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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못 읽는 남자 - 실서증 없는 실독증
하워드 엥겔 지음, 배현 옮김 / 알마 / 2009년 7월
평점 :
절판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지워진기억을쫓는남자 - 알렉산드르로마노비치루리야 지음 |한미선 옮김
보지 못한다는 것은 어느 정도는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였다(P128)
이 책의 제목을 보고 제일 먼저 떠오른 인물은 보르헤스였다.책이 인생의 전부였던 그가 보지 못하는 고통은 얼마나 컸을까? 그리고 나서 '만약 내가 글을 읽지 못하게 되면 어떨까?'에 생각이 미쳤다.책 읽는 것이 내 삶의 유토피아인데,그런 일은 없기를 바라면서 책장을 넘기고 있다.베스트셀러 추리작가였던 그가 글을 해독할 수 없었다는 게 놀라웠다.무엇보다 이 책이 실화였다는 것이 놀라웠다.
하워드 엥겔은 2001년 갑자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뇌졸증을 앓았고 그 휴우증으로 실서증(失書症)없는 실독증(alexia sine agraphia:알렉시아 사이니 아그라피아)에 걸렸음을 알게 된다.어느날 갑자기 글자들이 그에게 상형문자로 다가오고,사물이 왜곡되고,시간관념이 희박해진다.이 병은 글을 쓸 줄은 알지만 읽지 못하는 희귀 질환이다.그런 그가 글자를 해독해가고 마침내 책까지 쓰게 된다.<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의 저자인 뇌신경과 의사 올리버 색스와의 만남은 그에게 큰 힘을 주었다.
책이 곧 그의 삶이었던 만큼 이 책에서 사용하는 비유들은 그가 읽었던 많은 책에서 차용하고 있다.또한 그가 자신의 장애와 친해지려 애쓰며 ,실독증환자인 상태에서 새로 쓰는 추리소설을 자신의 상황에 맞춰 플롯을 구성하고 책의 집필부터 출판까지의 책을 완성해가는 힘든 과정을 보여준다 .견고한 플롯을 미리 구축해놓아야 하는 작가는 그 가운데 몇 가닥을 의식적으로 심어놓는다.그러나 바로 그 작가인 내가 의식하지 못하고 본문 속으로 들어가버린 부분도 있었다.(P159)
책을 읽는 행위는 상당히 고차원적인 작업이다.눈이 글자를 인식하고,뇌가 그것을 다시 해석하고,단어들을 연결시켜,상당히 빠른 속도로 처리한다.책 읽기는 정상인에게도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한 작업이다.자신이 활자 중독이라고 이야기 할 정도로 책을 많이 읽었고,창작을 하는 작가인 그가 글을 해독할 수 없다는 것은 삶이 끝나는 것과 같은 충격이었을 것이다.
사람들 얼굴은 익히 기억하지만 그들의 이름은 아득히 먼 나라로 떠나버렸다.(P112)
뇌졸증의 칼부림에 정리 해고 당한 사람이 나뿐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제 알게 됐으니까(P167)
나는 무심코 복도를 걷거나 나와 점심을 함께하며 대화를 나누던 사람들을 머릿속에 내 소설의 등장인물들로 납치해 놓았다(P159)
저자는 충격을 회고하고 있는 사람 같지 않게,유머러스하고,차분하게,뛰어난 문장으로 표현해 내고 있다.그가 얼마나 많은 책을 읽었는지 그의 문장 표현력이 말해주고 있다. 뛰어난 문장 표현력은, 그가 겪었고 현재도 겪고 있는 고통들이 아픔보다 아름다움으로 다가오게 만든다.물속의 발은 열심히 버둥거리지만 잔잔한 호수에는 아름다운 백조의 모습만 보이는 것처럼 이 책은 그렇게 보여진다.읽고 쓴다는 것의 아름다움과 저자의 노력이 숭고하다.