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운 나쁜 해의 일기
존 쿳시 지음, 왕은철 옮김 / 민음사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일반적인 황금비의 직사각형을 탈피한 책의 길이부터 관습을 깨는 창의성이 돋보인다.한 페이지에 주인공이 쓴 에세이와 소설(그가 쓴 안야에 대한 생각,안야가 그에 대해 쓴 생각)을 세 칸으로 구분해서 싣고 있어서 에세이와 소설의 혼합이라는 형식 또한 독창적이다.그래서 이 책은 파격성이 강한 실험적인 책이다.실험적인 것은 창조성의 또 다른 말이라서 호기심을 자극한다.
 

 두 권의 책을 동시에 읽는 느낌이다.처음엔 어떻게 읽어야 할지 당황했다.한쪽의 에세이를 읽고 다시 소설을 읽었다.그리고 다시 옆 페이지의 에세이와 소설을 읽었다.그러다보니 소설이 몰입이 안 되고 자꾸 단절되는 느낌이 들었다.에세이도 헷갈렸다.그래서 나는 자연스럽게 소설의 흐름을 끊지 않고 읽기 위한 방법을 찾아 읽게 되었다.먼저 에세이 한 편을 다 읽고나서 소설을 에세이 한 편이 끝나는 부분까지 읽었다.이렇게 하니 집중이 아주 잘 됐다.

 

 안야와 그의 애인 앨런은 최상층에 산다.전업작가인 일흔두살의 세뇨르.C는 1층에 산다.늙은작가는 세탁실에서 안야를 처음 본 순간 반해버린다.그래서 그녀를 자신의 원고를 타이핑해 주는 조수로 쓴다. 앨런은 세뇨르가 그녀를 고용한 것은 그녀를 좋아하기 때문이라며 늙은 작가를 질투 한다.남자의 예리한 본능이다.그녀자신도 못 느낀 것을 애인이 먼저 알아 본다.그것이 그들의 관계를 삐걱거리게 만든다.세뇨르는 안야의 눈을 통해서 세상을 배운다.안야는 세뇨르를 통해서 삶의 진솔함을 배운다.

 

 늙은작가가 첫눈에 반한 사랑을 하는 반면,안야는 존경이 사랑으로 변하는 서서히 알아가는 사랑에 눈 뜬다.전혀 티내지 않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은은한 세뇨르의 안야에 대한 사랑과 혼자사는 노인에 대한 안야의 연민은 그것이 사랑인지 독자가 깨닫는데 오래 걸린다.특히 안야가 현실적인 결단을 내리기때문에 사랑인지 더욱 불확실한 잔잔한 사랑으로 남는다.

 

  대학교수가 정치,경제,사회,문화 강의를 하면서 중간에 학생들이 졸지 않도록 재미있는 이야기를 한편 들려 주는 기분이다.그래서 스토리는 에세이의 지루함을 없애주는 역할을 한다.에세이는 잡학사전과 같다.그의 정치,경제,사회,문화,세계관,가치관,국가관,종교관,철학관,애정관등 모든 것을 담고 있다.

 

 음악에서 대위법이란 둘 이상의 독립된 선율이나 성부를 통시에 결합시켜 일종의 대화 상태를 구축하는 걸 의미하는데,이 소설에서는 에세이와 소설을 동시에 싣고 있음으로해서 바흐의 음악과 같은 대위법적 소설의 진수를 맛 볼 수 있다.메타픽션의 장치는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다.늙은 작가에 대한 안야의 연민이 독자의 가슴에 저려오는 잔잔한 감동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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