지를 쓴점과 이 책의 저자가 보르헤스를 범죄자로 몰고 가는 점에서는 두 저자가 많은 비교점을 남긴다.호르헤 노인이 기독교적 광신자라면 보르헤스는 무신론자다.오히려 보르헤스는 동양적 윤회설을 믿는 편이다.호르헤노인을 윌리엄의 어두운 자아로 대립 시킨 것은 보르헤스를 존경하는 독자 입장에서 몹시 기분 나쁘다. 그럼에도 이 책이 남긴 감동은 깊어서 다음에 읽을 책을 고르기 어렵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